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141)
◈ 141화. 태종무사(太宗武士)
마도림의 총단에 임시 집무실을 배정받은 적모개는 전후 뒤처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이걸 언제 다 하고 있냐.”
산더미처럼 쌓인 종이의 먹물 냄새에 정신이 아찔해진다.
공정한 논공행상을 위해 무인들의 공을 철저하게 계산해야 했고 큰 피해를 입은 방파를 지원해야 한다.
문제는 공위맹의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다는 것이다.
흑사칠랑을 고용한 대금을 지불하고 나면 각파의 손실을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
‘무너진 사천맹에서 보물이라도 발견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제자들이 사천맹에 도착할 테지만 과연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하늘에서 돈이라도 뚝 떨어지면 좋겠구만.”
적모개의 입에서 짙은 한숨이 새어 나올 때, 슬며시 문이 열리며 동초개가 들어왔다.
“분타주.”
그를 본 적모개가 흠칫 놀라며 물었다.
“너 얼굴이 왜 그러냐?”
시퍼렇게 부은 얼굴에선 본래의 형태를 찾아볼 수 없었다.
동초개가 울먹이며 말했다.
“유소저한테 맞았어요.”
“…….”
아이들에게 신이 나서 전쟁 얘기를 해줄 때부터 짐작한 일이다.
눈물을 훔친 동초개가 품에서 서신을 꺼냈다.
“서장에서 온 소식이래요.”
“그래?”
서신을 확인한 적모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장으로 간 상천의 무인들이 포달랍궁을 재건하고 혈교의 잔당을 일소했다는 소식이었다.
더불어 실혼인의 실험장을 폐쇄했다는 정보와 혈교의 자금을 획득한 사실까지 쓰여 있었다.
“됐다!”
자리를 박찬 적모개가 집무실을 나섰다.
* * *
죽림에 접어든 현진학이 고즈넉한 풍광을 감상하며 말했다.
“신선들이 나온다 해도 이상할 게 없겠어.”
그와 나란히 걷던 서천휘가 웃으며 말했다.
“초대협의 풍모도 신선 같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렇군.”
두 사람은 지금 초평천의 집무실에 들러 보수를 받고 나오는 길이었다.
주머니가 두둑해서 그런지 내딛는 발걸음이 한없이 가볍다.
죽림을 빠져나온 두 사람의 눈에 멀리 아이들과 씨름하는 진무립이 보인다.
“이번 전쟁 최대의 수혜자가 저기 계시는구만.”
“그만한 능력을 가진 무인입니다.”
무천극의 일장을 받아낸 서천휘는 그가 얼마나 강한 상대인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 무천극을 넘어선 진무립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무인이다.
현진학이 물었다.
“우기는 아직 어려울 거 같고…… 만약에 네가 무천극과 끝까지 싸웠다면 어땠을까?”
흑랑 장우기의 무재는 확실하다.
머지않아 서천휘를 넘어설 게 분명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서천휘는 짧은 고민 끝에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진무립을 바라보는 현진학이 실소를 머금었다.
“괴물이로군.”
“우리에겐 충분한 시간이 있습니다.”
“그렇지. 가자.”
* * *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랍살의 포달랍궁.
육중한 소음과 함께 족히 수백 명은 들어설 법한 대전의 문이 열린다.
곧이어 활짝 열린 문으로 창백한 얼굴의 호리호리한 사내가 들어왔다.
좌우로 라마승들이 시립한 가운데 그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던 판천라마가 높은 계단에서 내려왔다.
“이제 떠나려는가?”
대중경은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산채를 오래 비워둘 수는 없소.”
다소 짧은 말투에도 나무라는 이는 없었다.
대중경을 향한 라마승들의 눈빛에 은은한 경외감까지 엿보였다.
서장에 도착해서 랍살에 이르기까지.
상천의 무인들은 단 한 번의 패배도, 크나큰 위기도 없이 앞을 가로막는 모든 적을 쓰러뜨렸다.
본 궁을 되찾고 혈교의 총단까지 불사르고 온 대중경은 그야말로 서장에서 신화적인 활약을 선보였다.
