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324)
◈ 324화. 눈꽃이 흐드러지는 하루
파릇한 사철나무가 아늑하게 감싸 안은 숲속.
가는 잎새 사이로 짙어지는 눈발에 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공터.
중앙에 우뚝 솟아난 대목(大木)이 쏟아지는 눈발을 지붕처럼 가리는 가운데 두 사내가 나무 아래 마주 앉았다.
“제법 운치가 있군. 굳이 이런 곳에 의자를 가져다 둘 필요는 없지 않은가?”
주변을 둘러본 국영승이 의자와 탁자를 두드리며 단소룡을 나무랐다.
품에서 뜨겁게 데워온 술병을 꺼낸 단소룡이 하나를 건네며 웃었다.
“자네가 날 보자고 하기에 애써 준비해뒀는데 이러긴가?”
최근 들어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단둘이 얼굴을 마주할 기회가 있었던가.
술병을 받은 국영승은 주름이 늘어나기 시작한 단소룡을 보며 문득 세월의 흐름을 실감했다.
“자네도 많이 늙었어.”
단소룡이 쓴웃음을 지으며 마개를 열었다.
“누가 들으면 나 혼자 늙는 줄 알겠군.”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과 함께 향긋한 주향이 후각을 자극한다.
단소룡이 물었다.
“폐하께서는 좀 어떠신가?”
국영승의 얼굴에 언뜻 어둠이 스쳐 지나간다.
“기력이 예전 같지 않으시다네. 최근에는 태자 전하께서 정무를 주관하는 일이 다반사일세.”
“아직 한창일 연배인데…….”
“무림인과는 다르지 않은가.”
“음.”
단소룡이 고개를 끄덕이자 국영승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네의 주름처럼 세월이 흐르는 게지. 자연스러운 일이야.”
문득 한 가지 가능성이 단소룡의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설마 자네가 이번 전쟁에 손을 보탠 것도?”
“태자 전하의 은밀한 부탁이 계셨네. 자네의 스승들께서 폐하와 친분을 유지했던 것처럼 태자 전하 본인도 무림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길 바라시네.”
“음. 역시 그런 것이었군.”
어떤 상황에서도 무림의 일에 개입하지 않던 흑전원이 처음으로 전투에 나섰다.
큰 역할은 아니었으나 그들 덕분에 단려화를 비롯한 후미의 무인들이 피해를 줄인 것도 사실이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니 염려 마시게. 자네와 광룡이 어디 황궁에 휘둘릴 사람이던가.”
술을 한 모금 들이켠 국영승이 먼 산을 응시하며 화제를 돌렸다.
“아쉽지 않은가?”
“무엇이?”
“자네는 언제, 어디에서나 주인공이었네. 이번에도 천마를 막아내는 큰 공을 세웠고 말이야. 그러나 이 전쟁의 주인공은 광룡이었지.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다면 온 천하가 광룡의 이름으로 들썩일 걸세. 서운하지 않겠나?”
“실없는 소릴.”
실소를 흘린 단소룡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천하 무림의 소문이야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궁금한 것도 아닐세.”
“자네가 세운 강철의 성만 지킬 수 있다면 된다 그건가?”
자신의 말을 국영승이 대신해주자 단소룡은 빙그레 웃었다.
“그렇지.”
목을 축인 단소룡이 내리는 눈을 아련하게 바라본다.
“그 아이의 인생은 무거운 책임으로 가득한 삶이었지. 헤쳐온 역경은 내게 비할 바가 아니야. 광룡 진무립은 능히 세상의 칭송을 받아야 할 만한 무인일세.”
“자네의 사위가 될 사내라 치켜세워주는 건 아니고?”
“오늘따라 짓궂구만.”
국영승의 입가에도 단소룡과 비슷한 미소가 떠올랐다.
“자네가 세상의 소문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나 역시 무공을 익힌 무인으로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군.”
“무엇이?”
“한 번도 자네의 입으로 거론한 적은 없었지. 북광남신. 인정하는가?”
마지막까지 짓궂은 질문에 단소룡은 그저 웃기만 했다.
* * *
소화산에서 벌어진 두 번째 천하대전.
광룡 진무립, 신룡 단소룡과 천마 장천무, 복령천주 황천패.
네 명의 절대자가 벌인 경천동지할 대전에 세인들은 천무대전(天武大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수문화의 은밀한 지시로 소화산의 소문이 퍼져나가기 무섭게 간발의 차이로 강남에서의 전쟁 결과까지 중원을 강타했다.
두 곳에서 거의 동시에 벌어진 전쟁.
그 모든 승리의 과정에 진무립의 책략이 있었다는 사실에 천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림의 역사상 이토록 완벽한 지략과 무용을 겸비한 무인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겹쳐진 소문의 진상이 점점 알려지는 가운데 천하의 매담자들이 이런 호재를 놓칠 리 없었다.
