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71)
◈ 271화. 만리추종향
순간 진무립과 당천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친다.
“만리추종향?”
당천은 당우의 어깨를 낚아채며 다그쳤다.
“우야. 그게 무슨 말이냐? 만리추종향이라니? 제대로 설명해 보아라!”
허수아비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던 당우가 갑자기 비 오듯 식은땀을 흘리더니 오한이 든 사람처럼 몸을 떨기 시작했다.
“으으으!”
보다 못한 진무립이 당천의 손을 붙잡았다.
“그만해라.”
지켜보던 진설란과 단려화까지 다가와 당천을 말렸다.
“삼공자에겐 휴식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요. 당소협.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해요.”
“…….”
입술을 질끈 깨문 당천은 천천히 동생의 어깨를 놓았다.
진무립은 혼절한 당우를 안아 들고 조심스럽게 침상에 눕혔다.
“크게 충격받은 사람을 다그치는 건 좋지 않다. 나가자.”
당우를 말없이 바라보던 당천은 이내 문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처마 끝을 타고 흘러내린 빗방울이 당천의 어깨를 차분히 적신다.
마지막으로 나온 진무립이 문을 닫았을 때.
밖에서 기다리던 장평문주 안여문이 황급히 다가와 말했다.
“혹시 삼공자가 무슨 말을 하지 않았소?”
진설란이 답했다.
“만리추종향이라고 했어요.”
“만리추종향이라?”
그때 질퍽이는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누군가 후원의 담장을 훌쩍 뛰어넘었다.
상대를 알아본 여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소저!”
“모두 오랜만에 뵙습니다.”
공손히 예를 갖추는 이는 바로 원방대주 당소소였다.
웃으며 인사하기도, 그렇다고 인상을 쓰고 인사를 나누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진무립이 빗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고생이 많구나.”
“누군가 훌쩍 떠난 덕분이지요.”
정곡을 찌르는 말에 진무립은 그만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당천이 물었다.
“우의 입에서 만리추종향이라는 말이 나왔다. 혹시 아는 바가 있나?”
담장을 넘기 전 만리추종향에 대해 들었던 당소소는 곧장 대답했다.
“소가주가 떠나기 전부터 삼공자는 폐관을 거듭하며 만리추종향을 연구했어요. 염하수(炎河水)로도 씻을 수 없는 독을 만들겠다고 했었거든요.”
“염하수로도 씻을 수 없는 만리추종향이라고?”
당가의 만리추종향은 일반적인 약품으로는 씻어낼 수 없다.
특별한 만리추종향을 개발한 당가에선 연구를 거듭한 끝에 모든 추종향을 씻어낼 수 있는 염하수까지 만들어낸 상태였다.
‘당우가?’
아무리 동생이라지만 믿을 수 없는 말이다.
아니, 동생이기에 믿을 수 없다.
당우가 진무립을 만난 뒤 달라졌다곤 하나 그런 진득하게 한곳에 앉아 무엇을 하리라곤 생각할 수 없던 것이다.
당소소가 말했다.
“삼공자가 그런 말을 했다면 이번 사건과 큰 연관이 있을지도 몰라요.”
진무립이 물었다.
“바로 돌아가야 하나?”
“그건 아니에요.”
“이야기가 길어질 거 같으니 일단 씻고 다시 모이도록 하지.”
먼 길을 쉴 새 없이 달려온 터라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안여문이 말했다.
“그게 좋겠소이다. 대전을 비워두고 기다릴 터이니 씻고 식사를 마친 뒤에 사용하시지요.”
진무립이 절도 있게 포권을 취했다.
“고맙습니다.”
“어서들 가십시다.”
진무립 일행이 안여문의 안내를 따라 후원을 떠났다.
내리는 빗소리만이 처량하게 울려 퍼지는 후원.
적막한 방 안에 홀로 앉은 당우가 반쯤 열린 창밖의 빗줄기를 바라본다.
‘노력하고 있구나. 훌륭하다.’
허공에 그려지는 부친의 따스한 미소가 당천의 옷섶을 촉촉이 적셔간다.
“크흐흑…….”
나직한 흐느낌이 방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온다.
문을 지키고 선 위사는 안쓰러운 마음에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사람이 이렇게 슬프게 울 수도 있는 것인가.’
