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149)
◈ 149화. 표행에 섞이다
능양을 힐끔 쳐다본 진무립은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우리의 하잘것없는 신법으로는 대협들의 속도에 맞추지 못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꺼질듯한 한숨이 세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내심을 감춘 능양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돈깨나 있는 집 자식이 분명하다. 중원행에 내보낼 정도라면 집에서 적잖은 돈은 챙겨줬겠지.’
선배 표두들이 그랬던 것처럼 가는 길만 같다면 챙길 수 있는 부수입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몸값을 올려야 한다.
“뭐 딱히 방도가 없는 것은 아니고…….”
은근히 말하는 그 목소리에 일순 진무립의 눈이 반짝였다.
“방도가 있겠습니까?”
그 간절한 눈빛을 보아하니 얼마를 불러도 응할 눈치다.
내심 쾌재를 부른 능양은 짧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태연하게 말했다.
“우리는 표국일세. 정식으로 의뢰를 한다면 산동까지 함께 가지 못할 것도 없지.”
“보표가 되어주신다는 말씀이로군요.”
“그렇다고 보면 될 것이네.”
“돈은 충분히 있습니다. 두당 은자 스무 개면 되겠습니까?”
능양은 하마터면 입이 쩍 벌어질 뻔했다.
표행에 섞여가는 의뢰라면 은자 다섯 개도 차고 넘치는 액수였기 때문이다.
“그…….”
곧장 대답하려던 능양은 머리를 굴렸다.
‘잠깐.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촌놈들 같은데…… 조금 더 불러볼까?’
만일 이름난 문파의 제자였다면 표국의 평판을 위해서라도 해선 안 될 일이다.
그러나 듣도 보도 못한 강남의 이름 없는 방파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행여 이들이 나중에 속았다는 걸 알게 되더라도 태산표국의 이름으로 능히 짓누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질러보고 안 되면 선심 쓰는 척 스무 개씩만 받아도 될 것이다.
‘삼십 개씩 받으면 백오십 개다. 이 정도면 작은 집 한 채 구해서 명월루의 초월이를…….’
능양은 들뜬 마음을 감추고 점잖게 말했다.
“우리 태산표국은 이제껏 단 한 번의 표행도 실패한 적이 없었네. 하여 두당 은자 서른 개씩은 받아야겠어.”
전낭을 확인하는 진무립은 고뇌에 잠긴 얼굴이었다.
‘이거 너무 불렀나?’
능양이 아차 싶은 얼굴로 다시 말하려 할 때, 진무립이 전낭을 닫았다.
“혹시 가는 길에 대별산도 볼 수 있겠습니까?”
“꼭 대별산을 보아야겠는가?”
대표두가 이끄는 표행은 아무렇지 않게 상천의 영역을 통과한다.
그것은 대표두들의 무공이 강호일절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고, 그들이 나설 만한 표행에는 많은 고수가 따라붙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과 같은 일반 표두의 표행에는 그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진무립이 말했다.
“부친이신 문주께서는 천하 명산의 정기를 두루 받아오라고 명하셨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대별산을 빼놓고 가기엔 아쉬울 것 같습니다.”
능양은 미간을 좁혔다.
돈이 아무리 좋다지만 상천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너무 큰 위험이다.
그가 아쉬운 얼굴로 거절하려 할 때였다.
“대별산은…….”
“먼발치에서라도 볼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먼발치에서라도?”
“예.”
대별산이 보인다고 전부 상천의 영역은 아니니 조금 돌아가며 보여주면 된다.
고민이 사라진 능양은 미소를 감추고 말했다.
“그 정도는 어렵지 않지.”
“정말입니까?”
“물론일세. 함께 가시겠는가?”
진무립은 활짝 웃으며 품에서 전표를 꺼냈다.
“태산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전표를 확인한 능양이 호방하게 웃었다.
“껄껄껄! 자네 이름이 무산이라고 했는가? 지금부터 소형제는 우리의 고객일세. 산동까지 편히 데려다줄 것이니 아무 걱정 말게나.”
진무립도 마주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그 흉악한 놈들에게 당하기 전에 표두님을 만난 것이 참으로 다행입니다. 표두님만 믿겠습니다.”
“그래, 그래. 가세나.”
표두가 된 뒤, 단독으로 표행을 책임지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표사로 선배 표두들을 따르며 지켜보기만 했던 호구가 자신에게 찾아왔으니 너무나도 반가웠다.
돌아서는 능양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진다.
‘호구들.’
