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1)
◈ 21화. 파중현
전유를 위아래로 훑어본 점소이는 한 걸음 물러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송구합니다. 스님이신 줄······.”
울컥했던 전유는 마음을 다잡고 점잖게 물었다.
“말 좀 물으리다.”
“예. 말씀하십시오.”
“원래 마을에 이토록 사람이 없소?”
“그건 아닙니다만 최근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있어 다들 해가 지기 전에 들어가곤 합니다.”
“좋지 않은 사건이라니 그게 무엇이오?”
“며칠 전부터 자고 일어나면 마을 어딘가에서 꼭 시신이 발견됩니다.”
“시신이? 마을 사람이 죽는단 말이오?”
“마을 사람 중에는 죽은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 얼마 전 실종된 정가장 무인들의 시신입니다. 다들 무서우니 저녁만 되면 방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는 거지요.”
“음.”
습관적으로 민머리를 슥슥 문지르던 전유는 공손히 예를 갖췄다.
“고맙소. 이만 가보리다.”
“살펴 가십시오. 곧 밤이 찾아올 테니 묵을 곳이 없으면 객잔으로 오십시오.”
“그리하리다.”
전유는 즉시 진무립에게 돌아가 점소이에게 들었던 것을 모두 설명했다.
“정가장 무인의 시신이 발견된다고?”
“예. 다들 무서워서 밤에는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수고했다. 일단 정가장으로 가지.”
광룡대가 마을 외곽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진무립의 뒤를 따르던 후영이 주초에게 말했다.
“이거 정말 배후에 무면산왕이 있는 건 아니겠지? 근데 이상하지 않아? 상천이 왜 이런 사천의 벽지까지 손을 뻗었을까? 그리고 지금까지 보인 행보와는 너무 다른데? 아니면 광마의 장난일까? 대답 좀 해라. 새끼야. 주둥이에 거미줄을 쳤냐?”
“······.”
언제나 말이 없는 주초는 후영의 욕지거리에도 익숙한 듯 입을 열지 않았다.
후영의 고개가 한경에게 휙 돌아갔다.
“넌 끼어들지 마라.”
실실 웃기만 하다 날벼락을 맞은 한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부하들이 뒤에서 시끄럽게 굴었으나 진무립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무면산왕이라고?’
이 근방에 소문을 낼 만한 표국은 없다.
하지만 자신이 얽혀있는 이상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광룡대는 복잡한 생각 속에 정가장의 장원 앞에 도착했다.
무복에서 마도림의 표식을 확인한 수문위사가 정중히 예를 갖췄다.
“중경에서 오셨습니까?”
표식을 확인하고도 재차 묻는 것은 광룡대의 금빛 옷깃이 생소한 까닭이다.
진무립의 말투를 잘 아는 유대하가 먼저 나섰다.
“예. 저희는 림주님의 명을 받고 온 광룡대입니다.”
마도림은 정가장과 사돈지간. 이들이 대검문을 멸하고 중경의 패권을 되찾았다는 소식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수문위사의 어둡던 표정이 한순간에 밝아졌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잠시 기다리자 안에서 나온 하인들이 말을 마방으로 끌고 간 뒤 광룡대를 숙소로 안내했다.
진무립과 유대하는 수문위사의 뒤를 따라 내원으로 향했다.
“들어서 아시겠지만 지금은 아가씨께서 장주님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계십니다.”
초무강의 아내 정인령이 마도림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였다.
내원의 담장을 넘어서자 사방에서 무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장주와 소장주가 실종된 상황. 여기서 정인령까지 변을 당하면 정가장이 무너지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내원 중앙의 전각에 도착한 세 사람, 위사가 공손히 입을 열었다.
“아가씨. 마도림의 광룡대주를 모셔왔습니다.”
“들이세요.”
문이 열리자 고운 자태를 잃지 않은 중년 여인이 반가운 미소로 진무립을 맞았다.
“상공의 전서에 따르면 열흘은 걸릴 것이라 하셨는데 생각보다 빨리 왔군요.”
진무립은 유대하조차 놀랄 정도로 공손히 예를 갖췄다.
“소질 진무립이 숙모님께 인사 올립니다.”
유대하도 뒤따라 예를 갖췄다.
“광룡대 부대주 유대하가 대부인을 뵙습니다.”
“어서 오세요. 대검문과의 싸움에서 큰 공을 세웠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인가 궁금했는데 이토록 헌앙한 장부였군요.”
진무립은 싱긋 웃었다.
“아닙니다.”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어서 앉으세요.”
정인령은 인자한 미소로 자리를 권했다.
“좋은 차를 대접해야겠으나 장기간 상행이 멈춘 탓에 상황이 여의치 않군요. 삼엽차(三葉茶)도 괜찮겠지요?”
삼엽차는 시전의 가판이나 객잔에서 식후 입가심용으로 사용하는 차였다. 진무립은 빙그레 웃었다.
