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77
(76)
-시르르르륵!
-챠라라라라라…….
-키이이익!
그들은 박쥐처럼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검고, 보통보다 두 배는 더 커진 눈이 광석 더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희고 빛나는 실에 반쯤 감싸인 사람들은 팔을, 다리를, 머리를 밖으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무심코 내뱉었다.
“……고치?”
그 말을 내뱉자마자 고함소리가 들렸다.
“공작님, 위험합니다!”
“으아!”
갑자기 변경백이 몸을 일으켰다.
쭈그려 앉아 있어서 가늠이 되지 않던 체구가 드러났다.
마치 부화 직전의 번데기처럼 탄성이 있는 몸체와 함께 변경백의 머리는 저 위쪽으로 올라가기만 했다.
광석 더미 위에서 돌들이 우수수 굴러떨어졌다.
변경백의 징그러운 몸체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또 늘어나며 끊임없이 변화했다.
거무죽죽한 반투명 살덩이 안에서 내장이 뒤틀리고 이동했다.
어떤 것은 저 위로 올라가 새로운 신체의 일부가 되었고, 어떤 것은 부옇게 굳어서 다음 변화를 대비했다.
-끼이이이이이이익.
불쾌하고 꺼림칙한, 무언가를 고하는 듯한 울음소리.
-샤르르르르륵!
-치르르르르…….
-샤아아아아…….
천장에 매달려 그것을 축복하고 목도하는 무리들.
이 이상한 의식의 끝에,
변경백의 몸이 갈라지며 그 속에서 알 수 없는 것이 실체를 드러냈다.
온몸에 나 있는 흰색 털과 반짝이는 하얀 나비의 날개.
나방과 인간의 것을 반씩 뒤섞어둔 머리.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검은 눈에 모든 것이 비쳤다.
퇴화한 팔은 휘적거리면서 희생양을 찾고 있었고, 그 밖에 털이 북슬하게 돋아있는 튼튼한 다리로는 땅을 짚고 있었다.
광석 더미 다섯 개를 합쳐도 모자랄 만큼 거대하고 압도적인 덩치.
사나울 대로 사나워진 그 얼굴의 입이 네 갈래로 쪼개졌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악!”
흉부를 울리고 고막을 찢는 소리에 귀를 틀어막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홀에 나 있는 창문이 괴로운 소리와 함께 순서대로 하나씩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속에서 툭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소리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대도 다리가 덜덜 떨리는 건 멈출 수 없었다.
아까 거인을 목격했을 때와는 또 다른 공포감.
멀고 아득한 존재적 공포보다 가까운 목숨의 공포.
머릿속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 괴물은 나를 죽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것도 아주 간단하게.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도망쳐!”
홀이 흔들리며 천장의 고치들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중 몇 개는 여전히 사람이었고, 몇 개는 막 부화하기 시작한 나비의 애벌레였다.
광석 더미가 무너지며 어디선가 아멜리아의 비명과 루셀의 기도문이 들렸다.
그들을 돌아볼 새도 없이 필사적으로 달렸다.
사방으로 튀어 나가는 광석 위를 구르고, 망토가 찢어지는 것도 모른 채 그저 출구만을 향해 달렸다.
방금 들어온 통로로 루셀과 아멜리아가 먼저 들어가는 게 보였다.
그 뒤로 레안드로스가 뛰어 들어가며 나를 돌아봤다.
그가 뻗은 손이 바로 코앞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아!”
그 순간 발목에 무언가가 매달렸다. 나는 균형을 잃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고치를 찢고 나온 새끼 나방이 내 발목을 끌어안고 있었다.
악마같이 반들거리는 검은 눈동자가 내 겁에 질린 얼굴을 그대로 담았다.
“공작님!”
“레안드로스!”
비명소리와 함게 미스릴 광석 더미가 무너지며 통로를 완전히 틀어막았다.
나 홀로 여기에 남겨진 것이다.
안 돼.
안 돼, 여기서는 안 돼!
거대한 나비의 다리가 내 허리를 낚아챘다.
작은 갈고리처럼 생긴 발의 끝이 복부 속을 파고들며 살갗을 찢어놓았다.
“크……!”
버둥거려봤자 벗어날 수는 없었다.
바닥이 까마득히 멀어지자 아래로 보이는 건 부화한 새끼 나방들과 변경백이었던 괴물뿐이었다.
변경백은 나를 들어 올린 채로 입을 쩍 벌렸다.
그 안에 뭐든 갈아버릴 것 같은 이가 목 안을 따라 촘촘히 돋아있었다.
먹잇감을 원하는 듯 꿈틀거리며 체액을 분비하는 끔찍한 광경.
저 안으로 내던져지면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갈릴 것이다.
이번 생은 여기서 끝인가?
내장이 터질 것같이 고통스러워 숨을 몰아쉬던 차에, 나비의 얼굴이 미묘하게 변했다.
