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62)
◈ 262화. 출발합니다
사통팔달의 요지인 정주의 한낮이 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봄날과 어울리지 않는 검은 장포에 죽립을 눌러쓴 사내가 복잡한 거리에 접어들었다.
‘남문에서 다섯 번째 골목.’
질끈 묶은 백발을 죽립에 감춘 사내는 검존 성유기였다.
골목을 헤아리며 인파를 비집고 나아간 성유기는 정확히 다섯 번째 골목에 접어들었다.
장정 셋이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좁은 골목.
정확히 스무 걸음을 나아가니 우측 담장에 작은 구멍이 보인다.
밀문이 적힌 종이를 돌돌 말아 담장에 넣은 성유기는 그대로 골목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다시 거리에 접어든 성유기의 귀로 나직한 전음이 파고들었다.
운화결에게만 가르쳐준 밀문을 적어왔으니 당연한 추측이다.
성유기는 죽립을 내리며 작게 끄덕였다.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시오.]골목에 접어들자 마침내 등 뒤로 따라붙는 시선이 느껴진다.
[오른쪽 담장을 넘으시오.]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유기의 신형이 골목에서 사라졌다.
아무도 살지 않는 작은 집의 앞뜰에 내려서자 두건을 눌러쓴 험상궂은 사내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복호채 출신 조윤이 성유기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당신은 누구요?”
운화결이 아니라 다른 사내가 나타났으니 경계할 수밖에 없다.
성유기가 말했다.
“그런 걸 설명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복령천에서 무당산을 지우기 위해 운화결을 파견했다.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방도를 찾아야 한다.”
성유기는 오는 길에 사태를 간략하게 요약한 종이를 내밀었다.
내용을 살핀 조윤이 미간을 좁혔다.
‘운화결의 충성심 시험?’
충분히 있을 만한 얘기다.
무림맹이 태동하려는 이 시기에 무당이라는 상징적인 방파가 무너진다면 시작부터 잡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하루만 기다려주시오. 답을 받아오겠소.”
정주 동쪽의 개봉까지는 쉬지 않고 달리면 몇 시진 걸리지 않는다.
조윤은 대답조차 듣지 않고 담을 넘어 사라졌다.
* * *
개봉의 홍월루.
수문화와 화명이 마주 앉은 가운데 활짝 열린 창문으로 은은한 노을이 운치 있게 스며든다.
화명이 말했다.
“우선은 산동의 제남이로군요.”
수문화가 술잔을 들이켜며 말했다.
“지리적으로 개봉에서 가까우니 다른 곳보다 관리가 수월할 겁니다. 첫 지점을 세울 장소로는 나쁘지 않습니다.”
천하 각지에 홍월루의 지점을 세우기 위한 준비는 착실하게 진행 중이었다.
화명의 눈이 장부를 꼼꼼하게 살펴 간다.
‘산동 무림은 상천에게 호의적이지. 이들과 손을 잡는 건 내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올 기회야.’
그뿐 아니라 머나먼 사천까지도 진무립에게 우호적이다.
천하상단에 선을 대기 위한 이들의 목적을 모르는 건 아니었으나 자신의 꿈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화명의 생각은 바로 수문화의 노림수이기도 했다.
‘홍월루를 명실상부 천하제일로 인정받을 기회다. 지부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천하상단과 손을 잡을 수 있다면 본 천의 가족들이 풍족하게 생활할 수 있겠지.’
둘 다 말은 하지 않을 뿐 서로의 속내를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계획이 잡음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이다.
제남 지점을 위한 논의가 마무리될 무렵, 호위 정이상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총사.”
“무슨 일이야?”
“잠시 가보셔야겠습니다.”
정이상의 표정이 평소답지 않게 다급하다.
화명이 웃으며 손을 들었다.
“급한 일인 듯합니다. 상행이 준비되면 다시 연락을 드릴 테니 가보시지요.”
“감사합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갑니다.”
가볍게 예를 갖춘 수문화가 복도로 나왔다.
“무슨 일이야?”
주변을 살핀 정이상은 즉시 전음을 보냈다.
[운화결 측에서 사람을 보내왔답니다.]수문화의 눈이 살짝 커진다.
[본인이 아니라 사람을 보내?] [예. 운화결에게만 알려준 밀문을 적어온 걸 보면 그가 보낸 건 맞는 모양입니다.]빠르게 홍월루를 나선 수문화가 대기 중인 마차에 올랐다.
