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78)
◈ 278화. 백지를 깔았다
성유기의 눈빛이 옅은 떨림을 보인다.
“위에서 나를 의심한다고?”
자신은 황천패가 직접 찾아와 초빙한 인물이다.
신룡에 대한 원한 관계도 명확한 자신을 감시한다는 게 좀처럼 이해가 되질 않았다.
“확실하다. 다른 팔존과 다른 일자를 알려준 게 그 증거지.”
태생부터 황천패와 함께한 다른 팔존에겐 일 년의 시간을 알려주고 금제까지 걸어두었다.
운화결은 얼마 전까지 소화산의 존재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의심한다면 금제가 걸리지 않은, 외부에서 영입된 성유기밖에 없다.
미간을 좁힌 성유기는 고민에 빠졌다.
‘설마 내게 미행을 붙였던 것이냐?’
미행을 붙였더라도 크게 의심을 살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단소룡을 만났던 날도 그와 싸운 뒤 퇴각했을 뿐 친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뿐더러 중요한 얘기는 화윤에게 전음으로 했었다.
게다가 그 자리에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면 육감을 가진 단소룡이 모를 리 없다.
‘음.’
감시당한 정황은 없다.
그러나 무당산의 계책을 꾸민 진무립이 헛소리를 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성유기는 고민을 마쳤다.
“네 말대로 위에서 날 의심할 수도 있겠지. 날 찾아온 이유는 그게 끝이냐?”
진무립이 고개를 젓는다.
“난 저들을 내가 만들 판에 끌어들일 생각이다.”
운화결이 말했다.
“천주의 곁에는 약환이라는 군사가 있다. 진법을 펼친 것도, 계획을 세우는 것도 모두 그가 하는 일이지. 쉽지 않을 거다.”
“머리가 좋은 모양이군.”
운화결이 미간을 찌푸렸다.
“당연한 말을.”
진무립이 웃었다.
“무지렁이보다 똑똑한 자를 상대하는 게 도리어 낫지.”
복마전에 들어왔음에도 진무립의 눈빛엔 그 어떤 걱정도, 두려움도 보이지 않는다.
‘겁이 없는 건가? 배짱이 두둑한 것인가?’
성유기가 말했다.
“복령천이 소수정예의 이점을 제대로 활용한다면 화령조차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한 번의 패배가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도 있지. 실패가 두렵지 않은가?”
진무립은 당연하다는 듯 자신 있게 말했다.
“실패를 생각할 시간에 보다 완벽하게 계획을 다듬는 게 낫지. 난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목소리에 깃든 확신은 흔들림이 없다.
두 사람은 왠지 자신들이 진무립의 말에 빨려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운화결이 말했다.
“머지않아 천주도 복귀할 것이다. 차라리 이곳을 급습해 일망타진하는 게 낫지 않겠나?”
진무립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무인을 끌어모아 이곳을 급습할 때까지 기다려준다는 보장도 없고 행여 눈치채고 흩어지면 그게 더 까다롭다. 게다가 이번 전쟁에는 마교까지 얽혀있지.”
이해한 듯 잠시 고개를 끄덕인 운화결이 다시 물었다.
“그럼 어떻게 네가 짠 판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거냐?”
“계추월에 소화산에 들어갈 생각이다.”
“계추월이 아니라 여월에 회동을 가질 수도 있지 않나?”
계추월은 두 달 뒤의 가을.
여월은 겨울의 끝자락이다.
“섣불리 소화산에 들어갔다가 회동 장소가 바뀌면 네 계획이 어긋날 수 있다.”
진무립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소화산을 주시하고 있다는 걸 안다면, 놈들은 무조건 겨울에 소화산에서 회동을 가지려 할 거다. 중요한 건 우리가 소화산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알리는 거다.”
운화결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무림맹이 주시한다는 걸 알고도 회동을 한다고?”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 있다면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지. 내가 복령천의 군사라면 반드시 무림맹을 끌어들일 거다.”
“회동 장소에 무림맹을 끌어들인단 말이냐?”
진무립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번진다.
“소화산에서 마교와 무림맹이 상잔하는 것만큼 복령천에 득이 되는 일이 어디 있을까?”
“…….”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다.
복령천의 가장 큰 적은 다름 아닌 화령.
