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9)
◈ 29화. 당신을 따라가야겠어요
유대하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사, 사, 사, 사, 사······ 상천?”
심장이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심하게 요동쳤다.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가?’
눈앞의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한 명은 신룡의 딸이자 강호에선 천중일화로 유명한 여인, 다른 한 명은 강호를 들썩이는 상천의 천주이자 천하십대고수 무면산왕.
강호에서 가장 신비하기로 유명한 두 사람이 눈앞에 있으니 볼이라도 꼬집어보고 싶었다.
진무립이 그의 속내를 눈치챈 사람처럼 볼을 꼬집었다.
“앗!”
“정신 차려. 기껏 부하로 받아줬더니 얼빠진 놈처럼 그럴 거야?”
“죄, 죄송합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놀랄 일이 있을까?
유대하는 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입을 꾹 다물었다.
단려화의 눈빛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소공자가 상천의 천주 무면산왕?’
이곳에 온 이유는 무면산왕이 소문처럼 팔황문주 황운천의 아들인지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 당신은 마도림의 소공자가 아니란 말인가요?”
“그것도 내 신분이다.”
마도림이 과거의 위세를 잃었다곤 하나 가짜를 데려와 소공자로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마도림의 소공자가 무면산왕이고 팔황문주의 무공을 익혔다고?’
실타래가 엉킨 것처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리고 그것은 진무립이 바라는 바였다.
진무립은 그녀가 혼란에 빠져 있는 사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혈옥비를 알아보고 내가 어떻게 그걸 익혔는지 궁금해서 찾아왔겠지?”
진무립은 마치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간 것처럼 묻고 싶은 것을 서슴없이 먼저 말했다.
미간을 좁힌 단려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무립이 말했다.
“내가 혈천수라를 죽인 초식은 분명 팔천영신공의 혈옥비가 맞다. 하지만 그것이 혈겁을 일으킨 팔황문주의 무공이냐 묻는다면 아니다.”
단려화의 눈에 의문이 떠오르는 가운데 유대하는 다시금 눈을 부릅떴다.
“파, 팔천영신공······.”
천하를 피로 물들인 팔황문, 그들의 수장인 황운천이 팔천영신공을 익혔다는 사실은 강호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눈살을 찌푸린 진무립은 벌떡 일어나 유대하를 걷어찼다.
“이 새끼, 자꾸 대화의 맥을 끊네. 나가.”
“죄송합니다. 입 꾹 다물고 있겠습니다.”
의자에서 일어난 유대하는 마치 은신이라도 한 것처럼 구석에 쪼그려 앉았다.
이대로 나가기엔 궁금한 것이 많았다.
단려화가 말했다.
“황운천의 무공이 팔천영신공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에요.”
“팔천영신공은 어쩌다 연이 닿아 그놈에게 전해졌을 뿐. 네가 신룡의 딸이라면 그놈의 무공이 아니라는 걸 알지 않나?”
기억을 더듬은 단려화의 눈이 살짝 커졌다.
“설마 무성(武聖)의 진전이 당신에게도 이어졌다는 말인가요?”
황운천의 팔천영신공은 사백여 년 전 무림과 상계를 일통한 절대자 무성에게서 시작된 무공.
그뿐 아니라 팔황문의 뿌리는 무성이 전수한 무공에 있었다.
하지만 기나긴 세월은 사람들에게서 무성의 기억을 지워버렸고 팔천영신공은 세상에 혈겁을 일으킨 무공으로 각인되었다.
진무립은 조소를 흘렸다.
“스승님께서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실 때 그놈이 나타났다. 놈은 공교롭게도 팔천영신공을 익힐 수 있는 체질이었고 스승님은 신공이 실전되는 게 안타까워 무공을 전하신 거지. 이제 답이 되었나?”
“좋아요. 당신이 무성의 무공을 익혔다는 말은 이해했어요. 그럼 상천과 은곡은 무슨 관계죠?”
팔황문이 이백 년이나 숨어서 힘을 키운 곳이 천하에 산재한 은곡(隱谷)이었다.
“은곡이 하나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겠지? 그토록 쥐잡듯 찾아다녔으니 말이야.”
“그건 알고 있어요.”
“천하대전이 벌어지기 직전, 은곡은 두 부류로 갈라졌다. 전쟁으로 세상을 뒤집고 천하를 거머쥐고자 하는 자들, 마지막까지 패도를 거부하고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이지.”
옛 기억을 떠올린 진무립은 애써 분노를 억누르며 말을 이어갔다.
“전쟁이 끝나고 무림은 은곡을 찾아다니며 복수를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죽어 나간 자들은 전쟁에 반대했던 자들이었지. 전쟁을 일으킨 놈들은 모두 죽거나 몸을 숨겼기 때문이다.”
단려화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패였다.
전쟁 직전 팔황문이 갈라졌다는 소문이 있긴 했으나 모두가 낭설로 치부하며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알았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았다.
인간은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한다.
가족과 형제를 잃고 분노한 무인들은 설령 그 소문이 사실이었더라도 복수를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진무립의 말은 이어졌다.
