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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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하는지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
“학술원의 어인학 인재셨으니까요. 학술원에서는 어인학에 대해 심도있게 연구하는 이들이 잘 없지 않습니까?”
에리히는 우리를 집 안으로 초대하고 뜨거운 음료를 내어줬다.
나와 아른트는 냄새를 맡고는 예의 바르게 거절했고 레안드로스만 한 모금 마셨다.
학술원 평민 장학생 출신, 어인학자 에리히는 드문 칭찬에 헛기침을 했다.
“흠, 크흠. 그것도 맞지만. 왕성에서는 정확히 뭘 원하는 거요?”
“이제까지 남부에 계셨으니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오면서 마을의 분위기가 흉흉해 함부로 정보를 수집할 수 없었거든요.”
“아아, 그렇지. 여기도 다들 날이 바짝 서 있었다네.”
에리히는 덥수룩한 턱수염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작은 규모였다네. 물고기 몇 마리가 떠오르는 정도였지. 여긴 사방이 바다잖나? 물고기 몇 마리 죽는다고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지.”
“그러다가 폭발적으로 그 규모가 늘어났겠군요?”
“그래. 새벽에 출조를 나간 고기잡이 배가 가장 먼저 목격했지. 다들 여러 가설을 세우긴 했지만, 해변가로 어인의 시체가 밀려오자 혼란스러워했다네.”
아른트가 물었다.
“어인이 죽은 게 큰 문제가 되나요?”
“자네는 분명 다른 지역 토박이겠군. 어인은 마수종일세. 인간과 마주친 적은 드물어 다들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마수에 속해. 마수의 질긴 생명력을 그대로 가지고 있단 말일세.”
아른트의 눈이 동그래졌다.
확실히 다른 지역에서는 어인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없었다.
그러니 아른트가 북동부 출신이라면 어인에 대해서 모를 수밖에.
나는 아른트 대신 물었다.
“어인이 죽은 게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셨군요.”
“그래. 종족 내에서 싸움이 일어나 죽은 어인이 밀려올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 마을에서만 어인이 세 번이나 발견되었다네.”
에리히가 말하자 아른트는 바로 반박했다.
“얼핏 듣기로는 그런 말은 없던걸요. 어떻게 그렇게 많이 죽어 나갑니까?”
“자네들이 방문했던 마을이 숨겼을 수도 있네. 남부에서 어인은 사람을 꾀어내 잡아먹는다던가, 아니면 물고기를 조종해서 그물에서 빠져나가게 하는 불길한 존재야.”
“그래서 함부로 대놓고 말하지 못했다고요?”
“그렇지. 나도 여기가 고향이 아니었더라면 몰랐을 걸세. 하지만 아무리 나라도 단서가 너무 없어 난항을 겪던 중일세.”
“정말 방법이 없나요?”
여기까지는 지난번과 얼추 비슷했다.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 에리히.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방법이 하나는 있겠지.
내 예상대로 에리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나 있기는 하네. 어인들을 만나서 물어보면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아른트는 그 말을 듣고 표정관리를 하지 못했다.
전생에서도 아른트는 에리히를 미친 사람 취급했었지.
그래, 마수종을 만나보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치고 정상인은 없었어.
결국 아른트가 옳았지.
한숨을 삼키며 에리히에게 답했다.
“어인과 인간이 소통을 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둘째치더라도 좀 의심스럽네요. 학자로서 본인이 염원하던 일은 아니고요?”
“그, 그럴 리가!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에 제안한 걸세. 아무리 학자라고 해도 나도 선을 지키고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아뇨, 더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눈이 번들거리는데 뭐가 인간으로서의 도리고 뭐가 선이야.
아른트와 레안드로스가 수상쩍다는 시선을 보내자 에리히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가볍게 눈을 감고 생각했다.
그래, 여기까지는 예상할 수 있었다.
이런 방법밖에 없다면 거기에 응해주는 게 최선이겠지.
스토리라인이 이렇다는데 어떡해?
하지만 만일을 대비해서 어인을 만나는 다른 방법 정도는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중에라도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나는 지대한 고민을 하는 것처럼 찡그렸다가 답했다.
“좋습니다. 선생께서 제안하신 대로 해보죠.”
“공작님, 진심이세요!?”
“위험할 겁니다.”
레안드로스와 아른트가 바로 반박했다.
나는 걱정하지 말란 뜻으로 둘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에리히는 두 사람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잽싸게 포착하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잘 생각했네, 내가 어인학자이지 않나? 그러니까 내가 반드시 어인을 만나게 해줌세. 그러면 남부 일도 잘 해결할 수 있을 게 아닌가!”
“안전도 보장하십니까?”
“그럼!”
구라쟁이, 즐이다.
“혹시 지금 당장 착수해야 합니까?”
“아니, 그건 아닐세. 어인은 빛에 민감해서 밤에 나가는 쪽이 좋을 걸세.”
“그렇군요. 그럼 선생께서는 준비를 해주세요. 저희는 따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이따 저녁에 다시 오겠습니다.”
에리히는 입이 귀까지 걸려 우리를 배웅했다.
집 밖으로 나온 아른트는 에리히가 들어가자마자 내 망토에 매달렸다.
