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315)
◈ 315화. 처절한 사투
고막을 울리는 쩌렁쩌렁한 함성이 잦아들 무렵, 화마 염자성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린다.
‘내가 이자를 막을 수 있겠는가?’
교주 장천무가 신룡에게 묶인 이상 누군가는 진무립을 상대해야 한다.
그러나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
이런 괴물을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형용할 수 없이 무거운 정적 속에, 진무립은 나직이 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우…….”
모든 것을 쏟아부은 혈천비의 초식에 손발이 부르르 떨려온다.
한낮부터 밤이 되도록 음과 양의 기운을 사용하며 누적된 상처가 고통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내색할 순 없다.
황천패는 죽었지만 아직 전투는 끝난 게 아니었으니까.
손의 떨림을 가까스로 억누른 진무립이 태연하게 상태를 곧게 세울 때였다.
‘지금 가야 한다!’
오로지 진무립의 등만을 눈에 담고 있던 용추는 그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주군!’
별안간 용추가 전방으로 몸을 날리자 그의 생각을 눈치챈 상천의 무인들이 일제히 뒤를 따랐다.
“황천패는 죽었다!”
“이제 저놈들도 몰아내자!”
솟구치는 외침에 이어 태종무단의 고수들이 몸을 날리며 몸을 떠는 마교도들을 덮쳐 간다.
카카카카카캉!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잠시 멈췄던 전투가 재게 된다.
용추가 진무립의 앞을 가린 사이,
곁으로 다가온 풍연과 한경이 진무립의 팔을 부축했다.
“소공자!”
고개 돌린 진무립이 다소 창백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많이 다쳤구나.”
넝마가 된 두 사람의 상의는 피에 흠뻑 젖어 있었고 전신이 자잘한 상처로 가득했다.
한경이 대수롭지 않게 씩 웃었다.
“이 정도는 별것 아닙니다.”
그때 악왕 탁이신이 진무립의 곁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수고했소. 여긴 우리에게 맡기고 어서 회복하시오.]진무립은 완벽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냈다.
이젠 자신들이 그의 분투에 보답할 차례다.
동료들의 등을 뛰어넘은 탁이신이 화마 염자성을 향해 두 자루 소검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쿠콰콰콰쾅!
불꽃 튀는 접전과 함께 잠시 끊어졌던 비명과 굉음이 협곡의 하늘로 솟구친다.
용추와 두 사람의 호법 아래 진무립은 사양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준비한 계획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마지막 패가 도착할 때까지 자신이 이곳을 막아야 한다.
‘조금만 더 버텨라.’
조용히 눈 감은 진무립의 주변으로 은은한 서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태종무단이 내지른 엄청난 함성은 장벽 너머의 무인들에게도 생생하게 전해졌다.
소매로 얼굴을 닦은 단려화가 제갈무용을 찾았다.
“원주님! 무립이 이겼나 봐요!”
치열한 사투 속에, 절벽이 무너질 듯 강렬한 굉음과 두 사람의 외침은 이들도 똑똑히 듣고 있었다.
제갈무용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모양이구려.”
일흔이 넘은 노고수의 짙은 눈동자에 아귀처럼 몰려드는 마인들이 담긴다.
‘정말 지긋지긋한 놈들이로다.’
개방의 정예인 추영당의 무위는 분명 적보다 우위에 있다.
그러나 목숨을 도외시하고 달려드는 상대의 집념은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
함께 필사적으로 싸우던 오십여 명의 추영당원 중 살아남은 이는 고작 스물.
전투가 시작되고 벌써 하룻낮에 가까워지는 시간, 오백여 명의 마인들을 제거하는 사이 절반 이상의 당원들이 목숨을 잃었다.
지금까지 버텨낸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 일이다.
탓.
지면을 박찬 제갈무용의 신형이 곧게 뻗어 나가더니 추영당원의 측면을 막아섰다.
카카카캉!
갑작스러운 제갈무용의 기습에 짓쳐 들던 마인들이 튕겨 나간다.
제갈무용은 적의 빈틈에 가차 없이 검극을 쑤셔 박았다.
콰직!
“컥!”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피를 피해 훌쩍 물러난 제갈무용이 추영당을 독려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시게!”
적의 수장 중 하나가 죽었다면 곧 안쪽에서 뭔가 변화가 생길 것이다.
우측으로 움직이는 단려화 역시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돼!’
그러나 그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빠르게 지쳐가는 자신들과 반대로 차륜전을 전개하는 적은 이제 막 전투를 시작한 것처럼 생기가 넘친다.
지쳐가는 마음을 다잡은 단려화는 즉시 몸을 날리며 검을 출수했다.
사방으로 피와 살점이 튀고 비명과 쇳소리가 난무하는 처절한 전장.
후방의 절벽 위에 선 흑전원 부원주 번호기가 초조한 얼굴로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이게 옳은 길인가.’
