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72)
◈ 272화. 서안으로
당천이 동생의 손에서 만리추종향을 가져갔다.
“분명 염하수에도 지워지지 않는다고 했었지.”
염하수는 당명도 알고 있다.
교활한 놈의 성격을 봤을 때 돌아간 즉시 염하수로 몸을 씻었을 것이다.
만일 그것에도 지워지지 않는 만리추종향이라면 그들의 위치를 잡아낼 수 있다.
당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시험했을 땐 분명 염하수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확인해보마.”
당천은 품에서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작은 병을 꺼냈다.
당소소가 탁자 위의 물을 잔에 채운다.
당천은 마개를 열어 잔에 염하수 두 방울을 떨궜다.
“무립.”
“그래.”
진무립은 소매를 걷어 팔을 내밀었다.
당우는 극도로 소량의 만리추종향을 진무립의 팔에 살짝 묻혔다.
단려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게 만리추종향이에요?”
기본적으로 만리추종향은 무색무취를 추구한다.
하지만 만드는 이에 따라 약간의 흔적이 남을 수도 있다.
하여 진정한 고수들은 만리추종향의 흔적을 느끼고 추격을 뿌리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떠나는 운화결에게 섣불리 만리추종향을 묻히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진무립에게 묻힌 만리추종향은 남들보다 예리한 감각을 가진 단려화조차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렇소.”
당천은 작게 대답하며 진무립의 팔을 염하수로 씻었다.
“숨어봐라.”
진무립은 즉시 음혼귀영공을 시전해 허공에 녹아들었다.
당우는 당천의 손에 있는 주머니를 가져가 입안에 살짝 흘렸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진설란이 당소소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원래 만리추종향을 저렇게 사용하는 거예요?”
만리추종향은 제조할 때 가루에 만드는 이의 내력을 불어넣어 만든다.
그 뒤에 내공을 이용해 추적하는 게 기본이었다.
“보통은 저렇게 사용하지 않는데…….”
그사이 지그시 눈 감은 당우는 내력을 끌어올렸다.
‘느껴진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기에 진무립의 위치가 매우 선명하게 느껴졌다.
탓.
훌쩍 뛰어오른 당우는 정확히 대들보 위에 숨은 진무립을 발견했다.
적잖이 놀란 진무립이 대들보에서 내려왔다.
“이거 대단하군.”
살짝 커진 진무립의 두 눈이 희열에 찬 당천과 마주친다.
“그래.”
주먹을 움켜쥔 당천의 눈동자에 섬뜩한 빛이 스쳐 갔다.
“이 전쟁. 잡을 수 있다.”
* * *
어둠이 가시며 동쪽 하늘이 서서히 밝아온다.
먹구름 가득하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하다.
새벽이슬 가득한 장평문의 정문.
조용히 문을 나선 진무립 일행이 장평문주 안여문에게 예를 갖췄다.
“덕분에 푹 쉬었습니다. 여기서 있었던 이야기는…….”
진무립의 말에 안여문은 단호히 대답했다.
“물론 내 목이 떨어지더라도 발설하는 일은 없을 것이오.”
“감사합니다.”
안여문이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며칠 더 쉬어 가라고 잡고 싶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구려. 우리도 내일쯤 식솔을 모두 내보내고 떠날 생각이라오.”
진무립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 아직 모르고 계셨구려. 맹에서 공문을 보내왔다오.”
그는 초평천이 보내온 공문의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무공을 모르는 식솔을 민초의 틈에 스며들 게 만들고 사천의 힘을 한자리에 모은다.
간략한 설명이 끝나자 진무립은 내심 감탄했다.
‘그렇군. 폐쇄적인 사천 무림의 특성이 빛을 발하는 날도 오는군.’
하루에도 수십 개의 방파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게 바로 무림이다.
그러나 사천 무림만큼은 대다수의 방파가 오랜 세월 터를 잡고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이곳 사천이기에 문제없이 실행할 수 있는 계책이다.
“그럼 무운을 빌겠소.”
마지막 인사를 건넨 안여문이 떠날 준비를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마을을 나서자 진무립이 말했다.
“맹주께서 대담한 결정을 내리셨군.”
당소소가 말했다.
“지랑 현진학의 조언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맹의 무인들 사이에 퍼지는 모양이에요.”
진무립은 의외라는 듯 말했다.
“흑사칠랑이?”
흑사칠랑의 임무는 마도림을 지키는 것.
