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81)
◈ 281화. 내겐 편안한 죽음도 사치다
협곡을 떠난 곽인평과 다섯 명의 수하가 소화산에 도착했다.
소화산을 눈에 담은 곽인평이 나직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아직 안에 누군가 남아 있을지 모른다.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여라.”
“예. 이사령.”
부하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수색을 개시하자 곽인평은 곧장 정상으로 몸을 날렸다.
‘검존. 우연이길 바라겠소.’
소화산 인근에는 큰 마을도, 관도도 없다.
무림인이 수익을 낼 만한 환경이 아니니 이름난 방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소화산을 선택한 것이다.
정상에 오른 곽인평은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소화산에 왔다면 분명 정상을 확인했을 것이다.’
아주 천천히, 빠짐없이 주변을 눈에 담던 그가 별안간 몸을 날려 큰 바위 밑에 멈춰섰다.
‘있다!’
매우 미세한 발자국은 그리 오래 지난 흔적이 아니었다.
거기서 남쪽으로 이 장 가까이 떨어진 곳에 또 하나의 발자국이 보인다.
그 뒤로 엇비슷한 간격을 따라 발자국이 이어졌다.
‘제법 쓸만한 신법을 가진 놈이로구나.’
곽인평은 천천히 흔적을 쫓아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시간의 흐름조차 잊을 정도로 집중하는 사이 흩어졌던 부하들이 하나둘 곽인평의 주변으로 돌아왔다.
추격은 해가 지고, 다음 날 새벽이 올 때까지 이어졌다.
어느새 소화산을 훌쩍 벗어난 그들이 포성현 인근의 작은 숲속까지 도착했다.
식은땀을 흘릴 정도로 집중하던 곽인평은 마침내 허리를 곧게 펼 수 있었다.
“끊겼군.”
일정 간격으로 이어지던 발자국이 씻은 듯 사라진 것이다.
“주변을 수색하겠습니다.”
부하들이 흩어지자 잠시 숨을 고른 곽인평도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십여 장을 나아갈 무렵, 동쪽으로 간 부하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이사령. 찾았습니다.”
“앞장서라.”
부하를 따라간 곽인평이 발견한 건 머리 높이에서 끊어진 거미줄이었다.
그 밑으로 땅에 반쯤 파묻힌 거미의 사체가 보인다.
“흔적이 더 있을지 모른다. 주변을 좀 더 확실하게 수색해라.”
“예.”
명이 떨어지자 곳곳에서 부하들이 흔적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무려 반 시진에 걸쳐 숲을 수색한 그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최소한 수백 명은 머물다 간 듯합니다. 그리 오래 지난 흔적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그렇게 됐는가.”
주먹을 움켜쥔 곽인평이 입술을 깨물었다.
‘검존!’
그의 배신이 확실해졌다.
황천패가 직접 데려온 그는 다른 팔존에 비해 독특한 위치에 있는 무인이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팔존과 함께 행동하지도 않았으며 오로지 황천패의 부탁에만 움직여왔다.
그렇게 신경 써서 배려해준 자가 배신자였다고 생각하니 화가 들끓는 것이다.
곽인평은 가까스로 분을 억누르며 돌아섰다.
“돌아간다.”
“예.”
고요한 정적 속에 풀벌레 소리가 짙어질 무렵.
그들이 떠난 자리에 진무립과 단려화가 연기처럼 나타났다.
단려화가 긴 한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기다리다가 목이 빠지는 줄 알았어요. 흔적을 좀 더 깊게 남길 걸 그랬나?”
진무립이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매만졌다.
“아니. 딱 적당했어.”
이 장 간격으로 남긴 미세한 흔적도, 이곳에 머물던 무인들이 지운 흔적도 완벽에 가까울 정도였다.
화윤과 수문화가 자신의 계획을 그들에게 확실하게 전달한 것이다.
곽인평이 떠난 자리를 바라본 진무립이 차갑게 눈을 빛냈다.
‘움직여라. 복령천.’
백지에 그린 선이 점점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 *
숲을 벗어난 진무립과 단려화는 포성현을 지나쳐 산중의 작은 관제묘에 도착했다.
은무대가 예를 갖추는 가운데 당우와 함께 앉아있던 추레한 거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개방의 추영당주 봉추개라오.”
산발한 백발 사이로 봉추개의 누런 이빨이 드러난다.
눈알을 좌우로 굴린 단려화가 슬쩍 물러난다.
‘이 사람은 진짜 거지로구나.’
자신이 알던 거지 대부분은 제법 깔끔한 모습으로 다니곤 했다.
그런데 눈앞의 봉추개는 전형적인 더러운 거지였다.
진무립이 그의 예에 화답해 포권을 취했다.
