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79)
◈ 279화. 준비
새롭게 구성된 무림맹이 폭풍전야의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맹주의 처소인 무운전의 지하 연무장.
사방의 횃불이 실내를 밝게 비추는 가운데 수십 명의 무인이 벽에 붙어 앉아 비무를 지켜보고 있었다.
슈아아아!
내리치는 도신에서 서릿발 같은 기운이 줄기줄기 쏟아져 나온다.
퇴로를 찾지 못한 사내는 결국 이를 악물고 도광에 장력을 쏟아부었다.
콰콰쾅!
거친 폭음과 함께 장력을 쏟아낸 사내가 화살같이 튕겨져 나왔다.
“저런.”
지켜보던 광룡대주 풍연이 혀를 찼다.
황보세가 출신의 젊은 고수가 실력을 채 발휘하지 못하고 쓰러진 게 안타까운 것이다.
활을 움켜쥔 후성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대체 저놈 뭐야?”
전유가 습관처럼 민머리를 문질렀다.
“태산표국의 대표두였다고 하더군.”
이어서 한경이 말했다.
“저자를 넘어야 태종무단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일종의 관문인 셈이지.”
후성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야? 야! 기다리다 지쳐서 뒈지겠다! 관문아! 빨리 좀 해라!”
악계화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관문이라고?’
수준 높은 고수를 상대로 싸워도 모자랄 판에 이런 놈들만 상대하고 있으니 울화가 치밀었다.
먼발치에서 그의 표정을 확인한 자영이 바로 전음을 보내왔다.
[조금만 견디십시오. 모두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섭니다.]주먹을 부르르 떤 악계화는 크게 숨을 내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백화무단의 말단조차 자신과 비견할 무공을 갖추고 있다는 얘기는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 모든 것은 복수를 위해서다.’
스승처럼 모시던 청금환을 배신한 복령천이다.
감히 자신들을 버린 자들이 떵떵거리고 세상을 지배하는 꼴은 두고 볼 수 없다.
“나와라!”
날카로운 외침에 한경이 도를 들고 일어났다.
“내가…….”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연무장 입구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먼저 하지.”
모두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간 곳엔 넝마가 된 옷을 걸친 두 청년이 있었다.
한경이 고개를 갸웃했다.
“왠지 낯이 익은데?”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다.
그를 유심히 살피던 광룡대원들은 이내 찢어질 듯 눈을 부릅떴다.
“어? 어?”
시꺼멓게 탄 얼굴, 넝마 사이로 드러나는 끔찍한 상처들의 주인은 바로 유대하였다.
“인사는 나중에 하자.”
말을 하며 그의 곁으로 걸어오는 인물은 다름 아닌 육군명이었다.
악계화가 도극을 겨누며 말했다.
“뜸 들이지 말고 와라.”
유대하가 앞으로 한 발 나섰다.
“내력을 회복해라.”
“필요 없다.”
단호한 거절에 유대하가 앞으로 나서며 검파를 쥐었다.
그 순간이었다.
드드드…….
그의 전신에서 태산 같은 기운이 쏟아져 나오며 잠잠한 연무장이 지진을 만난 듯 진동하기 시작했다.
유대하는 딱딱하게 굳은 악계화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필요할 거다.”
무미건조한 목소리조차도 엄청난 무게감이 느껴진다.
광룡대주 풍연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내가 알던 사람이 맞는 거야?’
그것은 지켜보던 광룡대 모두의 생각이었다.
눈앞의 유대하는 자신들이 알던 과거의 유대하가 아니었다.
미간을 좁힌 악계화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바닥에 가부좌를 틀었다.
유대하가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자영이 순식간에 옆으로 이동해 호법을 선다.
경탄 섞인 눈빛이 유대하에게 쏟아지는 가운데 조용히 구석에 앉아있던 무인이 종이에 이름을 적었다.
「유대하.」
태종무단의 선별이 연일 한창일 무렵 무운전에선 수문화와 화윤이 연일 회의를 이어가고 있었다.
화윤이 말했다.
“태종무단의 선별 과정이 너무 까다롭다는 원성이 곳곳에서 들려오더군요.”
지금까지 최소한 악계화와 동수를 이뤄 선별된 무인은 열 명도 채 지나지 않았다.
수문화가 다소 초췌한 얼굴로 멋쩍게 웃었다.
“주군의 당부입니다. 그 이하는 필요 없다고 하시니 어쩔 수 없지요.”
숫자만 많다고 이길 상대가 아니다.
되려 피해만 커질 수도 있다.
