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61)
◈ 261화. 운화결과 성유기
상부에서 믿지 못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운화결이 정말 배신자이거나.
아니면 그런 조짐을 보았다거나.
[어디로 가지?]운화결의 눈썹이 묘하게 꿈틀거린다.
‘왜 자꾸 전음으로 묻는 거냐?’
무인들이 잠을 자는 시각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다들 일어나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운화결은 귀찮은 듯 대꾸했다.
[무당산이오. 더 이상 묻지 마시오.]성유기의 두 눈이 빠르게 주변을 살핀다.
조금 전 밖에서 만난 양형이라는 자는 임무 내용을 발설하기 어렵다고 했는데 운화결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
이들이 정상적으로 소통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이제 어쩐다.’
이제 운화결이 진짜 다른 속내를 품고 돌아왔는지, 아니면 충실하게 임무를 이행할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
만일 전자라면 복령천의 야욕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자신의 행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생각해라. 성유기.’
섣불리 접근했다가 운화결이 배신자가 아니라면 되려 자신이 곤란해진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좀처럼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사이 식사 준비를 마친 무인들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노존, 운공. 식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운화결은 눈도 뜨지 않은 채 대꾸했다.
“생각 없다.”
성유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지.”
일부가 철저하게 외곽에서 번을 서는 가운데 관제묘의 앞마당에서 조용한 식사가 이어진다.
차린 것이라곤 따뜻한 물과 향신료 없는 육포에 말린 버섯이 전부.
냄새까지 철저하게 차단해 흔적을 남기지 않고자 하는 것이다.
식사가 끝나자 중천에 떠오른 해가 천천히 서산을 향해 기울어갔다.
정리를 마친 백화무단원들은 다시 잠을 청한다.
장고 끝에 한 가지 좋은 생각을 떠올린 성유기가 주변을 돌아본다.
‘이 정도면 괜찮을 거다.’
더는 망설일 시간이 없다.
그는 즉시 전음을 보냈다.
[내가 무당을 지워줄까?]만일 운화결이 배신자가 아닐지라도 이런 질문이라면 자신의 속내를 들킬 염려가 없다.
지금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최상의 질문인 것이다.
순간 운화결의 미간에 짙은 주름이 패였다.
‘대체 무슨 소리냐?’
갑자기 은밀하게 전음을 걸어오더니 임무를 대신해주겠다고 한다.
유심히 운화결의 반응을 살피던 성유기는 재차 전음을 보냈다.
[원한다면 내가 무당을 지워주겠다.]운화결의 눈동자가 빠르게 백화무단원들을 살핀다.
휴식을 취하는 그들은 이따금 운화결을 살피긴 했으나 크게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운화결은 손으로 얼굴을 매만지는 척 전음을 보냈다.
[내게 이러는 이유가 뭐요?]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라. 내가 도와줄 수 있으니까.]애매하면서도 선은 넘지 않는 교묘한 말이다.
성유기는 지금 최대한 의문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러자 운화결의 머리가 복잡해진다.
‘날 돕겠다고?’
마치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다는 것처럼 느껴지는 대답이다.
‘설마 검존도 나와 같은 처지인가?’
굳이 여기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라면 그럴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상부의 시험이라면 섣불리 대답할 수 없는 문제다.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공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절대 먼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수 없는 대화.
시간이 어색한 공기와 함께 빠르게 흘러가며 어느덧 노을빛이 관제묘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밤이 오면 이들은 떠날 것이다.
누군가는 먼저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
그리고 먼저 결심한 쪽은 운화결이었다.
‘어차피 무당을 내 손으로 지우면 교영의 곁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제아무리 세작의 임무를 수행 중이라지만 넘어선 안 될 선이 있다.
무당을 지우는 것은 선을 넘는 행위.
만일 진무립에게 소식을 전할 수만 있다면 위기를 모면할 방법이 있겠지만 어디로 가는지,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건 불가능하다.
어쩌면 여기서 성유기와 만난 것은 둘도 없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운화결은 모험을 시작했다.
[진심으로 날 돕겠다는 것이오?]자신의 속내를 알아봐 주길 바라는 눈치다.
‘역시.’
그의 의도를 알아챈 성유기는 돌리지 않고 말했다.
[시험을 받는 중이겠지.] [그렇소.] [임무는?]대화에 물꼬가 트이자 망설임이 사라진다.
