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91)
◈ 291화. 강남 무림
화윤 일행이 잠시 멈췄던 행보를 재개했을 때.
한 척의 배가 장강의 물살을 가르며 힘차게 나아가고 있었다.
바람을 받은 돛이 크게 부풀어 오른 가운데 선수에 오른 당천의 곁으로 당소소가 다가왔다.
“가주.”
그녀의 뒤로 십여 명의 무인들이 결의에 찬 얼굴로 전방을 바라본다.
이들은 놈들이 강남으로 갈 거라는 소식을 받고 움직이는 당가의 정예였다.
차가운 강바람이 피부를 날카롭게 스치고 지나갔으나 당천은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만 들어가서 쉬시지요.”
“아버지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
“놈의 칼이 가슴을 꿰뚫는 순간,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당소소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참담한 심정은 아마 본인이 아니면 알 수 없을 것이다.
짧은 침묵 끝에 돌아선 당천이 선실로 발을 옮겼다.
“놈의 사지육신을 찢어발긴 뒤에 물어보겠다. 혈육에게 당하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이번엔 반드시 죽인다.
그것도 절대 곱게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치솟는 살기를 억누른 당천이 선실로 사라졌다.
“으……. 저 새끼 눈빛 한번 살벌하네.”
엄살 섞인 목소리에 당소소의 고개가 돌아간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갑판 구석엔 쪼그려 앉은 장우기와 흑사칠랑이 있었다.
‘아아. 저들도 있었지.’
초평천의 군사를 맡은 현진학의 지시로 강남 무림을 돕고자 따라온 것이다.
천하대전을 경험한 흑사칠랑이라면 확실한 전력이 될 것이다.
특히 검랑 서천휘는 한때 검황 천영과 천하제일검의 자리를 다퉜을 정도로 대단한 무인이었다.
당가 무인들의 눈빛이 싸늘해지자 도랑 도운수가 장우기를 툭 치며 눈치를 줬다.
“눈치는 엿 바꿔 먹었냐?”
“오. 엿이 있어?”
“…….”
검랑 서천휘가 일어나 당가 무인들에게 포권을 취했다.
“미안합니다. 어떤 의도가 있어서 한 말은 아니니 용서를 바랍니다.”
그의 정중한 사과에 당가 무인들은 이내 시선을 거뒀다.
어쨌거나 함께 싸울 사이에 척을 질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흑사칠랑의 홍일점, 비랑 비사령이 당소소에게 물었다.
“화령도까지 얼마나 남았어?”
“이제 이틀 정도 가면 될 거 같아요.”
“그때까지 잠이나 한숨 자둬야겠군. 도착하면 깨워줘.”
갑판에서 엉덩이를 뗀 그녀가 선실로 들어갔다.
* * *
화윤과 상천의 무인들은 탁 트인 강남의 들판을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었다.
흩어진 만리추종향의 기운이 점점 멀어져 간다.
당우는 초조함을 억누르며 화윤에게 물었다.
“정말 화령도의 적만 추격하면 되겠습니까?”
“전부 따라갈 자신은 있나?”
“……없습니다.”
“걱정할 것 없다. 놈들은 어차피 모이게 되어 있으니까.”
운화결이 남긴 밀서에는 놈들의 계획이 낱낱이 적혀 있었다.
이미 화윤의 머릿속엔 강남의 암운을 걷어낼 계책이 세워진 상태였다.
“신법이 가장 빠른 게 누구지?”
이하빈이 화윤을 바라본다.
“나다.”
그녀의 투박한 말투에도 이젠 익숙해졌다.
화윤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자네 말고.”
순간 서로의 눈치를 살피던 백채륜과 시평이 동시에 다가왔다.
“접니다.”
“나요.”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 겹친 두 사람이 찌릿한 눈빛을 주고받는다.
그때 뒤에서 두 사람 사이를 비집고 검산채주 대중경이 나타났다.
“뭘 하면 되겠소?”
“자네는 좀 아파 보이는데.”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의 얼굴은 달빛만큼이나 창백했다.
“……원래 이렇소.”
화윤은 오는 길에 써둔 서신에 목에 걸린 직인을 찍었다.
“의성현에 우리 화령의 비밀 지부가 있다. 이걸 전하고 와.”
서신을 곱게 접은 화윤이 그것을 대중경에게 건넸다.
“비밀 지부는 어떻게 찾으면 되오?”
“북문으로 들어가서 좌측 세 번째 골목으로 들어가라. 거기서…….”
대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화윤이 미소를 감추며 말을 덧붙였다.