나를 관찰하던 나비는 이내 고개를 돌리고 포효했다.
내 발밑으로 새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미스릴 광석을 씹거나, 혹은 어미 나비의 다리를 깨물던 부화한 새끼들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제야 어미 나비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를 산산조각 내서 저 아래의 새끼들에게 한 조각씩 나눠줄 생각이구나.
맨정신으로 몸이 갈기갈기 찢겨나간다면.
그 고통은 얼마나 클까?
차라리 지금이라도 혀를 깨물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낫지 않나?
다른 갈고리 발이 내 어깨를 붙들었다.
그와 동시에 뭔가 쾅, 하고 터지는 굉음이 들렸다.
“공작님!”
막힌 광석 더미를 너머에서 나온 것은 레안드로스였다.
나를 놓치고, 그대로 가지 못해 기어코 돌더미를 뚫고 나온 레안드로스가 아래에서 소리를 질렀다.
“공작님, 제발 달리기 좀 배우십시오!”
“무슨 소리야! 그냥 가! 나중에 와서 내 몸이나 제대로 수습해줘!”
“돌아왔을 때 몸 일부라도 남아있으면 다행인 상황 아닙니까!”
그건 그렇겠지!
나는 레안드로스를 보고 솔직히 기뻤다.
하지만 나비는 전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변경백이었던 나비는 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먹먹한 귀에 소리가 그대로 때려 박히며 뇌가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키아아아아아아!
몸이 마구잡이로 흔들리면서 속에서 비린 것이 울컥 올라왔다.
하지만 그걸 뱉어낼 틈도 없이 몸이 벽에 처박혔다.
분풀이를 위해 몇 번이고 광석 더미와 석조 천장, 벽에 처박힌 몸이 버틸 리가 없었다.
단련되지도 않은 평범한 인간의 몸.
주인공이나 빌런과 다르게 아무런 축복도 가호도 받지 못하고, 거듭되는 회귀로 쇠약해지기만 한 육체는 금세 부스러졌다.
한계를 넘은 고통에 시야가 새하얘졌다가 빨개졌다.
아프다는 보통의 감각조차 저 멀리 날아갔다.
어딘가가 분명 부러진 것 같은데, 그게 어디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내장이 뒤섞이고 머릿속이 곤죽이 된다면 이런 기분이구나.
부서지는 소음,
누가 지르는지 모를 비명.
멀리서 울리는 백색 소음.
그리고 이쪽으로 달려드는 레안드로스와 그의 빛나는 검.
일순 나방 변경백의 왼쪽 더듬이가 미세하게 파드득 떨렸다.
나방의 거대한 다리가 달려드는 레안드로스를 쳐냈다.
광석 더미의 파편이 튀어 나가며 사방으로 튀었다.
레안드로스는 아슬아슬하게 다리를 피할 수는 있었지만, 체급에서 밀리고 있었다.
거대한 다리만 해도 여러 개.
그 밑에 깔린 나방 새끼들.
이 싸움터는 온통 장애물투성이였다.
화가 난 나방의 오른쪽 더듬이가 움찔거렸다.
오른쪽 더듬이.
그리고 내 몸을 쥐어짜는 오른쪽 발에 더해지는 미세한 힘.
나방과 가까이 있기에 확보할 수 있는 시야.
“오른쪽……!”
외치자마자 레안드로스가 반사적으로 피했다.
그와 거의 동시에 작은 낫 같은 발톱이 달린 오른발이 레안드로스의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갔다.
“오, 른쪽!”
-쿵!
멀쩡하던 바닥에 금이 가고 깊게 패였다.
오른쪽 발을 내리찍은 탓이었다.
하지만 그 괴물이 공격했을 때 레안드로스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한결 여유 있게 그 자리를 피하기까지 했으니.
오른쪽, 왼쪽, 다시 왼쪽.
내가 거듭 말할수록 광석 더미가 허물어지며 사방에 미스릴 광석이 퍼졌다.
요리조리 피하는 레안드로스 때문에 분노한 나방은 애꿎은 새끼들마저 짓밟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찐득한 액체가 터져나갔고, 역겨운 악취가 흘러나왔다.
나방이 이성을 잃을수록 레안드로스 쪽으로 판이 기울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방의 접근 거리 안에 한 발짝 들어왔을 때.
레인드로스가 검을 고쳐 쥐었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발이 바닥을 단단하게 디뎠다.
그 앞에서 거대한 나방이 포효했다.
한 번에 베어버리기에는 너무나도 큰 괴물.
검을 찔러넣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만큼 압도적인 체격 차이.
하지만 레안드로스에게는 조금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실패라는 가정을 해본 적도 없는 사람같이.
내가 손수 뽑아낸 마수의 이빨로 벼린 검이 주인의 손안에서 가늘게 울었다.