“맹물도 상관없습니다.”
“이해해주어서 고마워요.”
그녀의 손이 자기 병에 닿자 순식간에 뽀얀 김이 피어오르며 물이 데워졌다.
이윽고 찻잔이 채워지자 진무립이 물었다.
“오는 길에 마을을 지나왔습니다. 사라졌던 무인들의 시신이 발견된다고 하더군요.”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맞아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정인령은 문 앞으로 걸어갔다.
“모두 오 장 밖으로 물리거라.”
“예. 아가씨.”
곧이어 인기척이 멀어지자 그녀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버지와 동생이 실종된 것은 두 달도 지난 일이에요. 소공자가 마도림에 도착하기 며칠 전이겠지요.”
“예.”
“중요한 상행으로 성도에 다녀오던 길이었지요. 이곳 파중에서 서쪽으로 오십 리 떨어진 곳에 백연곡(魄淵谷)이라는 골짜기가 있어요. 상단이 실종된 것은 바로 그곳이지요.”
“백연곡은 수색해보셨습니까?”
“물론이에요. 그러나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하고 돌아왔어요.”
‘음.’
턱을 매만지며 생각하던 진무립이 다시 물었다.
“모두 몇 명이 납치됐습니까?”
“아버지와 동생, 그리고 정예 무인 스무 명이 함께였지요. 아직 동생이 어린 지라 이따금 데리고 다니시며 일을 가르치고 계세요.”
정인령은 애써 담담하게 말했으나 목소리에 담긴 떨림을 진무립이 모를 리 없었다.
진무립의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시신을 남기며 경고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놈이 정가장에 요구사항을 보내온 것은 없습니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공자의 말대로예요.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린 그분들의 생환을 반쯤 포기하고 있었어요. 며칠 전 흉수가 시신과 함께 서신을 보내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긴 고민 끝에 마도림에 연락을 취하기 직전 진무립이 도착한 것이었다.
“요구조건이 뭡니까?”
“전표로 은자 삼백만을 요구했어요.”
그녀는 흉수가 보내온 서신을 진무립에게 내밀었다.
투박한 필체였지만 선에 힘이 있는 것이 무공을 익혔다면 제법 높은 경지에 올랐을 것 같았다.
내용은 돈을 마련한 뒤 정가장의 정문에 백기를 내걸면 다시 연락을 취하겠다는 내용이다.
진무립은 고개를 갸웃했다.
“정가장이 그렇게 부자였습니까?”
정인령은 고개를 저었다.
“은자 삼백만이면 정가장의 십 년 치 예산이에요. 도무지 들어줄 수 없는 요구를 해왔으니 더욱 답답한 일이지요. 그자는 우리가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매일 한 명씩 죽여 시신을 보내겠다고 하더군요. 벌써 다섯 구의 시신이 돌아왔으니 더는 지체하기 어려워요.”
기둥이 사라진 정가장. 아버지와 동생을 대신해 버팀목이 되려 애쓰는 그녀는 강한 사람이었다.
진무립은 그녀를 안심시키듯 웃었다.
“하루아침에 대검문을 지워버린 접니다. 반드시 그분들을 데려올 테니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정인령도 마주 웃으며 말했다.
“고마운 말이로군요.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말하도록 해요.”
“인근의 지도가 있으면 한 장 주십시오.”
정인령은 서랍을 열어 곧장 지도 한 장을 내주었다.
지도를 받아든 진무립은 예를 갖추고 방을 나섰다.
‘정가장 같은 규모의 무가에 은자 삼백만이 없다는 건 놈도 알고 있을 거다. 그렇다면 마도림의 재화까지 노린다고 봐야 하는데······.’
대검문을 멸하고 마도림이 취한 은자가 공교롭게도 삼백만이다.
그러나 서신이 도착한 날은 대검문이 사라지기 전이었다.
시기를 고려하면 흉수가 그 돈을 노린 것 같지는 않으나 사돈지간인 마도림의 재물까지 노린 것은 확실해 보였다.
정가장만으로는 그런 돈을 마련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또 다른 의문이 남는다.
왜 납치한 직후 연락을 하지 않고 굳이 한참 뒤에 연락했을까?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에 진무립은 인질 구출을 먼저 생각하기로 했다.
“음, 삼백만이라.”
곁을 따르던 유대하는 생각에 잠긴 진무립을 힐끔 쳐다봤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저런 표정을 할 때마다 어김없이 변화가 이뤄졌기에 묘한 기대감이 들었다.
진무립이 말했다.
“먼저 가서 조장들을 소집해라.”
“알겠습니다.”
유대하는 서둘러 숙소로 달렸다.
생각에 잠긴 진무립이 느릿한 걸음으로 내원의 정문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밖에서 뛰쳐 들어온 작은 소녀가 진무립을 들이받더니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아얏!”