굳이 그들이 골치 아픈 일에 나설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네. 맹주께서 지랑의 지혜를 얻고자 직접 몸을 굽히셨다는 이야기도 있고……. 저도 이곳에 사신으로 온 무인에게 대략적으로 듣기만 했어요.”
“음.”
자신과 적모개가 떠난 지금 조부의 곁에는 계책을 세워줄 만한 인물이 없다.
만일 현진학이 사천을 돕는다면 큰 힘이 될 터.
공위맹주의 신분으로 낭인에게 몸까지 굽히고 부탁했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초평천은 정말 대단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동남쪽 하늘을 쳐다본 진무립이 슬쩍 웃으며 말했다.
“그럼 여기서 헤어져야겠군.”
당소소는 원방대와 함께 남은 일을 마무리하러, 당천은 공위맹에 들러 무림맹의 서신을 전한 뒤 당가로 가게 될 것이다.
진무립은 여정을 바꿔 당우와 함께 만리추종향의 흔적을 쫓을 생각이었다.
당우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정말 그들이 북쪽에 있을까요?”
제아무리 만리추종향일지라도 정말 만 리 밖의 상대를 추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이백 리 안쪽까지는 접어들어야 본격적인 추적에 나설 수 있다.
이곳에선 아무리 내력을 끌어올려도 당명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었다.
진무립이 말했다.
“그래. 적어도 사천과 강남은 아닐 거다. 아마도 섬서성이나 그 위일 확률이 높아.”
자신들의 존재를 극비에 붙이는 그들의 조심성을 봤을 때, 등잔 밑이 어둡다는 통설을 이용할 확률은 낮다.
혈교를 물리치고 끈끈하게 뭉친 사천 무림과 견고한 강남 무림에 터를 잡기보다는 세간의 눈에서 완벽하게 숨을 수 있는 곳에 은신처를 마련했을 가능성이 크다.
당조를 습격하고 무당산을 불태운 것을 보면 남만이나 복건은 확실하게 아닐 터.
진무립은 북쪽에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우선 서안으로 간다.”
서안에는 천산의 정보를 수집하고 감시를 지휘하는 개방의 소방주 소걸개가 있다.
진무립은 복령천의 근거지를 파악할 실마리를 잡은 이상, 천산에 직접 가는 대신 소걸개와 만나 그들의 동태를 확인할 생각이었다.
당우는 긴장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소공자.”
단려화가 당우를 바라보며 자신 있게 웃었다.
“무서워요? 이 누님도 함께 가니까 아무것도 걱정할 것 없어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시원하게 웃은 당우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더 무서운 건데.’
* * *
하루 간격으로 쏟아지고 그치길 반복하던 비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여름의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는 심산유곡의 깊숙한 분지.
절벽에 툭 튀어나온 바위에 올라선 운화결은 사방을 둘러보며 미간을 좁혔다.
‘여긴 또 어디냐?’
이전에 머물던 근거지는 집이라도 세웠기에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긴 또 다르다.
새로운 은신처가 된 절벽의 동굴들은 나무로 절묘하게 입구를 가려 밖에서 보기엔 자연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대체 이런 곳을 어떻게 찾아내는 거지?’
수련은 안 하고 숨을 곳만 찾아다닌 것 같은 기분이다.
“어이!”
묵직한 외침에 고개를 돌리니 절벽 밑에서 황천패가 히죽 웃고 있었다.
“술 한잔하자!”
운화결은 제자리에서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생각이 없습니다.”
“칫. 재미없는 놈. 싫으면 관둬라.”
손을 휘적거린 황천패가 절벽 밑으로 사라진다.
도무지 속내를 파악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럴 땐 한없이 가벼워 보이면서도 이따금 번뜩이는 눈빛은 마치 산중의 맹수를 연상케 한다.
몸을 돌린 운화결이 자신의 동굴로 들어갈 때, 처소에 들어선 황천패는 약환이 준비한 술상과 마주했다.
“술은 노복과 함께하시지요. 킬킬!”
황천패는 그와 마주 앉으며 슬쩍 눈을 흘겼다.
“영감. 알지?”
“물론입지요. 취하면 곱게 들어가서 자겠습니다.”
황천패가 눈을 부라리며 엄포를 놓았다.
“또 싸돌아다니면 그땐 정말 뒈질 줄 알어.”
“킬킬킬! 알겠습니다.”