소수정예에는 소수정예로.
최소한 적을 따라잡을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은 갖춰야 해볼 만하다는 게 진무립의 생각이었다.
수문화가 명부를 살피며 말했다.
“유대하, 육군명, 천진서, 양천, 투백비는 상급. 풍연과 광룡대 조장들은 중급이고…….”
상급은 비무에서 확실하게 승리한 무인.
중급은 악계화와 최소한 동수를 이룬 무인이다.
하급은 악계화를 상대로 오십 초식을 버틴 무인으로 지원 임무를 담당하게 되어 있었다.
“하급 탁소혜?”
하단에는 양 갈래머리를 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귀여운 여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있으니 놀라운 것이다.
화윤이 말했다.
“악왕 탁이신의 딸입니다. 천방지축이긴 하나 아비를 닮아 무재만큼은 뛰어난 아이지요.”
“음. 임무 수행 능력은 어떻습니까?”
“눈치가 빨라서 혼자 엇나갈 일은 없을 겁니다.”
수문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명부를 재차 훑어보았다.
‘스물이 채 안 되는군.’
사실 그만한 숫자가 모인 것도 대단한 일이다.
화윤이 말했다.
“내일부터는 중견고수를 포함해 원로고수들까지 비무에 나설 겁니다. 부족한 자리가 얼마나 채워질지 모르겠으나 가진 자원으로 계획을 세워봅시다.”
“예. 군사.”
두 사람이 장부를 접고 일어날 때였다.
“군사부주님.”
문밖에서 비각의 부각주 적모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시오.”
문을 열고 들어온 적모개가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태종무단주께서 서신을 보내셨습니다.”
서신을 내미는 적모개의 표정이 평소보다 밝다.
그것을 받아든 두 사람이 빠르게 글을 읽어갔다.
수문화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적의 본진에 다녀왔다고?’
서신에는 그간의 행보와 만리추종향의 존재, 향후 진무립이 세울 계획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긴 문장은 아니었지만 진무립이 하고자 하는 말은 두 사람의 머리에 선명히 새겨졌다.
화윤이 서신을 움켜쥐며 웃었다.
“이거 참 재미있군.”
만일 자신이 진무립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그와 똑같은 계책을 생각했을 것이다.
수문화가 말했다.
“주군께서 판을 제대로 깔았습니다.”
“그렇군.”
화윤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한다.
‘그럴싸한 자들로 보내야겠지.’
그는 생각을 정리하며 적모개를 쳐다봤다.
“이번엔 개방의 도움을 받아야겠소.”
“적극 협조하라는 방주님의 전언이 계셨습니다.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추영당을 빌려야겠소. 다만 임무에 적지 않은 위험이 따를 것이오.”
추영당은 개방에서 가장 은밀한 임무를 수행하는 방주 직속의 조직.
일이 일인 만큼 개방에서도 가장 고강하며 기척을 감추는 데 능숙한 거지들이 대부분이다.
“알겠습니다. 즉시 방주님께 허락을 구하겠습니다.”
적모개가 집무실을 나서기 무섭게 비각주 제갈문이 도착했다.
“사천 공위맹에서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사천 무림은 향후 본 맹의 지휘에 따르겠다고 합니다.”
당천이 부친을 잃은 아픔에도 불구하고 공위맹에 들러 서신을 전한 것이다.
제갈문이 이어서 말했다.
“더불어 대설산맥을 넘은 포달랍궁의 라마승들이 사천 공위맹에 무사히 합류했다고 합니다.”
모든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마주 본 화윤과 수문화가 약속한 듯 웃었다.
“태종무단의 선별을 서두르고 단주의 뜻대로 은밀히 무인을 파견해야겠소.”
진무립이 그린 밑바탕에 선을 덧칠하고 색을 채워 넣는 것은 바로 자신들의 몫이다.
수문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일을 앞당기도록 해보겠습니다.”
그때 위에서 은밀한 움직임이 느껴지더니 단소룡의 수신호위들이 일제히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복도로 나온 화윤이 계단을 바라보며 외쳤다.
“무슨 일인가?”
단소룡의 처소를 지키던 위사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맹주님께서 갑자기 사라지셨습니다!”
화윤의 눈이 살짝 커진다.
“사라졌다고?”
화윤을 비롯한 수뇌부가 단소룡의 행방을 찾고 있을 때.
순식간에 무림맹을 나선 단소룡은 서쪽 숲을 달리고 있었다.
‘분명 이 근처였다.’
