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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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은 다행히 멍이 든 것 말고는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게다가 지금은 내 몸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었다.
아른트의 단검을 꼭 끌어안고 뭔가를 쉴 새 없이 중얼거리는 아멜리아.
더할 나위 없이 경건한 표정으로 있지도 않은 신 운운하기 시작한 루셀.
그리고 갑자기 낯선 영역에 온 것처럼 신경이 곤두서서 내 옆에서 떨어지지 않는 레안드로스.
이것들은 전부 일종의 편집증적 증세다.
이 세계의 인간이 광기에 진입하기 전에 발견할 수 있는 증상.
평소에 이성으로 눌러놓고 있던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둑이 무너진 것마냥 쏟아지는 것이다.
그 예시로.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알아? 나를 평범한 숙녀로 생각한 건지, 내 앞을 막아서고 용감하게 그 팔을 내줬잖아. 팔이 타들어 가고 살이 녹는데도 주인을 걱정하는 그 다정함에 반했는데, 아아! 당신도 나한테 어서 반해주면 좋겠어…….”
아멜리아는 아른트의 단검을 쓰다듬으며 연신 중얼거렸다.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신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폐하게 하시며 지면을 뒤집어엎으시고 그 주민을 흩으시리니 땅이 온전히 공허하게 되고 온전히 황무하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네, 신께서 이 말씀을 하셨죠,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세계가 쇠약하고 쇠잔하며 세상 백성 중에 높은 자가 쇠약하며 땅이 또한 그 주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다고.”
부서진 석벽에다가 인자하고 너그러운 미소를 띤 채 열정적으로 전도를 하는 루셀이 보였으며.
내 옆에는.
“앞으로의 일정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합니다. 죽일까요?”
“뭘 죽여! 안 돼!”
“공작님 뜻이 그러시다면 따르겠습니다.”
핀트가 엇나간 레안드로스가 있었다.
이 사람들을 데리고 어떻게 변경백의 성까지 간담.
차라리 이 상황이 되니 나도 같이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냐, 유예성. 정신 차려. 일단 스스로 먼저 뭘 해야 할지 생각 해 보자.
“공작님,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저들을 내버려 두고 다시 인근 마을을 수색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게 버리자는 말이랑 뭐가 달라? 안 돼!”
자꾸 이럴 거냐고!
이거 조별 과제였으면 벌써 망해서 X타에 썰 올라갔어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면서 금방이라도 소리 지르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그래, 알겠어. 여기가 위험하다는 건 알아. 괴물들은 도망쳤지만 언제 되돌아올지도 모르고.”
“맞습니다.”
기절하기 전에 본 것의 정체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게 고대 신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사방에 자욱하게 깔린 눈안개와 흐린 구름이 천운이었다.
그 존재의 실체를 목격하게 된다면 단순히 헛소리를 늘어놓는 게 아니라 스스로 눈을 뽑아버렸을지도 몰랐을 테니까.
나 스스로조차도 어떻게 되었을지 장담을 할 수 없고.
이로써 분명해졌다.
북부에는 극권의 군주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
동부와 남부처럼 한 방향마다 신이 하나씩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내 실수였다.
유릭이 제대로 깽판을 쳐놓은 구역에 내 발로 들어왔구나.
“하지만 변경백의 성까지는 어떻게든 가야 해.”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릅니다.”
“혹시나 살아남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 그리고 미스릴을 구하는 문제도 그렇고.”
게다가 유릭이 무슨 짓을 해뒀는지 알아둬야 그 자식의 꿍꿍이속을 제대로 파헤치지.
그렇대도 역시 이 정신 상태의 일행을 끌고 가는 건 위험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하지?
고민하다가 문득 아멜리아를 쳐다봤다.
“아멜리아. 그거 들었어?”
아멜리아가 중얼거리던 걸 멈추고 멍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그녀는 단검집을 어찌나 세게 쥐고 있던지, 검집에 장식했던 보석이 떨어질 것 같았다.
