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140)
◈ 140화. 무슨 영웅이 이래요!
사천의 승리가 천하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어딜 가나 둘 이상 모인 곳이라면 온통 사천의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내부 분열을 봉합하고 혈교를 막아낸 사천의 승리에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사천을 제외하고 가장 먼저 소식을 접한 곳은 인접한 섬서성이었다.
서안 외곽의 작은 객잔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새통을 이뤘다.
사천의 소식을 들고 온 매담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근방에 퍼진 것이다.
“거, 뒤에는 입 좀 다무시오! 소리가 안 들리잖소!”
“앞에서 떠드니까 뒤에서 안 들리는 게지! 그쪽이나 좀 조용하시오!”
웅성거림이 점점 커져가자 나이 든 매담자는 그냥 탁자를 밟고 올라섰다.
“흠.”
점잖게 헛기침을 한 매담자가 쏟아지는 시선 속에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 했더라.”
“혈야광인이 혈교도의 목을 꺾었다는 부분까지 말했소이다.”
“그렇지. 그 괴물이 돌변해 혈교도의 목을 꺾은 순간이었소. 혈교의 군사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게야. 그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을 때, 등 뒤에서 시퍼런 칼날이 그의 가슴을 꿰뚫었지.”
시골 촌부처럼 까만 얼굴의 중년인이 물었다.
“광룡이오?”
뭐만 하면 광룡의 이름부터 튀어나온다.
진무립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진 까닭이다.
매담자는 점잖게 손을 저었다.
“광룡은 조금 이따가 나오니 기다리시오. ”
질문했던 사내는 시무룩한 얼굴로 입을 닫았다.
“군사의 가슴을 꿰뚫은 것은 흑사칠랑이었소.”
“그들은 결코 의뢰인을 배신하지 않는다고 들었소만?”
“물론이오. 그들은 배신한 게 아니오. 처음부터 공위맹의 의뢰를 받고 혈교에 스며들었던 게지.”
“아아!”
좌중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온다.
“한발 앞서 그들을 포섭한 것은 바로 공위맹의 군사 적모개였소이다. 그 뒤에 광룡이 계책을 써서 흑사칠랑으로 하여금 절묘한 순간에 움직이도록 만든 것이지.”
“적모개라면 혹시 개방의 인물이오?”
“그렇소. 공위맹의 군사라고 하더군. 혈교의 실혼인을 무력화할 수 있었던 것은 적모개와 광룡, 흑사칠랑이 삼위일체가 되어 행동했기 때문이오.”
“크으!”
“참으로 대단하군.”
사방에서 감탄이 끊이지 않고 쏟아진다.
“군사가 죽고 나자 혈마는 극도로 분노했다더군. 그는 곧장 지랑 현진학을 향해 일장을 퍼부었소.”
누군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한다.
“혀, 혈마의 혈천장은 스치면 죽는다던데?”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지. 누군가 현진학의 앞을 가로막으며 그것을 받아냈지 뭐요?”
“광룡인가?”
“광룡은 잠시 후에 또 나오니 조금만 기다리시오.”
매담자는 손을 휘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흑사칠랑이 군사의 목을 치고…….”
“옭거니. 그 뒤에 광룡이 적을 다 쓸어버리는구먼.”
결국 참지 못한 매담자가 버럭 성을 냈다.
“거참! 이야기에 기승전결이 있어야 할 것 아니오! 왜 자꾸 광룡만 물어!”
“그럼 광룡은 안 나오오?”
“나와! 나온다고! 광룡이 무천극을 때려잡고 이겼다! 됐냐!”
분을 못 이겨 결말부터 말한 매담자는 아차 싶은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아아! 오늘 일당이…….’
까만 얼굴의 중년인이 승리의 미소를 지을 때였다.
“오오! 광룡이 혈마를 때려잡았단 말인가!”
“혈마를 때려잡은 게 십대고수인 독왕이 아니라 광룡이었단 말이오?”
“경천동지할 일이로군. 무림에 출두한 지 고작 일 년밖에 되지 않은 광룡이 혈마를 잡다니.”
사방에서 경탄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터져 나온다.
매담자의 따가운 눈총을 피한 양삼이 구석진 자리로 돌아왔다.
“사천이 이겼단다.”
양춘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그렇게 매담자의 밥줄을 끊어야겠수?”
“너무 감질나게 말하잖느냐.”
단자룡이 웃음을 터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하하.”
그는 잔뜩 인상을 구긴 매담자에게 다가가 은자 열 개를 내밀었다.
“이야기는 잘 듣고 있습니다. 노기를 푸시고 남은 이야기도 마저 해주십시오.”
눈이 휘둥그레진 매담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웃었다.