“왼손으로 머리를 긁으며 오른손 검지를 콧구멍에 넣으면 누군가 나타날 거야.”
대중경이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화령의 수신호는 원래 이런 건가?”
“어서 다녀와라. 화령도에서 만나자.”
의성현은 여기서 동쪽, 화령도는 남쪽이다.
“알겠소.”
서신을 품에 넣은 대중경이 순식간에 멀어져갔다.
화윤은 이어서 시평을 불렀다.
“자네가 양산채주지?”
시평이 점잖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상천의 인간 중에 제가 가장 강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 뭐든 맡기시지요.”
“인간 중에는 뭔가?”
“내 위론 다 괴물이니까.”
“…….”
진무립과 이하빈은 사람으로 치지 않는 시평이었다.
“여기서 남서쪽으로 오십 리를 가면 황소의 머리같은 모양새의 야산이 나올 걸세. 그곳의 관제묘는 유사시 장강수로채가 안가로 활용하고 있지.”
화윤은 품에서 다른 한 통의 서신을 꺼냈다.
“이걸 그곳에 전해주게.”
“전하고 화령도로 가면 됩니까?”
“그렇지.”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사라지자 이들은 잠시 멈췄던 행보를 재개했다.
연길상의 등에 업힌 당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군사. 서신에 무엇을 적으셨는지 여쭈어도 됩니까?”
지금까지 자신이 봐온 사람 중 가장 똑똑한 사람은 진무립이다.
그러나 귀재 화윤 역시 천하의 대군사로 불릴 만큼 대단한 무인.
과연 그가 어떤 기발한 계책으로 승리를 가져올지 궁금했다.
선두에서 장포를 휘날리며 달리는 화윤이 능글맞게 웃었다.
“곧 알게 될 거야.”
이번엔 이하빈이 물었다.
“늦지는 않겠는가.”
화윤은 자신 있게 말했다.
“여기는 강남이다. 절대 그럴 일은 없지.”
화령이 터를 잡은 뒤로 강남 무림은 하나로 응집해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화윤을 필두로 강남 무림의 지재들이 모여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이 정보망과 연락체계다.
화윤은 이곳에선 그 누구도 강남의 무인보다 빠를 수 없다고 자부했다.
* * *
화윤과 헤어진 시평은 순식간에 그가 말한 야산을 발견했다.
‘소머리처럼 생기긴 했군.’
어둠 속, 저 멀리 마치 엉덩이를 엎어놓은 것 같은 야산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좌우에는 뿔 모양의 바위가 높게 치솟아 있었다.
탓!
힘차게 지면을 박찬 시평이 화살처럼 전방으로 쏘아진다.
두꺼운 장포가 찢어질 듯 펄럭이는 가운데 야산에 도착한 시평은 산기슭의 부서진 관제묘에 도착했다.
무너진 지붕 아래에서 사람의 기운이 느껴진다.
“어이. 나와봐라.”
잠시 후, 약초꾼으로 보이는 듯한 중년인이 지붕 아래에서 기어 나왔다.
“누구요?”
“상천의 양산채주 시평이다. 무림맹 군사 화대협께서 전하시는 서신이다.”
시평의 손을 떠난 서신이 나풀거리며 날아가더니 중년인의 손에 사뿐히 안착한다.
좀처럼 볼 수 없는 고절한 수법에 중년인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시평을 쳐다본다.
“그거 안 읽어봐?”
“아아. 그렇지.”
정신을 차린 중년인은 서신에서 화윤의 직인을 확인했다.
‘정말 대군사께서 보내신 게 맞군.’
내용을 확인한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시평에게 말했다.
“확인했소.”
“뭐라고 쓰여 있는 거지?”
“배를 준비하라는 말씀이시오. 바쁘니 이만 가보겠소.”
말을 마친 중년인이 순식간에 멀어져 간다.
풍기는 기도는 별 게 아니었는데 신법만큼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해 보였다.
그가 떠나자 시평은 즉시 몸을 돌렸다.
“굳이 화령도에서 합류할 거 있나? 그 전에 따라잡아 주지.”
씩 웃은 시평이 지면을 강하게 박차며 한 마리 비조처럼 쏘아졌다.
* * *
비슷한 임무를 받은 시평과 달리 대중경의 목적지인 의성현은 하루 밤낮을 꼬박 달려야 할 만큼 먼 거리였다.
한시도 쉬지 않고 달린 대중경은 다음 날 저녁이 올 무렵에서야 횃불로 일렁이는 의성현의 성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둠 속, 검은 장포를 두른 대중경이 순식간에 성벽을 뛰어넘었다.
밤에 젖은 거리를 오가는 이는 보이지 않는다.
