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300)
◈ 300화. 감사합니다
숨 막히는 정적에 휩싸인 깊은 산중.
앙상한 나무로 가득한 숲속에 먹먹한 긴장감이 짙게 깔린다.
올해 마지막 날의 아침.
정월을 코앞에 둔 세상은 떠들썩한 분위기로 가득했으나 이곳 함평산의 분위기는 폭풍전야의 고요함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른 식사를 마친 태종무단이 흩어져 휴식을 취하는 가운데 진무립의 곁으로 천하의 고수들이 모여들었다.
“단주.”
나직이 진무립을 부르는 개방의 방주 철표개의 표정이 평소보다 어둡다.
좀처럼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위사영을 비롯해 다른 이들의 표정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이들의 표정이 어두운 것은 지난밤 인근 개방의 분타로 무림맹의 급보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마교의 서천림 돌파와 적모개의 죽음.
단소룡이 맹의 무인을 이끌고 직접 출병했다는 소식이었다.
충격적인 정보에 적지 않은 이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진무립의 짐작대로 회동은 정월 초하루, 바로 내일로 앞당겨진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단소룡의 지원대가 도착하려면 최소한 사흘이 필요했다.
이대로 회동을 덮친다면 이백의 태종무단으로 이만 명이 넘는 마인과 싸워야 한다.
위사영이 물었다.
“단주. 어떻게 할 생각인가.”
그에 이어 남궁세가주 남궁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치는 것은 어떻겠소?”
쏟아지는 질문 속에 생각을 정리한 진무립은 비장하게 눈을 빛냈다.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회동은 반드시 덮쳐야 합니다.”
비단 양측의 수뇌가 모인 자리라서가 아니다.
오랜 세월 음지에서 웅크리고 천하를 향한 야욕을 키워온 황천패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자리다.
그가 나타났을 때 잡지 못하면 천하는 언제 도래할지 모르는 괴물에 대한 두려움으로 몸을 떨어야 한다.
모두가 설명을 기다리는 가운데 진무립의 눈이 느릿하게 움직이는 뜬구름을 담는다.
상대가 회동을 앞당긴 이유는 안다.
‘먼저 도착하는 무림맹의 고수부터 제거한 뒤 마교와 천하의 균형을 맞추고자 하는 거겠지.’
황천패는 그것을 위해 자신을 미끼로 던진 것이다.
목적을 알면서도 갈 수밖에 없으니 놈들의 계책은 성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진무립에게도 변수에 대비한 패가 있다.
‘빠르면 하루. 늦어도 이틀일 거다.’
그 패가 너무 늦지만 않는다면 승산은 충분하다.
무거운 정적 속, 침묵하던 철표개가 입을 열었다.
“그것이 무엇이건 나는 단주의 뜻에 따르겠네.”
선우세가주 선우진이 물었다.
“방주께서는 승산이 있으리라고 보십니까?”
그에 이어 황보세가주 황보한이 말한다.
“천하의 고수들이 태종무단에 모였다곤 하나 적은 무려 이만이 넘습니다.”
철표개가 말했다.
“단주가 생각 없이 우리를 사지에 몰아넣으려는 것은 아닐 게야.”
철표개는 이어서 진무립에게 물었다.
“황천패를 반드시 그 자리에서 잡을 생각이겠지?”
“그렇습니다.”
“나 역시 자네의 생각에 동의하네. 천하에 오늘의 위기가 닥친 건 지난 전쟁에서 팔황문을 완전히 뿌리 뽑지 못했기 때문이야.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네.”
철표개는 경험 많은 노고수답게 이 전쟁의 핵심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에 이어 제갈세가주 제갈명이 말했다.
“저 역시 회동을 덮쳐야 한다고 봅니다. 황천패를 최우선으로 잡고 사흘만 버티면 지원군이 오겠지요. 소화산의 지형을 잘 이용한다면 불가능한 임무는 아닐 겁니다.”
그에 이어 진무립을 잘 아는 무인들이 속속 같은 의사를 밝힌다.
“단주께서는 승산 없는 싸움을 할 위인이 아니었지요.”
“저 역시 무엇이든 따르겠습니다.”
진무립의 능력은 그가 보여준 지난 행보만 봐도 충분히 믿을 수 있다.