“총사를 뵙습니다.”
안에서 기다리던 조윤이 빠르게 예를 갖춘다.
“정주에서 왔느냐?”
“예.”
조윤은 즉시 품에서 성유기가 준 서신을 꺼냈다.
‘운화결이 백화무단 열 명과 함께 무당파를 멸하러 가고 있다고?’
무당파를 불태우고 금성표국의 깃발을 꽂아라.
이것은 운화결의 변절 여부를 파악하고 이쪽의 대응을 지켜보기 위함이 분명하다.
서신을 재차 꼼꼼히 살핀 수문화가 정이상에게 말했다.
“주군께서는?”
“아마 지금쯤 중원에 들어서지 않으셨을까요?”
수문화는 작게 끄덕이며 재차 물었다.
“임교영은 어떻게 지내고 있지?”
“평소와 다를 바 없습니다. 총사의 지시대로 이따금 지여령이 면사를 쓰고 장을 보러 나가긴 하나 별다른 행동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상천이 자신들을 방관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상은 달랐다.
수문화는 안가 주변의 길목에 집까지 구입해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정이상. 당분간 네가 직접 감시를 맡아라. 외부인은 떠돌이 행상조차도 안가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정이상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럼 총사의 호위는 누가 합니까?”
“놀고먹는 놈들이 있잖아.”
“우리 무인 중에 놀고먹는 무인이 누가 있습니까?”
상천팔기는 각기 임무를 받고 맹을 떠난 상태.
백하진과 한천유는 각기 부하들을 데리고 폐관에 들었으며 육군명과 유대하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무공에 미친 사람처럼 지하연무장에서 나올 줄을 몰랐다.
“그놈들 말이다. 태산표국의 살아남은 두 놈.”
부상에서 막 회복한 악계화와 자영을 말함이었다.
“아!”
“그만큼 배려해줬으면 밥값은 해야지. 가서 두 녀석을 소환하고 너는 안가로 가라.”
“알겠습니다.”
마차를 나선 정이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밖을 살핀 수문화가 조윤에게 물었다.
“이걸 가져온 자는 누구냐?”
“왼팔이 없는 자인데 죽립을 쓰고 있어 인상착의까지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검을 들고 있었습니다.”
“왼팔이 없는 검수?”
“기다리라고 했으니 지금 가시면 만나볼 수 있을 겁니다.”
“잘했다.”
수문화는 악계화와 자영을 기다리며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대체 누굴까?’
아무리 생각해도 적지에 운화결과 함께할 인물은 떠오르지 않았다.
‘어쨌든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무당을 이대로 둘 수는 없다. 속히 방도를 찾아야 한다.’
일각이 지나자 빠르게 접근하는 묵직한 기운이 감지됐다.
수문화는 마차 문을 열고 나섰다.
“빨리 왔군.”
“전투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악계화가 주변을 둘러보며 영문 모를 소리를 한다.
수문화가 물었다.
“무슨 전투?”
그들을 데려온 정이상이 슬며시 돌아섰다.
“전 그럼 임무 때문에 이만.”
호위를 하라고 하면 분명 설명이 길어질 터, 복령천이 쳐들어왔다는 핑계로 이들을 꾀어낸 것이다.
정이상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수문화가 말했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내 호위다. 따라와라.”
자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호위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먹여주고 재워주는 게 설마 공짜라고 생각했나? 밥값은 하란 말이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문화와 조윤이 지면을 박차고 서문으로 향했다.
허탈하게 서로를 쳐다본 두 사람은 마지 못해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 * *
텅 빈 폐가의 벽에 기대앉은 성유기가 하늘을 쳐다보며 시간을 가늠했다.
‘곧 올 때가 됐는데.’
성유기는 나직이 숨을 내쉬며 초조함을 달랬다.
운화결이 조금만 시간을 끈다면 늦지 않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급할 것 없다.’
하늘에서 시선을 거둔 그가 죽립으로 얼굴을 가릴 때, 수문화 일행이 담장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대인가?”
자리에서 일어난 성유기가 죽립 틈새로 수문화를 바라본다.
‘상천의 총사인가.’
성유기는 천천히 죽립을 벗었다.
죽립 아래로 드러난 새하얀 백발, 허전한 왼쪽 소매를 발견한 악계화가 눈을 부릅떴다.
“당신은 설마 검존?”
만난 적은 없으나 인상착의에 대해 다른 팔존에게 들은 기억이 있었다.