“공작저에서 출발할 때 아른트가 처음에 빨리 돌아오라고 하지 않았어? 기억나?”
“모, 몰라.”
“내 기억엔 그랬던 것 같거든. 그런데 그거 알아?”
“뭐, 뭐가?”
“내 생각엔 아른트가 너한테 빨리 오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부끄러워서 나한테 빨리 널 데리고 귀환하라고 했던 것 같아. 어떻게 생각해?”
“!”
아멜리아의 입이 딱 벌어졌다.
한참 생각하던 그녀는 결심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아. 그랬던 것, 같아. 지, 지금 돌아갈까? 가서 아른트한테 내 사랑을 고, 고백하면 되겠다! 당장 가자!”
“근데 아른트가 변경백의 성까지 갔다가 오랬잖아. 그건 기억나?”
“……그, 그랬어? 기, 기억 안 나.”
“응. 아른트가 시켰어. 지금 그냥 돌아가는 것보다 변경백의 성까지 다녀오는 게 아른트가 더 좋아할 것 같은데.”
“지, 지금 당장 가면 되지! 성 어디야!”
“저쪽 방향으로 가면 된대. 먼저 가서 길 좀 보고 있을래?”
뻔뻔하게 거짓말에도 아멜리아는 희희낙락하며 혼자서 뛰어갔다.
몸이 가벼우니 무너진 잔해를 폴짝폴짝 밟고 가더라.
자, 하나는 해치웠고. 다음은.
“루셀, 루셀. 들어봐. 변경백의 성 말이야. 거기에 사람이 엄청 많대. 아무래도 성이니까 그렇겠지만.”
“그래요?”
“그런데 거기 사람들이 죄다 무신교래.”
“……그럴 리가! 신의 은총을 받지 못한 가엾은 자들이 우르르 몰려있다니! 변경백의 성은 지옥 소굴입니까! 마귀 굴입니까!”
“어어, 사람들이 추운 환경에서 살다 보니 그런 것 같아. 그래서 네가 거기 가서 신의 말씀도 좀 전해주면 좋지 않을까?”
“네, 당연히 그리 해야 합니다! 신관은 아니지만 어엿한 신성 기사단 소속. 교리 정도는 가볍게 눈 감고도 외울 수 있죠! 아아. 서둘러 가서 그 불쌍한 분들을 구제해드려야 합니다. 이 추위에 의지할 수 있는 신조차 외면한 가엾은 어린 양들!”
“응. 저기 아멜리아 보이지? 아멜리아도 성에 간대. 같이 가 있으면 되겠다.”
루셀은 연신 무슨 기도문 같은 걸 외우면서 아멜리아의 뒤를 따라 뛰어갔다.
이렇게 두 사람을 보낸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휴. 심각한 건 아니라서 다행이다.”
거인이 그냥 지나가지 않았더라면 상황은 더 심각했을 거다.
이쪽을 발견한 순간 비논리적인 존재 때문에 스스로 눈을 뽑아버리거나 완전히 미쳐버려서 이런 구슬림도 들리지 않았을 테니까.
레안드로스는 내심 뿌듯하게 뛰어가는 두 사람을 보는 나를 쳐다봤다.
“……거짓말을 술술 하십니다.”
“어쩔 수 없잖아. 그렇다고 우리만 갔다가는 저 두 사람이 어디로 사라져서 동사할지 몰랐으니까.”
독자가 가장 싫어하는 게 선량한 등장인물이 죽는 거라고.
이 이야기를 잘 끝맺으려면 생존은 최대한 보장해줘야 하지 않겠어?
레안드로스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내 곁에 딱 붙었다.
조금 늦게 출발한 우리는 눈에 파묻힌 성도(城道)를 따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루셀과 아멜리아의 뒷모습이 보였다.
루셀은 무릎을 꿇고 절망하고 있었고, 아멜리아는 발을 동동 구르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가엾은 길 잃은 양들이 바로 지척에 있는데! 어째서 신의 자비를 전달해주지 못하는 거죠!”
