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31)
◈ 231화. 운화결과 임교영
처소 앞의 작은 그늘.
닫힌 문을 응시하는 단려화의 눈빛이 왠지 복잡했다.
‘다음 해 정월 초하루. 섬서성 소화산(小華山)에서 천산과 복령천의 회동이 있을 겁니다.’
그녀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쓰러지던 설지량의 마지막 전음이었다.
‘무립에게 말하면 분명…….’
두말할 것 없이 소화산을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위험한 전투에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 분명하다.
처음에는 전투가 끝나자마자 진무립에게 전하려 했다.
그런데 진무립이 깨어나길 기다리는 동안, 상처 입은 그를 지켜보는 사이 마음이 점점 복잡해진 것이다.
‘무립은 초인이 아니야. 행여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런 일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러나 천산의 마교와 복령천이 회동을 갖는 자리라면 분명 엄청난 고수들이 즐비할 터.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진무립, 그가 아니면 부친과 화령밖에 없다.
진무립에게 말한다면 그와 상천의 무인들이 다칠 것이고 부친에게 말한다면 화령의 가족들이 다치게 될 것이 뻔하다.
그 과정에선 분명 죽는 이도 나올 것이다.
‘화령과 상천이 손을 잡는다면……. 아니야. 그건 간단히 말할 문제가 아니겠지.’
지금의 상천은 화령의 위세마저 위협할 만큼 엄청난 방파로 성장했다.
게다가 강남 무림은 팔황문과 최전선에서 맞서 싸운 장소.
상천이 그들과 같은 은곡의 무공을 익힌 만큼, 강남 무림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알 수 없었다.
“에휴.”
절로 한숨이 나온다.
설지량이 자신에게만 그 사실을 말한 것은 어떤 의도가 있는 게 분명했다.
“망할 자식.”
절로 욕지거리가 치밀어 오른다.
“누가 망할 놈이라는 거야?”
움찔한 그녀의 눈에 방에서 나온 진무립이 보인다.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배시시 웃었다.
“이야기는 끝났어요?”
“밖에서 뭘 하고 있었나 했더니 설마 내 욕을 하고 있었던 거야?”
단려화의 눈이 순식간에 가자미눈으로 변했다.
“……아닌데요.”
참으로 표정 변화가 빠른 여인이다.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진무립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갈 곳이 있으니 함께 가지.”
“어딘데요?”
진무립은 장포를 휘날리며 돌아섰다.
“그놈을 만나러 간다.”
움찔한 단려화가 자라목을 하고 주변을 살핀다.
“운화결?”
* * *
삼 장 너비의 제법 큰 방.
단출하게 정리된 방의 중앙에서 타들어 가는 화롯불이 은은한 온기를 흩뿌린다.
불가에 쪼그려 앉은 임교영의 눈빛이 한없이 공허하다.
마주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여령이 작게 그녀를 불렀다.
“아가씨.”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피에 젖은 운화결을 보는 순간 정신을 잃었다.
운화결의 그런 처참한 모습은 처음 보았으니까.
눈을 떠보니 이곳이었다.
지여령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
“염려하지 마세요. 아가씨께는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그날의 전투를 상기했을 때, 진무립은 분명 임교영을 죽이길 바라지 않았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아가씨라면 죽이지 않을 거야.’
그녀가 무인이 아닐뿐더러 설지량이 정보를 넘기는 대가로 그녀의 안전을 약속받았기 때문이다.
내력이 봉인된 자신과 침상에 누워 잠이 든 운화결이라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그때 침상에 누워있던 운화결의 입에서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영.”
“상공!”
벌떡 일어난 임교영이 한달음에 그의 곁으로 달려갔다.
침상 곁에 무릎을 꿇은 그녀가 눈물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몸은 좀 어떠신가요?”
고개 돌린 운화결이 핏기 가신 얼굴로 웃어 보였다.
“괜찮다.”
“상공…….”
천천히 고개 돌린 운화결이 허공을 눈에 담았다.
“미안하구나.”
자신들의 운명을 어긋나게 만든 자들.
세상에서 무인이라는 무뢰배들을 모두 없앤 뒤 그녀와 행복한 여생을 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 꿈은 물거품처럼 바스러졌다.
자신이 잡히고 믿었던 설지량도 죽었으니까.
임교영은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고개 저었다.
“아니에요. 상공께서 이리 깨어나신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에요.”
그녀는 애써 맑은 미소를 보였다.