판천라마의 곁을 지키던 환혼사자 완사계가 물었다.
“누가 감히 상천의 산채를 넘볼 수 있겠소이까?”
대중경은 담담하게 답했다.
“밖에서는 그리 생각할 수 있겠으나 우리는 그리 생각해선 안 되오. 찰나라도 방심하는 순간 천하가 우리의 숨통을 조여올 테니까.”
상천의 강함을 뼈저리게 느낀 라마승들은 다소 의아한 얼굴이었으나 판천라마는 달랐다.
은은한 현기마저 느껴지는 판천라마의 두 눈이 대중경을 담았다.
“역시 그대들은…….”
그는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본 사람처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령사자는 준비한 그것을 가져오라.”
“예. 불존.”
무령사자 손야탁이 폭이 석 자 남짓한 궤짝을 가져왔다.
“본 궁에서 그대들에게 전하는 마음이네. 부디 사양치 말고 가져가게.”
“고맙소.”
마지막 예를 갖춘 대중경은 궤짝을 받아들고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그대의 주인에게 전해주게. 설령 천하가 등을 돌릴지라도 우리 포달랍궁만큼은 마지막까지 그대들의 편에 서 있을 것이네.”
이렇다 할 아군이 없는 상천에겐 그 무엇보다 든든한 말이다.
“전하겠소.”
짧게 대답한 대중경이 붉은 융단을 밟고 라마승 사이를 걸어나간다.
“아미타불. 본 궁은 결코 상천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오.”
“시주들의 무용을 평생토록 기억하리다.”
“다음에 또 뵙기를 기원합니다. 아미타불.”
곳곳에서 나직한 불호와 함께 감사의 인사를 전해온다.
대전을 나서자 이번엔 수백이 넘는 라마승이 기다렸다는 듯 합장을 취했다.
멸문지화의 위기를 넘고 뿔뿔이 흩어졌던 그들이 다시 모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상천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경과 상천의 무인들은 쏟아지는 예를 받으며 포달랍궁을 나섰다.
높게 치솟은 대전의 입구에서, 떠나는 그들을 바라보던 판천라마가 몸을 돌렸다.
“당분간 폐관에 들 것이다.”
손야탁이 다소 놀란 얼굴로 물었다.
“설마 지금 당장 폐관에 드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완사계가 간곡히 고개를 숙였다.
“재고해주십시오. 불존. 지금은 아니 됩니다.”
이제 막 재건에 들어간 포달랍궁엔 판천라마의 힘이 너무도 필요했다.
그러나 판천라마의 단호한 표정은 달라질 줄 몰랐다.
“지금이어야 한다.”
“혹, 그 연유라도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판천라마의 눈에 먼 하늘이 담겼다.
“무천극조차 당해내지 못하는 힘으로는…… 다가올 폭풍을 버텨낼 수 없다.”
“다가올 폭풍이라 하시면…….”
“설마 혈교의 준동이 단지 무천극 하나만의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하느냐?”
그 말에 두 부하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잠시 입술을 달싹이던 판천라마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때가 되면 알 것이다. 지금은 무너진 건물을 수리하고 설법이나 할 때가 아니다.”
그 강경한 태도에 왠지 모를 서늘함을 느낀 두 사자가 고개를 숙였다.
판천라마는 흩어지는 라마승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당장 무재가 뛰어난 제자 일백을 차출하라. 그들에게 환라경수장(環邏京手掌)을 가르쳐 폐관에 들게 할 것이다.”
환라경수장은 지금까지 수많은 수련승의 목숨을 빼앗아간 무서운 장법.
그러나 목숨을 걸고 익혀야 하는 만큼 대성에 이른다면 능히 강호 일절로 불릴 만한 무공이었다.
판천라마가 그간 금지했던 환라경수장까지 꺼낸다는 것은 그만큼 다가올 폭풍이 위험하다는 뜻과도 같다.
두 사자는 이견 없이 입을 모았다.
“불존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 * *
전쟁이 끝난 지 달포가 훌쩍 지났다.
