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7
(06)
공작의 소유라 그런지 사냥터는 제법 널찍했다.
말을 타고 달릴 수 있도록 길도 제대로 나 있었다.
엄청나게 빽빽하지도 느슨하지도 않은 숲의 광경이 꼭 잘 조성된 공원을 보는 것 같았다.
슬슬 어두워지는 주변의 풍경을 보아하니, 서둘러야 할 것 같아 두 사람을 돌아봤다.
“슬슬 보르미가 활동할 시간이야. 좀 더 서둘러야 할 것 같아. 이제 찢어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소공작께서는 사냥터의 지리를 알고 계시는 겁니까?”
“들어서 대충은 알아.”
물론 거짓말이지만.
나는 레안드로스에게 아른트가 가지고 있던 주먹만한 돌을 건넸다.
물로 씻고 흙과 아궁이 속 재에 굴린 후 깨끗한 바람으로 말린 돌이었다.
“이걸 가져가. 그 다음은 내가 말한 대로 하면 되는 거야. 들키지 않도록 주의하고.”
“공작님께서는 이게 정말 먹힐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80퍼센트 정도는 먹힐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레안드로스는 장갑을 낀 손으로 돌을 살펴보다가 챙겼다.
아른트는 초조한 듯 제 손을 쥐어짜고 있었다.
“도련님, 저는…….”
“아까는 괜찮을 것 같다고 하더니. 지금 여기까지 와서 생각이 달라진 건 아니지?”
“아뇨,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만 두 분이 걱정이 되어서요.”
그럴 만도 하지.
작전상 아른트는 숲 외곽에 있어야 한다.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도록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비전투 인원이기도 하고, 동시에 우리 셋 중에서 살 확률이 가장 낮기 때문이었다.
“걱정 안 해도 돼. 내가 장담하지. 넌 보르미의 이빨을 담을 궤짝이 있는지 생각해주면 좋을 것 같아.”
“그래도.”
아른트의 아랫입술은 얼마나 씹었는지 흉하게 껍질이 뜯겨나가 있었다.
원작에서도 그는 심약한 편이기는 했다.
레안드로스는 하늘을 살피고 고개를 저었다.
“지금 다 같이 빠져나갈 게 아니라면 어서 움직여야 합니다. 점점 어두워지고 있으니.”
“들었지? 빨리 가서 대기해.”
결국 아른트는 제 자리로 향했다.
가면서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기까지 했다.
애 놔두고 출근하는 부모냐?
아른트가 나무 사이로 모습을 감추자 레안드로스는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셋이 함께 전멸할 일은 없겠군요.”
“생존율이 33퍼센트라니, 다행이지?”
“전쟁터보다는 높군요. 그보다 공작님께서 신호를 잘 보내실 수 있으십니까?”
“물론이지.”
그는 내가 안고 있는 것을 불신의 눈으로 노려봤다.
그렇게 보면 어쩔 건데.
내가 보르미를 언급한 이후부터 레안드로스는 상당히 불만스러워 보였다.
나보다 나이도 어린 게 그렇게 보면 한 대 쥐어박아버릴라 싶다가도 그냥 손을 내젓게 된다니까.
“경도 어서 출발하지 그래. 나도 도착하게 되면 바로 시작할게.”
“몸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신신당부한 그 역시 낮게 깔리는 어둠 속으로 스며들 듯 사라졌다.
나도 이제 내 포지션으로 가야만 했다.
이 계획에서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전망대.
모든 사냥터는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는 일반적으로 사냥 대회 때 관람객들의 구경 장소로 쓰일 뿐만 아니라, 부정을 방지하고 비상사태에 빠르게 응답하기 위해 감시하는 곳이기도 했다.
나는 그 중 하나에 올라가서 보르미들의 움직임을 관찰할 예정이었다.
사냥터와 산림지대의 연결부인 동남쪽에 있는 전망대는 낮은 절벽 위에 있었다.
다른 전망대보다 접근성이 낮아 잘 쓰이진 않았지만, 이번 사냥에는 아주 적합한 곳이다.
전망대에 올라서자 사냥터가 한눈에 보였다.
암청색으로 물들어가는 숲 위로 달이 점점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장관이라면 장관이었겠으나 지금은 한가로이 풍경 구경이나 할 때가 아니었다.
내가 안고 있던 것을 조심스레 내려놓고 천을 벗기자 커다란 램프가 드러났다.
아른트가 말한 대로 램프의 아래쪽에 있는 작은 쇠막대를 몇 번 튕기자 기름 먹은 심지로 스파크가 튀었다.
안에 작은 부싯돌을 넣어둔 것 같았다.
성에 딱 하나 남아있는 램프에 무사히 불이 붙었다.
그것을 아슬아슬하게 난간 위에 두고, 천으로 잠시 가렸다가 드러내길 몇 번 반복했다.
이 정도면 됐겠지.
이 불빛은 레안드로스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보르미는 시력이 약하다는 점과 상당히 지능이 낮다는 점을 활용해 짜낸 ‘돌’ 사냥 방법.