거의 모든 이가 이견 없이 동의할 뜻을 밝히자 질문했던 남궁검이 되려 머쓱해졌다.
“반대하고자 하는 게 아니었다오. 그냥 궁금했을 뿐이지.”
빙그레 웃은 진무립이 모두의 얼굴을 차례로 훑어보며 공손히 읍을 했다.
“감사합니다.”
다가올 전투는 지금까지 있었던 전투 중 그 어떤 것보다도 어렵고 위험한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모두가 자신을 믿고 따라주니 고맙지 않을 수 없다.
꼿꼿이 허리를 편 진무립이 당당하게 말했다.
“이 전쟁, 반드시 승리로 이끌겠습니다.”
회의가 일단락되자 모두가 흩어져 마지막 점검에 돌입했다.
병기를 깨끗하게 닦는 자가 있는가 하면 심상 수련으로 적과의 싸움에 대비하는 이도 있었고 체력을 비축하고자 잠을 청하는 무인들도 보인다.
적막이 고요히 흐르는 가운데 나직한 바위에 걸터앉은 진무립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적모개.’
진무립의 눈동자에 쓸쓸한 빛이 스쳐 간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의 죽음은 진무립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리 긴 인연은 아니었으나 함께 했던 즐거운 추억들이 가슴 아프게 파고든다.
지그시 눈 감은 진무립이 바위에 등을 기댔다.
언젠가 가까운 사람을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
그것은 산동에서 부하를 잃었을 때부터 각오해왔던 일이다.
마지막 싸움에선 이보다 더 큰 피해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진무립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러온다.
차분한 정적 속, 진무립은 고개를 흔들어 스며드는 잡념을 털어냈다.
전쟁이 끝나면 슬퍼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나는 진무립이다. 이번에도 반드시 해낼 것이다.’
진무립이 각오를 다잡고 있을 때였다.
불쑥 바위 위로 뛰어오른 단려화가 싱긋 웃으며 곁에 앉았다.
“피곤하죠?”
“조금.”
단려화가 짐짓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질문이 너무 많다니까. 그냥 무립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될 텐데. 그렇죠?”
농담을 걸어오는 걸 보면 내심 적모개의 소식을 들은 진무립이 걱정된 모양이다.
진무립이 피식 웃자 단려화도 배시시 웃었다.
“질문이 많다는 건 모두가 무립의 짐을 나눠 갖고 싶기 때문이에요. 모든 걸 혼자 짊어질 필요는 없어요.”
오랜 세월, 많은 것을 등에 지고 고독한 싸움을 이어온 진무립이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그녀는 진무립의 마음을 잘 안다.
그녀는 고독한 어깨 위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었다.
진무립이 그녀의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
“고마워.”
“이제 곧 강남의 싸움도 끝이 나겠죠.”
아마도 그 전장은 화령도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단려화의 표정에 불안함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감이 좋은 건 알고 있죠? 왠지 느낌이 나쁘지 않아요. 이 전쟁, 반드시 이길 수 있어요.”
그녀의 말 한마디에 복잡한 생각이 사라지더니 스스로 되새기려 노력하던 각오가 완전해진다.
차분히 가라앉았던 진무립의 눈동자가 반짝이는 빛을 되찾았다.
“당연하지.”
그에 이어 입가에 언제나처럼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떠올랐다.
“내가 있는데 패한다는 건 하늘이 두 쪽 나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단려화가 대견하다는 듯 웃으며 진무립의 어깨를 두드린다.
“그래. 이게 바로 진무립이지. 훌륭해!”
마치 어른이 아이를 달래는 듯한 그 모습에 진무립도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 * *
적막한 함평산의 하늘에 높은 태양이 떠올랐을 때.
강남의 하늘에도 그와 같은 태양이 밝은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화령도인가.”
일사령 주유성이 나직이 읊조린다.
그의 뒤로 수십 명의 무인이 나란히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본다.
흩어졌던 십이사령과 그 부하들이 마침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햇살에 밀려난 안개가 서서히 걷혀가며 아름다운 섬의 풍광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물결이 부딪치는 호수 변에는 붉은 피가 묻어있었다.
이사령 곽인평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제법 화려하게 한판 붙은 모양이군.”