“무인은 물론이고 무공을 익히지 않은 노인과 여인, 아이들까지 모두 죽어 나갔다.”
단려화가 항변하듯 말했다.
“아버지께선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자들은 손대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들에게 은곡은 혈겁을 일으킨 악귀의 핏줄, 악귀의 무공을 익힌 자들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죽일 이유는 충분하다고 여겼을 테지.”
“······.”
“팔황문의 뿌리는 무성의 무공. 팔천영신공의 전인인 나는 스승님의 유지에 따라 그들을 거뒀다. 그리고 평생을 숨어 살며 언제 죽을지 몰라 두려움에 떠는 이들에게 세상 빛을 보여주기로 했다. 그게 바로 상천이다.”
세상과 상생하겠다는 의미의 상천.
상천에 그런 숨은 역사가 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단려화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무공으로 사람을 죽였다면 무공이 나쁜가? 사람이 나쁜가?
당연히 후자라는 것을 아는 단려화였으나 그냥 지나치기에 팔천영신공과 은곡의 힘은 너무 위험하다.
‘하지만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천하는 상천뿐만 아니라 마도림까지 적으로 규정할 것이고 죄 없는 사람들이 휘말리게 된다.
진무립은 그녀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무엇을 망설이는가?”
“이 일이 알려진다면······.”
“죄 없는 사람이 다칠까 걱정스러운가?”
단려화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요.”
“걱정의 방향이 잘못됐군.”
그녀의 눈에 의문이 떠올랐을 때.
진무립은 깍지 낀 손으로 턱을 괴며 말했다.
“힘이 없어서 정체를 숨기고 상천을 만든 것 같나? 아니지. 지금 우리가 가진 힘은 천하대전 당시의 팔황문을 능가한다.”
단려화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만일 진무립의 말이 사실이라면 천하대전, 그 이상의 피바람이 불지도 모른다.
진무립은 그녀의 속내를 읽은 것처럼 말을 이어갔다.
“안심해라. 상천의 목적은 세상과의 상생. 멍청한 황운천처럼 혈겁을 일으킬 생각은 없다. 하지만.”
잠시 말을 끊은 진무립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누구든 우릴 먼저 건든다면, 세상은 지옥을 보게 될 거다.”
***
정가장의 아침이 어수선했다.
술에 취해 길바닥에 자다 일어난 이들부터 숙취로 물을 찾아다니는 이들까지 다양한 군상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계단에 멍하니 앉은 유대하는 생각에 잠겨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새벽의 충격이 아직 가시질 않는다.
‘소공자께서 무면산왕이었다니.’
혈겁의 흉수 팔황문주와 같은 무공을 익힌 무인.
은곡의 수장이자 상천의 천주.
천하십대고수.
한 번에 워낙 많은 정보가 들어오다 보니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인생 한 번 파란만장하겠군.’
어차피 굵게 살기로 다짐하고 내린 결정이니 후회는 없다.
받아들이고 나니 새삼 지난 일이 다시 떠올랐다.
음야살귀를 제거하고 혈천수라를 상대로 보여준 충격적인 무위.
천하십대고수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
상념에 잠긴 유대하의 곁으로 이조장 한경이 다가왔다.
“뭘 그리 생각하십니까?”
“무면산왕이라니.”
“무면산왕이요?”
정신이 든 유대하가 화들짝 놀랐다.
“내, 내가 뭐라고 했지?”
“무면산왕이라고 하신 거 같은데요.”
“아니야. 잘못 들었어. 무면산왕은 무슨.”
유대하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무슨 일이야?”
“대주께서 모이라 하셨습니다. 출발이랍니다.”
유대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벌써?”
정적이 흐르는 방안.
채비를 마친 진무립은 마지막으로 품 안의 전낭을 꺼냈다.
안에는 음야살귀로부터 빼앗은 은자 삼백만이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이 돈은 마도림의 이름으로 북천도문에 돌려줄 생각이었다.
사천 무림의 대다수가 마도림의 부활을 견제하는 상황에서 하나라도 아군을 만들기 위함이다.
‘한 장 정도는 챙겨도 되겠지.’
씩 웃은 진무립은 일부를 빼서 다른 주머니에 챙겼다.
그때 문이 열리며 유대하가 들어왔다.
“소공자.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이젠 괜찮다.”
진무립을 위아래로 훑어본 유대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이대로 가도 괜찮겠습니까?”
“왜?”
“만일 그녀가 화령으로 돌아가면······.”
끔찍한 상상에 유대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진무립은 피식 웃었다.
“너 같으면 지옥을 보고 싶겠어?”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유대하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진무립은 밖으로 나갔다.
“집에 가자!”
광룡대의 환송식으로 정가장이 시끄러워졌다.
가족들과 함께 마중 나온 정인령은 진무립의 손을 꼭 잡았다.
“소공자.”
그녀가 고마움에 또다시 눈물을 글썽이자 진무립이 먼저 말했다.
“숙모님. 인사는 충분히 받았습니다. 그만 가보겠습니다.”
장주 정필군이 아쉬움을 삼키며 말했다.
