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63)
◈ 263화. 무당산
부하들과 헤어진 진무립 일행이 대별산의 초입에 도착했다.
“후아아…….”
핼쑥한 얼굴로 긴 한숨을 토해내는 인물은 바로 단려화였다.
또래의 후기지수에 비하면 월등한 내력을 가진 그녀다.
그러나 천하를 오시하는 절대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려왔으니 힘이 드는 것이다.
화윤의 눈동자에 구름이 걸터앉은 대별산의 신비로운 풍광이 가득 담긴다.
“살다 보니 상천의 산채에 오는 일도 있군.”
그때 오솔길에서 십여 명의 녹의인들이 나타나 일제히 진무립에게 부복했다.
“대별채의 안사국이 천주님을 뵙습니다.”
“천주님을 뵙습니다.”
목소리의 나직한 울림이 수풀 너머로 퍼져나간다.
“일어나라.”
진무립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드는 가운데 화윤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역시 은곡은 은곡이란 말인가.’
이들이 상천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범상치 않은 힘이 느껴진다.
천하대전에서 은곡 출신의 무인과 싸워본 화윤은 이들의 두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진무립이 물었다.
“내가 팔기에게 내린 명이 있을 것이다.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
복령천의 위협에서 가족들을 지키기 위한 명령.
그것은 거산채를 비우고 식솔들을 모두 대별채로 옮기라는 것이었다.
안사국이 답했다.
“가까운 하남의 식솔들은 모두 모였습니다. 산동은 이틀 안에, 사천의 거산채는 열흘 정도면 모두 모일 것입니다.”
“집이 부족할 텐데.”
“무인들의 숙소를 모두 내주었습니다. 부족한 방은 곳곳에 막사를 지어 해결하고 있습니다.”
진무립은 고개를 끄덕이며 발을 멈췄다.
대별채주 송조광이라면 충분히 그들을 수용할 만한 수완이 있을 것이다.
마음 같아선 그들의 생활을 둘러보고 싶으나 지금은 정상까지 올라가 허비할 시간이 없다.
“지금 뇌옥에 가둔 죄수들이 있느냐?”
“모두 서른이 있습니다. 얼마 전 인근 화전민촌을 약탈하던 마적 떼입니다.”
“마적?”
“여인을 간살하고 아이들을 납치하려던 것을 저희가 막았습니다.”
“무공을 익혔나?”
“모두 기본적인 호신공은 익힌 자들이나 수괴인 석장두는 제법 흉험한 무공을 펼치는 자였습니다.”
“잘됐군.”
고개를 끄덕인 진무립이 품에서 작은 붓통과 종이를 꺼냈다.
작은 글씨로 종이를 가득 채운 진무립이 그것을 안사국에게 건넸다.
“조광에게 전해다오.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야 한다.”
“알겠습니다.”
안사국과 무인들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진무립도 몸을 돌렸다.
“볼일은 끝났습니다. 무당으로 가시지요.”
단소룡이 물었다.
“올라가 보지 않아도 되겠는가?”
진무립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을 내디뎠다.
“나중에 그럴 시간이 충분히 있을 겁니다.”
말을 마친 진무립은 즉시 단려화를 번쩍 들어 품에 안았다.
“어머.”
놀란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힘든 거 안다.”
“아직 달릴 수 있어요.”
“무리할 것 없어. 빨리 달릴 테니 불편해도 조금만 참아.”
말이 끝나는 순간 주변 풍광이 순식간에 달라진다.
단소룡과 함께 그 뒤를 따르는 화윤이 짓궂게 웃었다.
“잘 어울리는 한 쌍이야. 그렇지?”
“…….”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으나 왠지 인정하기 싫었다.
산채에 도착한 안사국은 즉시 송조광의 처소를 찾았다.
“채주님.”
산채의 지도를 놓고 막사의 배치를 고심하던 송조광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인가?”
“조금 전 천주님께서 다녀가셨습니다.”
“뭐라고?”
벌떡 일어난 송조광이 발을 내디딜 때였다.
“급한 일이 있어 바로 떠나셨습니다. 이걸 채주님께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종이를 받아 든 송조광은 즉시 내용을 확인하고 말했다.
“너는 즉시 뇌옥으로 가서 죄수들을 꺼내와라.”
* * *
칠흑 같은 어둠 속의 산자락.
한 치 앞도 구분하기 힘든 산 능선을 십여 명의 사내들이 비조처럼 내달린다.
대열의 중앙에 선 운화결은 어둠에 날카로운 눈빛을 감췄다.
‘이 속도라면 나흘 뒤에 무당산이다.’
성유기가 위치를 알려준 덕분에 대략적인 거리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건 좋지 않다.
신법의 대가들만 모아둔 조답게 이들의 신법은 상상 이상으로 빨랐다.
‘적어도 이틀 정도의 시간은 더 벌어야 한다.’
고민하는 사이 어느덧 동쪽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주변 지형이 뚜렷하게 눈에 들어올 무렵, 이들은 목표로 했던 동굴에 도착했다.
‘하는 수밖에 없다.’
