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152)
◈ 152화. 빈천지교불가망(貧賤之交不可忘)
이어지는 설명에 표사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천하대전이 끝난 뒤 은곡의 색출에 들어갔던 무인들과 쫓기던 자들의 사정.
진무립은 그 모든 것을 낱낱이 이들에게 가르쳐주었다.
무려 반 시진에 걸친 설명이 끝났을 때, 두용청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알려주는 까닭이 무엇이오?”
“나는 그대들을 밑에 두고 부리고자 한다. 그러자면 나부터 진심을 보여야겠지.”
표행을 함께하며 지켜본 결과, 능양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두용청이 표사 자리에 머무른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진무립은 두용청에게 기회만 준다면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확신했다.
표사들의 눈이 부릅떠진다.
“우리를…… 부리겠다는 말이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상천에서 자신들의 무공을 필요로 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표국을 운영할 생각이다. 그대들의 경험이 필요하다.”
“상천에서 표국이라니.”
단순히 오대표국과 한판 붙으려는 줄 알았더니 그보다 더한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또 하나의 걱정이 이들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진실을 듣게 된 이상 거절하면…….’
사실이 천하에 알려진다면 분명 상천은 무림의 공적이 될지도 모른다.
여기서 거절했다간 결코 살아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진무립은 그들의 생각을 눈치챈 것처럼 말했다.
“거절해도 죽이지 않을 것이니 걱정할 것 없다. 단지 이곳에 조금 더 머물러야 할 뿐이지.”
“믿기 어려운 말이오. 우리가 나가서 이 일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소?”
“그대들이 나갈 때쯤이면 세상이 우리의 정체를 알게 되지 않겠나?”
상천의 이상을 위해서라면 언젠가는 밝혀야 할 일이다.
“나를 따르겠다면 그대들을 태산표국에서보다 중한 자리에 쓸 것이다. 시간을 줄 테니 논의가 끝나면 문지기를 불러라.”
진무립이 나가자 표사들의 머리가 복잡한 가능성으로 가득 찼다.
두용청이 물었다.
“자네들 생각은 어떤가?”
먼저 석두가 답했다.
“상천의 정체가 은곡인 이상, 망한다면 죽음을 면키 어려울 겁니다.”
“그렇겠지. 어쩌면 천하가 적으로 돌아설 수도 있으니 말일세.”
“대신 견뎌낸다면 저희에겐 엄청난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요. 중한 곳에 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미간에 검상이 새겨진 사내, 우상이 입을 열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을 보면 중한 곳에 쓴다는 말이 거짓은 아닐 겁니다.”
그들 중 가장 어린 장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보다 말입니다. 돌아가도 우리 자리가 있겠습니까?”
임무는 실패, 도주한 종보는 두용청이 능양을 죽인 줄 안다.
돌아간들 임무 내내 두용청과 함께 해온 자신들도 무사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왜소한 체구의 표사 예원형이 탄식하며 말했다.
“허. 외통수인가.”
석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는 외통수가 아닐지라도 남고 싶습니다.”
정인이 짧은 수염을 매만지며 물었다.
“잘못되면 다 죽을 텐데.”
“쉬쉬하고 있으나 오대표국에 불만을 가진 상단이 많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만일 상천이 닥쳐올 풍파를 버텨낼 수만 있다면……. 우리 앞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겠나?”
그 말에 모두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버텨만 낸다면 표국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아니, 상천의 영역을 통과할 때마다 통행세를 낼 필요도 없으니 성장 가능성은 그들보다 월등하다.
예원형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빈천지교불가망(貧賤之交不可忘), 조강지처불하당(糟糠之妻不下堂)이라 했습니다.”
광무제와 송홍의 고사로 가난할 때 사귄 벗은 잊어서 안 되고, 어려울 때 함께 한 아내는 버려선 안 된다는 말이다.
“풍파를 함께 이겨내고 빛을 볼 수 있다면 천주는 결코 우리를 외면하지 않을 겁니다. 이건 우리에게 기회입니다. 평생을 표사로 사느니 목숨을 걸고서라도 도전할 만합니다.”
우상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두용청을 쳐다봤다.
“저도 남겠습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어차피 한 번은 죽는 인생, 천하에 이름 한 번 남겨보는 삶도 좋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두 사람과 같은 눈빛으로 두용청을 쳐다본다.
그들의 말이 틀리지 않다.
돌아갈 길도 막혔을뿐더러 이곳은 자신들에게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무거운 침묵 속.
두용청은 마침내 쇠창살을 붙잡고 말했다.
“천주님께 드릴 말씀이 있소.”
어둠 속에서 걸어온 인물은 문지기가 아닌 진무립이었다.
“결정은 내렸나?”
두용청과 표사들이 일제히 포권을 취했다.
“천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저희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태산표국에서는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반면 무면산왕은 얼굴을 드러내고 모든 진실을 알려주면서까지 자신들을 필요로 한다.