단소룡이 자리를 박차고 나오게 만든 것은 이제껏 처음 느껴보는 기운이었다.
그러나 왠지 낯설지가 않다.
‘황운천의 아들. 그놈이 확실하다.’
팔황문주 황운천 특유의 기묘한 살기가 이 근방에서 느껴졌던 것이다.
“영주님!”
호위장 영기가 빠르게 거리를 좁혀왔다.
높은 나무 위로 훌쩍 뛰어오른 단소룡이 명을 내렸다.
“이 근방을 샅샅이 훑어라. 작은 발자국이라도 절대 놓치지 마라.”
십여 명의 수신호위들이 일제히 포권을 취했다.
“예!”
단소룡의 날카로운 눈빛이 순식간에 사방을 훑어간다.
그로부터 반 시진이 지날 무렵.
흩어졌던 부하들이 돌아오며 호위장 영기가 고이 접힌 종이를 들고 달려왔다.
“주군. 나무에 이런 것이 걸려 있었습니다.”
훌쩍 뛰어내린 단소룡이 종이를 펼쳤다.
「곧 그 목을 가지러 오겠다.」
투박한 필체로 쓰여진 섬뜩한 글귀가 단소룡의 두 눈에 선명히 틀어박혔다.
단소룡이 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이 기분이 왠지 나쁘지 않다.
집무실에 앉아 서류를 뒤적이던 화령의 영주가 아닌, 전장을 누비던 그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다.
단소룡이 몸을 돌렸다.
“복귀하지.”
무림맹의 코앞에 서신을 남기고 자신의 육감까지 피해 사라진 놈이다.
그런 자가 쉽게 잡힐 리 없다.
“예!”
단소룡을 필두로 그의 부하들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무림맹 서쪽으로 십 리가량 떨어진 산속의 오솔길.
느긋하게 뒷짐을 진 황천패는 무엇이 즐거운지 연신 피식거리며 나아갔다.
여유로운 그와 달리 곁을 따르는 약환은 불만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주군의 위험한 행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황천패가 그를 돌아보며 눈썹을 씰룩거렸다.
“표정 풀어. 영감.”
당초 근거지를 떠날 때 목표로 했던 것은 무림맹이 아니라 소화산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돌연 방향을 바꾸더니 무림맹을 찾아와 협박까지 남기고 돌아왔다.
약환이 잔뜩 찡그린 얼굴로 말했다.
“너무 무모한 짓을 하셨습니다. 신룡과 마주쳤으면 위험했을 겁니다.”
황천패가 피식 웃었다.
“그깟 신룡 따위가 무섭나?”
“그게 아닙니다. 신룡에게 발이 묶인 사이 무림맹의 고수들까지 나타날 게 아닙니까?”
황천패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전부 찢어 죽이면 그만이지.”
“…….”
“알았으니까 표정 풀어. 앞으로 내가 살게 될 곳인데 잠깐 둘러보고 온 것뿐이다.”
고개 돌린 약환이 인상을 구겼다.
“나보고는 함부로 나가지 말라고 했으면서.”
“억울하면 영감이 대장 해.”
“그래도 됩니까?”
히죽 웃은 황천패가 눈을 부라리며 주먹을 매만진다.
“오. 이제 본색을 드러내는 거냐?”
움찔한 약환이 자라목을 하고 말했다.
“복귀하지요. 할 일이 많습니다.”
* * *
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한풀 꺾이자 산천이 조금씩 붉은 물결을 만들어 간다.
여름을 밀어낸 가을의 협곡에도 시원한 바람이 찾아왔다.
곳곳의 동굴에서 나직한 기합성이 새어 나오는 가운데 협곡의 절벽 위에 선 성유기가 무심한 눈빛으로 먼 산을 응시했다.
‘가을인가.’
사흘 뒤면 계추월이다.
그 전에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복령천의 배신자가 되어 목숨을 잃고 말 것이다.
생각을 정리하는 와중에 밑에서 은밀한 전음이 들려왔다.
고개 숙인 곳엔 들판을 바라보는 운화결이 있었다.
[광룡이 내린 지시는?] [거의 끝나가오.]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난관에 봉착한 상태였다.
십이사령의 사사령까지는 만리추종향을 묻히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위의 세 사람은 운화결에게 비무를 신청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성유기 또한 그 사실을 잘 안다.
[세 사람에겐 어떻게 접근할 생각이냐?]운화결의 미간에 짙은 주름이 패인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오. 죽기 싫으면 어서 떠나시오.]성유기는 고개를 저었다.
[난 떠나지 않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