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316)
◈ 316화. 최강의 적
지금까지 죽은 단원의 숫자가 마흔둘.
살아있는 자들도 서 있는 게 이상할 정도로 지치고 다친 이가 부지기수.
자신을 믿고 여기까지 와준 저들을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본 진무립이 홀로 나아가자 놀란 제갈경이 소매를 붙잡았다.
“단주.”
그러자 용추가 제갈경의 어깨를 잡으며 고개 저었다.
진무립이 홀로 나선다면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제갈경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무는 사이, 머릿속으로 계산을 마친 진무립은 어느새 동료들 사이를 파고들고 있었다.
[전원 오십 장 뒤로.]제갈경은 결국 진무립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모두 물러나시오!”
그의 외침에 태종무단이 반응하는 순간이었다.
슈우우우!
마도림의 보법, 운선보(雲仙步)를 전개한 진무립의 신형이 유려하게 미끄러지며 적의 앞을 가로막았다.
순간 멈칫한 화마 염자성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진무립.’
결국 놈이 회복을 마치고 돌아온 것이다.
‘창백한 낯빛을 보면 완전히 회복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황천패를 도륙한 무시무시한 신위를 고려하면 조금 더 그의 상태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는 침착하게 명을 내렸다.
“간격을 넓히고 해온 것처럼 차륜전을 펼쳐라.”
“예!”
그들이 짓쳐 드는 순간이었다.
슈아아악!
섬광처럼 쏟아진 경화사검 유섬오식(流閃五式)의 검초가 주변을 지나치는 적들의 목을 정확히 꿰뚫었다.
“커억!”
순식간에 다섯 명의 적이 목을 부여잡고 쓰러진다.
화마 염자성의 미간이 잔뜩 일그러졌다.
‘역시.’
부상을 당했다곤 하나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사이 운선보를 전개해 갈지자로 움직인 진무립의 신형이 염자성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고.
“크아아악!”
찢어질 듯한 비명과 함께 번뜩이는 검광이 사방을 어지럽게 수놓기 시작했다.
벼락같은 쾌검으로 주변을 공격하는 경화사검 연무사해(演武死海)의 초식.
혈맥이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진무립은 팔천영신공 대신 내력 수발에 부담이 적은 경화사검을 선택한 것이다.
좌우로 넓게 움직이며 적의 진로를 차단한 진무립이 두 눈을 번뜩였다.
‘할 수 있다.’
막대한 내력을 필요로 하는 팔천영신공과 달리 마도림의 경화사검은 육신에 가해지는 부담이 확실히 적다.
흑검보다 가벼운 은광검은 경화사검을 펼치기에 적합한 병기.
모친 초이린이 남긴 은광검은 온전치 않은 지금의 몸 상태에선 이보다 좋을 수 없는 무기였다.
마인들이 일제히 진무립에게 달려드는 사이.
그의 명대로 무인들을 뒤로 물린 제갈경은 그제야 진무립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걸 알아차리지 못했다니.’
오 장 남짓하던 협곡의 폭이 이 장 정도로 좁아진 이곳은 절벽의 높이가 십 장도 채 안 될 만큼 낮았다.
진무립이 모두를 절벽 위에 배치하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이곳이라면 진무립이 홀로 입구를 막아낼 수 있을 테니까.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을 모두 절벽 위에 배치한다면 쉽게 뚫리지는 않을 것이다.’
제갈경은 즉시 중상자의 치료를 지시한 뒤 탁이신을 비롯한 고수들에게 말했다.
“이곳 절벽 위에 넓게 포진해 올라오는 적을 막아주십시오.”
뒤로 물러난 만큼 막아야 할 범위도 넓어졌다.
하지만 지형의 이점을 살린다면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지.”
호흡을 고른 탁이신이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을 차출해 즉시 절벽을 올라가는 동안 조금씩 물러나던 진무립이 좁은 입구를 완전히 틀어막았다.
빠르게 뒤를 추격한 마인들이 진무립과 대치를 이뤘을 때, 그들의 뒤에서 비틀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크크큭……. 비켜라.”
부하들을 비집고 걸어 나오는 인물은 바로 부교주 군도였다.
초전의 기습에 당했던 그가 이제야 의식을 회복한 것이다.
“벌써 밤이냐?”
밤하늘을 슬쩍 쳐다본 군도가 길목을 틀어막은 진무립을 보며 인상을 썼다.
“고작 한 놈을 앞에 두고 뭘 하는 것이냐?”
