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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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에서 봤던 검은 염소와 동일한 화신체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는 검은 염소를 심볼로 쓰는 신은 하나밖에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그랬다.
“슈브-니구라스, 슈브-니구라스……!”
“여신이 여기에 있던 겁니까?”
“잘 모르겠어. 여기까지 쫓아온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여기에 있던 건지.”
나는 레안드로스에게 들린 채로 마도서 프나코틱을 필사적으로 뒤졌다.
이동은 그에게 전적으로 맡긴 상태였고,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슈브-니구라스에 대한 내용은 너무 방대했고,
마도서 집필자는 슈브-니구라스에 눈이 뒤집히기라도 한 건지 족히 1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 동안 내내 여신의 디테일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슈브-니구라스의 악성 개인 팬 아니냐고!
정신없이 그녀의 특성이며 화신체에 대한 설명을 훑어보고 있을 때,
내 망토 모자 속에 들어간 눈사람이 외쳤다.
“위대한 나님, 여신의 기척 없었다. 여기까지 온다? 계속 없었다. 이 장소 이상하다!”
“뭐가 이상한 건데?”
“신, 서로 알아본다. 느낀다. 여기에 있다. 하지만 여기에 없다? 흐리다. 반쯤 사라졌다.”
눈사람은 신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마을에 있는 신, 아마 슈브 니구라스의 존재감은 흐릿한 모양이었다.
분신체인 본인이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퇴색된 존재감.
“분신체나 화신체일 가능성은 없나?”
레안드로스가 물었다.
분신체나 화신체가 되면 존재감에 덧칠되어서 흐리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눈사람의 얼굴이 약간 삐뚤어졌다.
“모른다. 위대한 나님, 모든 것을 안다? 아니다.”
“쓸모가 없군.”
“인간 기사보다는 쓸모 있다.”
“둘 다 말다툼할 때야? 아멜리아가 사라졌다던 길목에 다 왔어.”
베르데가 말해준 장소는 언뜻 보기에는 평범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도시의 골목.
돌이 반쯤 깔린 바닥은 생활하수가 나오지 않아 건조하게 말라 있었고,
그늘 아래에서는 돌과 벽 사이에 이끼니 잡초가 조금씩 자라 있었다.
쥐가 이따금씩 뭔가를 갉아먹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레안드로스는 천천히 걸어서 아멜리아가 사라졌다던 꺾인 길을 따라 나아갔다.
“……여기서 사라졌던 것 같은데.”
“이 앞으로는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바닥에는 어떤 흔적도, 하다못해 아멜리아가 실수로 떨어뜨린 물건도 없었다.
깨끗하게 증발한 그녀의 흔적을 평범한 사람이 더듬기란 어렵겠지.
하지만 인간이 아니라면 어떨까?
“내려줘.”
레안드로스의 도움으로 발이 땅에 닿자마자,
우리 뒤에서 타닥타닥하는 자그마한 소리가 들렸다.
커다란 기니피그만큼 큰 회색 쥐가 사람의 얼굴을 한 채 달려오고 있었다.
후드 안에 들어 있던 눈사람이 역겨워하면서 ‘웨엑이다.’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몸을 숙여 쥐를 팔으로 올려줬다.
쥐가 늙은 얼굴을 팔에 문지르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머리카락을 몇 가닥이 유효한 대가였나 보지.
그런데, 갤로에서 봤을 때보다 살이 찐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착각인가?
-여자를 찾아. 냄새를 따라가. 여기에 없다면 바깥으로 나가야 해.
-배고파.
-돌아오면 배를 채울만한 걸 줄게.
턱을 간질이며 속삭이자 인면쥐는 거칠 거리는 울음소리로 답했다.
땅에 내려준 인면쥐는 쏜살같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눈사람이 내 어깨 위로 올라와서 물었다.
“신자. 쥐새끼와 대화한다. 입이 트였다? 갤로에서도 그랬다?”
“뭐가?”
