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105)
◈ 105화. 상천의 의지
어느새 주변에 모여든 무인들은 입을 쩍 벌렸다.
“소, 소천무군 단자룡?”
“무음광검 백채륜?”
“화령과 상천까지 결맹식에 참여한단 말인가?”
화령은 자타가 공인하는 천하제일방파.
혜성같이 나타나 단숨에 천하 산적을 일통한 상천은 현 무림에서 가장 주목받는 단체.
이들이 고작 중소방파가 모여 구성된 공위맹의 결맹식에 참여하고자 나타났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관심이 가는 것은 소천무군 단자룡과 무음광검 백채륜이 눈앞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눈과 귀를 집중했다.
백채륜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듣자 하니 방이 없는 거 같더군요. 우리가 머무는 별채는 제법 자리가 있는데 함께하시겠습니까?”
뒤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양삼은 미간을 좁혔다.
‘저놈, 왠지 위험하다.’
불길한 냄새가 물씬 풍긴다.
하지만 나서지는 않았다.
자신이 느끼는 것을 단자룡이 모를 리 없었으니까.
단자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운 제안이군. 별채 한쪽을 내준다면 방값은 우리가 지불하지.”
“따라오시지요.”
화령의 무인들은 백채륜을 따라 뒷문 밖으로 사라졌다.
입을 꾹 다물고 지켜보던 무인들은 그제야 긴 한숨을 토해냈다.
“후아!”
“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군.”
“싸움이라도 벌어지길 바랐는가? 저 둘이 싸우면 천하대전 이래 가장 큰 전쟁이 벌어질 걸세.”
“그 말이 아니지 않나. 분위기가 워낙 심상치 않으니 그런 거지.”
“그나저나 상천과 화령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 오다니…….”
“대체 공위맹에 무엇이 있는 거지?”
무거운 정적이 사라지며 객잔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백채륜을 따라 별채의 마당에 들어선 단자룡 일행.
고즈넉한 정자에 올라 술잔을 나누던 두 무인이 이쪽을 쳐다본다.
은회색 무복에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가진 청년이 술잔을 들어 올리며 인사했다.
“그대가 단자룡인가?”
심금을 울리는 청명한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든다.
상대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장막에 가려진 무면산왕을 대신해 상천의 대외 업무를 총괄하는 사내.
제천지사(諦天智士) 수문화였다.
양삼은 침을 꿀꺽 삼켰다.
수문화뿐만 아니라 그와 마주 앉은 청년의 기도도 날을 바짝 세운 것처럼 날카롭다.
늘상 말이 많던 아들놈이 입을 꾹 다물었다는 건, 아들조차 저들의 엄청난 힘을 감지했다는 것과 같았다.
‘저놈들도 범상치 않네. 대체 요즘 어린것들은 뭘 먹고 크기에 저렇게 무서운 거야?’
무림엔 이따금 별종이 나타나곤 한다.
서른 언저리에 천하대전을 승리로 이끈 화령의 주력들도 별종에 속한다고 볼 수 있었다.
별종의 기준이 그것이라면, 눈앞의 세 청년은 충분히 그 안에 속할 만하다.
그들을 둘러본 단자룡이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내가 단자룡이다.”
수문화가 별채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셋은 우측 끝 방을 쓸 테니 나머진 알아서 쓰도록.”
“고맙군.”
부하들에게 휴식을 명한 단자룡이 성큼성큼 정자로 올라갔다.
갑작스러운 행동에도 수문화는 서슴없이 자리를 권했다.
“안주가 없는데 괜찮은가?”
탁자 위에 올려진 것이라곤 독한 화주 두 병이 전부였다.
“상관없다.”
“부잣집 자식들은 대게 입이 까다롭던데 그대는 좀 다르군.”
“나는 그들과 다를 수밖에 없지.”
“그런가?”
단자룡은 빙그레 웃으며 빈 잔을 들었다.
“그들은 반찬 투정을 해봐야 고작 회초리로 맞는 게 전부겠지만 내가 반찬 투정을 할 때 주먹을 날리는 사람은 천하제일인이거든.”
그의 잔을 채워주던 수문화가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단자룡은 곁에 앉은 청년을 보며 물었다.
“이 친구가 바로 백면혈소(白面血笑) 대중경인가?”
무명처럼 핏기 가신 창백한 얼굴을 보고 짐작한 것이다.
대중경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총사.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그래.”
단자룡은 대중경에게서 왠지 모를 불편함이, 어떻게 보면 적의(敵意)라고도 볼 수 있는 기운을 감지했다.
