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151)
◈ 151화. 이곳이 어딘지 아느냐?
“자네가…….”
종보는 두용청의 발밑에 쓰러진 능양을 발견했다.
“느, 능표두님을!”
상황을 파악한 두용청이 손사래를 쳤다.
“아닐세! 내가 한 게 아니야!”
능양을 따르던 종보가 그 말을 믿을 리 없다.
오는 내내 마찰을 빚었던 걸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 말을 믿을 것 같소!”
종보의 검이 벼락같이 뽑혀 나올 때였다.
수풀을 뚫고 나온 두 줄기 섬광이 맹렬한 속도로 두 사람에게 짓쳐 들었다.
카캉!
암기를 쳐낸 종보가 이를 악물었다.
‘지금은 가야 한다.’
여기서 싸우다 잡히면 도망친 의미가 없다.
“두용청! 이 일은 반드시 상부에 보고할 것이오!”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두용청이 종보의 뒤를 쫓으려 할 때였다.
적면탈을 쓴 단려화가 번개같이 튀어나오더니 그의 앞을 막아섰다.
“살고 싶다면 검을 버리세요.”
왠지 귀에 익은 목소리가 두용청의 발을 붙잡았다.
“그대는…….”
이어서 그의 뒤로 육군명이 나타났다.
“저항하지 않는 게 좋아. 저 여인은 상상 이상으로 무서운 사람이거든.”
육군명과 단려화가 두용청을 막아섰을 때, 순식간에 그곳을 빠져나온 종보는 이를 악물고 신법을 전개했다.
‘제기랄!’
상천과 마주친 것도 모자라 표두가 표사에게 죽는 하극상까지 목도했다.
꼬인 실타래가 엉키고 엉키더니 결국 이 지경까지 오고 말았다.
‘어떻게든 돌아가서 사실을 알려야 한다.’
바람처럼 쏘아진 그의 신형이 드센 수풀을 뛰어넘었을 때였다.
쐐애액!
우측에서 짓쳐 드는 강렬한 일격은 감지할 틈도 없이 그의 어깨를 가격했다.
콰앙!
“컥!”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가는 그의 눈에 목봉을 쥔 거구의 사내가 보인다.
“잘 받아.”
종보가 미끄러진 자리에는 유대하가 기다리고 있었다.
“잘 받겠소!”
한 줄기 섬광이 번뜩이며 종보의 목을 단숨에 갈라버렸다.
서걱!
둥실 떠오른 목이 짚단처럼 쓰러지는 몸뚱어리로 떨어진다.
“정리하고 가자.”
종보의 죽음은 알려져선 안 된다.
적면탈을 벗은 용추가 종보의 머리통을 집어 들 때였다.
바스락.
인기척을 감지한 둘의 시선이 수풀 너머로 향했다.
“대체 이게 무슨 냄새람.”
왠지 모르게 귀에 익은 목소리다.
곧이어 수풀을 뚫고 동초개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어?”
“어? 형님?”
동초개의 휘둥그레진 눈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가 담긴다.
“어? 어? 태, 태산표국의 표사?”
개방도가 태산표국의 무복을 못 알아볼 리 없다.
당황한 용추가 유대하를 쳐다봤다.
“일단 기억부터 지워볼게.”
“그런 사술도 익혔습니까?”
“응.”
말이 끝나는 순간 큼직한 주먹이 동초개의 낯짝에 정통으로 틀어박혔다.
빠악!
“억.”
눈앞으로 솟구친 쌍코피가 의식과 함께 흐려져 간다.
‘분명 어디서 이런 광경을…….’
기울어가는 세상 속에 동초개가 느낀 감정은 왠지 모를 그리움이었다.
털썩.
유대하가 게슴츠레 눈을 뜨고 물었다.
“그게 사술입니까?”
“박살술이라고, 사술의 한 종류지.”
“…….”
“정리하고 가자.”
* * *
상천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며 표사를 궤멸시켰다.
살아남은 표사는 두용청을 포함해 모두 여섯.
그의 입장에서 저항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도망친 종보는 자신이 능양을 죽인 것으로 안다.
이젠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된 것이다.
능양을 보내고, 두용청을 보내고, 마지막으로 종보까지 보낸 모든 계획은 진무립의 의도대로였다.