어우, 무거워. 이놈도 살이 쪘나. 얼음을 너무 많이 보충한 거 아냐?
레안드로스에게 손을 뻗자 그는 반사적으로 나를 도로 안아 들었다.
레안드로스는 나를 어쩐지 기묘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할 말이 있어?”
“아닙니다. 쥐가 올 때까지 대기합니까?”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불안해도 기다려야 해.”
인면쥐라면 말하지 않아도 내가 있는 장소를 알아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베르데에게 다시 돌아갔다.
하지만 우리가 약속 장소로 다시 돌아갔을 때, 자리는 텅텅 비어 있었다.
우리가 가지고 다니던 짐만 길가 한구석에 놓여 있었을 뿐이었다.
대체 어느 틈에 사라진 거지?
나와 레안드로스가 멀리 다녀온 것도 아니었다.
뛰어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인데.
끽해봐야 15분에서 20분 사이에 모습을 감추다니?
내가 당황해서 주변을 둘러보자 레안드로스는 얌전히 놓여있는 짐으로 다가갔다.
허름한 천 가방을 살펴보던 그가 말했다.
“끌려가거나 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반항의 흔적도 없고, 가방을 잘 갈무리해두었습니다.”
“짐을 잠시 내려놓고 쉬고 있던 사이에 납치된 걸 수도 있잖아.”
“베르데는 겉은 그렇게 보여도 생각보다 잔머리가 잘 굴러가는 유형입니다. 분명 누군가에게 강제로 끌려갔다면 단서를 남겨두었을 겁니다. 눈앞에서 아놀드 영애가 사라진 걸 목격했으니, 본인의 경계심도 상당했겠고요.”
“하지만 만일 아멜리아처럼 손쓸 틈도 없이 사라진 거라면.”
“이상한 힘이 간섭한 거라면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현재로서 제 판단은 그렇습니다.”
두 명을 똑같은 방법으로 납치하기에는 어렵다는 이야기인 걸까.
주변을 둘러봤지만 당연히 베르데는커녕 지나가는 들개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래, 그렇다고 쳐. 베르데가 자진해서 논리적으로 생각한 끝에 짐을 놓고 여기를 뜬 거라고 치자. 그런데 대체 이 도시에서 누가, 베르데를 어떻게?”
여기는 사람이 사라진 도시.
갤로처럼 도시가 분단된 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사람이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가뜩이나 경계심이 높아진 베르데가 정신 놓고 누군가를 쭐레쭐레 따라갈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레안드로스는 약간 미간을 좁혔다.
“힘이 센 존재는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겉모습이 위압적이었다면 겁을 먹었을 겁니다.”
“약한 존재라는 거야?”
“상대가 무해 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믿었다는 뜻도 되겠습니다.”
“이 상황에서 베르데를 경계심을 풀려면 얼마나 착하고 무력하게 생겨야 하는 거야?”
조금 어이가 없어졌다.
레안드로스의 말도 이해를 할 수는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베르데도 정신이라는 게 박힌 사람인데…….
아무나 보고 넋을 빼고 졸졸 따라갈 리가 없었다.
“진짜 위험한 어린이나 뭐, 경국지색이 아니라면 베르데 정도 되는 인간이 그렇게 헤벌쭉해서 따라갈 리는.”
“……경국지색입니까?”
“……어?”
여기는 발렌타인.
정치적, 지리적, 전략적 이점도 없는 평범한 도시.
다만 술이 무척 독특해서 인기가 많고,
태생적으로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아 이름이 높은 도시.
여기에 나타난 것은 검은 염소의 주인, 슈브-니구라스.
마도서 프나코틱을 펼치자, 거기에는 슈브-니구라스를 설명한 삽화가 글줄 사이에 들어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그림 하나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 * *
“저기, 그런데 우리 어디로 가는 겁니까?”
“따라와 보시면 알겠죠.”
베르데는 자신보다 딱 몇 발짝 앞서고 있는 흐린 금발의 여자를 살펴보기 바빴다.