세상 모든 슬픔을 홀로 짊어진 사람처럼.
분명 우는 것은 당우인데 자신의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온다.
‘조금만 힘내시오. 삼공자. 소가주와 태종무사께서 오셨으니 머지않아 복수를 해낼 수 있을 것이오.’
장평문의 대접은 한 점 부족함도 없을 만큼 완벽했다.
목욕을 마친 그들은 하인이 전해주는 새 옷으로 갈아입은 뒤 모처럼 따뜻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내리는 비가 좀처럼 그칠 줄을 모른다.
어느덧 장평문의 하늘에도 캄캄한 어둠이 도래했다.
처마 밑에 켜진 횃불이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장원.
방에서 나온 진무립 일행은 안여문이 내준 대전에 모였다.
사방의 등잔이 밝은 빛을 흩뿌리는 가운데 진무립이 입을 열었다.
“소소. 현장을 보고 왔다고 들었다.”
“네.”
고개를 끄덕인 당소소는 애써 당천의 눈을 피해 작게 대답했다.
“가주께서는…… 돌아오지 못하세요.”
이미 각오하고 있던 말이다.
당천은 차갑게 머리를 식히며 담담하게 말했다.
“자세히 듣고 싶군.”
“상대의 숫자는 대략 쉰여 명. 가주님 일행은 열이 조금 넘는 숫자였어요. 가주님을 제외한 다른 무인들은 전부 십여 초식을 넘기지 못한 것으로 보여요. 숫자도 숫자지만 그들은 정말 엄청난 힘을 가졌어요.”
당천의 시선이 진무립에게 닿는다.
고개를 끄덕인 진무립의 입술이 무겁게 열린다.
“백화무단.”
“역시 예상대로였다.”
당소소가 영문 모를 얼굴로 묻는다.
“그게 무슨 말이죠? 예상대로라니요?”
진무립이 말했다.
“복령천이라는 자들. 그놈들은 소수로 이뤄진 정예다. 그중 백화무단이라는 자들은 실질적으로 복령천의 유일한 타격대지.”
당천이 그의 말을 이어갔다.
“백화무단의 말단조차 너를 능가하는 무위를 갖고 있다.”
당소소의 두 눈이 거칠게 흔들린다.
자신을 무시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안다.
허언을 내뱉지 않는 당천의 성격을 보면 이 말은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는 정말 엄청난 괴물들이라는 것과도 같다.
당천이 물었다.
“세가의 무인들은 좀 어떻지?”
“동요하지 않도록 맹주님께서 직접 서신을 보내셨어요. 하지만 언제까지 사실을 감출 수 있을지…….”
“감출 필요 없다.”
“네?”
아픔을 속으로 억누른 당천은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모든 사실을 그대로 전해라. 그 뒤에 내가 돌아왔다는 사실도 전해라.”
세가의 기둥을 잃었다는 비보를 먼저 전한 뒤, 의지할 수 있는 새로운 버팀목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한다면 무인들의 동요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진무립은 속으로 미소를 감췄다.
‘이 녀석도 성장하고 있구나.’
처음 만났을 때와 지금의 당천은 마치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당소소 역시 진무립과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가주님께서 소가주를 진공자에게 보낸 것은 옳은 결정이었어.’
진무립이 가볍게 탁자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럼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야겠군.”
가만히 경청하던 단려화가 입을 열었다.
“만리추종향.”
침묵하던 진설란이 생각났다는 듯 눈을 치켜떴다.
“맞아요. 굳이 거기서 그 말을 했다는 건 삼공자가 그것을 적에게 사용했다는 것은 아닐까요?”
진무립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녀석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것인데…….”
“음.”
모두의 입에서 동시에 무거운 침음성이 새어 나왔다.
그것만큼은 강제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탓이다.
그때 누군가 대전의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회의 중에 송구합니다.”
진무립의 뒤에 시립한 서진환이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오?”
후원을 지키던 위사가 움찔하며 예를 갖춘다.
“다, 당공자께서 스스로 일어나셨습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당천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게 정말인가?”
“예. 물을 찾길래 제가 직접 전해드리고 오는 길입니다.”
진무립이 순식간에 문턱을 넘었다.
“가보자.”
정적이 깃든 후원의 별채.
쏴아아-!