상천에는 표국의 생리에 대해 해박한 자가 필요했고 두용청은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전투를 마친 무인들이 빠르게 시신을 수습하고 주변 정리에 나섰다.
포박된 표사들이 산채로 끌려가는 가운데, 용추와 유대하가 축 늘어진 동초개를 데려왔다.
진무립이 이게 뭐냐는 듯 둘을 쳐다봤다.
유대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임무를 마치고 뒷정리를 하는데 갑자기 툭 튀어나오지 뭡니까?”
“…….”
용추가 히죽 웃으며 뻔뻔하게 말했다.
“사술을 썼으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겁니다.”
퉁퉁 부어오른 눈두덩이를 보니 무슨 사술일지 짐작이 간다.
“일단 산채에 데려가서 가둬둬라.”
“예.”
주변 정리를 깔끔하게 끝낸 무인들은 상인과 쟁자수의 눈을 가린 뒤 산채로 데려갔다.
대별채의 대전.
복귀한 수뇌들이 먼저 도착해 시립한 가운데 문밖에서 서진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주님께서 입장하십니다.”
문이 열리고 가면을 쓴 진무립이 입장하자 그들은 일제히 예를 갖췄다.
“승전을 감축드립니다!”
당당히 걸어간 진무립은 단상 위의 태사의에 앉았다.
“다들 수고 많았다. 피해는?”
대별채주 송조광이 몸을 돌렸다.
“경상자가 다섯입니다.”
마흔다섯의 표사를 죽이고 거둔 완승이었음에도 진무립은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친 이유가 무엇이냐?”
“길을 열어주는 과정에서 작은 실수가 있었습니다.”
“치료가 끝나면 남들보다 두 배로 굴려라.”
죽은 자는 그대로 끝이지만 기다리는 자들에겐 돌이킬 수 없는 슬픔으로 다가온다.
그런 비극을 막으려면 철저한 훈련으로 실전에 대비해야 한다.
“명을 받듭니다.”
진무립의 시선이 처음으로 전투에 참여한 두 명의 후기지수에게 닿았다.
“백하진. 한천유.”
앞으로 나서는 두 사람은 생김새만큼이나 대비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예.”
“한천유가 주군을 뵙습니다.”
절도 있게 포권을 취하며 짧게 답하는 백하진과 달리 한천유는 싱글싱글 웃으며 예를 갖춘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가진 딱 하나의 공통점은 진무립을 바라보는 눈빛에 무한한 경외감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의 백라자수(白拏磁手)와 연사비도(聯死飛刀)는 진무립과 노사부가 함께 창안한 무공.
자신들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나이에 절세의 무공을 창안했으니 존경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진무립이 말했다.
“백라자수와 연사비도를 제법 능숙하게 사용하더구나.”
“아직 멀었습니다.”
담담하게 말하는 백하진과 달리 한천유는 크게 기뻐하며 웃었다.
“감사합니다.”
“두 무공은 손에 익으면 익을수록 더욱 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자만하지 말고 수련에 매진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두 청년은 동시에 예를 갖췄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때 문밖에서 문지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진상단의 대행수를 데려왔습니다.”
“들어와라.”
백하진과 한천유가 자리로 돌아가자 문이 열리며 송현이 들어왔다.
그를 단상 밑으로 데려온 무인은 눈을 가린 천을 풀어주었다.
“헛!”
좌우를 둘러보고 기겁한 송현이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진무립은 가면 너머로 송현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고개 숙인 송현이 덜덜 떨며 예를 갖춘다.
“도, 도, 도, 동진상단의 행수 송현이라 하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본 천의 영역에서 죽어 나간 상인은 없으니까.”
그 말과 동시에 따스한 기운이 송현의 몸을 부드럽게 감쌌다.
한결 마음이 놓인 송현은 매우 조심스럽게 물었다.
“통행세는 얼마를 드리면 되겠습니까?”
“그건 이미 받았다. 그건 그렇고…….”
죽은 능양과 표사들의 품에서 나온 돈이 바로 이들의 통행세였다.
진무립이 물었다.
“제남까지 가는 길에 본 천의 영역이 몇 곳이나 있을 것 같나?”
“다섯. 아니, 여섯이옵니다.”
“최근 산동 남부까지 왜구가 깊숙하게 들어온다더군. 호위가 필요하지 않겠나?”
송현은 차마 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진무립의 의도를 눈치챘기 때문이다.