“아, 아른트가 저기 갔다 오, 오랬는데! 왜 갑자기 낭떠러지가!”
절규하는 두 사람의 앞에는 크레바스가 있었다.
크레바스라고 해도 너비는 약 5m 정도로 엄청나게 넓진 않은 편이었다.
사다리나 다리가 있다면 충분히 건널 수도 있는 편이고.
그러나 두 사람이 건너지 못하고 절규하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원래라면 가교역할을 해줬을 다리가 끊어져서 이쪽 절벽에 매달려 있었다.
보수 관리를 한 사람이 없다는 증거였다.
“레안드로스, 어떡하지? 우선 여기를 따라가면서 건널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보자.”
“꽤 많이 걷게 되지 않겠습니까.”
“어쩔 수 없잖아.”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잔뜩 독이 오른 표정으로 건너편을 노려보던 아멜리아가 크레바스 틈새로 휙 뛰어내렸다.
“아, 아멜리아!!”
아멜리아가 미친 줄 알고 낭떠러지 가장자리에 엎드렸다.
다행히, 아멜리아는 그냥 떨어진 게 아니었다.
망가진 다리에 매달려 있었다.
그녀는 다리의 맨 끝까지 내려가서 판자를 꽉 잡더니, 벽을 다리로 밀었다.
-끼익, 끼익.
밀려났다가, 돌아오고, 그 반동을 이용해서 더 멀리 밀려났다가, 다시 돌아오고.
아멜리아는 평소에 소심하고 맹한 눈이 아니었다.
그녀는 오로지 ‘아른트를 기쁘게 해주겠다’라는 일념만으로 이딴 짓을 하고 있었다.
-끼익, 끼이익.
저 멀리 갔다가, 다시 붙었다가, 좀 더 멀리 가고.
이쪽 말뚝에 묶여 있는 다리의 끝이 버거운 소리를 냈다.
-끼이이익, 끼이이이……
다리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마치 진자처럼, 아멜리아라는 추를 매단 다리는 점점 더 높이 올라갔다.
그러다가 아멜리아의 몸이 완전히 위로 솟구친 순간,
-우드득!
무게를 견디지 못한 말뚝이 부러졌다.
소리를 지를 틈도 없이 레안드로스와 내가 달려가 양쪽 말뚝을 잡았다.
레안드로스가 잡은 밧줄은 바로 멈췄지만, 문제는 내 쪽이었다.
손바닥이 불타오르면서 몸이 힘을 이기지 못하고 질질 끌려갔으니까.
“공작님!”
“으아아악!”
엎어져서 뒹구는 루셀을 걷어찬 레안드로스는 내가 떨어지기 직전에 허리를 잡아 옆구리에 꼈다.
착지에 실패한 아멜리아가 다시 내려가고, 회전이 찾아왔다.
레안드로스는 이를 악물었다.
성인 남성+성인 여성+다리 무게+원심력의 총합을 간신히 견딘 레안드로스 덕분에, 아멜리아는 이번에 무사히 건너편에 착지할 수 있었다.
저쪽에서 다리를 연결하는 아멜리아를 보던 레안드로스는 숨을 몰아쉬다가 낮게 말했다.
“……공작님.”
“……앞으로 나대지 않을게. 몸 사릴게.”
아무리 생각해도 레안드로스의 앞길에는 내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어찌저찌 다리를 연결한 우리는 크레바스를 건너서 변경백의 성으로 향할 수 있었다.
성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채 삼십 분도 안 걸은 것 같은데 성의 문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을 때는 이렇게나 가까웠던가 싶을 정도였다.
“성문은…….”
“예상했지만 닫혀있습니다. 뒷문을 찾아보겠습니다.”
성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쓰는 작은 뒷문 역시 닫혀있었지만 적어도 부수기는 훨씬 쉬웠다.
안은 창문으로 흘러들어온 애매한 빛 때문에 그럭저럭 볼 수는 있었다.