먹먹한 하늘에서 벌써 열흘째 새하얀 눈을 쏟아낸다.
무림맹이 위치한, 흰 눈이 소복이 뒤덮은 개봉은 그야말로 축제의 분위기였다.
옷깃을 파고드는 시린 바람에도 불구하고 개봉의 대로는 천하에서 모여든 인파로 북적거렸다.
무림을 위기에서 완벽하게 구해낸 영웅.
광룡 진무립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고자 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무림맹으로 복귀한 무인들이 치료와 회복을 병행하며 칩거하는 사이 곳곳의 객잔과 기루에선 천무대전의 이야기로 떠들썩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들어보시게. 내가 직접 들은 이야기일세.”
개봉 홍월루의 일 층.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탁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주변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끌어모았다.
“광룡은 복령천이 천하의 시선을 소화산에 끌어모은 뒤 강남을 기습할 계획을 알고 있었던 게야.”
누군가 물었다.
“대체 그걸 어떻게 알았단 말이오?”
“당가의 삼공자. 그가 개발한 만리추종향을 복령천의 고수들에게 묻힌 모양일세. 그걸 토대로 움직임을 간파할 수 있었지.”
당우의 이름이 나오자 일부가 고개를 갸웃했다.
“당가의 망나니가?”
매담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건 옛말일세. 당소협은 광룡을 만난 뒤로 마치 환골탈태를 한 것처럼 다른 사람이 되었지.”
당우가 진무립에게 호되게 당하고 변했다는 이야기는 꽤 오래전부터 있었던 이야기다.
소문을 들어 알고 있던 사람들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만리추종향을 묻히려면 누군가 직접 복령천과 접촉했다는 말이 아니오?”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복령천에 세작을 심어두었다고 하더군.”
진무립을 비롯한 맹의 수뇌들은 운화결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지 않은 상태였다.
사내가 탄식하며 물었다.
“허, 복령천은 발호하기 전까진 그 존재 자체가 허상처럼 느껴지던 자들인데 거기에 세작을 심다니. 그게 가능한 일이오?”
한쪽 구석에 앉아있던 목에 커다란 점이 박힌 사내가 말했다.
“광룡이라면 가능했을지도 모르지.”
마주 앉은 사내가 그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같은 범인이야 생각도 못 할 일이다만 광룡 대협이 어디 평범한 사람이던가. 있을 수 있는 일이야.”
잠시 흐름이 끊기자 사방에서 매담자를 다그친다.
“알았으니 계속해보시오.”
빙그레 웃은 매담자가 술을 걸쭉하게 들이켜고 말했다.
“알겠네. 내부의 세작은 훌륭하게 십이사령에게 만리추종향을 묻힐 수 있었고 주기적으로 정보를 전달했다네. 광룡 대협께서는 상천팔기를 강남으로 파견했지.”
이어서 강남의 치열했던 전투가 매담자의 입에서 물 흐르듯 술술 쏟아져 나온다.
아래층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 층 난간 옆의 탁자에선 흥미로운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강남은 어쩌고 벌써 여기 와 있는 거냐?”
술을 따라주며 묻는 이는 바로 진대천이었다.
섭선을 살랑이던 화윤이 잔을 받으며 싱긋 웃었다.
“사마진이라는 훌륭한 인재가 있잖아.”
곁에 앉은 위사영이 실소를 흘렸다.
“또 전부 떠넘기고 도망친 게로구나.”
“어허, 도망치다니. 난 무림맹 군사부의 부주야. 무인들의 회복이 끝나면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건 그렇군.”
전쟁은 끝났지만 할 일이 전부 끝난 것은 아니다.
전후 뒤처리도 해야 할뿐더러 피해를 본 방파들을 지원하고 위로하는 것도 군사부에서 계획할 일이다.
화윤이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몸은 좀 어때?”
진대천이 안주를 우적거리며 말했다.
“이젠 움직일 만하다.”
“소화산의 싸움이 생각보다 수월했던 모양이네?”
화윤의 농담 섞인 도발에 진대천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그게 무슨 소리냐? 하마터면 전부 죽을 뻔했는데. 이만의 마인들이 개떼처럼 달려드는데 살면서 그런 지옥은 처음 봤다. 지금도 내가 살아있는 게 맞는 건지 믿기지 않을 정도다.”
위사영이 물었다.
“강남의 전투는 어땠나?”
이번엔 진대천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고작 이백도 안 되는 적이었는데 뭐. 별거 없었겠지.”
이번엔 화윤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불거졌다.
“십이사령과 백화무단이 그렇게 만만한 자들인 줄 알아? 일개 병졸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중소방파의 수장보다도 강한 자들이었다. 만일 내가 그들을 지휘할 수 있었다면 마교의 잡졸 이만 따윈 단숨에 돌파하고 천마의 목까지 따냈을 거다.”
진대천의 볼살이 부들부들 떨린다.