대중경이 방으로 들어가자 수문화는 솔직하게 말했다.
“저 친구는 화령을 싫어하거든.”
“왜지?”
“그런 것까지는 나도 모르겠네.”
단자룡이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육감, 단려화가 가진 것 이상으로 선명한 그 감각은 수문화의 거짓말을 즉시 간파했다.
하지만 굳이 캐물어 자리를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한편 수문화는 단자룡의 눈동자가 자신을 피해 술잔으로 향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을 텐데 묻지 않는 걸 보면 제법 참을성이 있군. 역시 용의 자식인가.’
예상대로 상대에게는 참과 거짓을 감지하는 특별한 감각이 있다.
그렇다면 이 자리가 매우 조심스러워진다.
단자룡을 힐끔 쳐다본 수문화는 생각을 최소화하며 마음의 문을 닫았다.
“화령의 영주는 폐관에 들었다고 하던데, 공위맹의 결맹식에 참여하기로 한 것은 누구의 생각인가?”
“나와 대군사의 생각이네. 만일 사천이 혈교의 손에 넘어간다면 다음은 우리 차례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
단려화의 정체를 아는 수문화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번엔 단자룡이 물었다.
“상천이 결맹식에 온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상천이 표방하는 의지가 무엇인지 알지 않나?”
“상생인가?”
“전쟁이 벌어지면 필시 많은 피가 흐를 것이다. 부모를 잃고 떠돌게 되는 아이도 있을 것이며 남편과 자식을 잃고 오열하는 이들도 생겨나겠지. 우리 상천은 작은 힘이라도 보태어 그와 같은 일을 막고자 한다.”
단자룡은 수문화의 짙은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뱉은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다.
마치 속내가 텅 빈 것처럼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육감의 앞에서 마음을 감출 수 있는 인물이 있었다니……. 대단한 녀석이군.’
그러나 차분한 목소리에 깃든 따스함을 보아 상천의 의지는 거짓이 아닐 것이다.
단자룡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세상과의 상생이라, 훌륭하다.”
* * *
새벽의 서늘한 공기가 물러가며 드넓은 평야에 광명이 비춘다.
결맹식의 아침.
단잠에서 깨어난 무인들은 하나둘 짐을 챙겨 객잔을 나섰다.
평야에 무인들이 나타나자 공위맹의 무인들도 덩달아 바빠졌다.
목책을 따라 산책을 하고 돌아온 초평천이 무인들을 독려했다.
“피곤하겠지만 오늘 하루만 더 수고해주게.”
“예!”
그 한마디에 기운을 낸 무인들이 각자의 위치로 이동했다.
호천단의 단주로 내정된 강유월이 초평천의 곁으로 다가왔다.
“마침내 결맹식이로군요.”
초평천은 그에게 고마운 눈길을 보내며 말했다.
“그대 덕분에 더욱 탄탄하게 기반을 다질 수 있었소. 진심으로 고맙소이다.”
“그라면 해묵은 사천 무림의 병폐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초평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달라져야지. 우리는 분명 그들과 달라야 하오. 그것만이 우리를 믿고 공위맹을 선택한 이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길이니까.”
“공위맹. 그 이름처럼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겠지요.”
강유월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런데…… 결맹식까지 한 시진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아이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까?”
그때 등 뒤에서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녀왔습니다.”
고개 돌린 두 사람의 눈앞에 진무립과 단려화가 서 있었다.
정중히 예를 갖추는 그 모습에 둘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달라졌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웠으나 진무립의 기도가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은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초평천은 인자한 미소로 손자를 바라보았다.
“고생했구나.”
“아닙니다. 그보다 슬슬 준비하시지요.”
태양의 위치를 확인한 초평천은 서둘러 발을 내디뎠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군. 이따가 보자꾸나.”
“예.”
강유월이 웃으며 진무립의 어깨를 두드렸다.
“대공을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함께 간 두 아이는 어디에 있는가?”
유대하와 육군명을 묻는 것이었다.
“그들은 일이 있어 조금 늦을 것입니다. 노사께서도 어서 준비하시지요.”
“알겠네. 조금 뒤에 보세나.”
강유월이 떠나자 단려화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만일 오라버니가 오는 것을 몰랐더라면 곤란한 일이 벌어질 뻔했어요.”
자신이 육군명을 보는 순간 상천을 떠올린 것처럼, 단자룡도 상천과 그들을 함께 본다면 분명 기질이 같다는 것을 느끼고 의문을 품을 것이다.
육군명과 유대하를 두고 온 것은 그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진무립은 그녀에게 물었다.