전망대에서 내가 보르미가 있는 위치를 파악한 후 레안드로스에게 신호로 알려주면, 레안드로스는 해당 장소로 이동해 보르미를 서로 싸움 붙인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돌이었다.
나는 성에서 둘에게 거듭 설명했다.
‘보르미들은 지능이 낮아. 눈앞에 있는게 돌인지 과일인지도 모를걸. 하지만 힘이 세고 집단을 이루며 살아. 평범하게 죽이려고 한다면 우리가 당연히 불리해.’
‘그렇다면?’
‘그들을 교란시키는 수밖에.’
‘고작 돌로 말입니까?’
저만치, 사냥터의 한가운데에서 나무들이 유난히 흔들렸다.
바람은 고요했다.
나무가 흔들리는 방향을 가늠하고 랜턴을 높게 들었다.
긴 불빛 한 번, 짧은 불빛 세 번, 다시 긴 불빛 다섯 번.
중앙에서 서북서 방향으로.
모스 부호를 포함해 신호를 한 번도 보내본 적이 없던 우리끼리 급하게 날조한 신호였다.
랜턴을 내려놓자마자 사냥터 어디에선가 등골이 오싹해지는 울음이 들렸다.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인 듯했다.
사냥은 이미 시작되었다.
* * *
레안드로스는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 앉아있었다.
그의 품에는 돌이 잔뜩 안겨있었다.
‘대체 이게 뭐라고 그렇게 호언장담을 하는 거지?’
이미 수십 번은 살펴봤을 돌이었지만 레안드로스는 더 꼼꼼하게 돌을 관찰했다. 하지만 내린 결론은, 돌은 여전히 돌이라는 것이다.
신비한 힘이나 특출난 것이 느껴지지 않는 그냥 돌.
이런 돌으로 정말 마수를 사냥할 수 있을까.
레안드로스는 자신이 생각보다 더 아렌하이트를 불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여기까지 와버린 차에 무엇을 더 망설이겠는가?
실패하더라도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어두운 숲, 높은 위치.
인간의 냄새를 최대한 없애고 온 옷.
계획에 어긋남은 없었다.
곧 무거운 쿵쿵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하나가 아니다.
둘, 혹은 셋.
레안드로스는 그런 존재들을 본 적이 없었다.
등은 굽고, 커다란 손에는 강철 같은 손톱이 돋아나 있었다.
온몸에는 털이 뒤덮여 있었지만 그 아래로 불규칙하게 맥박 뛰는 근육이 선명했다.
조물주가 개와 인간을 섞으려다 실패한 작품.
혐오감, 역겨움, 그럼에도 견딜 수 없는 불길한 공포.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머리와 몸의 실루엣뿐.
그런데도 레안드로스는 역겨움을 느꼈다.
기묘할 정도로 본능의 영역에서 우러나오는 거부감이었다.
레안드로스는 그것이 인간이 아닌 마수라는 존재라는 걸, 그것 역시 인간을 망설임 없이 으깨버릴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들의 걸음이 느려졌을 때 레안드로스는 돌을 약간 빗나가게 던졌다.
툭.
나무와 멀리 떨어져 있는 보르미의 어깨 위로 돌이 떨어졌다.
그것은 짜증을 내듯 몸을 휙휙 흔들더니 고개를 털었다.
레안드로스는 한 번 더 던졌다.
툭.
이번에는 푹신한 머리털 위로 떨어진 돌.
보르미의 입에서 괴성이 튀어나왔다.
성이 난 보르미는 개처럼 주변을 킁킁거리다가 제 옆에 있는 무고한 보르미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아무것도 모르는 보르미 역시 마주 소리를 지르고, 성난 상대를 위협하는 몸짓을 보였다.
툭.
세 번째 돌이 화난 보르미의 이마 위로 떨어졌다.
그것에 끽끽대던 보르미는 마치 인간처럼 상대를 밀쳤다.
쿵!
밀쳐진 보르미는 레안드로스가 앉아있던 나무 옆으로 쓰러졌다.
우스운 꼴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곧 우습지 않게 변했다.
넘어진 보르미가 짜증스러운 고함을 지르더니 화가 난 보르미의 팔을 잡아 뽑았기 때문이다.
사방으로 검고 진득한 체액이 비산하며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
그것이 보르미들끼리 벌이는 싸움의 시작이었다.
저 아래에서 보르미들이 사이좋게 팔 한 짝, 다리 한 짝을 뜯어내며 저들끼리 죽여가는 꼴을 보던 레안드로스는 입만 조용히 벙긋거렸다.
이게 되네.
* * *
보르미의 울음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몇 번 더 울음이 반복되다가, 결국 종내에는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괴성이 사냥터를 쩌렁쩌렁하게 뒤흔들었다.
그 순간 직감했다.
레안드로스가 성공했구나.
레안드로스에게 맡긴 일은 아주 단순했다.
내 신호를 보고 보르미 떼에게 가서 몰래 돌을 던지는 것이다.
거대한 바위도 아니고 고작 주먹만한 돌을 무기로 사용한다고?
사람들이 들으면 코웃음 칠만한 이야기다.
