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150)
◈ 150화. 무면산왕의 등장
우거진 나무가 드리운 가운데 잎새에 갈라진 햇살이 산길을 비춘다.
수레 두어 대가 능히 지나갈 만한 산길은 상천이 확장하고 보수한 길이었다.
무거운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능양은 손을 들어 속도를 늦췄다.
“지금부터 입을 다물고 조용히 지나간다.”
두용청이 매우 조심스럽게 말했다.
“표두님. 조용히 지나갈지라도 상천이 우리의 존재를 모를 리 없습니다. 여기선 빠르게 돌파하는 게 낫습니다.”
석두도 거들었다.
“그렇습니다. 이번만큼은 두표사님의 말씀에 따라주시지요.”
두용청을 따르는 표사 다섯이 편을 들자 능양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어졌다.
“닥쳐라. 네놈들은 돌아가면 항명으로 보고서를 올릴 것이다.”
“…….”
실질적으로 표행을 이끄는 두 사람 사이에 냉기가 풀풀 풍긴다.
긴장한 표사들은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상천의 무리는 산 중턱에 도착할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역시 우릴 피하는 게 분명하다.’
만일 상천이 오대표국과 척을 지려 했다면 한참 전에 충돌했을 것이다.
능양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흥! 만년 표사 주제에 누굴 가르치려 들었단 말이냐?’
등 뒤로 잔뜩 긴장한 두용청과 부하들이 보인다.
‘대별산을 직접 지나가게 됐으니 촌놈들도 더욱 만족하겠지. 이걸 빌미로 돈을 조금 더……. 응?’
능양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의 충실한 심복이자 일급표사인 종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영천문의 소문주는 어디에 간 것이냐?”
“분명 쟁자수들과 함께…….”
아슬아슬한 긴장감 속에 이어지는 표행.
모두의 눈과 귀가 능양과 두용청에게 쏠려 있던 탓에 진무립 일행이 사라진 것도 모르고 있었다.
종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도망친 게 아니겠습니까? 일단 이곳을 벗어난 뒤에 생각하시지요.”
이미 상천의 영역에 들어온 지 일각이 지났다.
여기서 지체할 수는 없다.
“그래. 일단 벗어나고 보자.”
그들 뒤를 묵묵히 따르던 두용청이 석두에게 물었다.
[소문주 일행을 보지 못했느냐?]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잠시 눈을 돌린 사이 사라졌습니다. 죄송합니다.]이제 와서 타박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아니다. 지금부터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예.]조용히 표행을 이어가는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비탈 위로 오십 장 떨어진 곳에서 자신들을 지켜보는 눈이 있다는 것을.
진무립은 품에서 눈구멍만 두 개 뚫린 흑면탈을 꺼냈다.
“지형은 모두 숙지했나?”
나직한 목소리에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서 적면탈을 꺼냈다.
“위치로 이동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네 사람이 둘씩 짝을 지어 은밀히 사라졌다.
[살살해요.]멀어지는 단려화에게서 당부의 전음이 도착한다.
무면산왕으로 복귀한 진무립이 세상의 눈에 혈귀로 비칠까 걱정스러운 것이다.
진무립은 흑면탈로 짙어진 미소를 가렸다.
어느새 다가온 서진환이 그의 어깨에 시꺼먼 장포를 둘러준다.
움직일 채비를 마친 순간, 멀리서 대별채주 송조광의 전음이 도착했다.
[준비가 끝났습니다.]이곳은 상천의 영역.
망설일 것도 없다.
진무립의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
“감히 본 천의 영역을 쥐새끼처럼 지나가려는 것이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산천을 뒤흔들더니 산비탈에서 백여 명의 무인이 해일처럼 쏟아져 나왔다.
능양을 비롯한 표사들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사, 상천!”
앞뒤로 각기 쉰 명의 녹의인이 막아선 가운데, 길 위로 흑면탈을 착용한 진무립이 나타났다.
“겁이 없는 놈들이로군.”
나직한 목소리에서 전신을 짓누르는 태산 같은 기세가 느껴진다.
송조광이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천주님을 뵙습니다.”
이어서 부하들이 일제히 예를 갖추며 외쳤다.
“천주님을 뵙습니다!”
웅혼한 내력이 실린 목소리가 산세를 뒤흔드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표사들을 비롯한 상인들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무, 무면산왕?’
누구도 본 사람이 없는, 현 무림에서 가장 신비로운 인물이 눈앞에 나타났으니 믿기지 않는 것이다.
‘정말 무면산왕이란 말이냐?’
능양은 당혹감을 감추고 복잡한 머리를 정리했다.
싸우지도 않고 통행세를 냈다는 소문이 돌면 태산표국의 평판은 땅에 떨어진다.
그리되면 가까스로 얻은 표두 자리를 잃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순순히 굴복하느니 적당히 싸우다 탈출한다면 상부에서도 참작해줄 것이다.