관은 절대 무림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
원주 국영승이 허락했다곤 하나 쉽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부원주님.”
곁으로 다가온 조장 영모가 나직이 그를 불렀다.
“움직이라는 원주님의 전언이 있으셨습니다.”
지그시 눈감은 번호기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준비는 되었느냐?”
복면 위로 드러난 영모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인다.
“물론입니다.”
“절대 정체를 노출해선 안 된다. 후미를 덮쳐 적의 시선을 분산시켜라.”
“예.”
예를 갖춘 영모가 꺼지듯 사라졌다.
그로부터 잠시 후, 마인들의 후미로 어깨에 하얀 천을 묶은 흑의인들이 은밀한 기습을 개시했다.
“아악!”
“뒤다!”
후미의 비명에 마인들의 시선이 흩어진 순간이었다.
쌔액- 콰앙!
벽을 뛰어넘고 뚝 떨어진 누군가가 순식간에 앞으로 돌진하며 맹렬한 검초를 흩뿌렸다.
콰콰콰콰쾅!
“크아악!”
찢어질 듯한 비명과 절규가 하늘로 솟구친다.
순식간에 스무 명의 마인을 도륙한 사내는 바로 위사영이었다.
곳곳을 뛰어다니며 전황을 파악하던 제갈경이 회복을 마친 위사영을 보낸 것이다.
슬쩍 돌아본 위사영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고생 많았소. 내가 막는 동안 잠시 쉬시오.”
지쳐가던 추영당원들의 얼굴에 생기가 떠오른다.
고개 돌린 위사영의 눈이 서늘한 빛을 머금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들이 필사적으로 적을 막는 사이 자신은 장천무에게 당해 앉아서 회복에 전념해야 했다.
진무립의 완벽한 계획에 하나의 오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과욕을 부린 자신이었다.
만일 단소룡이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모든 계획이 어긋났을지도 모를 엄청난 실수다.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할 때까지 적을 찌르고 또 벨 것이다.
투지를 불태운 위사영의 입에서 그답지 않게 결연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자, 오너라!”
해일처럼 몰려드는 시꺼먼 먹구름을 향해, 지면을 박찬 위사영의 검신이 번뜩이는 검초를 쏟아냈다.
쿠콰콰콰콰콰!
서릿발 같은 검초가 폭풍처럼 쏟아지며 거침없이 마교도들을 휘몰아친다.
육중한 폭음이 밤하늘로 높게 솟구칠 때.
천경봉의 정상에서 처음으로 그보다 더욱 강렬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쾅!
단 한 수를 주고받았을 뿐인데 단소룡과 장천무 사이의 지면이 거미줄처럼 쩍 갈라졌다.
주르륵 밀려난 두 사람의 눈동자가 시린 청광을 토해낸다.
‘강해졌는가. 신룡.’
장강의 강변에서 마주쳤던 그때, 직접 손속을 주고받은 것은 아니나 그날과는 명백히 다른 느낌이다.
그날의 단소룡이 하늘에서 내려온 신장과도 같은 느낌이었다면 오늘은 마치 무릉도원을 노니는 신선과도 같은 느낌이다.
탓!
미끄러지던 발을 멈춘 장천무가 다급히 우측으로 몸을 날렸다.
서걱!
뭔가가 순식간에 옷자락을 스치고 지나간다.
전신에 흑무를 두른 장천무가 꺼지듯 주저앉았고.
슉.
머리 위로 뭔가 지나간다 싶은 순간 장천무는 상체를 비틀었다.
서걱.
소리 없는 세 번의 연속공격, 성천투공 비격삼광(秘擊三光)의 초식이 두 번이나 옷자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보법을 극성으로 전개한 장천무가 갈지자로 이동하며 단소룡을 눈에 담았다.
두 주먹을 가볍게 쥔 단소룡은 언뜻 보면 빈틈투성이다.
그러나 섣불리 들어가면 무조건 당한다는 느낌이 좀처럼 뇌리를 떠나질 않는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당신을 뛰어넘고 정점에 설 것이다!’
단소룡이 그런 것처럼 자신에게도 선보이지 않은 비장의 한 수가 있으니까.
수시로 변하는 장천무의 눈빛과 달리 단소룡의 날카로운 눈빛은 시종일관 변함이 없었다.
‘제법이로군.’
비격삼광의 초식이 거듭될수록 조금씩 목표에서 멀어져 간다.
장천무가 단소룡의 무공에 점점 적응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뭐 하나 내주지 않고서는 쉽지 않겠어.’
그것이 팔이든, 다리든.
눈앞의 대적은 조건 없이 쉽게 목을 내어줄 하수가 아니었다.
‘아직은 아니지.’
태종무단의 함성을 들은 이상 아래는 진무립에게 맡기고 이 싸움에 모든 것을 집중한다.
이 전투는 누가 먼저 패를 보이는가에 따라 승패가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자신도, 장천무도 어떻게든 서로의 절초를 먼저 끌어내고자 지루한 공방을 이어가는 중이다.