그러나 그의 뒤를 따르는 다섯 사람은 호구가 아닌 악귀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언덕 꼭대기에 오른 표행이 잠시 휴식을 취할 겸 멈추었다.
그들과 합류한 능양은 사람들에게 진무립 일행을 소개했다.
“인사하게. 산동까지 동행할 이들일세.”
진무립은 표사들에게 포권을 취하며 간략히 자신을 소개했다.
“남악 영천문의 소문주 무산이라고 합니다. 천하에 이름 높은 태산표국 표사님들과 함께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수려한 외모의 청년이 미소까지 지으며 인사하자 표사들은 얼떨떨한 얼굴로 포권을 취했다.
능양은 진무립을 표행의 의뢰인인 동진상단(東振商團) 대행수 송현에게 데려갔다.
“천하를 둘러보겠다고 나선 강남의 후기지수들입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눠보니 겁도 없이 대별산을 구경하겠다지 뭡니까? 사해가 동도라는데 그냥 지나칠 수도 없고, 가는 길이 같아 태산까지 동행할 생각입니다.”
허락을 구하는 것도 아닌 통보다.
넉넉한 풍채의 중년인, 송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그럼 예서 잠시 쉬어가겠습니다. 자네들은 앞으로 수레와 함께 움직이게.”
“감사합니다.”
진무립 일행이 길옆의 그늘로 들어가자 능양은 선두로 돌아왔다.
표사복을 입은 추레한 장년인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표두님.”
그는 표행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일급표사 두용청이었다.
능양이 탐탁지 않은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자신보다 먼저 표국에 들어와 아직도 표두에 오르지 못한 그가 껄끄러운 것이다.
“뭐요?”
“영천문이라는 곳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정말 동행해도 괜찮겠습니까?”
“달포에도 수많은 방파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곳이 바로 이 무림이오. 어찌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이 전부라 할 수 있겠소?”
“그야 그렇지만…….”
“더는 말하지 마시오.”
능양은 그대로 등을 돌려버렸다.
‘대표두께선 왜 하필 이런 자를 내 밑에 붙여주신 건가?’
조금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사사건건 참견하는 그가 마음에 들 리 없다.
반면 두용청은 두용청대로 걱정을 뿌리칠 수 없었다.
‘능표두는 사람이 너무 가볍다. 제아무리 무공이 강할지라도 표두 자리에 앉히는 것은 시기상조였어.’
저들의 합류를 허락한 것은 보지 않아도 뻔했다.
경험 많은 표두들이 표행에서 이와 같은 부수입을 올리는 것은 많이 봐왔을 테니까.
두용청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제 갓 표두가 됐으면서 그들과 똑같이 행동하려 하다니.’
언제나 대표두만 따라다니던 자신이 이번 표행에 합류한 것은 일급표사 중 가장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두라는 자가 자신의 말을 귓전으로도 듣지 않으니 내심 상부의 결정이 원망스러웠다.
[석두야.]그늘 밑에 앉아있던 머리 큰 사내가 이쪽을 돌아본다.
[예. 두표사님.] [출발하거든 후미에서 새롭게 합류한 자들을 지켜보아라.]능양과의 감정이야 어쨌든 자신에겐 이번 표행을 완벽히 마무리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자신과 오래 함께해온 석두라면 믿을 만하다.
[알겠습니다.]두 사람을 힐끔 쳐다본 육군명이 진무립에게 전음을 보냈다.
[전부 다 얼빠진 놈들만 있는 건 아닌 모양이야.]그들이 대화를 나눈 뒤로 자신들을 지켜보는 눈이 붙었기 때문이다.
진무립이 답했다.
[그렇겠지. 쉬운 임무라고 방심해선 안 된다.]육군명은 슬며시 웃었다.
[방심? 난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방심이란 걸 해본 적이 없어.]방심하는 순간 무림 공적으로 몰릴지 모르는 무공을 익혔기 때문이다.
작게 끄덕이는 진무립의 곁으로 대행수 송현이 다가왔다.
“아직은 날이 많이 덥지요.”
“저녁이 되면 추워질 겁니다.”
고개를 끄덕인 송현이 능양을 한 번 살피곤 나직이 물었다.
“태산까지 가신다고?”
“예.”
“얼마를 내시었소?”
“두당 은자 삼십 개입니다.”
“음.”
송현의 입가에 쓴웃음이 스치고 사라졌다.
‘사해가 동도라더니 제대로 등을 처먹는구나.’
그 뻔뻔함에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진무립이 물었다.
“어디까지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의창에서 남만의 물건을 받아오는 길이라오.”
