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106)
◈ 106화. 결맹식
소걸개에 이어서 초평천과 인연이 있는 전대의 고수들이 하나씩 단상 위로 올라왔다.
군중들의 환호성은 끊일 줄을 몰랐다.
폐쇄적인 사천맹에선 그간 이와 같은 행사를 벌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상 위의 귀빈석이 거의 다 채워졌을 무렵, 마침내 군중들이 고대하고 고대하던 이의 이름이 호명됐다.
“화령의 소영주, 소천무군 단자룡 대협과 불패신도 양삼 대협께서 입장하십니다!”
두 사람이 등장하는 순간, 군중들의 환호성은 절정에 달했다.
“우와아아-!”
“천하제일인의 후계자! 천하제일의 후기지수 단자룡이다!”
객잔에서 직접 그를 목격한 인물도 있었지만 떠도는 소문을 낭설로 치부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눈앞에 단자룡이 나타난 이상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정말 화령까지 공위맹의 결맹식에 참여하다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양삼이 앞서가는 단자룡을 슬쩍 찌르며 말했다.
[좋겠다. 천하제일의 후기지수.]모두가 단자룡만을 주목하고 있으니 샘이 나는 것이다.
단자룡은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저만 주목받는 일은 양숙부께도 잘된 일이지 않습니까?]의미를 파악한 양삼의 얼굴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그 전에 세인들이 그의 이름 앞에 붙여준 무명은 대변마도(大便魔刀)였으니까.
전투 중, 단 한 번의 실수로 바지에 일을 치른 탓에 붙게 된 오명이었다.
불패신도는 정말 목숨 걸고 싸우며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인 끝에 가까스로 쟁취한 무명이었다.
[양대협!]소걸개의 반가운 전음이 귓속을 파고든다.
두 사람은 과거 천하대전에서 함께 싸운 전우.
양삼은 씩 웃으며 답했다.
[오랜만이구나. 결맹식이 끝나고 보자.]두 사람이 초평천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은 뒤, 모두의 시선이 입구로 향하며 고대하던 마지막 귀빈을 기다렸다.
“상천의 총사, 제천지사 수문화 대협과 두 분의 대채주, 무음광검 백채륜 대협, 백면혈소 대중경 대협께서 입장하십니다!”
눈에 띄는 은회색 무복을 입은 수문화와 상천의 정복을 착용한 두 사람이 나타나자 군중들의 함성이 하늘로 치솟았다.
“상천이다!”
“정말로 상천이 왔어!”
“상천의 총사에 무림 칠군까지, 정말 이게 현실이란 말인가?”
화령과 상천의 등장.
은거를 깨고 복귀한 초평천과 사천의 고수들이 모인다는 소식에 이곳을 찾았던 이들은 횡재한 기분이었다.
단상을 오르는 그들의 걸음걸음에 만인의 빛나는 눈길이 쏟아진다.
수문화는 초평천에게 정중히 예를 갖췄다.
“상천의 수문화입니다.”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소이다.”
인사를 나눈 수문화는 자리를 찾아가며 군중 사이에 섞인 진무립을 바라보았다.
[신수가 훤해지셨습니다. 천주님.] [네 녀석도 때깔이 좋아졌구나.]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모양입니다.]진무립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힐 때, 단자룡의 반짝이는 눈빛은 단상 밑을 향하고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잘 지냈느냐?] [지금은 좀 바빠요. 나중에 이야기해요.]왠지 떨떠름한 얼굴로 대꾸한 단려화는 군중들 틈으로 모습을 감췄다.
‘누가 보면 정말 마도림의 무인이라도 된 것처럼 생각하겠군.’
실소를 흘린 단자룡의 눈이 중앙으로 걸어오는 초평천을 담았다.
“이곳까지 먼 걸음을 하여 본 맹의 결맹식을 빛내주신 강호의 동도들에게, 맹도들을 대신해 진심으로 감사의 예를 표하는 바요.”
단상에서 가까운 쪽부터 가장 뒷자리까지, 은은한 내력이 실린 그의 목소리는 마치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또렷하게 들려왔다.
군중들의 입에서 나직한 탄성이 흘러나오자 초평천은 예를 거두었다.
“사천 무림 서른두 개의 방파가 같은 뜻을 세우고 이 자리에 모였소이다. 본 맹은 외부의 위협에 단호히 대응할 것이며 그 어떤 적에게도 굴복하지 않을 것이오.”
무거운 정적 속, 모두의 눈과 귀가 오로지 초평천 한 명에게만 집중됐다.