퀴퀴하고 썩은 부패물의 냄새가 가장 먼저 느껴졌다.
“부엌인 모양입니다.”
“다 썩었나 봐. 여기는 부서진 곳은 없는 것 같아.”
만일을 대비해 발소리를 죽이며 부엌을 나섰다.
복도는 그 흔한 횃불 하나 걸어두지 않은 데다가, 이따금씩 발치로 쥐 같은 것들이 찍찍거리며 스쳐 지나가기까지 했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복도의 끝.
둥근 아치문을 나서자 갑자기 확 넓어지며 너른 홀이 나왔다.
방문객을 공적으로 맞이하거나, 혹은 많은 인원과 함께 연회를 벌이는 장소.
하지만 지금은 시종도 가구도 없었다.
눈에 보이는 건 오로지 거대한 돌산.
바위와 돌이 한데 뒤섞여서 멋대로 굴러다니고 있었다.
홀을 가로지르려면 아예 돌무더기 위를 지나다녀야 할 판이었다.
“왜 돌을 여기다 다 쌓아둔 거지? 무슨 의미야?”
레안드로스가 근처에 있는 아무 돌이나 집어 보더니 이리저리 살폈다.
“그냥 평범한 돌이 아닙니다, 공작님. 돌 안에 푸른빛이 언뜻 섞여 있습니다. 제가 추측하기로는 미스릴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미스릴?”
그의 말대로 돌은 여러 부분에서 묘한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내가 구하려고 여기까지 온 이유가, 이 성의 홀에 굴러다니고 있다고?
어처구니가 없네.
“북부에서 독점하고 잘 풀지도 않는다더니, 성안에 쌓아뒀던 거야? 대체 무슨 이유로?”
“그건 저분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레안드로스가 광산 더미 위를 가리켰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있는 사람은.
“변경백!”
그나마 살아있는 사람이 있었구나!
무심코 달려가려던 발길이 멈췄다.
반가웠던 순간도 잠시,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쪽을 등지고 웅크려 앉은 그가 왜 굳이 광석 더미 위에 올라가 있는 거지?
변경백을 보좌하는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거지?
-으적, 으적, 으적…….
게다가 이 소리.
변경백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씹고 삼키고 있었다.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인지 그저 탐욕스럽게 입안으로 무언가를 쑤셔 넣고 있는 행동.
그는 우리 쪽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듯했다.
내가 광석 더미를 올라 그의 바로 뒤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거들떠보지조차 않았다.
“저, 변경백. 갑작스러운 방문이라 실례가 될 수도 있겠지만.”
-으적, 으적, 으적.
“……변경백?”
어깨 너머로 변경백이 손에 쥔 것이 보였다.
미스릴 광석이었다.
피범벅 된 손이 미스릴 광석을 쥐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발치에서 조그만 돌이 하나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 소리에 변경백은 기민하게 내 쪽을 돌아봤다.
변경백은 몹시 늙은 남자였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 군데군데 섞인 검정색.
부옇게 흐려진 탁한 눈.
그 입은 돌 부스러기를 묻히고 있었다.
쉴 새 없이 우물거리던 입술이 천천히 갈라졌다.
세로와 가로로 금이 찌익 그어지더니, 네 갈래로 쪼개진 입이 벌어졌다.
그 안에 부서진 미스릴 광석과 돌조각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챠르르르르!
이게 뭐지.
한때 변경백이라고 불렸던 이가 이상한 울음소리를 냈다.
곤충 날개를 떼어다가 비빈 소리를 크게 만들면 이렇게 소름이 끼칠까?
귀를 막고 싶다는 충동과 동시에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챠르르르르…….
-샤라라르르륵…….
-키륵, 시르르르…….
하나가 아니었다.
둘, 셋, 그리고 그 이상으로 불어나고 있는 소리가 텅 빈 홀 여기저기에서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소리의 근원지는…….
나는 고개를 들었다.
무수한 사람들이 천장 속 어둠에서 눈을 빛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