천하 무림의 든든한 기둥이 화령이라는 사실도 안다.
지금 신룡은 화령도가 아닌 무림맹에 있다.
소화산에 집중된 무림맹의 무인과 마교의 상잔을 꾀한다.
그 뒤에 복령천이 강남 무림을 급습해 화령을 무너뜨린다면 전세는 단번에 기울게 된다.
복령천이 마교와 천하를 나눌 생각이 없다면 반드시 이 기회를 잡으려 할 터.
‘머리 굴리는 놈에겐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일 거다.’
계추월 소화산에 다녀온 뒤 근방에 감시를 둔다면, 황천패의 군사는 진무립이 팔존에게서 여월의 회동 정보까지 입수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충분히 무림맹을 끌어들여 마교와 상잔시킬 계책을 꾸밀 수 있다.
진무립은 상대가 역이용한 계획을 재차 역이용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생각이었다.
진무립이 성유기에게 말했다.
“내가 계추월 소화산에 들어간다면 당신이 정보를 유출했다는 사실이 발각된다. 그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라.”
잠시 생각하던 성유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진무립은 이어서 당우에게 받은 만리추종향과 호리병, 그리고 마을에서 구해둔 수투를 꺼냈다.
“운화결. 이걸 받아라.”
“이게 뭐냐?”
“날 여기까지 안내해준 만리추종향이다. 호리병에는 이걸 만든 자의 내력이 섞인 불하수(不遐水)가 들어있다. 사용할 땐 수투를 끼고 불하수를 떨군 추종향을 상대에게 묻히면 된다. 전부 성공했다면 수투는 불에 태워라.”
당우가 직접 사용할 땐 상관없으나 타인이 대신 사용할 때는 불하수가 꼭 필요했다.
운화결은 만리추종향이 담긴 주머니와 호리병을 받아들고 물었다.
“누구에게 사용하라는 거지?”
“십이사령이다.”
만리추종향이라고 그 효과가 무한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리추종향을 정면에서 뒤집어쓴 당명이라면 적어도 일 년은 그 흔적이 유지될 것이다.
그렇다면 십이사령이 중요하다.
상대가 강남으로 침투한다 해도 주력의 위치만 감지할 수 있다면 피해를 줄이고 적을 궤멸시킬 수 있다.
성유기가 미간을 좁혔다.
“황천패가 아니라 십이사령인가?”
“마교와 무림맹의 상잔을 꾀한다면 황천패는 반드시 소화산에 나타난다. 뒤통수를 맞은 마교가 무림맹과 타협하면 복령천은 실 끊어진 연이 되고 마니까.”
만일 황천패가 소화산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속았다는 걸 깨달은 마교가 어떻게 행동할지 모른다.
복령천이 마교를 배신한다면, 그것은 무림맹과 마교가 싸워 힘이 빠진 다음 일이다.
운화결은 주머니와 호리병을 품에 갈무리했다.
“해보지.”
십이사령과 친분이 없는 이상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하루빨리 임교영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진무립은 마지막으로 두 사람과 눈을 맞췄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돌아가겠다.”
허공의 어둠에 녹아든 진무립이 안개처럼 동굴을 빠져나간다.
이어서 운화결까지 동굴을 떠나자 텅 빈 실내엔 성유기만이 복잡한 얼굴로 남게 되었다.
‘탈출이라…….’
밖으로 나온 진무립의 귀로 운화결의 전음이 스며들었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라.]뒤를 돌아본 진무립이 발을 멈췄다.
[살면서 약속이란 걸 지켜본 적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이번엔 내 목을 걸고 약속하지.]진무립은 어둠 속, 운화결의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진무립의 까만 눈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운화결이 자취를 감췄다.
[믿겠다.]운화결이 떠나자 망을 보던 단려화가 진무립의 곁으로 다가온다.
[무슨 얘길 했어요?] [전쟁이 끝나면 임소저와 함께 살 곳을 알아봐 주겠다고 재차 약속했다.]단려화가 싱긋 웃으며 진무립의 어깨를 잡았다.
[잘했어요.] [그만 나가지.] [앞장설게요.]어둠에 녹아든 두 사람이 은밀히 생문으로 움직인다.
오감에 집중하며 앞장서는 단려화는 껄끄러운 기분이 들 때마다 방향을 바꿔 진무립을 이끌었다.
