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104)
◈ 104화. 소천무군 단자룡
후기지수 중에 적수가 없다는 평을 받는 단자룡이지만 세인은 천하의 단 두 명만큼은 그와 견줄 만하다고 말하곤 했다.
그중 한 사람은 바로 상천의 무음광검 백채륜이었고 또 다른 한 명은 혜성같이 나타나 실력을 입증하기 시작한 광룡 진무립이다.
물론 단자룡이 그를 궁금해하는 까닭은 그가 자신과 함께 언급돼서가 아니라 동생이 그를 따라다니기 때문이었다.
“마도림의 소공자는…….”
연소정은 말을 끝맺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쉽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입 밖으로 꺼내자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입을 열었다.
“그는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냐?”
단자룡은 빙그레 웃으며 물을 들이켰다.
연소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 답변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불안하지 않으십니까?”
“그 녀석도 세상을 경험할 나이가 되질 않았느냐? 스스로 자청해서 그곳에 남길 원했으니 알아서 잘하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어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그의 부친 단소룡은 일 년 전 폐관 수련에 들어 아직 이 일을 모르고 있었다.
연소정이 말했다.
“이번에 공위맹의 결맹식에 참여하기로 한 것은 역시 아가씨 때문입니까?”
화령은 공식적으로 강남 밖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너무 강력한 힘을 가진 화령이 강호의 대소사에 개입한다면, 무림이 무림답게 흘러가지 못할 것이라는 단소룡의 걱정 때문이었다.
연소정은 사문이 불문율까지 깨뜨리고 결맹식에 참여하는 까닭이 궁금했다.
“음, 그것도 한 가지 이유지.”
“또 다른 이유가 있단 말씀입니까?”
“글쎄다.”
단자룡은 웃기만 할 뿐 답을 주지 않았다.
* * *
공위맹의 결맹식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맹의 거대한 연무장엔 높은 단상과 귀빈이 착석할 자리를 설치했다.
초대 맹주에 오른 초평천은 모여드는 무인들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더 올 사람이 있는가?”
단출한 집무실, 그와 마주 앉은 적모개가 방명록을 뒤적이며 말했다.
“상명보주께서 오늘 저녁 무렵 도착하실 듯합니다. 그리고 곧 화령의 무인들도 도착할 겁니다.”
화령에서 사절을 보내오는 것은 모두의 예상 밖이었다.
만일 비사각(飛士閣)의 정보원이 감지하지 못했더라면 그들이 도착할 때까지 몰랐을 것이다.
공위맹의 결성 직후, 진무립과 초평천은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정보력의 확충이었다.
그 결과 백여 명의 정보원들이 사천 전역에 퍼져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사천으로 넘어온 화령의 무인들을 사전에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화령이라.”
“다만 이곳으로 바로 올지, 이주에서 머물다 내일 오려고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공위맹과 이주 사이에는 탁 트인 평야가 있었기에 육안으로 보일 만큼 멀지 않은 거리였다.
초평천이 말했다.
“도착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니 그건 뒤로 미뤄두세. 힘들겠지만 하루만 더 고생해주게.”
지난 며칠, 모여드는 귀빈을 상대하고 각파의 대표들과 회의를 이어온 초평천은 다소 지친 상태였다.
그럼에도 적모개를 먼저 걱정한다.
‘확실히 한천월과는 다른 분이다.’
적모개는 씩 웃어 보였다.
“괜찮습니다.”
마주 웃어 보인 초평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네가 이곳에서 일하는 것을 소방주가 문제 삼지는 않던가?”
중원무림맹에 소속된 개방의 방도가 다른 곳을 위해 일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다분했다.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개방이야 정보로 먹고사는 곳이니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건 다행이군.”
“제가 공위맹의 정보를 개방에 넘길까 걱정되지는 않으십니까?”
“아무것도 내줄 생각 없이 얻기만 하려는 것은 과욕일세. 자네가 알아서 잘 해줄 것이라 믿네.”
정보를 넘기려거든 적당히 걸러서 넘기라는 무언의 당부처럼 느껴졌다.
적모개는 멋쩍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의 상황을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분주한 것은 초평천과 적모개만이 아니었다.