[무당산을 불태우고 정상에 금성표국의 깃발을 내걸라고 했소.] [네 뒤에 있는 자가 누구냐. 솔직히 말해야 내가 널 도울 수 있다.]진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시작한 이상 돌아갈 길은 없었다.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을 살피기 시작한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
[상천의 천주 진무립.]순간 성유기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광룡.’
자신이 단소룡에게 소식을 전한 것처럼, 운화결은 진무립과 선이 닿아있다.
적지에서 마주친 기묘한 인연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살려야 한다.’
자신과 운화결은 당금 무림 최정상에 서 있는 두 명의 절대자와 선이 닿아있다.
복령천의 야욕을 뿌리 뽑자면 이 기회를 살려야 한다.
[여긴 산서성 운요산이다. 무당산까지는 빨라도 열흘 남짓 걸리겠지. 최대한 시간을 끌어라. 방도를 찾아보겠다.] [정말 날 돕겠다면 상천의 수뇌와 접촉해야 하오.]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진무립이라면 분명 방도를 찾아낼 것이다.
운화결은 빠르게 상천과 접촉할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때 누군가 일어나며 말했다.
“운공. 채비하셔야 합니다.”
“언제든 갈 수 있다.”
칠 조장 구홍이 슬쩍 문을 열어 하늘을 쳐다본다.
‘일다경이면 노을도 사라지겠군.’
백화무단원들이 짐을 정리해 시립한 가운데 성유기가 운화결에게 빠르게 전음했다.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성유기는 이어서 생각해둔 바를 빠르게 설명했다.
운화결이 눈짓으로 답하는 순간 성유기가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지?”
구홍이 대답을 거부하려는 찰나, 운화결이 성유기의 전언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무당을 지우러 가오. 해도 졌으니 그만 출발하지.”
성유기의 입가에 기묘한 미소가 떠오른다.
“후후후. 무당이라. 그거 재밌겠군.”
순간 구홍의 이마에 깊은 고랑이 패였다.
그간 운화결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았으니 그를 탓할 수도 없었다.
‘검존.’
팔존 중 가장 강한 인물이면서도 가장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허나 엎지른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는 일.
그와 더는 얽히고 싶지 않았다.
“운공. 그만 가시지요.”
활짝 열린 문 너머로 은은한 달빛이 쏟아진다.
성유기가 웃으며 말했다.
“일간 다시 만나지.”
마지막 말과 미소까지도 묘하게 의미심장하다.
구홍은 불편한 내심을 감추며 예를 갖췄다.
“살펴 가십시오. 노존.”
운화결 일행이 떠난 뒤, 주변을 은밀히 살핀 성유기는 밤이 내린 운요산을 내려갔다.
“후후.”
운화결과의 대화를 떠올리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신룡 단소룡에게 당한 자신.
광룡 진무립에게 당한 운화결.
두 사람 다 본의 아니게 대적했던 적의 도움을 바라는 현실이 너무도 공교로운 것이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그들보다 믿음직스러운 사람은 없다.
“어떤 답을 줄지 궁금해지는군.”
신법을 전개한 성유기가 순식간에 숲속에서 사라졌다.
* * *
장강을 넘어 북상하던 진무립 일행이 하남의 경계를 넘었다.
마침내 중원에 들어선 것이다.
호광성과 맞닿아 있는 신양현 인근.
부슬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여섯 대의 마차가 산을 낀 남만호(南湾湖)를 앞에 두고 멈춰섰다.
먹구름 가득한 밤하늘을 본 서진환이 진무립의 마차로 다가갔다.
“마을까지 두 시진이 걸립니다. 다만 날씨가 좋지 않아 마차가 제대로 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호수를 끼고 이어지는 길이라 비가 내리면 진흙이 마차 바퀴에 엉겨 붙을 것이다.
“서두를 것 없다. 오늘은 여기서 쉬어가지.”
“준비하겠습니다.”
은무대가 숙영 준비를 시작하자 화령의 젊은 고수들도 마차에서 내린다.
섬을 떠나 이곳에 오기까지 대략 보름.
대화를 섞은 적은 없으나 말하지 않아도 쉬고 움직일 때 자연스럽게 뒤섞인다.
동료들을 둘러본 천진서가 단소룡의 마차로 달려갔다.
“영주님. 숙영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닫힌 문밖에서 예를 갖추는 태도가 사뭇 공손하다.