“상공께서 누워계시는 동안 생각해봤어요. 무림은 어떻게 되든 좋아요. 우리 그만 이곳을 떠나요. 밭을 갈아도 좋고 장사를 해도 좋아요. 멀리 떠나서 조용히 살아요.”
연이어 쏟아내는 목소리가 간절하다.
운화결은 서글픈 미소를 감췄다.
‘미안하구나.’
가능한 일이 아니다.
진무립이 자신을 살려둔 것은 그저 정보를 캐내기 위함일 뿐, 원하는 것을 얻어내면 확실하게 죽일 거다.
자신이라면 그리할 테니까.
그리고 임교영이 곁에 있는 이상 자신은 그의 질문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진무립,’
다시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는 녀석이다.
힘을 온존한 채 자신에게 승리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천여 명에 달하는 부하를 거침없이 도륙한 괴물.
그런 자가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주군.”
지여령이 일어남과 동시에 밖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슬며시 문이 열린다.
“잘 지냈나?”
싱긋 웃으며 들어오는 인물은 바로 진무립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임교영이 두 팔을 벌려 운화결을 가렸다.
“안 됩니다. 제발…….”
운화결이 나직이 말했다.
“교영. 물러나라.”
간절한 임교영의 귀에 그의 목소리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진무립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다리를 잡았다.
“분명 상천의 천주라고 하셨지요.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제발…….”
그때 큼직한 손이 그녀의 얼굴 앞에 나타나 말문을 틀어막았다.
“무엇을 잘못했는가?”
“그건…….”
진무립은 두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손에서 사시나무 흔들리듯 격한 떨림이 전해졌으나 개의치 않았다.
진무립은 떨리는 그녀의 두 눈을 직시했다.
“지금 취한 행동은 그대의 낭군을 두 번 죽이는 짓이다. 그의 자존심을 짓밟는 행동이란 말이다.”
말은 그렇게 했으나 운화결의 자존심을 살려주기 위해 그녀를 말린 것은 아니다.
단지 여인이 사내를 위해 자신 앞에 무릎 꿇는 신파극이 보고 싶지 않았다.
그에 간절하던 임교영의 눈빛이 처연하게 변한다.
“자존심이요. 그걸 지키면 목숨도 지킬 수 있나요?”
대꾸할 말은 산더미처럼 많았으나 그녀의 눈빛은 진무립의 입을 틀어막을 정도로 애절했다.
“…….”
그때 단려화가 다가와 임교영의 팔을 잡았다.
“우리……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임교영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누워있던 운화결이 싱긋 웃으며 말한다.
“다녀와. 기다릴 테니까.”
기약 없는 약속이 될지도 모르는 말이라는 걸 두 사람도 안다.
임교영은 차오르는 눈물을 감추며 고개 돌렸다.
“다녀올게요.”
그녀를 부축한 단려화가 천천히 발을 옮겼고 지여령이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이 나가자 운화결이 마침내 진무립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늦었군.”
“조금 피곤해서.”
진무립은 의자를 끌어와 침상 옆에 앉았다.
“앉을 수 있나?”
“그래.”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운화결이었으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은 그의 몸 상태를 증명하고 있었다.
품에서 두 개의 술병을 꺼낸 진무립이 하나를 운화결에게 넘겼다.
“고맙다.”
술병을 잡아가는 손의 떨림처럼 그의 목소리에도 나직한 떨림이 깃들었다.
“곧 네 목을 벨 사람인데 고맙기는.”
“그게 아니다.”
힘겹게 술을 한 모금 들이켠 운화결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교영의 그런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거든.”
내색하진 않았으나 연모하는 여인이 다른 사내 앞에 무릎 꿇고 비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
“날 찾아오기까지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린 걸 보면 중원무림맹을 완전히 장악한 모양이야.”
그게 아니라면 자신을 이토록 오래 살려둘 수 없었을 것이다.
진무립이 말했다.
“네가 살아있는 것은 내 측근밖에 모른다.”
운화결을 향해 쏟아부은 극일화(極一化)의 장력은 일순 전장을 흙먼지로 뒤덮었고 그 틈에 서진환이 재빨리 그를 빼낸 것이다.
워낙 엄청난 폭음이 터져 나왔기에 그가 살아있으리라 생각하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진무립의 공격에 시신조차 남기지 못한 적은 수두룩했으니까.
이후 전투를 마무리한 진무립은 정신을 잃기 전 적모개에게 부탁해 안가를 수배했고, 서진환과 적모개가 혼란을 틈타 운화결을 이곳에 옮긴 것이다.