염자성은 고작 한 놈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판단이 망설여지는 지금이라면 군도처럼 막무가내로 나서는 게 어울릴지도 모른다.
군도는 망설임 없이 명을 내렸다.
“내가 선두에 서지. 따라와라!”
지면을 박찬 군도의 신형이 일직선으로 쏘아지며 진무립의 정면으로 짓쳐 들었다.
슈아악!
흑염화권 절사환의 초식을 전개한 군도의 주먹에서 검붉은 권영이 쏟아져 나왔다.
“비켜라!”
타는 듯한 불길이 눈앞까지 도착한 순간이었다.
쌕!
진무립의 전신에서 서릿발 같은 살기가 쏟아져 나오더니 번뜩이는 은광검이 절사환을 그대로 관통해버렸다.
콰직!
상호군에게 배웠던 마도림의 무공, 경화사검 사신출세(死神出世)의 초식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흡!”
군도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진다.
진무립이 기도를 감추고 있던 것을 이제야 알아차린 까닭이다.
기겁한 군도가 주춤 물러나 태세를 정비하는 사이.
슈슈슈슈슈!
빗살처럼 뻗어 나간 검광이 달려드는 마인들의 급소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꿰뚫는다.
“크아아악!”
찢어질 듯한 비명이 협곡을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휘날리는 긴 머리 사이로 염자성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패인다.
‘분명 완전한 상태는 아닐 텐데.’
찢겨 나간 의복 사이로 비치는 상처는 진짜다.
달빛보다 창백한 얼굴도 그가 분명 부상을 당했다는 걸 증명한다.
그럼에도 단 하나의 낭비도 없는 절륜한 쾌검은 등골이 서늘해질 만큼 완벽했다.
순식간에 서른 명의 적을 도륙한 진무립이 제자리로 돌아오며 굳건한 바위처럼 그들을 막아섰다.
“네놈은 우리보다 더 산적처럼 생겼구나.”
진무립은 검극으로 놀란 군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고작 한 놈을 상대로 뭐 하는 거냐?”
자신의 말을 그대로 돌려받은 군도가 이를 바드득 갈며 물었다.
“저놈은 누구냐? 뭐 조자룡이라도 되는 것이냐?”
염자성이 말했다.
“광룡 진무립입니다.”
“황천패는?”
“죽었습니다.”
군도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죽었다고?”
함께 천하를 나누자고 먼저 손을 내민 자가 죽었다고 하니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비마 장추도가 말했다.
“그보다 여길 뚫는 게 우선입니다. 저자도 황천패와 싸우는 과정에 크게 다쳤으니 온전한 상태는 아닐 겁니다.”
“교주님은?”
“천경봉에서…….”
그 순간, 그들에게 칼날 같은 기세가 장대비처럼 쏟아지며 대화의 맥을 끊었다.
슈슈슈슈슉!
“감히 이 어르신의 대화를 끊어?”
대노한 군도는 뒷발을 지면에 틀어박으며 주먹을 내질렀다.
슈악!
눈앞에서 피어오른 검붉은 권영이 수레바퀴처럼 회전하더니 쏟아지는 공격을 그대로 후려쳤다.
콰콰콰쾅!
부서진 기파가 사방으로 비산한다.
한낮의 기습에 당했을 때와는 주먹의 위력이 다르다.
내공심법으로 흑염수신공(黑炎修身功)을 익힌 군도는 남들보다 월등한 회복력을 자랑하는 무인.
천마신교의 부교주답게 고작 하루도 지나지 않아 완벽한 몸 상태를 회복한 것이다.
거친 폭음이 터져 나오며 바람이 몰아치는 순간.
어느새 진무립은 우측으로 이동해 진격하는 적의 다리를 그대로 잘라버리고 있었다.
‘뭐 저렇게 잽싸?’
군도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장추도를 쳐다본다.
“저게 지친 거냐?”
“…….”
장추도는 할 말이 없었다.
만일 군도가 진무립과 황천패의 싸움을 직접 봤더라면 자신의 말을 이해했을 것이다.
타타탓!
그사이 진무립의 검초가 유성우처럼 쏟아지며 달려드는 마인들을 거침없이 꿰뚫었다.
슈슈슈슈슉!
흩어지는 핏방울과 함께 찢어질 듯한 비명이 솟구친다.
“아악!”
군도가 벼락같이 뒤를 쫓으며 일갈했다.