초평천은 군중들의 얼굴을 천천히 둘러보며 다음 말을 이어갔다.
“입장을 대표하는 이는 있을 것이나 누구도 위에 군림하지 않을 것이며, 사천 땅에 발 딛고 사는 이라면 누구라도 도움을 청할 수 있을 것이오. 모두와 함께하는, 누구도 외면하지 않는 연맹체로 발돋움할 것을 이 자리에서 약조하겠소.”
길지는 않았으나 모두의 뇌리에 공위맹의 의지를 각인시킬 강렬한 연설이었다.
군림하지 않고 협력하며 사천 무림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은 초평천과 진무립이 택한, 마도림이 과거의 위상을 되찾는 방법이었다.
짧은 정적이 흐른 뒤, 군중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이어서 요직을 맡게 될 무인의 소개와 맹주가 직접 인장을 전하는 임명식이 진행됐다.
호천단주에 임명될 강유월이 앞으로 나설 무렵, 진무립은 사방을 둘러보며 단려화를 찾았다.
[아직인가?] [사람이 너무 많아요.] [잘못 느낀 건 아니겠지?] [확실해요. 분명 이 안에 혈교의 무인들과 같은 느낌을 풍기는 자가 있어요.]그녀가 아까부터 군중들 사이를 떠도는 이유였다.
수천이 넘는 밀집된 사람들, 그 안에 교묘하게 숨어든 세작을 찾는 건 오로지 그녀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서둘러줘.] [알았어요.]그녀가 은밀히 움직이고 있을 때, 한쪽 구석에서는 죽립을 눌러쓴 초로의 노인이 단상을 향해 눈을 빛내고 있었다.
‘공위맹이라.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호공 소유붕은 아쉬움을 삼키며 속으로 혀를 찼다.
진무립과 사천맹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사전에 알았더라면 서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계획이 조금 더 있었을 것이다.
죽립을 잡아가는 그의 귀에 나직한 전음이 파고들었다.
[호공. 어디에도 그놈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건물을 전부 살펴보았느냐?] [예. 아직 공사가 한창인지라 그들을 숨길만 한 곳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천맹으로 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럴지도 모른다 생각했었는데 여길 와보니 생각이 달라지는구나. 사천맹은 그들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야.]소유붕과 부하들이 대설산맥을 넘은 것은 실종된 포달랍궁의 수장, 판천라마의 흔적이 사천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때 진무립의 이름이 호명됐다.
“마도림의 진무립!”
“예.”
군중들 틈에 서 있던 진무립이 비조처럼 솟구치며 단상에 사뿐히 착지했다.
“오!”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고절한 수법에 군중들의 입에서 탄성이 쏟아져 나온다.
“저 공자가 바로 그 광룡이란 말인가?”
“모친을 쏙 빼닮았다더니 정말 절세의 미남이로구나.”
“그러고 보니……. 이 자리에 광룡과 소천무군, 무음광검까지 전부 모인 게 아닌가?”
군중들의 시선이 진무립에게서 단자룡으로, 단자룡에게서 백채륜까지 차례로 옮겨갔다.
소천무군 단자룡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강의 후기지수.
그와 비견할 수 있는 단 두 명의 젊은 고수가 모두 이 자리에 있으니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다.
단자룡은 가까워지는 진무립을 유심히 관찰했다.
‘저 친구가 진무립인가. 참으로 잘생기긴 했구나.’
동생의 미모는 천하제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으니 외형만 따지면 이보다 잘 어울릴 수는 없었다.
‘외모에 끌려 저자의 곁에 머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 뭔가 있을 것이다.’
진무립을 관찰하는 이는 단자룡만이 아니었다.
서장행에서의 기적적인 활약상이 퍼져 나갔기에 진무립을 보고자 여기까지 온 사람도 적지 않았다.
천천히 발을 내딛는 진무립의 귀로 단려화의 날카로운 전음이 틀어박혔다.
[찾았어요! 군중석 우측 후방의 죽립이에요!]작게 고개를 끄덕인 진무립은 초평천의 앞으로 걸어가 예를 갖췄다.
“광룡 진무립을 현 시간부로 화공단(火攻團)의 단주로 임명한다.”
화공단은 전쟁이 벌어졌을 시 일선에서 적과 맞서 싸우는 집단.
이 자리에 진무립보다 잘 어울리는 인물이 없다는 것은 공위맹의 모두가 인정하고 있었다.
“명을 받듭니다.”
예를 갖춘 진무립에게 단주의 인장이 전해졌다.