“진무립입니다. 다른 거지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혹시 몰라 오 리 밖에 대기시켜두었다오. 부르면 언제든 올 것이오.”
진무립은 그답지 않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번 임무는 적지 않은 위험이 따를 것입니다.”
화윤에게 대강의 계획을 듣고 온 봉추개다.
“알고 있소. 그래서 지금부터 소화산을 감시하면 되는 거요?”
저들에게 무림맹이 소화산을 주시한다는 사실을 주지시켜야 진무립이 바라는 다음 계획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틀 뒤부터 시작하시면 됩니다.”
설령 소화산이 여월의 회동 장소가 아니어도 좋다.
이쪽이 소화산을 감시하고 있다면, 복령천의 지낭은 반드시 그곳에 무림맹과 마교를 끌어들이려 할 테니까.
봉추개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맡겨두시오.”
“위험이 따르는 임무가 될 겁니다.”
봉추개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우린 도산검림에 발 딛고 사는 사람들이오.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겠소이까? 그건 걱정하지 말고 임무가 끝났을 때 거하게 술이나 사주시구려.”
진무립은 매우 공손하게 읍을 했다.
“홍월루를 통째로 빌려두겠습니다.”
봉추개가 흡족한 듯 껄껄 웃었다.
“좋군. 그럼 가보리다.”
봉추개가 관제묘를 나서자 진무립은 당우와 은무대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야.”
“예. 소공자.”
“혹시 만리추종향의 변화가 느껴진 건 없느냐?”
당우가 웃으며 말했다.
“추종향의 연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곳에 있는 자들인지라 이렇게 대화를 할 땐 느낄 수 없으나 눈을 감고 내력을 끌어올리면 뚜렷하게 느껴진다.
운화결은 분명 진무립의 계획을 착실하게 이행하고 있었다.
“오늘부터 네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당우는 무겁게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부친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고생이라도 충분히 감내할 자신이 있었다.
진무립이 은무대를 돌아보며 말했다.
“오늘부터 너희들은 나를 호위할 때처럼 당우를 지켜야 한다.”
평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진무립의 호위에 전념하던 은무대다.
그러나 그들 모두 당면한 상황이 얼마나 중요한 대목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은수련을 필두로 은무대가 일제히 부복하며 답한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주군.”
진무립이 당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은무대가 준비한 안가에서 놈들의 동태를 살펴다오. 무슨 일이 있으면 곧장 내 부하들에게 말하면 된다.”
당우의 눈이 별을 담은 듯 반짝거린다.
“예. 소공자.”
“그래. 이제 움직이자.”
은무대와 당우가 숲속으로 사라지자 진무립과 단려화도 어딘가로 몸을 날렸다.
* * *
캄캄한 어둠 속.
익숙하면서도 괴로운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성유기! 하늘이 무섭지도 않더냐!’
눈을 뜨면 현실로 돌아와 사라질 목소리다.
그러나 성유기는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후후후.”
나직한 웃음소리는 자신을 향한 조소.
‘백건. 아마도 나는 네 곁으로 가지 못할 것이다.’
한평생 무림의 대협이 되고자 큰 꿈을 품고 살아왔던 친구다.
그에게서 구령부화초를 빼앗으려 했던 건 독에 중독된 모친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귀물을 빼앗겠다고 친구의 단전에 칼을 꽂고 꿈을 빼앗은 자신은 그와 같은 곳에 갈 자격이 없다.
복잡한 생각에 잠긴 성유기의 귀로 묵직한 목소리가 파고든다.
“노존.”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성유기는 감았던 눈을 뜨며 일어났다.
‘왔구나.’
그게 아니면 자신을 찾아올 이유가 없다.
성유기는 모른 척 대꾸했다.
“무슨 일이냐.”
“회의가 있습니다. 잠시 나와보셔야겠습니다.”
“금방 가겠다.”
성유기는 손때로 가득한 자신의 애검을 챙겼다.
‘마지막인가.’
이승에서 검을 쥐는 것은 아마 오늘이 마지막일 터.
그럼에도 아쉽기는커녕 후련한 마음이 든다.
‘백건. 네가 말한 하늘에게 벌을 받을 시간이로구나.’
속으로 되뇌인 성유기가 밖으로 나왔다.
협곡 아래로 펼쳐진 들판에 황천패를 비롯한 수뇌들이 보인다.
성유기는 웃음을 참았다.
‘나 때문에 전부 모인 것이냐?’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성유기의 눈이 화가 난 황천패를 지나 운화결을 스친다.
운화결의 두 눈이 가까워지는 성유기를 담았다.
‘나도 변한 건가.’
예전의 자신이라면 일말의 안타까움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임교영의 복중에 아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메마른 감정에도 싹이 트는 모양이다.
운화결은 착잡한 마음을 표정에서 감췄고, 이내 성유기가 마련한 자리에 도착했다.