“멍청하게 왜 저놈만 노리는 거냐! 지나갈 수 있는 놈은 그대로 천경봉까지 달려라!”
진무립의 뒤로 이십 장 밖에는 지친 무인들이 상처를 치료하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그나마 온전한 무인들은 모두 절벽 위를 지키러 올라간 상태다.
여길 지나쳐 부상자를 공격한다면 충분히 진무립의 시선을 분산시킬 수 있을 터, 부하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싸움을 두고 어려운 길을 가고자 하니 답답한 것이다.
화마 염자성이 천산육마를 소집했다.
“우리가 놈의 발을 잡는다. 부교주께선 그 틈에 부하들을 이끌고 돌파하십시오.”
“알았다.”
군도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무립의 날카로운 움직임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현시점에 염자성의 제안이 가장 낫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염자성이 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나섰다.
‘최강의 적인가.’
잠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쓰러진 마교도가 벌써 오십이 넘는다.
그동안 누구도 그의 곁을 지나가지 못했을 정도로 진무립의 신위는 무시무시했다.
복령천주가 죽은 이상 이 자리에서 반드시 북광남신을 잡아야 한다.
‘다친 무림맹도들을 공격할 수 있다면 생각보다 쉽게 놈을 처리할 수 있을 거다.’
진무립은 밀려드는 적의 후방에서 넘실거리는 지독한 살기를 감지했다.
천산육마가 발산하는 기세는 지금의 몸 상태로는 결코 경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여기서 저들을 막지 못한다면 태종무단은 전멸한다.
‘죽는 한이 있어도 막아내겠다.’
결연한 각오를 되새긴 진무립은 은광검을 집어넣고 좌측 절벽을 향해 장심을 내뻗었다.
단전에서 솟구친 한 줄기 내력이 상처 난 혈맥을 타고 흘러 장심으로 쏟아져 나왔다.
‘큭.’
혈맥이 찢어질 듯 쓰라린다.
진무립은 고통을 참으며 절벽을 향해 장력을 쏟아냈다.
쏴아아- 쾅!
장력에 적중한 절벽에서 바위 파편이 쏟아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탓!
벼락같이 이동한 진무립의 신형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떨어지는 돌조각을 거침없이 후려치기 시작했다.
따다다다다다!
회전하는 진무립의 주변으로 광풍이 몰아치며 돌조각이 암기처럼 마교도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콰직! 퍼퍼퍼퍽!
머리가 으깨지고 팔다리에 날카로운 돌조각이 사정없이 틀어박힌다.
마교의 정예일지라도 진무립이 작심하고 퍼붓는 공격에 완벽히 대응하는 건 어려웠다.
“컥!”
“크악!”
팔천영신공 연탄폭시를 응용한 공격이 순식간에 적의 선두를 무너뜨렸다.
돌진하던 마인들이 주춤한 사이, 화마 염자성과 천산육마가 진무립을 향해 몸을 날렸다.
“간다.”
여섯 줄기 강렬한 섬광이 진무립의 전신을 노리며 쏘아졌다.
왼발로 절벽을 박찬 진무립이 꺼지듯 사라졌다.
쾅!
염자성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더 빨라졌다고?’
눈앞에서 그의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한 것이다.
사라진 진무립의 신형이 협곡의 중앙으로 쏘아진 직후, 천산육마의 공격이 절벽에 적중하며 커다란 바위가 쩍 갈라져 나왔다.
쿠웅!
그 틈에 군도와 마인들이 우측의 공간으로 신법을 전개한다.
타타타탓!
그들이 일 장을 나아갔을 때였다.
쐐애애액!
지독한 살기를 머금은 진무립의 검광이 앞서 나온 마인들을 향해 벌 떼처럼 쏟아졌다.
“크아악!”
이를 악문 천산육마가 방향을 바꿔 진무립을 추격했고 군도가 몸을 돌려 주먹을 내지른다.
“어딜!”
쏴아아-!
불같은 권영이 짓쳐 드는 검광을 향해 쏟아지고 천산육마가 진무립의 등 뒤에 도달한 순간이었다.
진무립의 손목이 좌우로 흔들렸고.
슈우우우!
권영에 찢겨 나갈 것처럼 보이던 검광이 뱀처럼 방향을 비틀더니 후방의 마인들에게 쏟아졌다.
“크아아아악!”
“아아!”
예상치 못한 공격에 벌집이 된 마인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간다.
쌔애액!
진무립은 눈앞까지 짓쳐 든 권영을 피해 꺼지듯 주저앉았다.