예를 갖추는 진무립에게 초평천은 단주의 인장을 들고 다가왔다.
슬쩍 고개 든 진무립이 전음을 보냈다.
[놀라지 마십시오. 이곳에 세작이 있습니다.]느닷없는 전음에 당황할 법도 했으나 초평천은 노련한 고수답게 냉정을 유지하며 물었다.
[사천맹이더냐?] [혈교입니다. 제게 방도가 있습니다. 맡겨주십시오.]초평천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맡기겠다.]진무립은 천천히 돌아서며 군중들을 훑어보았다.
‘죽립이라.’
보인다.
거리는 이곳에서 십오 장.
진무립은 단려화에게 다시 전음을 보냈다.
[한 명인가?] [아니요. 다른 곳은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 자리에는 둘이에요.]진무립은 즉시 다른 동료들을 찾았다.
[당신의 좌측 후방에 당소소와 당우, 곽도진이 있다. 그들과 도주로를 차단해.] [알았어요.]그녀의 모습이 군중들 너머로 사라졌다.
진무립은 발을 옮기며 강유월에게 전음을 보냈다.
[노사님. 혈교의 세작이 있습니다.]강유월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어디인가?] [군중들 속에는 둘. 맹 내에 또 다른 적이 있을지 모릅니다. 이곳은 제가 맡을 테니 밖을 부탁드립니다.] [알겠네.]그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군중들이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는 당부는 속으로 삼켰다.
진무립이 불가능한 일이라면 누구도 하기 힘든 일일 테니까.
어느새 단상 앞쪽에 도착한 진무립은 군중을 향해 절도 있게 포권을 취했다.
“공위맹의 화공단주가 된 진무립입니다.”
침묵 속에 쏟아지는 시선들, 진무립은 손에 쥔 검집을 전방으로 천천히 들어 올렸다.
“본 맹이 출범하는 뜻깊은 날입니다.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지면과 수평하게 들어 올린 검집, 진무립은 오른손으로 검파를 잡았다.
스르릉.
뽑혀 나온 은광검의 날카로운 검신이 햇살에 반짝거린다.
군중들은 뭔가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대감을 품었고.
진무립은 싱긋 웃으며 검집을 떨어뜨렸다.
“지금부터 화공단주로서 첫 임무를 시행하겠습니다.”
군중들의 눈에 의문이 떠올랐다.
“첫 임무라니…….”
죽립 사이로 날카롭게 눈을 빛내던 소유붕은 진무립과 눈이 마주치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들켰단 말이냐!’
사방을 둘러싼 군중들.
그들을 헤집고 떠나기엔 늦었다.
추락하던 검집이 지면에 닿는 순간, 단상을 박찬 진무립의 신형이 전방으로 폭사했다.
쾅!
단상이 움푹 꺼지며 광풍이 몰아친다.
시야에서 진무립을 놓친 군중들과 귀빈의 눈이 부릅떠졌다.
‘뭐, 뭐냐!’
경악한 양삼과 소걸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들도 군중들과 마찬가지로 일순 진무립을 놓친 까닭이다.
눈앞에서도 아니고 제법 거리가 있었음에도 상대를 놓쳤다.
그것은 그의 무위가 결코 자신의, 아니 무림 칠경의 밑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대체 어떻게 저런 녀석이…….’
칠경을 능가하는 젊은 고수는 단자룡밖에 없을 것이라던 생각이 사천의 변두리에서 깨어졌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화살처럼 쏘아진 진무립의 신형이 군중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찰나, 그들의 틈에 끼어있던 조영성이 다급하게 움직이며 두 손을 위로 들었다.
“여기!”
진무립은 사양하지 않고 조영성의 손을 밟았다.
탁.
단숨에 칠 장의 거리를 압축한 진무립이 두 번째 도약을 하는 순간 전방에서 죽립을 눌러쓴 소유붕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진무립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떠올랐다.
“오랜만이군.”
“큭!”
소유붕은 옆 사람의 머리를 밟고 도망치려 했으나 어느새 뛰어오른 당소소와 당우가 그의 진로를 차단했다.
“보내지 않겠습니다!”
소유붕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진다.
‘대체 어떻게 알았단 말이냐?’
복면에 죽립까지 눌러썼을뿐더러 자신의 정체가 노출될 만한 일은 극도로 자제했는데 들켰다.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호공!”
그의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우측에서 누군가 치솟았을 때, 번개같이 솟구친 단려화와 곽도진의 검이 그를 향해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