화령의 무복을 입은 수십 구의 시신이 돛을 잃은 조각배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호수에 이 정도로 많은 시신이 떠다닌다면 섬에는 그보다 많은 숫자의 시신이 있을 것이다.
팔사령 구소군이 호수 변으로 흘러온 시신을 툭 걷어찼다.
“참패하고 도망쳤다더니 도망도 제대로 못 친 모양인데?”
오사령 자현의 눈가에 옅은 주름이 패였다.
“정말 성공한 건가?”
운화결의 배신으로 십이사령 전원이 임무에 실패했다.
상대가 자신들의 계획을 알고 미리 대비한 탓이다.
그런데 백화무단의 기습만 성공했다고 하니 아무래도 이상한 것이다.
사사령 음묘악이 말했다.
“시신을 보면 싸움이 있었던 것은 분명해. 거기에 마을 사람들도 패배한 화령의 사람들이 다급하게 도망치는 것을 봤다고 했잖아? 화령이 계책을 준비하고도 백화무단을 당해내지 못했을 수도 있지.”
그녀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백화무단주 양무화는 일사령 주유성조차도 경시하지 못하는 엄청난 고수였으니까.
그러나 자현은 좀처럼 꺼림칙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검황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과장이었나?’
일사령 주유성이 담담하게 발을 내디뎠다.
“가보면 알겠지.”
같은 시각.
당우는 십이사령이 도착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빨리 눈치채고 있었다.
태천각의 정상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았던 당우가 불안한 눈초리로 말했다.
“형님. 선천교 쪽으로 다가옵니다.”
곁을 지키던 당천이 동생의 어깨를 두드렸다.
“수고했다. 이제 자릴 피해라.”
창문을 열고 훌쩍 뛰어내린 당천이 즉시 화윤의 집무실을 찾았다.
“선천교로 오는 모양입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화윤이 섭선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거리에는 화령의 수뇌를 비롯해 이백여 명의 정예 무인들, 그리고 상천팔기와 흑사칠랑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당우가 십이사령을 인지한 순간부터 언제든 움직일 수 있게 대기하던 이들.
식솔들과 무공이 약한 무인들은 모두 섬을 떠난 상태였다.
착.
섭선으로 손바닥을 친 화윤이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시작이다.”
오늘의 전투에서 승리하면 강남에 드리운 먹구름을 완전히 걷어낼 수 있다.
비장하게 눈을 빛낸 무인들이 품에서 검은 단약을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가자.”
천영의 움직임을 시작으로 일사불란 흩어진 그들이 각자의 위치로 향했다.
십이사령은 선천교를 뒤덮은 시신을 넘어 화령도의 계단에 접어들었다.
계단 가득한 시신에서 흘러내린 피가 끈적하게 발을 붙잡는다.
팔사령 구소군이 잔뜩 인상을 쓰며 시신을 걷어찼다.
“싸움이 끝났으면 좀 치우지.”
사방 가득한 시신에 오사령 자현이 입술에 침을 발랐다.
‘정말 승리한 건가?’
여기까지 오니 자신의 생각에도 의심이 깃든다.
화윤이 백화무단의 시신만 치운 채 아군의 시신을 방치한 이유였다.
그의 생각이 어떻건 일사령 주유성은 멈추지 않고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을 끝까지 올라간 주유성의 눈에 적막한 화령도의 전경이 떠오른다.
곳곳에 부서진 담장과 거리 가득한 피는 어제의 혈투를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었다.
언덕을 내려가는 그들을 숨죽인 채 지켜보는 눈들이 있었다.
그들로부터 백 장 밖에서, 당천에게 전음을 보낸 이는 흑사칠랑의 독랑 막월이었다.
당천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숨 막히는 정적 속, 십이사령의 뒤로 흑의인들이 따라 내려오자 막월의 전음이 다시 도착했다.
[앞으로 오십 보.]이젠 움직이지 않으면 상대에게 들키고 만다.
당천은 막월과 함께 슬며시 물러나며 뒤로 수신호를 보냈다.
[이십 보.]그것은 두 사람과의 거리가 아닌 목표한 지점까지 남은 거리였다.
당천의 손이 품 안에 들어간다.
적의 후미가 완전히 거리에 접어든 순간이었다.
막월이 외쳤다.
“지금!”
서걱!
비수를 역수로 쥔 당천이 담장 밑의 줄을 잘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