와룡소 뒤편의 아담한 초옥.
곧게 뻗은 오솔길을 달려간 동초개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형님! 형님! 이러다 시작하겠어요!”
용추의 목소리는 초옥 옆의 측간에서 들려왔다.
“기다려. 금방 나가.”
“빨리 나오세요. 다들 대연무장에 모였다니까요.”
“나간다니까.”
곧이어 문이 열리더니 구수한 향이 바람에 실려 온다.
그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삼 장 밖에서도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형님. 혹시 아침에 똥을 잡수셨어요?”
“가자.”
용추가 먼저 달려나가자 코를 막은 동초개가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부상자들이 거동할 수 있을 만큼 회복하자 마도림의 대연무장에서 논공행상이 이뤄졌다.
단상에 오른 초평천이 한 명씩 이름을 부르자 호명된 무인들이 밝은 얼굴로 걸어 나왔다.
과거 사천맹에서의 불합리한 논공행상과 달리 공위맹의 일 처리는 모두가 만족할 만큼 꼼꼼했다.
비사각에서 올린 보고서를 초평천이 확인한 뒤, 각파의 대표를 불러 부족한 점은 없는지 확인까지 거쳤기 때문이다.
반 시진에 걸쳐 평대원들의 논공행상이 끝나자 지휘관의 차례가 다가왔다.
“금호대주 당천.”
“예.”
쏟아지는 시선 속에 당천이 단상 위로 올라갔다.
초평천은 부드럽게 웃으며 당천을 바라보았다.
“그대는 사천맹의 퇴각전에서 훌륭하게 아군의 퇴로를 확보했다. 이에 은자 백 개와 새로이 구성될 청룡대의 대주에 임명한다.”
“감사합니다.”
당천은 가볍게 포권을 취하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청룡대주라.’
미리 들어 어떤 곳인지는 알고 있었다.
청룡대는 금호대처럼 후기지수가 모인 곳이 아니라 정예 고수들로 편성된 부대다.
전보다 한 걸음 나아간 것이다.
기쁜 것은 분명한데 무엇 때문에 기쁜 것인지 모호한 기분이었다.
자리로 돌아오는 당천의 눈이 부친의 부드러운 미소에 닿았다.
[가문의 후광이 아닌, 너의 노력으로 얻은 첫 번째 직책이다. 축하한다.]당천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내가 노력해서 얻은 자리.’
사천맹을 지탱하던 네 개의 기둥 중 하나인 당가의 소가주.
그런 자신이 맹에서 직책을 얻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축하합니다. 형님.] [축하해요. 소가주.]당우를 비롯해 사방에서 축하의 전음이 도착한다.
그들을 한 명씩 돌아본 당천은 미소를 감추며 자리에 앉았다.
‘이런 것이…… 조직이로구나.’
왼팔을 잃은 구양무와 필사적으로 포위망을 유지한 여자령, 유대하와 육군명을 비롯한 모든 무인이 적절한 보상을 받았다.
초평천의 시선이 사방을 훑어보더니 단려화에게 멈춘다.
“다음은 자네로군. 화공단주의 호위 유화.”
단려화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나도?’
진무립의 호위로, 특별한 직위 없이 움직인 자신을 부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진무립의 그녀의 옆구리를 쿡 하고 찔렀다.
[안 나가?] [가요. 가.]단상에 오른 단려화는 정중히 예를 갖췄다.
“사천맹에서부터 마지막 전쟁까지, 화공단주를 따라 각지에서 분전한 그대의 공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이 크다.”
쏟아지는 시선 속에 단려화의 두 눈이 기대로 반짝인다.
“하여 본 맹은 그대에게 은자 천 개의 상금과 사천검화(四川劍花)의 무명을 선물하고자 한다.”
“……엇.”
한 박자 늦게 놀란 단려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 사천검화요?”
빙그레 웃어 보인 초평천이 무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자리에 모인 그대들은 앞으로 이 아이를 광녀 대신 사천검화로 불러주시게.”
비록 진무립이라는 빛에 가려져 있었으나 그녀가 세운 공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었다.