이들은 다소의 위험을 각오하더라도 자신의 능력을 펼치며 도전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열쇠를 가져와라.”
옥사를 지키던 문지기가 빠르게 달려와 옥문을 열었다.
진무립은 그들의 어깨를 한 명씩 감싸 쥐며 말했다.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거다. 내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 것이다.”
두용청이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 가지 청이 있사옵니다.”
“말해보아라.”
“능표두를 따르던 종보가 도망친 이상 가족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가족들을 이곳으로 데려왔으면 합니다.”
씩 웃은 진무립이 몸을 돌렸다.
“종보는 오래전에 죽었다. 그대들의 가족은 닷새 안에 양산채에서 확보할 것이다.”
성큼성큼 걸어간 진무립이 옥사를 빠져나갔다.
멍하니 선 표사들이 서로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허허.”
헛웃음과 함께 왠지 모를 오한이 옷깃을 스며드는 것 같았다.
“완전히 당했습니다.”
종보의 탈출은 이들이 상천에 남기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의 결정을 내린 이상 진실을 듣게 됐음에도 불쾌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 느끼는 이 감정도 저분의 계획에 들어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순간 전신의 솜털이 곤두서며 소름이 쫙 돋았다.
“대체…… 저분은 어디까지 내다보고 계획을 세웠단 말인가.”
침을 꿀꺽 삼킨 석두가 입을 열었다.
“상천이 단기간에 천하 산적을 일통한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모시기로 결심한 인물에게 출중한 능력이 있다면 도리어 반가운 일이다.
그때 밖에서 문지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오십시오. 처소로 안내하겠습니다.”
“알겠소.”
그들이 나간 직후.
건너편 옥사의 어둠이 일렁거리며 파르르 몸을 떠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 사, 사, 상천이…… 은곡이라고?’
튀어나올 듯 부릅뜬 눈에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은 이는 바로 동초개였다.
‘근데 내가 왜 여기서 이 얘길 듣고 있지?’
분명 대별산의 수려한 산세를 감상한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뒤의 기억이 없었다.
눈을 떠보니 찬 바닥에 누워 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아……. 그냥 방주님한테 혼날걸.’
그깟 밥그릇 좀 깼다고 죽이지는 않았을 텐데.
후회가 물밀 듯 밀려든다.
멀어지던 표사들의 발소리가 사라진 다음, 어둠 속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초개.”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동초개는 극한의 인내심으로 자는 척을 했다.
“일어나라. 전부 들었다는 걸 알고 있다.”
“아니. 당신은 틀렸습니다. 난 아무것도 못 들었습니다.”
“역시 안 자는군.”
“……시벌. 들켰네.”
천천히 일어난 동초개가 땅에 머리를 박았다.
“살려주세요.”
황당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던 서진환이 옥사 문을 열었다.
“나와라. 천주님께서 너를 데려오라고 하셨다.”
“재고해달라고 전해주십시오. 천주님의 손을 더럽힐 만큼 제 목이 깨끗하지는 않습니다.”
“…….”
서진환은 동초개를 옆구리에 끼고 옥사를 빠져나왔다.
절망한 동초개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죽었구나.’
서진환은 동초개를 작은 방에 데려다 놓고 사라졌다.
일렁이는 촛불이 벽에 비친 그림자를 뒤흔든다.
잠시 후, 문이 슬며시 열리며 진무립이 들어왔다.
“어, 어, 어? 소, 소공자?”
그를 알아본 동초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무립이 빙그레 웃으며 문을 닫았다.
“오랜만이구나.”
동초개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한 줄기 빛을 만난 기분이었다.
냅다 달려간 동초개가 진무립의 바짓단을 잡았다.
“설마 이곳까지 저, 저를 구하러 와주신 겁니까?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소공자라면 그럴 줄 알았습니다. 조금 전에 다 들었는데 상천이 바로 은곡이래요.”
“그래?”
“제가 이 귀로 똑똑히 들었다니까요. 천하대전에 반대했던 무리들이 무면산왕을 만나…….”
“알고 있다.”
“예?”
휘둥그레진 동초개의 눈에 진무립의 짙은 미소가 담긴다.
“상천의 천주 무면산왕이 바로 나거든.”
“농담이죠?”
“진짜다.”
딸꾹.
순식간에 실내의 분위기가 싸늘히 식어 내리며 가슴이 뭐가 얹힌 것처럼 무거워졌다.
큰 눈을 껌뻑이던 동초개는 슬며시 고개 돌렸다.
“사실 저는 아무것도 못 들었습니다.”
뻔뻔한 모습은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진무립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진무립의 처소에 사천의 전우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단려화와 용추, 육군명과 유대하까지 둘러앉은 광경에 동초개는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내가 잠에서 덜 깼나?”
자신의 볼을 꼬집어 본 동초개는 움찔하며 말했다.
“현실이구나.”
진무립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적모개와 함께 개봉으로 올라갔다는 소식은 들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곳으로 온 것이냐?”
그 미소에 한결 마음이 놓인 동초개는 예전의 미소를 되찾았다.