운화결이 쓴웃음과 함께 술을 들이켰다.
“그런가.”
“너와 설지량은 복령천의 일원이다. 그런데 뒤로 정보를 수집한 이유는 뭐지?”
운화결은 가감 없이 솔직하게 답했다.
“우리는 세상에서 무림을 지울 생각이었다. 복령천의 전력을 명확히 파악하고 그들과 무림의 균형을 맞출 생각이었지.”
“서로 상잔시키기 위함인가.”
“그래. 우리에게 있어 무림이란 제힘만 믿고 날뛰는 무뢰배들의 세상이었으니까.”
허무맹랑한 소리처럼 들렸는지 진무립은 웃음을 흘렸다.
“정말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나?”
운화결이 묘한 눈으로 쳐다본다.
“네가 작정하고 나선다면 가능하지 않겠나?”
“모르겠군.”
무림을 없애는 건 황제조차도 쉽지 않은 일이다.
백만에 달하는 대군과 맞선다면 무림은 분명 궤멸적인 피해를 입을 것이다.
그러나 황궁의 흑전원도 진무립과 같은 고수가 침투한다면 막아내기는 쉽지 않다.
진무립은 생각을 정리하며 물었다.
“설지량은 비서를 들고 어디로 가려고 했던 거지?”
“화령도다.”
“화령과 복령천이 정면으로 붙는다면?”
“그야 물론 화령이 승리하겠지. 복령천이 정면에서 붙어준다면 말이야. 그래서 화령도로 보낸 거다.”
복령천이 먼저 움직이면 무림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을 것이다.
운화결과 설지량은 화령이 먼저 눈치채고 움직인다면 상잔의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봤다.
진무립이 물었다.
“그가 남긴 비서에 적힌 숫자가 복령천의 전부라는 말이냐?”
설지량이 파악한 정보에 의하면 복령천의 무인은 대략 이백에 미치지 못하는 소수였다.
“그 이상은 없다고 본다. 세상의 눈을 피해 무인을 양성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건 알지 않나?”
“복령천주의 무위는?”
“그건 모른다. 나도, 지량도 그의 끝을 제대로 본 적은 없으니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팔천영신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무공을 펼친다?”
“십이사령은 팔존과 전혀 다른 무공을 익혔다. 그리고 그 십이사령에게 무공을 전수한 것이 바로 복령천주 황천패다.”
비서에는 적혀 있지 않았던, 묻지 않았다면 몰랐을 뻔한 내용이다.
‘살려두길 잘했군.’
진무립이 다시 물었다.
“백화무단도 다른 무공을 익혔나?”
“단주는 확실히 다른 무공을 익힌 것 같다만 부하들은 모르겠군. 알아두어야 할 게 있는데 지량이 비서에 적어둔 것은 그들이 풍기는 기도와 분위기를 보고 무위를 추측한 것이지 절대적인 확신은 아니다.”
진무립은 그의 목소리를 머리에 새기며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그들의 근거지에 대해서 적혀 있는 것은 없더군.”
“우리가 세상에 나와 오대표국을 세운 뒤로 그들은 끊임없이 근거지를 옮겨가며 종적을 감췄다. 우리와 그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바로 팔존이지. 천주가 소환할 땐 팔존을 따라갔고 지령도 그들에게서 내려왔다. 지금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팔존이 없으면 찾아갈 방법도 없단 말인가?”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겠지만 네겐 불가한 일이다.”
“그 방법은?”
운화결이 묘한 미소를 보였다.
“지금쯤 그들도 전투 결과를 알고 있을 테지. 팔존이 머물던 흔적을 지우고자 사람을 보내올 거다. 내가 팔존이 머물던 거처에서 기다리면 그들과 접촉할 수 있겠지.”
진무립은 피식 웃었다.
“그건 안 될 말이지.”
만일 설지량이 살아서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다른 이야기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전투에서, 운화결과 헤어진 설지량이 표설중과 접촉해 소화산에 대한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진무립이 다시 물었다.
“팔존 중 아직 검존이 살아있는 듯한데 그에 대한 이야기는 비서에도 적혀 있지 않더군.”
“그는 우리도 본 적이 없으니까.”
“실존하는 인물이 맞나?”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존재는 확실할 거다.”
진무립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임교영이 있는 이상 그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 질문을 내뱉었다.
“백화무단의 부단주. 당가의 이공자라는 당명을 본 적이 있나?”
운화결은 술로 목을 적신 뒤 말했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