“예!”
우렁찬 대답 속에 면사 속 단려화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환해졌다.
‘내가…… 사천검화라니!’
벅찬 감격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물론 미친년에서 해방된 것도 기뻤으나 당천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 역시 자신의 힘으로 뭔가를 얻어낸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축하합니다!]박수갈채와 함께 축하의 전음이 사방에서 쏟아진다.
활짝 웃은 그녀는 군중을 향해 정중히 예를 갖추고 내려왔다.
진무립이 옅은 미소로 그녀를 맞이했다.
앞서 용추와 유대하, 육군명을 비롯해 상을 받을 만한 인물은 모두 받았다.
그녀의 말처럼 모두가 기대 어린 눈빛으로 진무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으로 호명된 인물은 모두의 예상과 같았다.
“화공단주 진무립.”
“예.”
자리에서 일어난 그에게 모두의 시선이 별 무리처럼 쏟아진다.
당당하게 걸음을 옮긴 진무립이 단상 위로 올라갔다.
진무립과 마주 선 초평천은 대견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아이는 사천 무림의 빛이 되었구나.’
비단 그뿐 아니라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그와 비슷한 마음이었다.
쥐 죽은 듯 고요한 분위기 속에 초평천의 입이 작게 열린다.
“이번 전쟁에서 그대가 세운 공은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 하여…….”
이어서 초평천은 군중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현 시간부로 화공단주 진무립을 사천 무림의 태종무사(太宗武士)로 임명한다! 태종무사에겐 사천의 모든 무인을 움직일 수 있는 동원령과 작전권이 부여될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상에 진무립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군중들의 입은 쩍 벌어진다.
공위맹주조차 갖지 못한 무소불위의 권한이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새 초평천의 곁으로 다가온 독왕 당조가 손바닥만 한 금빛 신패(神牌)를 내밀었다.
“이것은 은명패(恩銘牌)라고 하오. 사천 땅 그 어디에서도 이것만 내보인다면 태종무사께서 가진 권한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오.”
은명패 뒷면에는 작은 글씨로 사천의 모든 방파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사대거파의 수장을 비롯해 각파의 대표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미의 장문인 자소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분열된 사천을 하나로 모은 것도, 혈교의 야욕을 막아낼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은공께서 계셨기 때문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오.”
이어서 북천도문주 이정명이 말했다.
“이번 전쟁에서 은공은 신묘한 귀계와 뛰어난 무공으로 사천 무림을 이끌 수 있는 인재라는 것을 증명했소. 맹주님의 의견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한데 모은 것이니 사양치 말고 받아주시구려.”
수장들에게 머물던 진무립의 시선이 단상 밑의 군중들에게 옮겨간다.
만인의 미소 띤 얼굴이 진무립의 빛나는 동공에 가득 들어찼다.
그들 모두가 진무립을 인정한 것이다.
“그리 말씀하신다면…….”
말끝을 흐린 진무립의 손이 천천히 나아가더니 이윽고 은명패를 잡았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억눌린 함성이 대연무장의 하늘로 솟구쳤다.
“우와아-!”
떠들썩한 함성과 함께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군중을 향해 정중히 예를 갖춘 진무립은 은명패를 갈무리하고 단상을 내려왔다.
한쪽 구석에서 박수를 치던 상호군이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곁에 선 우가산이 눈을 흘기며 핀잔했다.
“이 좋은 날 왜 청승맞게 울고 그러오?”
눈물을 훔친 상호군이 애써 웃었다.
“소공자를 향한 저들의 눈빛을 보시오. 하늘에 계신 아가씨께서 이 모습을 보셨다면 얼마나 대견스러워하시겠소이까?”
그 말처럼 엄청난 상을 받았음에도 질시의 시선은 찾아볼 수 없다.
누구 하나 진심으로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
우가산은 타박하지 않고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듣고 나니 활짝 웃는 초이린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까닭이다.
그녀의 미소에 화답하듯 우가산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번진다.
‘아가씨. 아가씨의 아들은 진정한 영웅이 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