“사결제자가 된 것까지는 좋았지요. 그런데 개봉에 가보니까 오결제자가 장로들의 수발을 들며 똥을 치우기 뭐예요? 맨날 똥만 치우다가 실수로 방주님의 밥그릇을 깨 먹는 바람에 사천으로 도망치던 참이었습니다.”
단려화는 참으로 동초개답다는 생각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곳을 지나 강남으로 가려던 참이었군요.”
“맞아요. 그런데 분명 대별산을 눈에 담은 것까지는 기억하는데 그 뒤의 기억이 없어요. 고된 노동에 몸이 허해서 그런가. 허허.”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용추에게 모인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아우 몸이 허한 것 같아서 부엌에 일러두었습니다.”
씩 웃은 용추가 문을 열자 밖에서 기다리던 일꾼이 상을 들고 들어왔다.
군침 도는 냄새와 함께 늦은 저녁상이 탁자 위에 차려진다.
“역시 우리 형님밖에 없습니다. 하하.”
수저를 들던 동초개가 멈칫하더니 게슴츠레 눈을 뜨고 물었다.
“설마 이게 제 최후의 만찬은 아니겠지요?”
육군명이 혀를 찼다.
“죽일 놈한테 아깝게 밥까지 주겠냐?”
“하하하. 그것도 그렇구나.”
안도한 동초개는 허겁지겁 배를 채웠다.
순식간에 그릇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은 동초개가 이를 쑤시며 말했다.
“그나저나 소공자가 상천의 천주라니 정말 놀랐습니다.”
“알릴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옥사에서 모든 이야기를 들었으니 그 사정은 길게 듣지 않아도 안다.
‘많은 사람의 목숨을 어깨에 짊어지고 계시니…….’
동초개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지금부터는 어떡하실 거예요? 정말 오대표국과 싸울 생각이에요?”
“그럴 생각이다. 네 생각은 어떠냐?”
안 좋은 의미로 남다른 구석이 있다곤 하나 동초개 역시 개방의 사결제자.
그간 똥만 펐다지만 장로들에게 들은 건 많다.
“분명 오대표국의 힘은 중원무림맹을 능가했다는 소문이 자자하지요. 크게 틀린 말도 아닌 것 같고…….”
잠시 고민하던 동초개가 진무립을 보며 히죽 웃었다.
“그래도 한쪽에 걸라고 하면 저는 소공자의 승리에 불알 두 쪽을 걸겠습니다.”
동초개가 아는 사람 중에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똑똑한 사람은 바로 진무립이었다.
유대하가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굳이 그걸 걸고?”
“어차피 쓸모도 없는데요.”
“…….”
동초개는 불현듯 적모개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까 금성표국주가 중원맹의 맹주에게 밀담을 신청했다고 했었어요.”
그 말에 좌중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단려화가 물었다.
“내용까지는 모르고요?”
“분타주가 비밀이라고만 말하고 그 이상은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아마 지금쯤 만나고 있지 않을까요?”
적모개조차 모르는 일이니 동초개가 알 턱이 없다.
진무립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패였다.
‘이건 생각보다 빠른데.’
상천과의 관계만큼은 아니지만 중원무림맹과 표국의 사이도 좋은 것은 아니다.
서로의 이권이 겹치기 때문이다.
‘정보가 필요하다.’
수문화가 노력하고 있었으나 이제 막 내부 정비를 마친 상천의 정보력은 완벽하지 않았다.
그에게 표국의 정보를 요구하고 달포씩이나 준 것도 그런 이유였다.
가만히 생각하던 진무립은 동초개의 어깨에 팔을 척 걸쳤다.
“나는 언제나 너를 내 왼팔이라고 생각해왔다. 알고 있지?”
동초개가 서운한 듯 물었다.
“그럼 왜 날 안 불렀어요?”
“그야 이곳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다 죽을 판인데 어찌 부르겠느냐?”
동초개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그것도 그렇구나. 소공자께서 저를 그토록 아끼시는 줄 이제 알았습니다. 허허.”
“그래서 말인데…… 해줘야 할 일이 있다.”
“뭔데요?”
슬며시 웃은 진무립이 은근한 말투로 말했다.
“너, 개봉에 다시 다녀와야겠다.”
* * *
적막과 함께 드리운 어둠 속.
캄캄한 개봉의 밤 골목에 사박거리는 발소리가 작게 울려 퍼진다.
“이쪽입니다.”
갈림길이 나오자 적모개가 공손하게 말하며 우측 골목으로 들어갔다.
복잡한 골목에서 몇 차례나 방향을 틀던 두 사내 앞에 아담한 장원이 나타났다.
“개봉에 이런 곳이 있었는가.”
다부진 체구에 짙은 눈동자, 선명한 이목구비를 가진 중년인의 얼굴이 은은한 달빛에 물든다.
그는 바로 중원무림맹의 수장이자 천하십대고수의 일원인 검제(劍帝) 위사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