“허허. 귀인께서 바라시니 내 최선을 다해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풀어보리다.”
단자룡이 자리로 돌아오자 양삼이 얼굴을 구겼다.
“니가 그러면 내가 뭐가 되느냐?”
양춘이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뭐가 되긴, 매담자의 밥줄을 끊을 뻔한 옹졸한 노인네가 되는 거죠.”
“이놈은 가끔 보면 내 자식이 아니라 저놈 자식인 것 같단 말이야.”
양삼이 투덜거리는 사이 다시 힘을 낸 매담자가 이야기를 진행했다.
“광룡의 계책으로 미쳐버린 실혼인들이 자중지란을 일으켰지. 거기서 공위맹주가 몸소 나섰다오.”
“공위맹주라 함은 마도림의 태상림주 성무검(成武劍) 초대협을 말하는 것이오?”
“그렇소. 전대 사천제일인으로 꼽히던 그분이지. 그분은 광룡과 혈마가 사라지자 즉시 포위망을 만들었소. 포위에 갇힌 혈교도들은 진영 한복판에서 날뛰는 실혼인으로 인해 온전히 싸움에 집중할 수 없었다오.”
“오! 그거참 절묘한 판단이로군.”
“초대협을 맹주로 모신 중소방파들의 선택이 적중했구먼.”
매담자의 이야기는 혈마 무천극의 죽음까지 물 흐르듯 이어졌다.
“무천극이 죽었다곤 하나 숫자는 여전히 혈교가 더 많았다오. 거기서 나타난 것이 바로 상천이지.”
“상천!”
좌중은 기다렸다는 듯 눈을 치켜떴다.
현 무림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단체.
그들은 광룡 진무립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천하의 주목을 한 몸에 받던 자들이었다.
“사, 상천의 힘은 어땠소?”
“직접 목도한 이들의 말에 따르면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시체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오. 그들은 추풍낙엽처럼 적의 목을 떨구며 한 번의 멈춤도 없이 적진을 관통했다고 하더군. 그야말로 군계일학이라고 하더이다.”
“아아…….”
“음해하던 표국들의 속이 참으로 쓰리겠구먼.”
매담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번 전쟁에 상천이 가담한 것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소. 그 이름처럼 천하와 상생하겠다는 의지를 만천하에 표방한 것이니 말이오.”
매담자의 말은 정확히 진무립과 수문화가 의도한 그대로였다.
천하와의 상생.
상천의 의지는 이번 전쟁의 결과와 함께 천하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매담자의 입에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으나 연소정의 관심은 온통 단려화의 안위뿐이었다.
“아가씨께서는 무탈하시겠지요?”
진무립이 어떤 사내인지, 단려화가 어떤 여인인지 모르지 않았으나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양삼이 말했다.
“만일을 대비해 투월초가 가지 않았느냐? 걱정할 것 없다.”
자리에 앉아 술을 시원하게 들이켠 단자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탈할 것이다.”
양춘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다들 그 녀석 겉모습에 속고 있는 거라구. 염라가 찾아와도 귓방맹이를 날릴 녀석인데 왜 자꾸 약하게만 보는 거야?”
단자룡이 웃으며 말했다.
“춘이의 말처럼 려화는 걱정할 것 없습니다. 어쨌든 사천이 혈교를 막아낸 덕분에 한숨 돌리게 됐습니다.”
“그렇지. 만일 조금이라도 전쟁이 길어져서 중원을 움직이게 했다면…….”
고개를 끄덕인 단자룡이 서늘하게 눈을 빛냈다.
“그들이 움직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말이 끝나자 무거운 침묵이 네 사람 사이에 깃들었다.
사천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사이, 이들이 다녀온 곳은 바로 천산이었다.
* * *
광룡 진무립의 이름에 천하가 진동했다.
혈마 무천극을 죽이고 사천 무림을 위기에서 구해낸 신성(新星).
그와 함께 진무립의 지난 행보까지 알려지기 시작했다.
천하삼흉의 일원인 혈천수라를 제거한 일.
사천맹에 들어가 서장에서 소수를 이끌고 적사곡을 무너뜨린 사건.
궤멸 직전의 천무대를 구해낸 일과 그들을 무사히 사천까지 데려온 일 등이 재조명되자 천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금까지 그 연배에 진무립 이상의 활약을 했던 무인은 오로지 신룡 단소룡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먼저 나서서 추진하지 않아도 진무립의 무명은 자연스럽게 비어있는 십대고수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황(二皇), 이제(二帝), 오왕(五王). 광룡(光龍).
이번 전쟁에서 천하에 그 이름을 단단히 각인시킨 사천의 광룡이 천하십대고수로 거듭난 순간이었다.