“며칠 더 쉬었다 가지 그러오. 정가장의 은공께 제대로 대접하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하구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이대로는 한나절이 지나도 떠나지 못할 것 같았는지 진무립은 정인령의 손을 슬쩍 밀어내며 웃었다.
“총단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푹 쉬다 오십시오.”
“그래요. 소공자.”
곁에 서 있던 초유림이 히죽 웃었다.
“나중에 봐. 형님아.”
마치 초유림처럼 히죽 웃은 진무립이 그녀의 머리를 헝클었다.
“그래.”
예를 갖춘 진무립과 광룡대가 일제히 말에 올랐다.
파중현을 벗어난 이들이 남쪽 언덕에 진입할 무렵, 사조장 후영이 말을 몰아 다가왔다.
“대주.”
“말은 짧고 간결하게 해라.”
평소 말이 많은 후영은 찔끔한 얼굴이었다.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가 있습니까? 며칠 더 쉬다 가도 될 텐데요. 술도 좀 마시고······.”
다른 조장들도 모두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진무립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쯧쯧.”
혀를 찬 진무립이 유대하를 불렀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 어디냐? 제법 사람이 사는 곳으로.”
“남쪽으로 이틀 거리에 평창현이 있습니다.”
진무립은 조장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멍청한 놈들아. 대부인이 계신 정가장에서 술을 마시면 눈치 보여서 얼마나 마시겠냐? 평창현에 도착하면 기루 하나 통째로 빌려서 제대로 놀게 해주마.”
수중에 돈은 두둑하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으로 일찍 출발한 것이다.
“저, 정말입니까?”
“이런 거로 농담 안 한다.”
조장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평소 과묵하던 삼조장 주초의 눈까지 기대감에 반짝거릴 정도였다.
후영이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
“사실 저는 처음부터 대주를 믿고 있었습니다.”
전유가 말을 몰아 바짝 접근했다.
“대주. 서두르면 평창현까지 하루 만에 갈 수 있을 겁니다.”
“하하하! 그래. 서두르자.”
속도를 높인 광룡대가 언덕 꼭대기에 도착했을 때, 앞을 가로막고 선 이들이 있었다.
‘왔군.’
예상했던 바다.
진무립이 묘한 미소를 짓는 가운데 풍연이 앞으로 나섰다.
“두 분 소저께서 여긴 어떻게?”
죽립에 가려진 연소정의 얼굴엔 불만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
‘대체 저 사내에게 무엇이 있단 말인가?’
이번 일이 끝나면 화령도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새벽에 진무립을 만나고 온 단려화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명확한 이유를 밝힌 것도 아니다.
몇 차례나 만류했으나 그녀의 고집은 꺾일 줄 몰랐다.
그녀가 작게 고개를 저을 때 단려화가 앞으로 나서며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을 따라가야겠어요.”
느닷없는 말에 광룡대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대하와 용추만이 사정을 짐작하는 가운데 후영이 물었다.
“대, 대주. 소저에게 무슨 짓을 하셨습니까?”
진무립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긴 뭘 해. 누굴 음적으로 아는 거야?”
후영을 밀어낸 진무립이 단려화에게 말했다.
“이유는?”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새벽에 진무립이 했던 말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의 말을 전부 믿는 것은 아니다.
모두 믿기엔 그럴 만한 신뢰가 쌓이지도 않았고 그럴 시간도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진공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방관하기엔 너무 위험해.’
돌아가서 보고한다면 화령이 움직일 것이고 상천의 비밀이 만천하에 알려질 수도 있다.
그리되면 무림은 결코 상천을 좌시하지 않을 터, 그 과정에서 또다시 억울한 희생자가 나올지도 모른다.
단려화는 자신이 직접 곁에서 지켜보며 진무립에게 천하를 노릴 의지가 있는지, 그럴 만한 인물인지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진무립은 씩 웃었다.
“부탁하는 것 치고는 너무 당당하군. 데려가 달라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단려화도 마주 웃었다.
“그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 바라던 바가 아니었나요?”
진무립의 입장에서도 그녀가 이대로 돌아가 윗선에 진실을 알리는 것보다는 곁에 머무는 편이 훨씬 나았다.
그렇기에 지난밤의 대화에서 일부러 과격한 면모까지 드러낸 것이다.
무고한 희생을 바라지 않는 그녀가 자신의 정체를 알려 천하를 지옥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알리자니 무섭고 놔두는 것도 무섭고, 그렇다면 따라올 수밖에 없지.’
그녀는 두 번째 혈겁을 막기 위해, 진무립의 의도를 알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한참을 웃던 진무립이 다시 입을 열었다.
“좋아. 데려가 주지. 하지만 놀고먹게 할 수는 없으니 두 사람은 당분간 내 호위로 쓰겠다.”
“그러죠. 대주라고 부르면 될까요?”
“아가씨?”
연소정의 고개가 휙 돌아갔으나 단려화의 단호한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시든가.”
씩 웃은 진무립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타라.”
그녀는 망설임 없이 손을 잡았다.
손을 내민 사내는 무림에 혈겁을 일으켰던 흉수와 같은 뿌리를 가진 자.
손을 잡은 여인은 혈겁을 막아낸 영웅의 딸.
기묘한 동행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