우아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검로.
하지만 시선을 뗄 수가 없는 그 기백은, 분명 주인공인 그를 닮은 것이리라.
타오르는 맹렬한 유성의 꼬리를 닮은 궤적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쩌적하는 소리와 함께 체액이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휘젓는 광포한 발 위로, 거대하고 단단한 배를 가르고, 철갑처럼 두꺼운 껍데기를 두른 어깨를 지나 네 조각으로 갈라진 얼굴까지.
천천히 허물어지는 거대한 몸과 함께 몸이 아래로 추락했다.
지면과 충돌하기 전 레안드로스가 아슬아슬하게 내 몸을 받아냈다.
그의 눈썹이 확 치켜 올라간 걸 보면서 나도 모르게 웃기 시작했다.
내가 웃은 이유는 별거 아니었다.
그가 주인공이었고, 나는 주인공을 옆에서 지켜보는 조연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준 칼로 엄청 멋진 활약을 한 주인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건 조연인 나만의 특권이나 다름 없었다.
이런 거 보면 조연도 나쁘지 않을지도.
그리고 나는 온몸을 부수는 고통에 기절했다.
* * *
눈을 뜨니 어디선가 타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등이 따뜻하고 축축한데다가 푹신했다.
처음에는 여기가 드디어 천국이나 지옥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둔한 고통이 뒤늦게 찾아와 온몸을 괴롭혀댔다.
나 아직 살아있구나.
몸을 일으킬 수도 없어서 눈만 굴려 주변을 살폈다.
하얗게 얼어붙은 창문 너머로 눈 폭풍이 부는 걸 보니 아직 북부에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방 안에는 기본적인 가구가 어느 정도 있었고, 벽난로에 작게나마 따뜻한 불도 피워져 있었다.
여긴 어딜까.
그렇게 생각하던 차에 문이 열리며 레안드로스가 들어왔다.
“깨어나셨습니까.”
“여긴.”
“내성입니다. 변경백의 침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 놀랄 정도로 까끌한 목소리가 나왔지만 레안드로스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품에 들고 있던 것을 난롯가에 우르르 쏟아내고 하나씩 불 안으로 던졌다.
아마 남아있던 액자 틀이나 가구를 부순 것 같았다.
불을 켠 레안드로스가 나를 일으켜 앉혔다.
“몸은 어떠십니까?”
“……생각했던 것보다는.”
생각했던 것보다 꽤 나쁘지 않았다.
빈말이 아니라, 나방에게 붙들려 있었을 때는 온몸이 말 그대로 착즙기에 들어간 셀러리 꼴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으니까.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게 기적이 아닌가.
하지만 레안드로스의 얼굴은 어두웠다.
“의식을 잃고 계셨을 때 드셨던 약초 때문일 겁니다. 아픈 게 덜 하다고 하셔도, 실은 갈비뼈가 네 대는 부러져 있을 테니, 움직임에 주의해주십시오.”
아니, 그럼 지금 내 몸에 모르핀 같은 게 돌고 있다는 소린가?
모르핀만큼 강력한 진통 작용을 하는 약초가 있다고?
그걸 왜 가지고 다녀?
레안드로스는 말을 이었다.
“정신을 차리신 게 기적이십니다. 출혈도 심했고, 무엇보다 내상이 깊으십니다. 제발 안정을 취해주십시오.”
“하지, 만.”
하지만 여기서 이렇게 누워 있으라고?
아멜리아와 루셀은?
어떻게 공작저까지 돌아가지?
온갖 걱정거리가 떠올랐지만 레안드로스는 말린 잎사귀 같은 걸 꺼내더니 내 입에 물렸다.
다시 나를 눕힌 그는 땔감을 더 찾아오겠다며 방을 나섰다.
휘몰아치는 눈과 바람 소리.
장작이 타들어 가는 평화로운 소리.
혼자서는 일어날 수도 없는 터라 이상한 맛이 나는 마른 잎을 우물거리며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변경백의 우화.
이 텅 빈 성에서, 북부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극권의 군주’가 강림했으니 꼼짝없이 북부의 구덩이는 그 신을 위한 제단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되새겨보면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일을 해결하려면 일단 움직여야 하는데.
지금 몸 상태로는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레안드로스가 물려준 잎을 질겅거리거나 방 안을 둘러보는 것뿐.
붉은 불빛이 일렁거리는 방.
문득 벽난로로 시선이 향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벽난로 앞, 레안드로스가 가구 부순 조각을 쏟아놓은 쪽.
그 밑으로 무언가가 삐죽이 튀어나와 있었다.
책이라곤 하나도 없는 곳에 웬 종이?
손가락을 꿈틀거려봤지만 닿을 리가 없었다.
결국 오만상을 쓰며 눈을 가늘게 뜬 후에야 겨우겨우 보인 것은-.
하얀 나비 그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