공위맹의 모든 무인은 결맹식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와! 차라리 혈교랑 싸우는 게 더 편하겠네.”
무거운 짐을 옮기고 털썩 주저앉은 인물은 바로 조영성이었다.
어느새 다가온 국철영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그러게 왜 여길 따라와서 고생을 하지?”
“따라와? 니가 날 따라왔지 내가 널 따라왔냐?”
“말은 바로 해야지. 내가 너보다 한발 먼저 들어왔다.”
“내 발이 먼저 들어왔거든?”
지나가던 당소소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또 싸워?”
그녀의 뒤로 곽도진과 보인이 나타났다.
“몸이 힘드니 입이 거칠어지는 모양이다.”
“아침부터 쉬지 않고 일했으니 다들 지치긴 했을 거예요. 조금 쉬어가며 하는 게 좋겠어요.”
그들은 햇살을 피해 처마 밑으로 자리를 옮겼다.
바쁘게 오가는 중소방파의 무인들, 이따금 보이는 사대거파의 어른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지금쯤 연무장에선 함께 온 사대거파의 후기지수들이 일하고 있을 터.
여기 모인 모두는 소속을 가리지 않고 한마음이 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보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겠죠?”
사문의 허락도 없이 공위맹에 합류한 것을 묻는 것이다.
폐관 수련과 무림행을 핑계로 잠적하긴 했으나 이만한 숫자가 합류했는데 모를 리 없다.
곽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천단(護川團)에 사문의 어른들이 계시니 괜찮을 거다.”
호천단은 경험 많은 노고수들이 소속된 곳이다.
그곳엔 중소방파의 고수뿐만 아니라 강유월과 하종보 등 정무원에서 자릴 옮겨온 노고수도 있었다.
젊은 무인들이 망설임 없이 합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처럼 뜻있는 사문의 어른들이 먼저 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인이 아쉬운 듯 말했다.
“부대주도 함께 왔으면 좋았을 텐데.”
조영성이 말했다.
“난 안 올 줄 알았어.”
“왜요?”
“당천을 좋아하니까.”
그 말에 모두가 짐작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저 멀리 물통을 옮기는 당우가 보인다.
“그런데 당가의 삼공자는 왜 여기 있는 거죠?”
당소소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출이래.”
커다란 물통 다섯 개를 연거푸 옮긴 당우가 거친 숨을 토해냈다.
“후아!”
태어나서 직접 몸 쓰는 노동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모든 게 준비되어있던 당가, 사천맹과는 달리 이곳 공위맹은 자신이 옮긴 돌 하나가 맹의 주춧돌로 변한다.
그때 신평이 다가와 물었다.
“힘들지 않으십니까?”
당우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모르고 날뛰던 시절, 묵혈방의 꾐에 넘어가 금정무문을 핍박했던 일은 당우의 진심 어린 사과와 변화로 풀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당우는 여전히 그를 대할 때마다 옛 기억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당공자께서도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사천맹주님을 보면 자꾸 예전의 제가 떠올라서……. 그럼 다시 가보겠습니다.”
신평은 멀어지는 당우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 * *
드넓은 사천평야에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이주의 불빛이 은은하게 퍼지는 가운데, 화령의 무인 스무 명이 어둑한 마을에 발을 들였다.
단자룡이 양삼에게 말했다.
“늦은 시간에 방문하는 것도 예가 아니니 오늘은 여기서 쉬고 가겠습니다.”
양춘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책임자는 형님인데 일일이 아버지 허락 안 구해도 돼요.”
그의 뒤통수에 양삼의 주먹이 번개같이 작렬했다.
따악!
“아악!”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찌릿한 통증에 양춘이 빽 소리쳤다.
“왜 때려요! 틀린 말도 아니잖아요!”
“자룡이가 너처럼 위아래도 없는 놈인 줄 아느냐?”
“그래도 그렇지. 저기서 공위맹이 지켜보고 있는데 창피하게 이럴 거예요!”
그 말에 감시하던 눈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설마 이 거리에서 들키다니.’
표가장 출신의 표중초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은잠술에는 제법 자신이 있었기에 비사각에 지원했다.