단소룡은 다시금 자신을 감춘 채 차가운 눈동자로 장천무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절륜한 보법으로 천경봉을 넓게 누비기 시작한 두 사람이었으나 분지에서 들려오는 건 오로지 차가운 겨울바람 소리뿐이었다.
진무립과 황천패가 벌인 화려한 싸움과는 궤가 다른 무성(無聲)의 전투.
강하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싸움이 폭발하는 활화산 같은 싸움이었다면, 단소룡과 장천무의 싸움은 살얼음판 위의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한 싸움이었다.
분지에서 숨 막히는 전투가 이어지는 사이.
“크아악!”
피에 섞인 절규가 새벽하늘로 치솟았다.
태종무단의 상태를 파악한 염자성이 부하들을 독려했다.
“놈들은 힘이 빠졌다! 돌파해라!”
“예!”
후열에서 대기하던 마인들이 동료의 시신을 뛰어넘어 태종무단에게 달려든다.
염자성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한 놈도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고작 백 명도 채 안 되는 적에게 무려 이천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이대로는 승리할지라도 신교의 역사에 길이 남을 치욕이 될 것이다.
염자성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추마!”
후위에 있던 추마 이청번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염자성이 물었다.
“뒤쪽은 어떠냐?”
이청번과 일부 무인들은 후방의 벽을 돌파하려 애쓰는 중이었다.
이청번이 미간을 찌푸렸다.
“놈들이 지형을 이용하며 필사적으로 버티는 탓에 쉽지 않다.”
천진서와 자영을 비롯해 무인 일부가 벽 위에서 올라오는 적을 막아내는 중이었다.
“반 시진 안에 뚫어라. 광룡이 회복하기 전에 전황을 바꿔야 한다.”
진무립의 엄청난 신위를 목도한 이상 가급적 그가 오기 전에 판세를 바꾸고 싶었다.
“알았다.”
고개를 끄덕인 이청번이 후열로 사라졌을 때였다.
곳곳의 전황과 함께 분지를 확인한 제갈경이 진무립의 육병흑궤를 들고 내려왔다.
“단주.”
진무립의 주변을 맴돌던 은은한 서기가 이내 그의 전신으로 빨려들었다.
용추의 호법 속에 대주천을 마친 진무립이 마침내 눈을 떴다.
“위는 어떻게 됐습니까?”
“팽팽합니다. 아무래도 쉽게 끝날 싸움은 아닌 듯합니다.”
단소룡과 장천무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무거운 긴장감을 유지한 채 서로의 빈틈을 노리고 있었다.
그런 전투엔 누구든 섣불리 끼어들 수 없다.
제갈경은 이어서 말을 계속했다.
“문제는 위가 아니라 이곳이지요. 사기가 올랐다곤 하나 이대로는 오래 버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백여 명의 숫자로 여섯 시진 이상 백 배가 넘는 적과 싸워왔으니 그 피로는 극에 달했을 터.
진무립의 엄청난 활약으로 힘을 얻었다곤 하나 그게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제갈경의 초조한 시선 속에 진무립의 손이 육병흑궤로 향했고.
스르르…….
새하얀 천으로 휘감은 길쭉한 뭔가가 둥실 떠오르더니 진무립의 손으로 빨려들었다.
스르륵.
벗겨진 천이 바닥으로 흘러내리며 황룡(黃龍)이 새겨진 화려한 검집이 나타났다.
용추의 눈에 반가운 빛이 떠오른다.
“은광검(殷光劍).”
조부 초평천에게 물려받은 모친의 검.
사천을 떠난 뒤로 봉인했던 은광검이 마침내 달빛 아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진무립이 앞으로 걸어나가며 말했다.
“충분히 쉬었습니다. 지친 단원들을 뒤로 물리고 움직일 수 있는 이는 모두 양쪽 절벽 위에 배치하십시오. 배후로 넘어가는 것만 막으면 됩니다.”
지쳤다곤 하나 절벽의 이점을 활용하면 위에서 막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던 제갈경이 눈을 부릅떴다.
“그럼 이곳은 누가 막습니까?”
진무립의 말은 협곡 아래를 텅 비우라는 것과도 같았다.
잠시 서쪽 하늘을 바라본 진무립은 이내 시선을 돌려 전방을 응시했다.
“크악!”
피와 함께 솟구치는 비명은 태종무단의 것이었다.
좌측의 일각이 무너지자 탁이신이 다급하게 그쪽으로 몸을 날린다.
‘내가 해야 한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전신이 쓰라렸으나 동료의 괴로운 비명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스릉.
오싹한 쇳소리와 함께 투명한 검신이 달빛 아래 영롱한 자태를 드러낸다.
발을 내디딘 진무립이 결연하게 눈을 빛냈다.
“저들을 뒤로 물리세요. 여긴 내가 혼자 막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