의창은 호광성의 무창과 사천성의 중경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남만에 직접 다녀오는 것보다 의창에서 구해가는 게 이문이 더 남습니까?”
“그럴 리가 있겠소? 당연히 직접 다녀오는 게 낫지.”
“그렇다면…….”
때마침 능양이 이쪽을 바라보자 송현은 멋쩍게 웃으며 딴청을 피웠다.
“저마다 사정이 있는 일 아니겠소이까.”
진무립은 그의 사정을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표행비 때문이로군. 독자적으로 가자니 태산표국과 같은 터전을 가진 입장에서 눈치를 안 볼 수 없겠지.’
표행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내야 할 비용도 올라간다.
상행이 짧은 것은 저들을 데리고 남만에 다녀오는 것과 의창에서 물건을 사는 것에 이익의 차이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진무립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상단과의 관계가 이렇다면 파고들 여지는 충분하다.’
짧은 휴식을 마친 그들은 다시 표행을 재개했다.
표사들과 상인들은 말을 타고 달렸고 진무립 일행은 쟁자수와 함께 빈 수레에 올라탔다.
유대하는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감상하며 내심 감탄했다.
[꽤 빠른데요. 원래 표국의 표행이 이런 겁니까?]진무립이 답했다.
[빠르다고 상인들이 좋아할 거 같으냐?]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이건 상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표국을 위한 것이다. 빨리 표행을 끝내고 다음 표행에 나서기 위함이지. 말이 많으면 건초값도 많이 들 테고 그 부담은 온전히 상인들에게 돌아가게 될 거다.]그러고 보니 수레 열 대에 각기 네 필의 말이 붙어 있었으나 쟁자수는 열 명뿐이다.
말 한 필 빌리는 값이 쟁자수의 일당보다 높으니 표행비가 비싼 것이다.
유대하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오대표국을 제외하곤 전부 몰락의 길을 걷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건가.’
하루 동안 나아간 표행이 대별산에서 반나절 거리까지 도착했을 때였다.
나직한 산기슭으로 수레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길을 커다란 바위가 가로막고 있었다.
상단의 대행수 송현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필 이런 일이.”
능양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걱정 마시오. 다른 길로 돌아가면 되니까.”
표사와 쟁자수들이 달라붙어 힘겹게 수레를 돌렸다.
그러나 반 시진을 고생해 힘겹게 돌아간 길도 무너진 토사에 막혀 있었다.
‘재수도 더럽게 없군.’
눈살을 찌푸린 능양이 두용청을 슬쩍 살폈다.
‘여기서 왔던 길로 돌아간다면 저 노인네가 한 소리 할 게 분명하다.’
이건 기껏 챙긴 부수입 때문이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였다.
능양은 결단을 내렸다.
“날이 지기 전에 대별산을 돌파하겠소.”
단순한 오기로 위험을 감수하려는 것이 아니다.
상천이 오대표국과의 마찰을 피한다는 확신이 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두용청이 다급하게 말했다.
“표두님. 안 됩니다. 국주님께서는 대표두가 아닌 이상 상천의 영역을 피해가라고 하셨습니다.”
능양이 짜증 섞인 표정으로 고개 돌렸다.
“두표사.”
“예.”
“돌아가면 사흘은 늦어질 것이나 대별산을 가로지르면 이틀을 앞당길 수 있소. 상천이 우리와의 충돌을 피한다는 건 그대도 알지 않소?”
“하오나…….”
여기서 물러나면 표두로서의 면이 서질 않는다.
눈을 부릅뜬 능양이 단호하게 말했다.
“표행의 책임자는 나요!”
능양을 따르는 표사들이 두용청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두표사님. 이건 항명입니다.”
“표두님의 결정에 따르십시오.”
“…….”
그에 두용청과 오래 함께해온 일부 표사들이 걱정스럽게 전음을 보내왔다.
[참으십시오.] [일이 벌어져도 책임은 표두님에게 있습니다. 조용히 지켜보시지요.]두용청은 마지못해 입을 다물고 물러났다.
‘아무 일도 없길 바라는 수밖에.’
그가 물러나자 능양은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수레를 돌려라. 대별산을 돌파할 것이다.”
쟁자수와 표사들이 일사불란 움직이는 가운데, 두 사람의 언쟁을 지켜본 진무립이 눈을 빛냈다.
‘두용청이라.’
표행의 책임자는 분명 능양이다.
그러나 중요한 시기마다 적절히 지시를 내리는 인물은 두용청이었다.
그로부터 한 시진 뒤.
길을 돌린 표행은 마침내 대별산의 기슭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