“지금 보기에 나는 어떻지?”
“폐관에서 나오기 전까지는 조금 비슷한 느낌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니 괜찮을 거예요.”
진무립은 흡족한 듯 웃었다.
“그럼 용추만 내보내면 되겠군.”
“서두르죠. 오라버니가 언제 올지 모르니까요.”
“그래.”
공위맹의 무인들은 손님들을 대연무장으로 안내했다.
족히 수천 명이 들어서고도 남을 만큼 드넓은 연무장은 각지에서 모여든 이들로 순식간에 채워져 갔다.
귀빈석을 제외한 거의 모든 자리가 가득 찼을 때, 입구에서 내력이 실린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위맹주께서 입장하십니다!”
예상을 깨고 가장 먼저 등장한 인물은 바로 초평천이었다.
푸른 무복을 입고 붉은 요대를 허리에 두른 그는 천천히 단상 위로 걸어 올라갔다.
“성무검(成武劍) 초평천 대협이다!”
내딛는 걸음마다 육중한 무게감이 느껴졌고 자연스럽게 발산하는 은은한 기도는 절대자의 풍모를 연상케 했다.
침을 꿀꺽 삼킨 누군가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오 년 전 은거하셨다더니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이질 않은가?”
“삼십 년 전까지만 해도 사천제일인으로 명성을 떨치던 초대협께서 돌아오시다니.”
“중경을 벗어나지 않고 은거하신 탓에 사람들이 모를 뿐이지 초대협께서는 패하신 적이 없네.”
“어찌 되었든 초대협께서 돌아와 주신 덕분에 중소방파들은 든든한 기둥을 얻은 것과도 같지.”
단상에 오른 초평천은 군중들에게 절도 있게 포권을 취했다.
“우와아!”
“사천제일인이 돌아왔다!”
모두가 함성을 내지르며 환호하는 가운데, 초평천은 중앙이 아닌 계단에서 가장 가까운 의자에 착석했다.
곧이어 함성이 잦아들고 모두의 눈에 의문이 떠오를 때, 입구의 외침이 다시 들려왔다.
“공위맹과 뜻을 함께하는 방파의 입장이 있을 것입니다. 금정무문주 신환 대협께서 입장하십니다!”
그가 단상을 오르자 자리에 앉아있던 초평천이 일어나 그와 정중히 예를 주고받았다.
신환이 착석한 뒤 입장한 인물은 백발을 단정히 묶은 북천도문주 이정명이었다
수장들이 한 명씩 단상에 오를 때마다 의자에서 일어난 초평천은 예를 다해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군중들은 그제야 초평천이 구석 자리에 앉은 뜻을 알아챘다.
“위에 군림하지 않겠다. 저들을 동반자로 대접하고 함께 가겠다는 의미인가.”
“아! 그래서 공위맹(共爲盟)이로구나.”
자리에 착석한 수장들의 숫자는 무려 서른 명에 달했다.
사천 무림의 거의 모든 중소방파가 사천맹 대신 공위맹을 선택한 것이었다.
수장들이 모두 자리에 착석한 뒤, 이어서 호천단의 노고수들이 나타났다.
그들을 본 군중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탈혼일섬 대협이 공위맹에 합류했다는 게 사실이었군.”
“곁에 점창신검께서도 함께 계시네.”
“그게 다가 아닐세. 저쪽을 보게. 당가와 아미의 고수들까지 보이질 않은가?”
“사천맹주가 정말 큰 실수를 했어.”
누구도 저들을 욕하지 않았다.
그만큼 사천맹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만인의 지탄을 받기에 충분한 일이었으니까.
“다음으로 본 맹의 결맹식을 축하하고자 먼 걸음을 해주신 귀빈들을 소개하겠습니다. 개방의 소방주, 취운보 소걸개 대협이십니다!”
소개와 동시에 입장한 소걸개는 손을 흔들며 단상 위로 올라갔다.
“무림 칠경!”
천하십대고수의 뒤를 잇는 고수의 등장에 군중들은 부릅뜬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초평천과 예를 주고받은 뒤 좌측으로 걸어갔다.
‘그렇지. 내가 와서 놀라기도 했을 거야.’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에 소걸개의 입꼬리가 흐뭇하게 올라갔을 때.
“성도 분타의 거지들이 깨끗하다기에 믿지 않았는데 정말로 씻고 다니는 거지가 있었구먼.”
“말세로구나. 그럴 거면 왜 구걸로 먹고산단 말인가?”
“…….”
어디선가 들려오는 나직한 목소리에 소걸개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