절반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내력을 회복하는 사이, 운화결은 끌어올린 내력을 조심스럽게 역류시켰다.
순간 기혈이 들끓으며 울컥하는 뭔가가 솟구친다.
“쿨럭!”
목구멍으로 시뻘건 피가 튀어나와 차가운 동굴 바닥에 흩어졌다.
부조장 금교가 놀란 눈을 치켜떴다.
“운공?”
운화결이 다소 창백한 얼굴로 손을 들었다.
“괜찮다.”
금교의 미간에 실주름이 생겼다.
‘부상이 완쾌된 게 아니었단 말인가?’
가늘게 뜬 운화결의 눈에 옅은 빛이 스치고 사라진다.
워낙 은밀하게 내력을 역으로 돌린 터라 이들이 뭔가 눈치챌 여지도 없었다.
“쿨럭, 쿨럭.”
연신 내뱉는 기침 사이로 계속해서 피가 쏟아져 나온다.
“운공. 괜찮으십니까?”
금교는 품에서 내상약을 꺼내 내밀었다.
“이걸 드십시오. 내부를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내상약으로 될 게 아니다.”
손을 휘저은 운화결이 다시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았다.
“호법을 서라.”
“예.”
금교와 두 명의 단원이 주변을 둘러서는 가운데 운화결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일단 하루는 벌 수 있겠군.’
본격적으로 시간을 끌기 시작한 운화결은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날 줄을 몰랐다.
백화무단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명목상 이번 임무의 상관은 운화결이다.
내상을 회복하는 사람에게 서두르라고 재촉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하룻밤을 꼬박 보낸 그들은 결국 출발시간을 뒤로 늦출 수밖에 없었다.
이틀 뒤, 겨우 동굴을 나선 그들은 지금까지와 다르게 운화결의 속도에 맞춰 행보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무리해서 달리다가 탈이 나는 것보다 조금 늦더라도 온전히 무당에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이다.
그렇게 엿새가 지났을 때.
그들은 마침내 달빛이 쏟아지는 무당산의 전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 * *
멀리 무당산이 훤히 보이는 적막한 숲속.
풀벌레 소리와 이따금 움직이는 산짐승의 발소리가 나직이 울려 퍼진다.
수풀 너머에 숨죽인 채 주저앉은 사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신룡 대협께서 말씀하시기에 따르긴 하겠지만…… 정말 이대로 괜찮겠습니까?”
화윤은 흥미로운 듯한 얼굴로 말했다.
“염려 놓으십시오. 계획대로만 흘러가면 괜찮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느긋하게 앉아 육포를 뜯던 수문화가 있었다.
진무립의 빛에 가려져 있으나 제천지사 수문화의 역량도 결코 가볍게 볼 것이 아니었다.
상천에서 진무립이 밝게 타오르는 태양이라면, 수문화는 은은히 빛을 발하는 달과도 같다는 것을 화윤은 잘 알고 있었다.
수문화는 질겅이던 육포를 꿀꺽 삼키며 씩 웃었다.
“물론이지요. 누가 하는 일인데.”
수문화는 긴장한 사내들을 둘러보며 여유롭게 말했다.
“염려할 것 없습니다. 믿으십시오.”
같은 시각.
무당산으로 통하는 작은 숲길엔 은신한 진무립과 단려화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달빛을 피해 나무 그늘에 몸을 숨긴 단려화가 이십 장 밖에 선 진무립에게 전음을 보냈다.
[정말 이리로 올까요?] [분명 놈들의 마지막 은신처가 이쪽 방향이라고 했다. 틀림없어.]남들보다 월등한 감각을 가진 단려화라면 누가 오든 사전에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정적 속에 일다경이 흐를 무렵, 집중하던 단려화의 눈이 번쩍 뜨였다.
‘왔다!’
서쪽에서 십여 명의 은밀한 기척이 느껴진다.
[왔어요!]전음의 도착과 동시에 번개같이 몸을 날린 진무립이 수풀 사이에 숨겨진 줄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됐다. 올라가자!]두 사람이 숲속에서 꺼지듯 사라진 순간이었다.
콰쾅!
소실봉의 정상에서 강렬한 굉음이 밤하늘로 울려 퍼졌다.
산자락에 도착한 운화결 일행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어둠 속, 산 정상을 향한 그들의 눈에 햇살처럼 솟구치는 시뻘건 불길이 보인다.
조장 구홍이 다급하게 말했다.
“운공. 서둘러야겠습니다.”
운화결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간다.”
지면을 박찬 운화결은 누구보다 빠르게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시작됐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자신조차 모른다.
오는 내내 누군가와 연락을 취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한 가지 추측할 수 있는 건 자신이 모르는 사이 진무립이 뭔가를 준비했을 거라는 사실이다.
‘검존.’
무당에서 뭔가 벌어지고 있다면, 그가 진심으로 자신을 돕는 것과도 같다.
날 듯 산을 뛰어오른 그들 앞에 불타오르는 소실봉의 전각이 눈에 들어온다.
“크아악!”