그러자 매섭게 날아들던 권영이 진무립의 배후에 있던 천산육마에게 날아간다.
“엇!”
부릅뜬 군도의 눈에 다급히 병기를 휘두르는 천산육마가 떠올랐고.
콰아앙!
강렬한 폭음과 함께 땅거죽이 솟구쳤다.
진무립은 적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경화사검 사검주유(死劍舟遊)의 초식을 전개했다.
슈우우우우-!
은광검에서 줄기줄기 솟구친 죽음의 검광이 마치 뱃놀이하듯 허공을 주유하며 마인들을 거침없이 몰아붙였다.
“마, 막아라!”
놀란 마인들이 다급하게 병기를 휘젓는다.
그러나 그들의 틈을 전광석화처럼 파고든 검광은 일체의 충돌 없이 요혈만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억!”
“크윽!”
곳곳에서 억눌린 신음과 함께 피 보라가 솟구치며 대지를 붉게 물들여간다.
그들은 결국 나섰던 걸음을 뒤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다시 일 장 뒤로 밀어낸 진무립이 간격을 벌리며 호흡을 다스렸다.
“후우.”
공격을 퍼붓고 물러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숨 한 번 들이마실 수 있을 만큼 찰나의 순간.
그 순간만큼은 군도도, 천산육마도 온전히 진무립의 움직임을 쫓을 수 없었다.
가라앉는 흙먼지 속에서, 진무립의 눈동자에 경악한 적의 얼굴들이 떠오른다.
‘성공인가.’
두 발을 굳건히 틀어박은 진무립은 전신에서 몰려오는 고통을 애써 억눌렀다.
적의 자신감을 꺾기 위해 조금 과하게 힘을 쓴 탓에 육신이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움직임은 적에게 자신이 여전히 두려운 존재라는 걸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당당하게 가슴을 편 진무립이 실소를 흘리며 적을 자극했다.
“이건 너무 시시하지 않은가? 조금 더 힘을 내봐라.”
군도의 눈에 이글거리는 불길이 치솟았다.
“저 망할 자식이.”
그때 차갑게 머리를 식힌 염자성이 군도에게 말했다.
“계획을 바꾸겠습니다. 아무래도 저자부터 죽여야겠습니다.”
장천무가 쉽게 당할 리도 없으니 조급함은 버린다.
이미 넝마가 된 다른 자들은 진무립을 죽인 뒤에 처리해도 늦지 않는다.
황천패와의 경천동지할 일전을 치르고 나서도 이 정도의 신위를 유지하는 자다.
놈을 이 자리에서 잡지 못한다면 천추의 한이 될 것만 같았다.
진무립을 노려보는 군도가 한쪽 입꼬리를 길쭉하게 올렸다.
“같은 생각이다.”
진무립을 피해 협곡을 돌파하려다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놈은 결코 목이 떨어지기 전까진 뒤를 내어주지 않을 거다.
“그럼 시작하지.”
그 말이 끝나는 순간 군도가 지면을 박차며 진무립에게 달려들었다.
쏴아아-!
거침없는 일격이 간발의 차이로 빗나가며 바위를 후려친다.
콰아아앙!
진무립의 눈이 시린 청광을 쏟아냈다.
‘그래. 전부 내게 오너라.’
목이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뒤를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슈아아악!
진무립의 은광검에서 솟구친 시퍼런 검광이 짓쳐 드는 적을 향해 장대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쿠콰콰콰콰콰쾅!
동료들을 지키기 위한 진무립의 처절한 사투가 막이 오를 때.
다른 곳에선 소화산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오는 이가 있었다.
* * *
밝아오는 새벽하늘이 솔향 가득한 산중에 빛을 드리우기 시작했다.
콰아앙!
산세를 타고 메아리치는 강렬한 굉음이 사내의 귓전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후욱!”
차오른 숨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오며 시린 연기가 흩어져간다.
거추장스러운 복면을 벗어 던진 서진환이 전력을 다해 능선 위로 뛰어올랐다.
‘주군.’
새벽의 운무가 바다처럼 짙게 깔린 가운데, 머리만 빼꼼히 드러낸 수십 개의 산봉우리가 웅장한 자태를 자랑했다.
좌우를 빠르게 살핀 서진환의 눈동자에 기억 속의 형상과 동일한 산이 떠올랐다.
커다란 궤짝을 등에 진 서진환은 망설임 없이 지면을 박찼다.
“금방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