‘무면산왕도 감히 태산표국의 표두인 나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결단을 내린 능양은 검파에 손을 올리며 진무립을 쏘아보았다.
“감히 추악한 산적의 무리들이 우릴 넘본단 말이냐?”
가면 속 진무립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추악한 산적의 무리라고 했느냐?”
그 순간, 진무립이 꺼지듯 사라지더니 능양의 코앞에 나타났다.
“그렇다면 산적의 방식으로 대해주마.”
“헛!”
정신이 번쩍 든 능양이 벼락같이 검을 출수했다.
쌔액!
사선으로 그어진 검면에 진무립의 우장이 격돌한다.
쩌엉!
손목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힘과 동시에 능양의 검신이 튕겨 나간다.
“큭!”
신음을 삼키는 그의 옆구리로 강렬한 일권이 틀어박혔다.
콰직!
“컥!”
감히 눈을 좇을 수도 없으니 피할 틈도 없다.
쉬익!
지면에서 한 자 남짓 떠오른 그의 복부로 진무립의 발등이 작렬한다.
쾅!
화살처럼 튕겨 나간 능양의 신형이 길가의 바위에 거칠게 처박혔다.
“쿨럭!”
왈칵 토해낸 검붉은 피가 지면에 닿기도 전에, 벼락같이 달려든 진무립의 왼발이 그의 어깨를 내리찍었다.
콰직!
“크아아악!”
어깨가 으스러지며 찢어질 듯한 비명이 숲을 뚫고 솟구친다.
그것을 시작으로 진무립의 무자비한 구타가 시작됐다.
“표두님!”
다급하게 몸을 날리는 종보의 앞으로 한 줄기 섬광이 짓쳐 들었다.
쌔애액!
번개같이 솟구친 검이 날아오는 섬광에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앙!
“크윽!”
손목이 부러질 듯한 충격과 함께 종보의 신형이 형편없이 튕겨 나갔다.
그들을 막아선 날카로운 눈매의 청년은 얼마 전 은곡에서 나온 백하진이었다.
“천주님의 허가 없이는 누구도 개입할 수 없다.”
대별채주 송조광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쓸만하군.’
표사들이 단 한 사내에게 가로막힌 가운데, 진무립의 주먹과 발이 장대비처럼 능양을 두들겼다.
퍽! 퍽! 퍽!
한참을 때리던 진무립이 손목을 매만지며 물었다.
“다시 묻지. 아직도 우리가 추악한 산적으로 보이나?”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힌 능양은 생각이라는 것을 할 겨를이 없었다.
“크으으으…….”
“그런 모양이군.”
진무립은 길가의 나뭇가지를 꺾어 쥐었다.
퍽! 퍽!
보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치게 만드는 매질이 다시 시작됐다.
“아악!”
솟구치는 비명 속에 지켜보던 두용청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표두는 대체 왜 저들을 자극했단 말인가!’
표사들은 쉰에 불과한 반면 상대의 숫자는 어림잡아 백이 넘는다.
저들이 작정하고 길을 막았다는 것은 일전을 각오했다는 말이다.
통행세로 협상을 해도 모자랄 판국에 상대를 자극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두용청은 정신을 차리고 나섰다.
“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내지르던 주먹을 멈춘 진무립이 고개를 돌렸다.
“무엇이냐?”
시퍼런 눈빛과 정면으로 마주한 두용청은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크윽! 이, 이 정도라니.’
두용청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처, 천주께서는 잠시 살기를 거둬주십시오.”
그 말에 진무립의 살기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두용청은 즉시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통행세는 얼마든지 내겠습니다. 부디 표행의 통과를 허락해주십시오.”
항명죄고 월권이고 여기서 죽으면 다 소용없는 일이다.
자신은 몰라도 앞날이 창창한 젊은 표사들만큼은 살려야 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나?”
“목이 필요하시면 소인의 목을 내놓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섯 명의 표사가 나섰다.
“차라리 제 목을 내놓겠습니다.”
진무립은 그들을 차분히 눈에 담았다.
“난 보내줄 생각이 없다.”
“여기서 전투가 벌어진다면 오대표국과 상천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가면 속 진무립의 미소가 짙어졌다.
“돌이킬 수 없는 관계. 그게 내가 바라는 바다.”
“예?”
“그동안 참으로 오래 참아왔다.”
진무립의 발이 쓰러진 능양을 거칠게 후려 찼다.
콰앙!
화살같이 날아간 능양의 신형이 길옆의 나무에 처박혔다.
이어서 진무립의 두 팔이 좌우로 크게 펼쳐진다.
“현 시간부로 본 천의 영역을 통과하는 오대표국 잡졸들은 단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상천이 공식적으로 전쟁을 선포하는 순간이었다.
“명을 받듭니다!”
우렁찬 외침과 함께 대기하던 무인들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결국 이렇게 된단 말인가.’
두용청은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며 외쳤다.
“상인과 쟁자수는 수레 밑으로! 표사들은 원진을 형성하라!”