‘상천의 호위를 받아 제남까지 간다면 태산표국에서 가만있지 않을 것인데…….’
물론 상단을 공격하지는 않겠지만 상천과 손을 잡는다면 갖은 수법으로 압박해올 것이 분명하다.
정적이 길어지자 진무립이 다시 말했다.
“태산표국이 두려운가?”
“솔직히 그렇사옵니다.”
“그건 걱정할 것 없다. 머지않아 오대표국은 그 어떤 표행에도 나서지 못할 테니까.”
“정말 전쟁이라도 하실 작정이십니까?”
“먼저 얻어맞은 쪽이 누구라고 생각하나?”
“그야…….”
곧장 답하려던 송현은 말끝을 흐렸다.
생각해보니 오랜 세월 끊임없이 자극해온 것은 오대표국이었다.
“몇 달 정도 편히 잠들고 싶다면 오대표국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게 좋다.”
이어서 진무립의 두 눈이 차가운 안광을 토해냈다.
“그러나 평생을 두 발 뻗고 자고 싶다면 우리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게 좋다.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나직한 목소리에서 태산 같은 위엄이 묻어 나온다.
지켜보던 한천유는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웃었다.
‘멋지다. 과연 본 천의 정점에 설 만한 사람이야.’
은곡에서 듣기만 해온 진무립의 본모습을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다니 꿈만 같았다.
짧은 정적 끝에 생각을 정리한 송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남까지 상천의 호위를 받는 것까지는 제 판단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다만 그 뒷일은 소인에게 결정권이 없습니다.”
감히 이 자리에서 진무립의 제안을 거절할 만큼 송현은 어리석지 않았다.
남은 일은 돌아가서 상단주에게 맡기면 될 일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출발은 내일 아침이다.”
진무립은 송조광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일까지 저들을 손님의 예우로 모셔라.”
“명을 받듭니다.”
송조광이 송현을 데리고 나가자 진무립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다. 해산.”
* * *
달빛 내린 대별산의 산채.
쇠창살 사이로 스며드는 어스름한 빛이 표사들의 어두운 얼굴로 쏟아진다.
무거운 침묵을 견디지 못한 석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두표사님. 우릴 죽이지 않고 잡아둔 이유가 무엇일까요?”
“뭔가를 알아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두용청은 해탈한 얼굴로 벽에 기댔다.
“걱정하지 마시게. 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네들만큼은 살려볼 것이네.”
표사들이 일제히 입을 열었다.
“그런 말이 어딨습니까?”
“그간 두표사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저희 목을 먼저 내어드려도 모자랄 겁니다.”
“짐승도 염치가 있는데 저희가 어찌 두표사님을 두고 살아 돌아가겠습니까?”
두용청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나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지 않은가?”
능양의 죽음과 종보의 도주에 얽힌 이야기는 모두 들어 알고 있었다.
“저희가 아니라는 것을 항변하면…….”
“종표사는 국주의 먼 친척일세. 내 아무리 결백하다 한들 믿어주지 않을 게야.”
그때 밖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두꺼운 철문이 열렸다.
“몸은 좀 어떤가?”
스며드는 달빛 아래로 모습을 드러낸 이는 바로 진무립이었다.
목소리가 왠지 귀에 익었으나 역용을 푼 얼굴을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두용청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대가 상천의 천주입니까?”
“그렇다.”
“우리를 어찌할 생각입니까?”
모두의 떨리는 시선이 진무립의 붉은 입술에 닿는다.
“죽일 생각이면 그대들 여섯 명만 살려두진 않았겠지. 그렇지 않은가?”
두용청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생각해보니 살아남은 다섯 명은 공교롭게도 모두 자신을 따르는 표사들이다.
그제야 알 듯 말 듯 한 목소리의 정체가 떠오른다.
“서, 설마 당신은…….”
“그래. 영천문의 소문주 무산이 바로 나다.”
모두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진무립은 쇠창살 너머로 그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억울한가?”
두용청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처음부터 내키지 않더라니.”
분명 능양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음에도 가볍게 묵살당했다.
어찌 보면 그의 죽음은 자업자득인 셈이다.
진무립이 말했다.
“이곳이 어딘지 아느냐?”
“상천의 산채가 아니오?”
“절반은 맞는 말이다.”
달빛에 비친 진무립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이곳은 또 다른 은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