“잡졸 이만? 네놈이 그 지옥도를 안 봐서 그렇다니까? 네가 거기 있었다면…….”
애들 장난 같은 다툼에 위사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세인들의 눈엔 존경에 마지않을 천하의 고수들이지만 이렇게 만나면 어린아이가 따로 없다.
그는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며 두 사람의 시선을 모았다.
“그만해라.”
“…….”
불만스럽게 서로를 노려보던 화윤과 진대천이 이내 시선을 반대로 돌렸다.
위사영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누구나 자신의 싸움이 가장 힘든 법이지. 그만하고 말해보아라. 네가 보기에 복령천의 패착이 무엇이었을 거 같으냐?”
고개 돌렸던 진대천도 궁금한 모양인지 귀를 쫑긋거렸다.
화윤이 되려 위사영에게 물었다.
“네 생각은 어때?”
“너무도 적은 수로 섣불리 움직인 게 아닌가 싶더군.”
수천의 무인으로도 실패했던 천하대전이다.
고작 이백도 채 안 되는 숫자로 천하를 노린다는 건 위사영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화윤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일이 계획대로 되었다면 그들은 팔황문보다 더욱 까다로운 상대였을 거야. 천하엔 그때보다 훨씬 많은 피가 흘렀겠지.”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
“군사의 역량에 차이가 있었지. 그들에게 광룡을 능가하는 지낭이 있었더라면 결과는 달랐을 거야. 나나 광룡이 이끌었다면 능히 천하를 손에 쥘 수 있을 만한 전력이었다.”
머릿속으로 정보만 파악했을 당시엔 화윤 자신도 상대의 거병에 의혹이 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직접 싸워보니 상대는 한 명 한 명이 작은 방파 따윈 어렵지 않게 몰락시키는 게 가능할 정도로 무서운 자들이었다.
만일 상대의 움직임을 간파하지 못한 채 적을 맞이했다면, 완벽한 시기에 독랑 막월의 독을 이용하지 못했더라면 화령도의 전투는 더욱 많은 희생이 따랐을 것이다.
위사영이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군.”
화윤이 말했다.
“놈의 첫 번째 패착은 오대표국을 너무 허무하게 버린 것이다. 중원무림맹의 내분을 야기하고 마교를 끌어들이기 위함이었겠지만 광룡이라는 인재가 나타나 순식간에 내분을 수습하고 무림맹을 발족시켰지. 그들은 거기서 광룡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잠시 멈춰 계획에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
진대천이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광룡은 어디 한 군데 끼지 않는 게 없군.”
위사영이 담담하게 말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 전쟁은 그가 만든 장기판 뒤에서 치러진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는 이어서 화윤에게 다시 물었다.
“그게 첫 번째 패착이라면 두 번째는 뭔가?”
“이만이 넘는 마인과 복령천의 정예고수가 제대로 힘을 합쳤다면 누가 와도 절대 질 수 없는 싸움이 됐을 거다. 나였다면 화령도를 미끼로 삼아 천하 무림의 힘을 분산시킨 뒤 광룡과 태종무단부터 공략했을 거야. 하지만 놈들은 반대로 했지. 그게 두 번째 패착이다.”
진대천이 궁금한 듯 물었다.
“왜 그렇게 움직였을까?”
대답은 간단했다.
“눈앞의 싸움이 아닌, 건방지게도 천하를 양분한 뒤의 일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지.”
만일 약환이 마교와 무림맹의 상잔을 꾀하지 않고 처음부터 모든 힘을 합했더라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화윤은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혹시 모르지. 광룡이 세작을 심어두지 않았더라면 정말 가능했을지도.’
운화결이 십이사령에게 추종향을 묻히지 못하고 진무립이 황천패에게 당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가만히 생각하던 위사영이 물었다.
“만일 네가 복령천의 머리가 되고 광룡을 상대했더라면 어땠겠는가?”
“글쎄…….”
물론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할 때마다 수백 가지 변수가 튀어나와 좀처럼 답을 내릴 수 없었다.
화윤은 씩 웃었다.
“결과는 모르겠지만 분명 역사에 유례없는 전쟁이 됐을 거다.”
잔을 들이켠 화윤이 화제를 돌렸다.
“소화산의 전투는 어땠지?”
진대천이 투덜거리듯 말했다.
“내 입으로 백날 말해봐야 네놈은 직접 본 게 아니면 좀처럼 믿지 않을 테니까, 일단 잠자코 들어봐라.”
“누구한테?”
진대천이 잔을 채우며 턱짓했다.
“저기서 이야기가 나오고 있잖아.”
때마침 아래층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구천의 영웅, 광룡 진무립의 본격적인 활약상이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상대도 바보는 아니었지. 회동 일자로 무림맹을 교란시키며 소수의 정예만 끌어들인 채 소화산의 회동을 시작한 걸세. 그때 광룡 대협과 함께하는 무인의 숫자는 고작 백여 명에 불과했다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