약환은 공손히 황천패의 잔을 채웠다.
잔을 단숨에 들이켠 황천패가 시원한 탄성을 내뱉었다.
“크으! 좋군. 영감도 한잔 받어.”
향긋한 주향에 기분이 좋아진 약환이 히죽 웃으며 굽신거렸다.
“아이구. 황송합니다요.”
약환이 잔을 비우자 황천패가 물었다.
“소화산은?”
“진법을 완벽하게 펼쳤습니다요. 약초꾼이라면 모를까 무공을 익힌 무인이 들어선다면 바로 감지할 수 있습지요.”
운화결이 무당산에 다녀올 때, 약환은 소화산에 가서 진법을 준비한 상태였다.
성유기에게 알려준 날짜는 계추월 초닷새.
그 전에 누군가 소화산의 진법에 들어선다면 성유기의 배신은 확실한 것이 된다.
황천패가 말린 고기를 우적우적 씹으며 물었다.
“검존은 내가 직접 데려온 인간이야. 무당까지 불태웠는데도 못 미더워하면 내가 뭐가 돼?”
“신중해서 나쁠 건 없지 않습니까? 킬킬킬.”
“만약에 누군가 소화산에 들어선다면?”
술잔을 입에 댄 약환의 눈동자가 시퍼런 빛을 토해낸다.
“그때는 검존의 목을 치고 다음 계책으로 넘어가야겠지요.”
“흠. 그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긴 한데.”
약환이 준비한 두 번째 계책도 흠잡을 것 없이 훌륭했다.
다만 약환이 계속해서 성유기를 의심하니 왠지 찜찜한 것이다.
잔을 소리 나게 내려둔 약환이 안주를 집어 먹으며 말했다.
“배신이 아니면 좋고, 그래도 좋고. 무슨 일이 벌어지든 우리의 대계를 막을 수는 없을 겁니다요. 킬킬.”
피에 젖은 천하.
머지않아 두 손으로 거머쥘 천하가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 * *
동료들과 헤어진 진무립 일행은 빠르게 섬서성에 진입했다.
중원과 서역의 관문 역할을 하는 섬서성은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상단이 드나드는 상행의 요지였다.
마을에서 마차를 구입한 이들은 상인으로 위장해 서안으로 가는 관도에 올랐다.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단려화가 슬쩍 창밖을 내다보며 물었다.
“서안에 그들의 눈이 있을까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우리 얼굴을 알아보는 자들이 있을지 모르니 행동에 각별히 주의해야해.”
언제나 면사나 복면을 착용한 단려화와 달리 진무립의 잘생긴 얼굴은 만천하가 알고 있다.
단려화에게 배운 역용술로 인상을 조금 바꿀 순 있었으나 워낙 특출난 외모를 가진 터라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막을 수 없다.
더불어 당가의 삼공자인 당우 또한 알아보는 상인이 있을지 모른다.
진무립이 복면을 착용하고 검까지 패용한 당우에게 말했다.
“넌 당분간 내 호위무사다.”
“네. 소공자.”
무겁게 끄덕인 당우는 지그시 눈 감고 만리추종향의 기운을 느끼는 데 집중했다.
* * *
주변을 탐지하며 빠르게 북상하던 진무립 일행이 어느덧 섬서성의 성도, 서안을 목전에 두었다.
성의 서문으로 이어진 길에 수십 대의 마차가 늘어선 채 관병의 검문을 기다린다.
마차가 멈추자 눈을 뜬 당우가 긴 한숨을 토해냈다.
“근방에는 없는 듯합니다.”
진무립이 말했다.
“그리 서두를 것 없다. 시간에 쫓겨서는 될 일도 안 돼. 마음을 느긋하게 가져라.”
진무립의 말에는 왠지 모르게 믿음을 주는 힘이 있다.
마음속 조급함이 옅어지자 당우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예.”
진무립이 단려화에게 말했다.
“분타의 위치는 기억하고 있지?”
그녀는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럼요. 그건 내게 맡겨요.”
그때 슬쩍 문이 열리며 관병이 안을 훑어본다.
얼굴을 가린 섭선을 살랑이는 젊은 공자, 면사를 쓴 여인과 호위로 보이는 무인은 이따금 볼 수 있는 조합이었다.
관병이 문을 닫으며 말했다.
“통과하시오.”
서진환은 가볍게 예를 갖추며 멈췄던 마차를 몰아 성문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