은잠술을 극성으로 전개하고, 무려 십 장 밖에서 하는 감시가 들키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가 가슴을 쓸어내리는 순간, 바로 뒤에서 차가운 여인의 목소리가 또 한 번 그를 경악하게 했다.
“공위맹의 무인이십니까?”
“컥!”
기겁한 표중초가 다급하게 물러나 검파에 손을 올렸다.
연소정은 두 손을 차분히 들어 올리며 말했다.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니 경계할 것 없습니다.”
“…….”
그녀는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저희는 화령에서 왔습니다. 늦은 시간에 찾아뵙는 게 예가 아닌 듯하여 오늘은 이곳에 머물고 결맹식에 맞춰 방문하겠습니다. 돌아가서 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돌아서는 표중초의 귀로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한 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표중초는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말씀하시오.”
“진무립 공자의 곁에 유화라는 여인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과거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사람인데 잘 지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광녀 유소저 말이오?”
“과, 광녀라구요?”
연소정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잘못 안 것이겠지.’
그녀는 상대가 사람을 착각한 것으로 생각하고 다시 말했다.
“아무래도 제가 찾는 이와 다른 사람 같습니다.”
“소공자의 곁에 머무는 여인은 언제나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그 여인밖에 없소.”
“…….”
당황한 내심을 감춘 그녀는 다시 물었다.
“대체 누가 광녀라는 무명을 붙였습니까?”
“그녀에게 죽은 적이라고 들었소이다. 그럼 이만 돌아가 보겠소.”
“…….”
표중초가 사라지자 그녀는 몸을 돌리며 고민에 빠졌다.
‘대체 뭘 하셨기에 광녀라는 무명을……. 이걸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는 거지?’
새어 나오는 한숨을 막을 길이 없었다.
거리의 한쪽에서 기다리던 단자룡은 그녀가 돌아오자 물었다.
“그 녀석은 어찌 지낸다고 하더냐?”
“잘…… 지내시는 모양입니다.”
그녀의 목소리에 왠지 모를 떨림이 깃들었다.
양춘이 시큰둥하게 단자룡의 팔을 잡았다.
“형님. 고작 열 살 나이에 사람을 곤죽이 되도록 두들겨 팰 만큼 무시무시한 녀석입니다. 그 녀석을 걱정하느니 차라리 오늘 저녁에 뭘 먹을지부터 걱정하는 게 나을 겁니다.”
그녀에게 곤죽이 되도록 맞은 사람은 바로 양춘이었다.
단자룡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알았다. 가자.”
마을의 중앙으로 걸어간 그들은 대로변의 가장 큰 객잔에 들어섰다.
쪼르르 달려 나온 점소이의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공위맹의 결맹식을 보겠다고 찾아온 손님들에게 온종일 시달렸던 것이다.
점소이가 고개를 넙죽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방이 없습니다.”
마을에서 가장 큰 객잔이 꽉 찼다면 다른 곳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연소정이 곤란한 기색을 보이며 물었다.
“별채도 없습니까?”
“별채에는…….”
“이봐.”
그때 별채로 통하는 작은 문이 활짝 열리며 마치 뱀 같은 눈매를 가진 청년이 나타났다.
싱글싱글 웃으며 다가온 청년, 백채륜은 단자룡의 앞에 서서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화령의 무복. 살짝 쳐진 눈꼬리에 다부진 체구.”
상대에게서 풍기는 기도가 심상치 않다.
경계심을 끌어올린 양춘과 연소정은 즉시 단자룡의 앞을 가렸다.
“넌 누구냐?”
그들의 경계에도 불구하고 백채륜의 시선은 여전히 단자룡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대가 소천무군 단자룡입니까?”
“뱀 같은 눈매를 가진 젊은 무인.”
상대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단자룡이 슬며시 웃었다.
“나도 들어본 적이 있다.”
모를 리가 없다.
사람들이 그토록 자신의 이름과 함께 거론하는 인물 중 하나였으니까.
“상천의 무음광검이 바로 그대겠군.”
백채륜의 입꼬리가 섬뜩하게 올라갔다.
“정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