잔뜩 찡그린 채 엉덩이를 문지르던 소녀가 음흉하게 웃으며 일어났다.
“후후후.”
열 살쯤 되었을까, 앞니 하나가 허전한 소녀의 미소는 짓궂은 어린아이의 표본 같았다.
“본녀 앞에서 만근추(萬斤墜)를 사용하다니 제법이로구나.”
“내가 언제 만근추를······.”
진무립은 얼토당토않은 말을 내뱉는 소녀를 떨떠름하게 쳐다봤다.
“넌 뭐냐?”
소녀는 허리춤에 두 손을 척 올렸다.
“후후. 나를 모르는 것을 보니 무명소졸이로구나. 머지않아 천하를 뒤흔들 본녀의 이름은 초유림이시다.”
눈앞의 맹랑한 아이는 림주 초무강의 딸이자 진무립의 사촌 동생인 초유림이었다.
진무립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점잖은 부모 밑에서 어떻게 이런 놈이 나왔지.’
초유림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진무립이 물었다.
“그래. 앞니는 어따 팔아먹었냐?”
초유림은 히죽 웃었다.
“당과랑 바꿔먹으려고 했는데 실패했어. 헤헤.”
보통 아이와는 조금 다르다.
진무립을 이리저리 살피던 초유림이 물었다.
“못 보던 얼굴인데? 정가장에 당신처럼 잘생긴 사람은 없었는데 어디서 왔지?”
진무립이 대답을 생각하는 사이 초유림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서, 설마. 벌써 내 정혼자가 정해졌단 말인가!”
진무립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하나 남은 앞니도 빼줄까?”
초유림이 씩 웃었다.
“헤헤헤. 농담이야.”
“이런 시국에 농담이 하고 싶으냐?”
“우울해한다고 달라질 게 있어? 내가 조용하면 정가장 사람들도 우울해 보인단 말이야.”
겉모습과 달리 속 깊은 생각에 진무립은 의외라는 듯 쳐다봤다.
초유림은 말을 이어갔다.
“옷을 보아하니 중경에서 온 소공자가 당신이지? 앗, 당신이라고 하면 안 되겠구나. 오라버니라고 불러야 하나?”
피식 웃은 진무립이 몸을 돌렸다.
“형님이라고 불러라.”
문을 나서는 진무립의 등으로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님아! 나중에 봐!”
***
숙소로 돌아온 진무립은 즉시 조장들을 소집했다.
“한 시진 뒤에 움직인다.”
유대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벌써 뭐, 뭔가를 알아내셨습니까?”
“지금부터 알아내야지.”
진무립의 눈이 가늘어졌다.
‘인질이 다수 있는 만큼 적어도 파중에 숨어있는 것은 아닐 거다.’
만일 파중에 은신처가 있을 경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질이 탈출한다면 은신처는 곧장 탄로 난다.
진무립은 상대가 그런 위험을 감수할 것 같지는 않았다.
탁자 위에 지도를 펼친 진무립은 백연곡을 중심으로 인근 마을의 거리를 계산했다.
“일조는 풍촌, 이조는 삼강촌, 삼조는 백하촌, 사조는 용산촌, 오조는 방인촌으로 조원 둘씩 데리고 다녀와라. 은밀히 움직여야 할 거다. 책임자는 부대주다.”
백연곡에서 가장 가까운 다섯 마을이다.
유대하가 물었다.
“가서 뭘 하면 됩니까?”
“최근 못 보던 자가 와서 식재료를 사간 적이 있는지 확인해라. 훔쳐갔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마라.”
“아, 그렇군요. 인질까지 있는 이상 먹어야 살 테니까요.”
“그렇지.”
흉수가 파중현에 나타나는 이상 매복했다가 잡는 방법도 있겠으나 실패한다면 인질이 위험해진다.
이번 일에선 장주 부자의 구출이 우선이었다.
진무립은 설명을 덧붙였다.
“마을의 사냥꾼들을 만나는 것도 잊지 마라. 최근 산에서 버려진 짐승의 뼈를 봤거나 덫에 걸린 짐승이 사라진 일이 없는지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이럴 때는 정말 평소와 다른 사람 같다.
막힘없는 설명에 내심 감탄한 조장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흉수의 처단보다 중요한 건 인질 구출이라는 걸 기억해라. 회의는 끝이다.”
밖으로 나가려던 진무립이 잠시 발을 멈췄다.
“마을 입구는 지금 누가 지키고 있지?”
삼조장 한경이 손을 들었다.
“제 부하 셋이 지키고 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여인 둘이 조금 전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부륭과 충현이 미행 중입니다.”
묘하게 신경 쓰이는 여인들이다.
문을 연 진무립이 조장들에게 말했다.
“만나봐야겠다. 다녀올 테니 출발 전까지 푹 쉬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