적막함 속에 빠르게 화윤이 말해준 장소를 찾은 대중경이 그가 알려준 수신호를 취했다.
그러자 이십 장 밖의 전각 위에서 시꺼먼 인영이 뚝 떨어지며 다가왔다.
“군사께서 보내셔서 왔소?”
“그렇소.”
대중경을 위아래로 훑어본 사내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혹시 오는 길에 부상을 입으셨소?”
보통 사람에 비해 너무도 혈색이 창백했던 것이다.
대중경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원래 이런 얼굴이오.”
“……미안하군. 따라오시오.”
그를 따라 담장을 넘은 대중경이 의문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한데 그분이 보낸 걸 어찌 알았소?”
화령에서 보낸 사람일 수도 있는데 상대는 대번에 화윤이 보냈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흑의인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원래 사용하는 수신호는 땅에 발을 두 번 구르고 벽에 기대는 것이오. 군사께서 장난으로 만든 기괴한 수신호를 정말 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소.”
“…….”
대중경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사내가 물었다.
“그래, 군사께서 무슨 일로 보내신 거요?”
눈썹을 파르르 떨던 대중경이 품에서 서신을 꺼냈다.
“……이걸 전하라고 하셨소.”
주변을 살핀 흑의인은 화윤의 직인을 확인한 뒤 빠르게 서신을 읽어내렸다.
“음.”
나직이 침음한 그가 대중경에게 예를 갖췄다.
“수고 많으셨소. 여기부턴 우리가 알아서 하겠소.”
사내가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이내 작은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방 안에 여러 명이 있다는 것은 기척으로 느끼고 있었다.
‘뭘 어떻게 하려는 거지?’
그가 무엇을 할지 궁금해진 대중경은 떠나지 않고 조용히 그들이 움직이길 기다렸다.
그로부터 일다경 뒤.
뒷마당에서 시꺼먼 새 한 마리가 날아오르더니 별 무리로 가득한 밤하늘에 녹아들었다.
그에 이어 사방의 건물에서 차례로 십여 마리의 검은 새가 솟구치더니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이것이 강남의 연락망인가.’
상천의 흑조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니 그에 크게 뒤처지지 않는 빠름이었다.
시선을 거두던 대중경의 눈동자에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별이 떠오른다.
‘아름답군.’
그는 모르고 있었으나 서천림의 전투가 끝나던 시점이었다.
떨어지는 별이 적모개의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잠시 지켜보던 대중경이 훌쩍 담을 넘어 사라졌다.
* * *
의성현에서 출발한 전서는 순식간에 강남 각지의 방파에 전해졌다.
무창현 북쪽으로 이틀 거리에 있는 효감현의 정가보 또한 전서를 받은 방파 중 하나였다.
겨울비가 흐느끼듯 쏟아지는 오후의 장원.
먹먹한 하늘 아래 정가보의 수뇌들이 속속 대전에 모여들었다.
“보주님. 무슨 일로 갑자기…….”
부하의 언성이 높아지자 정가보주 정병이 검지를 입술에 붙였다.
“쉿.”
움찔한 중년인이 자라목을 하고 자리에 앉는다.
흰머리로 가득한 정병의 얼굴은 주름으로 가득했으나 흑요석처럼 빛나는 눈동자는 여전한 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대전의 문이 닫히자 좌중을 살핀 정병이 작게 입을 열었다.
“모두 모였는가?”
외당주 정윤이 답했다.
“전원 착석했습니다.”
“얼마 전 화령에서 보내온 서신을 다들 기억하고 있을 것이네.”
정윤이 물었다.
“전쟁이 벌어질 테니 언제든 출병할 수 있게 전시 상태를 유지하라는 서신 말입니까?”
“그렇지. 드디어 시작일세.”
“…….”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거운 긴장감이 실내를 잠식한다.
정병이 이어서 침착하게 말했다.
“대군사께서 서신을 보내오셨네. 그분의 말씀에 따르기만 하면 별 탈 없을 것이니 움직일 때 수하들이 동요하지 않게 잘 수습해야 할 것이네.”
그에 두꺼운 목이 인상적인 듬직한 체구의 중년인, 내당주 성금이 물었다.
“무슨 내용이었습니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누구에게도 말해선 안 될 일이네.”
보주 정병의 당부에 모두가 약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눈을 하나씩 차례로 마주한 정병이 서신의 내용을 전달했다.
“팔황문의 후예. 복령천이 강남에 진입했네. 목표는 우리를 비롯해 열두 개의 방파. 정월을 나흘 앞둔 날 공격이 시작될 것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