정신이 번쩍 든 그들이 일사불란 움직이며 원진을 형성했다.
선두에 서 있던 백하진의 손이 하얗게 물드는 순간,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간 네 줄기 섬광이 원진의 일각에 격돌했다.
콰아앙!
“크악!”
순식간에 표사 넷이 화살처럼 튕겨 나갔다.
부드러운 눈매에 온화한 인상의 청년이 백하진의 곁을 지나친다.
“첫 임무네. 서로 다치지 말자고.”
능글맞게 웃는 청년은 은곡에서 백하진과 함께 수위를 다투던 한천유였다.
한천유의 일장에 원진의 일각이 무너지자 두용청은 목청을 키웠다.
“틈을 채워라!”
전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송조광이 진무립에게 다가갔다.
“계획은 확실하게 주지시켰습니다.”
“저 둘의 이름은?”
“녹의를 입은 녀석은 백하진, 청의를 입은 녀석은 한천유라고 합니다. 서로의 실력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랍니다.”
“그런 것 같군.”
계획에 따라 실력을 감추곤 있으나 풍기는 기도가 심상치 않다.
지켜보던 진무립의 손이 몸을 추스르는 종보를 가리켰다.
“저 녀석이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지켜본 결과, 능양을 가장 따르는 이는 바로 종보였다.
송조광이 고개를 숙였다.
“전달하겠습니다.”
날카로운 쇳소리가 솟구치며 전투가 점점 치열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크으으으.’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능양이 전황을 살폈다.
천하오대표국의 이름에 걸맞게 표사들은 분투하며 버티고 있었으나 적의 숫자가 너무도 많다.
게다가 아직 무면산왕도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
‘빠져나가야 한다!’
무면산왕이 나타난 것은 차라리 잘된 일이다.
수괴와 싸우다 당했다면 돌아가서 할 말은 있다.
살아남기만 한다면 이곳을 지나게 된 이유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능양은 빠르게 전신을 확인했다.
‘단전과 다리는 멀쩡하다. 움직일 수 있다.’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나 부러진 곳도 없고 맞은 것에 비하면 생각 이상으로 상태가 좋다.
그는 조용히 비탈 아래로 몸을 굴렸다.
그 모습을 확인한 두용청은 지독한 배신감에 사로잡혔다.
“능표두!”
날카로운 쇳소리와 비명이 사방에서 솟구치는 가운데 그의 귀로 다급한 전음이 도착했다.
[표사님! 능표두만 보내면 모든 책임이 우리에게 돌아올 겁니다! 탈출해서 진상을 알려주십시오!]능양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다.
두용청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원진의 일각이 뚫리며 표사들이 빠르게 무너져 간다.
‘무면산왕의 성정을 보아 협상은 통하지 않는다.’
죽을 땐 죽더라도 배신자의 오명을 뒤집어쓸 수는 없었다.
전력으로 일검을 쏟아낸 두용청은 살짝 벌어진 포위망을 뚫고 몸을 날렸다.
그 모습을 느긋하게 지켜보던 진무립은 종보를 찾았다.
‘일단은 보내주마.’
씩 웃은 진무립의 입술이 재차 작게 열린다.
[우측으로!]가까스로 전장을 탈출한 능양은 정신없이 산비탈을 내려갔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귀 따가운 쇳소리와 비명이 아득히 멀어져 간다.
마침내 산 아래에 도착한 능양이 숨을 고를 때였다.
“거봐요. 내가 이쪽이라고 했잖아요.”
“허, 정말이네.”
여인의 목소리에 이어 사내의 목소리까지 들려오자 능양의 고개가 휙 돌아간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단려화와 육군명이 있었다.
“네, 네놈들은…….”
능양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분명 조금 전까지 자신들과 표행을 함께 한 영천문도가 어째서 이곳에 있단 말인가?
씩 웃은 육군명이 도파를 움켜쥐었다.
“그깟 푼돈에 욕심내니까 흉악한 산적의 무리에게 당하는 거야.”
지면을 박찬 육군명의 도가 순식간에 뽑혀 나왔다.
쌔액!
“감히 우릴 속였단 말이냐!”
대노한 능양의 검이 벼락같이 뽑혀 나왔다.
검신이 시꺼먼 도광에 부딪치는 순간.
카아앙!
태산 같은 위력을 품은 일도가 그의 검신을 두 동강 내고는 단숨에 목젖을 그어버렸다.
“허어억!”
이어진 두 번째 공격은 바람 빠진 신음을 흘리는 능양의 목을 깔끔하게 잘라버렸다.
서걱!
육군명은 솟구치는 피를 피해 뒤로 몸을 날렸다.
단려화가 품에서 적면탈을 꺼내며 말했다.
“곧 그가 올 거예요. 서둘러요.”
“그래.”
적면탈을 쓴 두 사람이 빠져나간 직후.
현장에 도착한 두용청은 능양의 주검을 발견하고 딱딱하게 굳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그때 뒤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종보가 나타났다.
“두표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