아렌하이트와 레안드로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덜덜 떨면서 길가에 서 있던 베르데는 이 여자를 마주쳤다.
베르데는 여자를 보는 순간 ‘세상에서 오직 하나밖에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주변 풍경은 서서히 멀어지고, 오직 이쪽으로 다가오는 그녀만이 선명하게 보였다.
여인의 피부는 약간 가무잡잡했다.
콧잔등과 광대뼈에 걸쳐 자잘한 주근깨가 있었는데, 점 하나하나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었다.
오뚝한 코는 낮지도 높지도 않게 적당했으며, 도톰한 입술은 생기가 넘치는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성기게 땋아 내린 머리카락은 잔머리가 삐져나와 있었는데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더했다.
그녀가 베르데에게 와서 한 말은 딱 한 문장이었다.
-이런 곳에 웬 사람이 있담. 저랑 같이 가실래요?
베르데는 곧바로 어깨에 메고 있던 짐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따라붙었다.
그녀는 자신을 해칠 리가 없다는 확신이 든다고 해야 하나, 따라가면 안전할 것 같다는 기분이었다.
스스로도 이런 결정이 비이성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는 눈짓 한 번으로 베르데가 가진 일말의 이성조차 간단히 으스러뜨릴 만큼…… 아주 아름다웠다.
넋을 빼놓는 미인이라는 게 이런 뜻이었나.
베르데는 피로조차 잊은 채로 홀린 듯이 여자를 따라갔다.
얼마나 그렇게 갔을까, 거의 도시를 가로질러 벗어난 게 아닌지 생각할 무렵.
갑자기 눈앞이 확 트였다.
그와 여자는 어느새 호사스러운 정원 안에 들어와 있었다.
머리 위를 가리고 있는 잎이 넓은 나뭇잎이 초록색과 노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저 멀리로는 잘 가꾸어진 꽃밭이 얼핏 보였고, 빼곡하게 심은 나무들 사이로 숲속처럼 길이 나 있었다.
이렇게 넓고 잘 가꾸어진 정원은 흔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도시 거주민들은 이런 정원을 가꿀 여력도 없었고.
도시 안에서 이만한 정원을 가지려면 부와 권력을 동시에 소유해야 가능했다.
혹시, 성주(城主)의 자택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베르데의 걸음이 조금씩 느려졌다.
여기가 발렌타인의 어디인지는 몰라도 성주의 정원이라니. 분명 엄청나게 멀리 온 게 틀림없었다.
레안드로스와 아렌하이트에게는 말도 하지 않고 왔는데. 그들이 나를 찾고 있지는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베르데는 머뭇거리면서도 여자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여자가 뒤돌아서 베르데에게 온몸을 던져서 안겼다.
“억!”
달콤한 향이 확 다가왔다.
게다가 말랑말랑한 몸은 여리고 조금만 힘을 줘도 부서질 것 같았다.
베르데가 휘청거린 탓에 두 사람은 수풀 속으로 쓰러졌다.
베르데의 위에 올라탄 모양새가 된 여자는 그의 머리 옆에 한 손을 짚고 내려다봤다.
백색에 가까운 속눈썹 밑으로 물기 먹은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 아련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여자의 빈손이 베르데의 가슴팍에 얹혔다.
종달새 같은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물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작정은 아니겠죠.”
“네? 예? 하지만 저기에 제 일행이-”
“그런 건 잠시 잊어요. 이제부터 즐거운 시간이잖아요.”
무슨 즐거운 시간?
베르데가 그렇게 반문하기도 전에, 여자는 야릇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베르데에게 안겨들었다.
뜨거운 체온과 살덩어리가 함께 아무도 보지 않을 수풀 속을 뒹굴었다.
베르데는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반항을 하기에는 이름조차 모르는 여자가 선사하는 감각이 너무나도 생경했던 탓이었다.
수풀 속에서 꽃과 꿀의 향기가 지독하게 묻어났다.
아름다운 정원에서 포식이 이어질 무렵, 성주의 화사한 저택에서는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