광룡의 무명이 천하를 휩쓸고 간 자리에는 다른 이름들이 뒤따랐다.
은거를 깨고 공위맹주로 복귀한 마도림의 태상림주 초평천.
갈라졌던 중소방파와 사대거파가 다시 뭉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진무립의 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위맹주 초평천이 한천월처럼 옹졸한 인물이었더라면 그들 모두를 끌어안을 수 없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몰락의 위기를 딛고 일어선 마도림이 사천제일세의 자리로 화려한 복귀를 알렸다면, 상천의 이름을 주목하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적진을 종횡무진 누비는 그 모습을 많은 이들이 보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혈교의 장로들을 척결한 사실까지 알려지자 더 이상 상천을 산적이라고 무시하는 자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번 전쟁은 사천 무림뿐만 아니라 진무립에게도 많은 것을 가져다준 싸움이 되었다.
* * *
중경 마도림의 총단은 사천 각지의 무인들로 북적거렸다.
며칠에 걸친 장례가 끝났음에도 부상자가 워낙 많은 탓에 쉽게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산을 턴 마도림은 방파의 구분 없이 온 힘을 다해 그들을 지원했다.
그로 인해 림주의 집무실인 안림원은 감사를 표하러 온 각파의 수장들이 줄을 설 정도였다.
그에 못지않게 많은 이들의 방문을 받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진무립의 처소인 와룡소(臥龍所)였다.
그러나 방문객의 구성은 안림원과 사뭇 달랐다.
“저게 광룡대협의 처소래.”
수십여 명의 아이가 눈을 빛내며 전각을 바라본다.
사천의 무인들은 연이은 격전으로 진무립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방문을 자제했다.
그러나 아이들에겐 진무립의 얼굴을 보고자 하는 마음밖에 없었다.
“정말 여기가 확실해?”
“분명 여기가 광룡대협의 처소라고 유림이가 그랬어.”
한 아이가 콧물을 닦으며 물었다.
“언제 나와?”
“부르면 나오지 않을까? 니가 불러봐.”
“알았어.”
문 앞으로 달려간 아이가 숨을 크게 들이마실 때였다.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네.”
짜증 섞인 목소리와 함께 벌컥 문이 열리더니 진무립이 부스스한 머리를 긁으며 나타났다.
아이들의 똘망똘망한 눈빛들이 부담스럽게 쏟아진다.
사천을 구한 영웅.
새롭게 등장한 천하십대고수.
아이들이 선망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다.
그러나 진무립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이들의 환상을 단숨에 깨뜨렸다.
“안 꺼지냐!”
놀란 아이들이 움찔하는 사이, 덩치 큰 아이 뒤에 숨어있던 아이가 대들 듯이 말했다.
“무슨 영웅이 이래요!”
진무립이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콧물이나 닦고 말해라.”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의 성토가 쏟아진다.
“영웅답게 행동하란 말이에요!”
“맞아!”
진무립도 지지 않고 버럭 소리쳤다.
“뒷간도 내 맘대로 못 가는데 영웅은 무슨 영웅이야!”
어딜 가나 아이들이 쫓아오는 통에 맘 놓고 볼일도 못 본 게 사흘이다.
“썩 안 꺼져?”
쉬익!
진무립의 발길질이 허공을 가르자 놀란 아이들이 썰물처럼 뒷걸음친다.
“우아악! 영웅이 사람 팬다!”
“영웅이 주화입마에 빠졌다!”
“…….”
진무립을 피해 도망친 아이들이 와룡소를 빠져나간 직후, 죽림의 수풀 너머로 초유림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안녕?”
이 모든 일의 원흉.
아이들에게 와룡소를 알려준 것은 바로 초유림이었다.
두 손에 먹을 게 가득한 걸 보니 여기까지 데려 와주는 조건으로 뭔가를 챙긴 게 분명하다.
“너냐?”
“응.”
진무립이 검지를 까딱거렸다.
“이리 와.”
“때릴 거야?”
“응.”
“헤헤. 오늘은 몸이 좋지 않으니 다음에 올게.”
“…….”
초유림이 도망치듯 사라진 뒤에 정문으로 단려화가 들어왔다.
“좀 부드럽게 대해주면 안 돼요? 아이들의 환상이 깨지잖아요.”
“환상은 깨지라고 있는 거야.”
휙 돌아선 진무립이 안으로 들어간다.
한숨을 푹 내쉰 그녀의 귀로 먼 곳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저 여자가 바로 광녀야.”
“쉿! 광녀라고 부른 사람은 지금껏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고 들었어.”
겁에 질린 아이들의 눈이 옅은 떨림을 동반했다.
“그, 그렇게 포악한 여자야?”
“응. 동초개 아저씨가 그랬어.”
투둑.
단려화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불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