달빛조차 가린 먹먹한 하늘에선 쉴 새 없이 비를 쏟아낸다.
창문을 활짝 연 당우의 얼굴이 일렁이는 횃불에 초췌함을 드러냈다.
‘아버지.’
돌이켜 보면 부친에게 제대로 칭찬을 들어본 기억은 그날이 마지막이다.
그나마도 진무립과 만나 정신을 차리지 못했더라면 듣지 못했을 것이다.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정신 못 차리고 보낸 허송세월이 너무도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어둠 속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순식간에 문이 벌컥 열렸다.
“당우.”
눈물로 촉촉한 당우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소공자?”
등불 아래로 걸어오는 이는 바로 진무립이었다.
아까 뭔가를 봤다 싶었는데 그게 착각이 아닌 것이다.
그 뒤로 당천과 당소소, 단려화와 진설란이 들어온다.
침상에서 내려온 당우가 비척비척 일어선다.
“……형님.”
씰룩거리는 당천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자신을 향한 당천의 미소는 부친의 그것보다 희귀하다.
놀란 당우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사이 당천이 물었다.
“몸은 좀 어떠하냐?”
“몸은…… 괜찮습니다.”
아픈 건 육신이 아니라 마음이다.
“다행이구나.”
빙그레 웃은 당천이 천천히 다가와 동생을 부둥켜안았다.
잠시 멈췄던 당우의 눈물이 다시금 쏟아져 내린다.
“크흑…….”
어쩌면 자신은 이 슬픔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구슬픈 흐느낌이 빗소리에 어우러지며 방안에 짙게 깔린다.
여인들이 눈시울을 붉히며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한참을 울던 당우는 이내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형님. 아버지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건 더 이상 생각하지 마라. 네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문 당우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한동안 슬픔의 시간을 보냈다면, 지금부터는 복수의 시간을 맞이할 차례다.
“형님. 흉수는 둘째 형이었습니다.”
“안다.”
두 사람의 대화에 당소소의 눈이 부릅떠진다.
“두, 둘째 공자라고요?”
이중 당명에 대해 모르는 이는 그녀가 유일했다.
밖을 둘러본 진설란이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설명을 시작했다.
“당가의 이공자. 당명의 진짜 정체는 천하삼흉의 일원인 광마였어요. 그리고 지금은 복령천의 하수인이 되어 당가를 노리고 있지요.”
당소소의 고개가 당천을 향해 휙 돌아간다.
“소가주.”
당천은 지그시 눈을 감아 참담한 눈빛을 감췄다.
“알고 있었단 말인가요?”
“광마가 된 놈을 만났을 때, 내 손으로 놈의 가슴에 비수를 쑤셔 넣었다. 절벽 밑으로 떨어진 시신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놈이 다시 나타난 건 나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광마가 당가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공개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천의 손에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으니 굳이 말해 긁어 부스럼 만들 이유도 없었다.
당소소는 복잡한 얼굴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진무립이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그건 나중에 또 이야기할 시간이 있을 거다.”
“……네.”
진무립은 당우의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네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을 때, 분명 우린 네 입에서 만리추종향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건 무슨 의미였나?”
“아!”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당우가 말했다.
“제 무재는 형님만큼 뛰어나지 못합니다. 하여 제가 소공자의 곁에서 함께 싸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고민하다가 독을 연구하게 됐습니다. 새로운 만리추종향도 그때 만든 겁니다.”
두리번거리며 자신의 소지품을 찾은 당우는 침상 밑의 낡은 옷가지를 꺼냈다.
상의의 옷섶을 더듬던 당우가 안에서 손바닥만 한 주머니를 꺼냈다.
“이게 제가 만든 만리추종향입니다. 그리고…….”
하의를 뒤적이던 당우는 그때 던지지 못한 독낭을 꺼냈다.
손에 쥔 독낭을 보는 순간 아버지의 말이 떠오르며 다시금 눈물이 차오른다.
‘독낭에 섞어서 사용하면 보다 쓸모가 다양해질 것이다.’
소매로 눈가를 훔친 당우가 상체를 세우며 독낭을 내밀었다.
“아버지께선 독낭에 만리추종향을 섞어서 사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전 두말없이 그 자리에서 만리추종향을 독낭에 섞었습니다.”
순간 진무립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그래서 놈에게 던졌나?”
당우는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