“공작님, 안 됩니다! 저 자식 진짜 미친 놈이라니까요. 아까 눈 보셨습니까? 사람 눈에 불이 붙었다고요. 저런 눈깔 가진 놈 치고 정상인은 없다고 장담 드립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거든?”
“그런데 왜 알겠다고 하신 건데요!”
내 발 앞에 온 몸을 던져 드러누운 아른트를 막막하게 보던 내게 레안드로스가 물었다.
“이 사람을 찾아온 건 어떤 연유입니까? 원래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아니. 나도 처음 보는 사람이야.”
이번 생에서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하자 레안드로스는 허름한 집을 돌아보다가 다시 물었다.
“혹시 이 자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아니. 그건 아니야.”
분명 다른 방법도 있을 것이다.
내가 아직 찾거나 떠올리지 못해서 그렇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이 부족한 것 같아서 덧붙였다.
“계시라고 해둘게.”
“계시입니까?”
“맞아. 꾼 지 좀 오래된 꿈이었는데. 지금에서야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바닥에 뒹구는 아른트를 잡아당겨 일으켰다.
“그러지 말고 좀 일어나.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어.”
“공작니이임…….”
“에리히가 자기 입으로 안전 운운하기는 했지만 완벽히 신뢰할 순 없는 게 맞아.”
“하지만 하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우리도 준비를 해야지. 마을로 가서 상점이 있나 찾아봐. 아마 열었겠지만, 안 열었다면 다른 곳에 가야하니까.”
“뭔가 사실 게 있으세요?”
아른트는 풀이 죽어있었다.
그의 등에 묻은 흙을 털어주며 말했다.
“응. 몇 가지 사고 싶은 게 있어. 해가 질 때까지는 죽어도 사와야 해.”
“죽어도 못 찾으면 어쩌죠?”
“그럼 네 옷을 박박 찢어서 대체품으로 사용할 건데.”
“……꼭 찾아오겠습니다!”
* * *
그날 늦은 밤.
우리는 달을 등지고 암초가 잔뜩 솟은 해안가로 올라갔다.
내 손에는 반짝거리는 귀중품이 잔뜩 들려 있었다.
아른트는 어두운 길을 밝힐 불을 들고 있었고, 에리히는 기대하던 순간이 닥치자 도무지 진정이 안 되는지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아른트의 도움을 받아 바로 아래에서 파도가 철썩철썩 치는 암초 위에 올라섰다.
에리히는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자, 이제 자네가 할 역할은 말일세.”
“알고 있으니까 말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이 짓을 두 번이나 하게 되다니.
나는 대충 앉을 수 있는 곳을 찾아 걸터 앉았다.
아른트와 에리히, 두 사람은 방해가 되지 않도록 뒤로 물러나 횃불을 껐다.
매캐한 냄새만 옅게 남고, 사방은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하늘에는 달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달빛. 파도. 썩어가는 물고기 떼의 반짝이는 은색의 비늘.
멀리서 떠도는 배는 보이지 않았다.
세상이 고요해서 마치 이 순간을 지켜보는 기분까지 들었다.
파도 사이에서 이질적인 소음이 하나 끼어들었다.
깨끗하고 맑은 음.
누군가를 부르는 것처럼 상상할 수 없이 길게 이어지던 음은 파도 소리에 묻혔다가 다시 울렸다.
시선을 멀리 향하면 무언가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반짝거리는 비늘과 수면 위를 치는 꼬리.
바다와 한 몸이 된 것처럼 순식간에 이쪽으로 다가오는 생명체가 수면 밑에서 나를 올려다봤다.
여전히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얼굴.
인간이 상상하는 이상적인 미를 조합하면 이런 자태가 나올까?
나는 천천히 무릎을 꿇고 어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금반지며 반짝이는 리본이 미끄러져 물 안으로 들어갔다.
바다에 닿기도 전에 금붙이들이 사라졌다.
선물을 허락한 어인은 암초 위로 팔을 올려놓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안녕. 내 선물?]“널 만나러 왔어. 그건 선물이야.”
[기뻐. 나랑 놀고 싶어?]“어떻게 놀 건데?”
[바다 밑에서 재미있게 해줄 수 있어. 다들 좋아해. 배 위의 사람들, 우리를 좋아해.]어인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내가 바다 밑으로 끌려 들어갈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는 건 좋지.”
[그럼 같이 가? 내가 데려다줄게.]어인은 내 팔을 덥석 잡았다.
미끈하게 촉촉한 감촉이 팔을 억세게 죄여왔다.
자칫하면 끌려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러지 말고 뭍에서 노는 건 어떻게 생각해?”
[뭍?]내 손이 어인의 팔을 콱 잡았다.
그와 동시에 내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일어나 천천히 드리워졌다.
그걸 본 어인이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지만 이미 늦었다.
“레안드로스, 바다에서 온 손님을 극진히 모셔야 할 것 같은데.”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림자의 정체는 레안드로스였다.
나만 왔다면 어인에게 잡아먹혔겠지만, 주인공 버프가 있다면?
당연히 내가 더 우세하지.
[거짓말! 거짓말쟁이!]“뭐, 임마.”
전생을 기억한다면 그런 말 못할 텐데.
너만 납치할 수 있냐?
나도 할 수 있다, 이 자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