찢어질 듯한 비명이 솟구치는 가운데 무당의 도복을 입은 시신과 흥건한 피가 바닥을 가득 적시고 있었다.
“저 사람은…….”
떨리는 구홍의 눈에 담긴 피에 젖은 살귀는 바로 검존 성유기였다.
자신들의 임무를 들었을 때 흥미를 보인다 싶더니 결국 여기에 먼저 나타난 것이다.
당혹스러운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이냐!’
마적들의 수괴 석장두는 좀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잠들기 전까지 대별채의 뇌옥에 갇혀 있던 자신들이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처음 보는 옷을 입고 있었고 한쪽 팔이 없는 괴물이 자신들을 무차별적으로 도륙하고 있었다.
피에 흠뻑 젖은 노도사가 거친 일성을 토해냈다.
“막아라!”
쩌렁쩌렁한 외침이 모두의 귀에 선명하게 틀어박힌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무당의 장문인 청화라는 사실을 그가 알 턱이 없다.
“내가 왜…….”
손에 검을 쥔 석장두가 영문 모를 얼굴로 고개 돌렸을 때였다.
성유기의 눈빛이 시퍼런 광채를 쏟아냈다.
‘길게 살려둘 순 없지.’
운화결과 백화무단이 도착한 이상 마적을 살려둘 이유가 없다.
그의 검신에서 쏘아진 한 줄기 섬광이 거침없이 그의 목을 갈라버렸다.
서걱!
둥실 떠오른 석장두의 목이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질 때, 지면을 박찬 성유기의 신형은 무당파 장문인 청화의 지척에 도착한 상태였다.
‘빠르다!’
부릅뜬 청화의 눈에 수십 가닥으로 갈라지는 검영이 빨려들 듯 확장된다.
성유기의 공격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이놈!”
우측으로 길게 미끄러진 청화가 송문고검을 뽑아 들었다.
콰콰콰쾅!
빗나간 공격이 지면에 처박히며 거친 폭음을 터트린다.
사태를 파악하던 운화결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틀어박힌다.
전음은 바로 진무립의 것이었다.
껄끄러운 이 목소리가 이토록 반갑게 느껴질 줄이야.
이어서 진무립의 간략한 지시가 떨어지자 운화결은 검을 뽑아 들고 외쳤다.
“너희들은 주변을 포위하고 쥐새끼 하나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라. 누구도 살아나가는 자가 있어선 안 된다!”
박력 넘치는 그 명령에 거부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예!”
칠 조원들이 순식간에 산개하며 주변으로 흩어질 때였다.
가늘게 뜬 구홍의 눈에, 장문인 청화에게 달려가는 운화결의 등이 보인다.
‘음.’
쾅!
삼청관의 문이 터져 나가며 누군가가 벼락같은 속도로 튀어나왔다.
내부의 어둠 속, 나직한 진무립의 목소리가 운화결에게 닿았다.
[선물이다.]운화결은 지체 없이 검을 휘둘러 접근하는 마적의 목을 갈라버렸다.
서걱!
뒤의 구홍을 힐끔 쳐다본 성유기가 운화결에게 전음을 보냈다.
[장문인을 찌르는 건 너다.] [정말 죽이란 말이오?] [식두혈의 반 치 옆을 찔러라. 너라면 할 수 있겠지.]식두혈은 심장에 가까운 요혈이다.
그 근처를 정확히 노리는 것은 보통 무인이라면 불가능한 일.
하지만 운화결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알겠소.]운화결이 대답하자 성유기가 청화와 눈빛을 교환한다.
‘됐는가?’
‘이쪽은 준비됐소.’
청화의 두 눈에 결연한 각오가 떠오른 순간이었다.
퍽!
벼락같이 날아든 성유기의 왼발이 그의 옆구리를 강타했고.
기다리고 있던 운화결의 검이 거침없이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
“컥!”
가슴을 부여잡은 청화가 우수의 검을 날카롭게 쏘아낸다.
쌔애액!
놀란 구홍의 눈이 부릅떠졌다.
“운공!”
그의 다급한 외침이 날카롭게 솟구칠 때, 어느새 달려든 성유기의 발이 청화의 가슴을 후려 찼다.
콰직!
화살처럼 튕겨 나간 청화의 신형이 전각의 기둥을 뚫고 바닥에 처박혔다.
“쿨럭!”
검붉은 피가 왈칵 쏟아지며 지면을 적셨다.
그사이 주변을 살피고 온 백화무단원들이 불타는 소실봉의 마당에 집결했다.
“생존자는 없습니다.”
성유기가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늦었군. 아니, 내가 너무 빨랐나?”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구홍이 고개를 숙였다.
“……검존께서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운화결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원치 않게 선수를 빼앗겼으나 마무리는 내가 짓겠소.”
검을 고쳐 쥔 운화결이 꿈틀거리는 청화에게 발을 내디딜 때였다.
삼청관의 처마 밑에 숨은 진무립이 매섭게 눈을 빛냈다.
운화결을 향한 백화무단원의 시선이 처음과는 사뭇 달라진 듯하다.
그렇다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그러나 진무립의 계획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대로 쉽게 보내줄 것 같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