하지만 돌은 살생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었다.
‘고작 돌이 아닙니다. 바로 내분의 원인이자 씨앗이죠.’
‘내분의 씨앗이라고요.’
‘보통은 누가 돌을 던졌는지 바로 눈치채겠지만……. 욕심 많고 본능에 충실한데다 멍청한 보르미는 그렇지 못 할 테니까요.’
‘정말로 그게 된단 말입니까?’
내가 읽은 속 보르미의 설정이 맞다면 가능하지. 나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전생에 읽었던 신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신화에서 불화의 여신 에리스는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했다.
에리스가 분노하여 신과 인간에게 건넨 것은 날카로운 칼이나 신살을 위한 독약 따위가 아니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 사과 하나와, 단 한 문장의 글귀.
고작 예쁜 사과 한 알이 신과 무수한 영웅들이 휘말렸던 트로이아 전쟁의 서막을 알렸다.
저 돌은 보르미에게 있어서 황금 사과는 아니지만, 신화 속 황금 사과와 비슷한 효과를 낸다.
우리는 그저 내분을 일으킨 뒤 상황을 보다가 쓰러진 보르미를 수습하기만 하면 된다.
얼마나 쉬워?
말 그대로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뜯어 불까지 때는 셈이다.
그 이후로도 나는 다른 보르미 개체의 위치를 살피고 비슷한 흔적이 나올 때마다 램프로 신호를 보냈다.
레안드로스는 그럴 때마다 훌륭하게 업무를 완수해냈다.
보르미의 비명소리가 숲을 울렸고, 이내 조용해지길 반복했다.
레안드로스 본인도 이게 된다며 신기해하고 있지 않을까.
나중에 돌아가면 좀 놀려줘야지.
그렇게 못 믿던 사람 어디 갔느냐고.
흐뭇한 상상 중에 바람이 숲을 한 차례 휩쓸었다.
“아!”
젠장.
랜턴에 덮어둔 천이 휙 날아갔다.
몸을 내밀어 잡으려고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손끝을 스친 천은 아래로 팔랑팔랑 떨어졌다.
저거 없으면 안 된다고!
절벽 아래로 떨어진 천을 주워야 했다. 그 사이에 레안드로스를 방치하게 되겠지만 어쩔 수 없지.
급하게 램프의 불을 끄고 전망대의 사다리로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무언가 보면 안 되는 것을 엿본 기분.
나는 천천히, 반쯤 두려워하면서도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 난간 아래를 내려다봤다.
절벽 아래, 흉악한 빛이 한 쌍 번득였다.
어둠 속에 숨어있는 존재가 희미하게 그르렁거렸다.
전신에 난 덥수룩한 털.
굽은 등과 비정상적인 비율을 이루는 검은 몸.
사냥터에서 가장 굵은 나뭇가지만큼 두꺼운 팔이 맥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개의 하반신과 닮은 다리가 쉴 새 없이 제자리를 터벅거렸다.
짙은 악취가 바람을 타고 전망대까지 날아와 숨을 참았다.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저것은 보르미를 닮았지만 보르미 따위가 아니다.
보르미보다 더 강하고, 더 야만적이며, 더 크고, 더 흉포한 희귀 개체.
소설에서 그저 전설처럼 언급될 뿐, 직접 등장한 적 없는 상위 마수종.
변이 보르미였다.
그것이 고개를 들었다.
녀석의 코가 벌름거리며 이 근방에 뿌려진 냄새를 찾았다.
이 근처에 살아있는 생물이라고는 나뿐이다.
저것은 내가 방금 놓친 천의 냄새를 맡고 나를 살피고 있었다.
나는 도망가야 했다. 아니면 여기서 죽던가.
그것을 인식하자마자 모든 것이 느리게, 그리고 동시에 일어났다.
나는 본능적으로 도망가려고 했다.
하지만 사다리까지는 몇 걸음이라는 거리가 존재했다.
변이 보르미는 큰 포효와 함께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절벽 위에 도달했다.
녀석의 거대한 손이 전망대 기둥을 잡아 뜯었고 두꺼운 목재가 그 손에서 크래커처럼 간단히 부서졌다.
나무가 잇달아 터지는 소리와 내 비명이 섞였다.
하지만 변이 보르미는 먹잇감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그것은 기울어진 전망대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사다리를 쓸 수도 없어 다급히 바닥을 굴러가며 난간에 매달렸다.
방금 전까지 구르던 바닥이 푹푹 꺼지며 부서지는 걸 보자 나는 극심한 공포에 휩싸이며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X발, 망했다!
보르미의 무게를 버티지 못한 전망대가 쓰러졌다.
붕괴는 한순간이었다.
절벽 아래로 몸이 튕겨 나갔다.
무너지는 누각의 잔해가 나를 덮치듯 쏟아지며 함께 떨어졌다.
저항할 수 없는 중력은 내 몸을 바닥으로 끌어당겼다.
죽기 싫어.
여기서 이렇게 끝나면 안 된다고!
비명을 지르는 순간.
머리가 바닥에 부딪히며 무언가 끔찍하게 깨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