그만큼 단소룡을 존경하는 것이다.
“알았다.”
단소룡을 따라 마차에서 내린 화윤이 비 내리는 호수를 눈에 담고 물었다.
“중원은 오랜만이지?”
천하대전이 끝난 뒤로 중원에 올 일이 없던 단소룡이다.
“이제야 좀 실감이 난다.”
어깨를 나란히 한 두 사람은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호숫가를 걸었다.
단소룡이 나직이 읊조렸다.
“세월 참 빠르군. 이제 곧 삼십 년이 아닌가.”
화윤이 웃으며 말했다.
“평화가 제법 길긴 했어.”
“이 또한 무림이겠지.”
단소룡이라는 절대자의 존재가 있어 그간 무림은 큰 충돌을 피하며 평화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
중원에 발을 디딘 두 사람은 전쟁이 가까워졌음을 새삼 다시 느꼈다.
그들이 천천히 호숫가를 둘러보고 있을 때, 빠르게 세워지는 막사를 둘러본 진무립이 그답지 않게 한숨을 내쉬는 당천을 발견했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나?”
나무 밑에 우두커니 선 당천은 진무립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겠군.”
“뭘 모르겠다는 거냐.”
“그냥 마음이 좀 들뜬다고 해야 할까.”
문득 자신의 말이 우습게 느껴졌는지 당천이 실소를 흘렸다.
“신경 쓰지 마라. 네가 신경 써야 하는 것은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뿐이다.”
“물론 그럴 생각이다.”
당천은 나직한 한숨에 복잡한 마음을 흘려보냈다.
진무립이 그의 곁에 등을 기댔다.
‘평소답지 않군.’
언제나 당당하던 당천의 어깨가 오늘따라 유독 무겁게 보인다.
당천이 화제를 돌렸다.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
“우선 맹을 창설하고 조직을 빠르게 재정비한다.”
“그건 당연한 일이고.”
진무립을 잘 아는 당천은 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다는 걸 파악하고 있었다.
“너라면 복령천을 끝낼 확실한 계획을 세워두고 있을 테지.”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냐?”
“내가 아는 사천의 태종무사는 그런 무인이니까.”
누군가 자신을 믿어준다는 것은 기꺼운 일이다.
진무립은 호수를 바라보는 그와 시선을 공유했다.
“개봉에 도착할 때까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동안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말이야.”
운화결이 연락을 취해온다면, 그의 연락을 확인하고 다음 계획을 정해야 한다.
복령천의 전력을 먼저 갉아낼 것인지, 아니면 기다렸다가 마교와의 회동을 덮칠 것인지.
후자일 경우, 자신이 직접 천산으로 가서 복령천이 파둔 함정을 확인해야 할 수도 있다.
이번엔 진무립이 물었다.
“사천에선 누가 오는 거지?”
“아마도 아버지께서 직접 움직이지 않으실까.”
공위맹주인 초평천은 섣불리 움직일 위치가 아니다.
이 시기에 중소방파의 수장들이 움직이는 것도 위험하다.
그렇다면 청성과 아미, 당가와 점창의 대표 중 하나를 사신으로 보내올 것인데 그중 당조의 나이가 가장 젊었다.
“중원에서 부자 상봉인가.”
숙부나 조부님을 다시 만나는 것도 기대되는 일이었으나 전과 달라진 당가 부자가 만나는 그림도 재미있을 것 같다.
당천이 나무 밖으로 걸어나가며 하늘을 쳐다본다.
“비가 그쳤군.”
하늘을 가득 채운 먹구름이 서서히 물러나며 무수한 별빛이 아름답게 쏟아진다.
당천이 물었다.
“전쟁이 끝나면…… 나는 사천으로 돌아가야겠지.”
진무립이 피식 웃는다.
“새삼스러운 얘길.”
“너는 어떻게 할 거냐?”
진무립의 신분은 상천의 천주이자 마도림의 소공자.
초유림이 마도림을 이어받는 그림은 왠지 그려지지 않는다.
“벌써 전쟁이 끝난 뒤를 말하긴 일러.”
어느덧 식사 준비가 끝났는지 멀리서 단려화가 손을 흔든다.
“식사요!”
발을 내디딘 진무립이 당천의 어깨를 잡았다.
“그건 이 전쟁에 승리한 뒤에 말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