황천패가 주먹을 부르르 떨며 그를 쏘아봤다.
“검존.”
성유기는 가슴을 펴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더욱 황천패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내게 할 말이 없느냐!”
쩌렁쩌렁한 외침이 협곡의 하늘로 솟구쳤다.
그에 이어 십이사령과 운화결이 성유기를 포위하듯 간격을 넓힌다.
성유기의 눈이 빠르게 좌우를 확인했다.
빠져나갈 구멍도, 그럴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이 자리에서 죽기로 마음먹은 이상 마지막까지 생각해둔 계획을 철저히 이행할 뿐이다.
살기등등한 분위기 속에 황천패와 마주 선 성유기가 미소 지었다.
“무엇 때문에 그리 화를 내시는가?”
약환이 킬킬 웃으며 말했다.
“소화산에 무림맹의 놈들이 들어갔네. 거기서 하루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족히 수백이 넘는 자들이 대기하다 돌아갔더군. 만일 자네에게 말했던 대로 계추월 초닷새에 회동을 가졌더라면 일이 재밌게 돌아갔을 게야.”
“역시 나를 속였군.”
“그래서 배신자를 잡아내지 않았는가? 킬킬킬!”
오싹한 웃음소리가 풀밭에 퍼져나가는 순간, 성유기의 신형이 지면을 박찼다.
목표는 복령천의 지낭 약환.
스릉!
섬뜩한 쇳소리와 함께 뽑혀 나온 검신이 햇살에 부딪혀 빛을 발한다.
“이놈!”
대노한 황천패의 주먹이 불같은 기세로 짓쳐 들었다.
콰지지지!
공간을 찢어발긴 주먹이 성유기의 가슴으로 날아든다.
‘역시.’
거력이 깃든 일권은 온전히 피해낼 수 없는 공격이다.
성유기는 한껏 몸을 비틀며 검을 쏘아냈다.
그 순간 느릿하게 움직이던 황천패의 주먹이 순식간에 가속하더니 성유기의 어깨를 박살 냈다.
쾅!
“큭!”
성유기의 신형이 뒤로 튕겨 나간다.
하지만 손을 떠난 검은 정확히 약환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엇!”
부릅뜬 약환의 두 눈에 시퍼런 검극이 빨려들 듯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일사령 주유성이 손을 뻗기 직전, 별안간 약환의 눈앞에 나타난 장력이 성유기의 검신을 강타했다.
콰앙!
공간을 뛰어넘어 목표를 때리는 장력은 팔천영신공 무월반장의 초식.
부서진 검신이 하늘로 솟구쳤고, 튕겨 나가는 성유기의 뒷목에 차가운 감촉이 스며들었다.
검신이 점점 목을 파고들며 지나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패천성의 삼공자로 태어나 친구와 함께 강남쌍룡으로 불리던 호시절.
친구를 암습하고 패천성으로 돌아가 단소룡에게 복수를 당했던 기억.
세상에서 도망쳐 은둔하던 중, 황천패를 만나 이곳에 오기까지의 모든 순간이 차례로 스쳐 지나간다.
푸른 하늘을 눈에 담은 성유기가 하얗게 웃었다.
모든 것은 준 만큼 받아간다.
친구를 배신하고 고통을 준 만큼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왔다.
‘그렇지. 이것이야말로 악인에게 걸맞은 최후가 아닌가.’
그의 미소가 짙게 변하는 순간.
서걱!
운화결의 백도가 순식간에 그의 목을 베어버렸다.
촤아아아!
머릴 잃은 몸뚱어리에서 역류하는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성유기가 지면을 박차고 목이 떨어지기까지.
모든 것이 숨 한 번 내쉴 만큼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피를 흠뻑 뒤집어쓴 운화결이 쓰러지는 성유기의 등에 표정을 감췄다.
운화결의 뇌리에 지난 대화가 생생히 떠오른다.
‘네 손으로 나를 죽여라.’
‘그게 무슨 말이오?’
‘내부에서 배신자가 나타나면 저들은 시험을 통과한 그대까지 의심할 수도 있다. 나도, 그대도 외부에서 머문 시간이 길지 않은가? 그대가 내 목을 치고 저들의 신임을 사는 거다.’
‘우리가 길게 소통한 것은 아니지만 아군이라 볼 수도 있겠지. 내게 죽으면 너무 비참하지 않겠는가?’
그날 성유기는 분명 쓴웃음을 지었었다.
‘내겐 편안한 죽음도 사치다.’
운화결의 두 눈에 씁쓸한 기색이 스치듯 사라졌다.
‘이게 당신이 바란 최후인가.’
기억 속 그의 얼굴이 사라지는 순간 운화결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고.
풀썩.
머릴 잃은 시신이 차가운 들판에 몸을 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