악계화가 자신을 알아보자 성유기가 미간을 좁혔다.
“누구냐?”
“태산표국의 대표두 악계화다. 당신, 정말 검존이란 말인가?”
이렇게 된 마당에 부정하기도 어렵다.
성유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장내에 무거운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수문화가 웃었다.
“이거 재미있군.”
운화결의 부탁으로 왔다는 건 그 역시 배신자라는 것과도 같다.
아니면 자신들을 속이기 위한 함정이거나.
수문화가 물었다.
“당신이 왜 운화결의 부탁을 받고 움직이는 거지?”
“일단은 복령천을 무너뜨리기 위함이라고 해두겠다. 그래서 무당을 구하고 운화결을 살릴 방도는 찾았나?”
수문화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있다.”
“잘됐군. 그럼 난 여기서 돌아가지.”
“잠깐.”
“뭔가?”
수문화는 마치 속내를 꿰뚫어 보듯 성유기의 눈을 바라보며 웃었다.
“이대로 보낼 순 없지. 이번 일, 당신이 조금 도와줘야겠어.”
* * *
끼이익.
맑게 갠 하늘에 시꺼먼 흑조의 울음소리가 길게 울려 퍼진다.
드넓게 펼쳐진 평야.
관도 위를 거침없이 내달리던 진무립 일행의 시선이 일제히 하늘로 향했다.
탁소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저게 무슨 새지?”
소걸개가 마차 창문을 열고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흑조라는 겁니다. 상천의 전서구죠.”
“아하!”
알았다는 듯 손뼉을 친 탁소혜가 눈을 흘기며 물었다.
“근데 넌 왜 마차를 타고 달리는 거야?”
“먹는 걸 타고 다니는 거지가 어딨어요?”
“…….”
고고한 자태로 원을 그리던 흑조가 서진환을 발견하고 빠르게 하강했다.
“총사께서 보내셨구나.”
달리는 말 위에서, 흑조를 가볍게 받아든 서진환이 전통을 열었다.
“수고했다.”
흑조의 등을 가볍게 두드린 서진환은 그대로 말을 몰아 진무립의 마차에 붙였다.
“주군.”
창문이 열리며 진무립이 고개를 내민다.
“무슨 일이냐?”
“총사께서 서신을 보내셨습니다.”
“문화가?”
서신을 받아든 진무립은 내용을 확인하기 무섭게 문을 열었다.
“잠시 다녀올 곳이 있다. 마차를 세우지 말고 개봉까지 달리는 거다.”
“속하가 따르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무서운 사람과 함께 갈 테니까.”
진무립의 시선이 단소룡의 마차에 닿는다.
당금 무림 두 명의 절대자가 함께 간다면 서진환도 안심할 수 있다.
“알겠습니다. 이대로 속도를 유지하겠습니다.”
“그래. 개봉에서 보자.”
문을 잡고 지붕에 사뿐히 올라선 진무립이 훌쩍 뛰어올라 단소룡의 마차로 옮겨간다.
뒤따라 나온 단려화도 진무립의 뒤를 따랐다.
지붕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화윤이 창문을 열고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영주님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을 열고 나온 단소룡이 지붕에 올라선다.
“내게 부탁이라고?”
진무립이 가볍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
“잠시 저와 함께 무당에 다녀와야겠습니다.”
“그야 어렵지 않지. 그런데 말이다.”
단소룡의 시선이 그 뒤에 선 딸에게 닿는다.
“넌 왜 거기 서 있는 것이냐?”
단려화가 생글생글 웃었다.
“바늘 가는 데 실이 안 가나요.”
단소룡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불거진다.
“……그 바늘 부숴버릴까.”
중간에 낀 진무립이 한숨을 삼키며 말했다.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나머지는 가면서 설명하겠습니다.”
“이대로 우리끼리 가자는 말이냐?”
“예. 근방에 대별채의 부하들이 있습니다.”
송조광의 대별채는 무당산에서 사흘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다.
수문화가 연락을 취했다면 그들도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을 터.
손이 필요하다면 그들을 이용하면 된다.
“그러지.”
단소룡이 고개를 끄덕일 때 화윤의 신형이 지붕으로 솟구쳤다.
“그럼 나도 함께 가야겠군.”
“네가?”
화윤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바늘 가는 데 실이 빠질 순 없지.”
조금 전 단려화가 했던 말이다.
단소룡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지는 가운데 진무립은 지체 없이 지붕을 박찼다.
“출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