은밀히 왔던 길을 되돌아간 두 사람은 순식간에 생문으로 빠져나왔다.
입구에서 일각 가량을 더 벗어난 뒤에야 단려화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온다.
“휴우……. 살면서 이렇게 조마조마한 경험은 처음이네요.”
임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말은 하지 않았으나 몇 차례 아찔한 상황이 있었다.
만일 거기서 들켰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진무립이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수고했어.”
황천패가 없었다곤 하나 십이사령은 개개인이 엄청난 무위를 갖추고 있다.
그들의 눈을 속이고 들어갔다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녀의 예리한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은무대와 합류하고 한잔하자. 가져온 술이 아직 있을 테니까.”
“그래요. 그게 정신 건강에 좋겠네요.”
협곡을 벗어난 이상 거리낄 것은 없다.
두 사람은 신법을 전개해 전력으로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촉촉한 밤이슬이 어깨 위를 차분히 적셔간다.
멀리 작은 마을이 보이는 절벽 밑의 숲속.
초조한 얼굴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당우가 은수련을 바라보며 물었다.
“괜찮겠지요?”
복마전에 들어간 두 사람이 걱정되는 것이다.
은수련은 당우를 안심시키듯 밝은 표정으로 답했다.
“당연합니다. 주군께서 계시는 이상 소협께서는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그렇죠? 소공자께서 계시니까 괜찮겠지요?”
“날 못 믿는 거냐?”
“못 믿는 게 아니고요. 그냥 걱정이…… 어?”
말을 하던 당우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휙 돌아본다.
그곳엔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진무립과 단려화가 있었다.
당우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소공자.”
은무대가 일제히 예를 갖추는 가운데 당우가 다그치듯 물었다.
“가신 일은 어, 어떻게 됐습니까? 혹시 그놈을 보셨습니까?”
진무립이 당우의 어깨를 차분히 두드린다.
“조급함은 독이다. 약속하지 않았느냐? 반드시 그놈에게 죗값을 치르게 할 거라고 말이다.”
지그시 입술을 깨문 당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당장 조급하게 생각해봐야 달라질 것은 없었다.
중요한 것은 확실하게 놈의 숨통을 끊는 것.
그날이 올 때까지 내면의 칼을 갈며 진득하게 기다려야 한다.
진무립이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전장에 백지를 깔았다.”
단려화가 묻는다.
“그럼 이제 붓을 준비할 차례죠?”
“그래.”
계추월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다.
그때까지 준비할 것이 많았지만 오늘 하루 술 한잔할 여유는 있다.
“앞으로 바빠질 거다. 오늘은 푹 쉬고 내일 다시 움직이도록 하지.”
은수련이 말했다.
“기다리는 동안 쉴 곳을 찾아두었습니다. 앞장서겠습니다.”
“가자.”
은수련을 필두로 일행이 순식간에 종적을 감췄다.
* * *
진무립과 단려화가 다녀가고 사흘째 되던 날.
수투를 착용한 운화결은 육병백궤를 걸머지고 동굴을 나섰다.
벽을 타고 순식간에 내려온 그가 바위에 가려진 작은 동굴 앞에 멈춰섰다.
“십이사령.”
나직한 부름에 이어 안에서 민머리에 검버섯 가득한 노승이 나타났다.
운화결의 눈이 차갑게 빛난다.
‘십이사령 무우.’
실제로 가까이서 마주하는 건 처음이다.
정보에 의하면 장법과 권각술을 사용하는 노고수였다.
무우가 게슴츠레 눈을 뜨고 운화결을 쳐다봤다.
“네 녀석은 누구냐?”
시큰둥한 말투에서 탐탁지 않은 기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운화결이다.”
“운화결? 그 표국 말아먹고 돌아온 애송이 말이지?”
운화결의 입가에 짙은 조소가 걸린다.
“후후후. 애송이라.”
그를 위아래로 훑어본 운화결이 몸을 돌렸다.
“비무를 신청하지. 자신 있다면 내가 애송이인지 아닌지 네 몸으로 시험해봐라.”
수투를 낀 손이 품 안으로 들어가 작은 주머니를 매만진다.
바로 만리추종향이었다.
‘일단은 십이사령부터.’
하루에 하나씩.
다음 상대는 십일사령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