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6)
◈ 6화. 서북부관
서북로의 청하객잔이 텅 비었다.
객잔을 넘긴 철사방이 내부 집기는 물론이고 사람까지 모두 데려간 것이다.
진무립은 황량한 내부를 보며 말했다.
“철사방주가 속이 쓰리긴 한 모양이군.”
유대하가 말했다.
“육무봉이 속 좁은 것은 인근에서 모르는 자가 없습니다.”
“평이 나쁜 편은 아니던데.”
“속은 좁지만 인정은 있는 편입니다.”
“그런 자는 밑에 두고 부리기엔 나쁘지 않지. 좀 치워라. 난 잠시 다녀올 곳이 있다.”
“어딜 가십니까?”
“동북부관.”
“소공자의 용모가 알려진 이상 혼자 다니시면 위험합니다.”
유대하의 걱정에 진무립은 피식 웃으며 등을 돌렸다.
“나를 함부로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지 않았나? 금방 돌아올 테니 걱정 마라.”
객잔을 나선 진무립이 모퉁이를 돌자 인근 지붕과 담장에서 은밀한 시선이 따라붙었다.
‘그래도 신경은 쓰이나 보군.’
청하객잔이 넘어갔다는 소문에 서북로의 방파들은 마도림을 주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시선을 모른 척 대로로 나선 진무립은 곧장 동북로의 동북부관으로 향했다.
오 층 높이의 화려한 기루, 영업 준비로 한창인 송화루는 동북부관을 겸하고 있었다.
입구를 지키던 무인이 진무립을 알아보곤 예를 갖췄다.
“소공자를 뵙습니다.”
“그래도 인사는 하는구나.”
“······.”
사내의 얼굴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만일 동료들이 함께 있었다면 그들의 눈치를 보느라 인사도 건너뛰었을 것이다.
그만큼 무인들 사이에서 진무립의 평가는 좋지 않았다.
진무립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관주를 만나야겠다. 안내해라.”
“예.”
최상층으로 올라간 진무립은 동북부관주 관초걸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넉넉한 인상의 중년인이 두 팔을 벌리며 밝게 웃었다.
“어서 오시오. 소공자.”
숨통을 조여오는 대검문과 중소방파들 사이에서 동북로를 지켜온 수완가.
마도림의 다른 무인들과 달리 관초걸의 태도는 호의적이었다.
그는 총단에 틀어박혀 무공만 수련하는 이들에 비해 열린 사고를 가졌기 때문이다.
“총단으로부터 연락은 받았소. 서북로의 관주가 된 것을 축하하오.”
“고맙군.”
고개를 끄덕여 예를 받은 진무립은 망설임 없이 관초걸의 의자를 차지하고 앉았다.
“앉아.”
앉아있는 진무립, 그를 보며 서 있는 관초걸.
졸지에 상관과 부하의 모양새처럼 되어 버렸지만 진무립에 대해 익히 들어온 관초걸은 개의치 않고 반대편 의자에 앉았다.
“하하하. 과연 소문대로구려.”
“핏줄 믿고 버르장머리 없게 군다는 소문을 말하는 거야? 아니면 객기부리다 얻어걸려 운 좋게 객잔 하날 되찾은 한량을 말하는 거야?”
관초걸은 빙그레 웃었다.
“틀린 소문입니까?”
진무립도 마주 웃었다.
“아니. 둘 다 맞아.”
관초걸은 솔직한 진무립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 소문이 괴롭지는 않으시오?”
“더한 소리도 들어봤는데 그 정도야 뭐.”
무림에선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음적에 삼두육비의 괴물로 알려진 자신이다.
그 정도 비난에 마음이 쓰일 거라면 다른 방식으로 시험을 통과했을 것이다.
“더한 소문?”
“그런 게 있어. 그것보다 일 얘기부터 하고 싶군. 서북로의 정보가 필요하다.”
“정보라면 비선당(秘線黨)에 요구하시면 될 텐데 말이오.”
“열흘만 기다리라고 하더군.”
“열흘?”
고개를 갸웃한 관초걸은 비선당의 의도를 눈치챘다. 진무립에게 순순히 정보를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만일 내가 비선당처럼 순순히 정보를 내주지 않는다면 어쩌시겠소?”
“정보를 조건으로 거래를 해야겠지.”
“거래?”
고개를 갸웃한 관초걸은 이어진 진무립의 말에 표정을 굳혔다.
“중경부관주의 자리를 조건으로 걸지. 이 정도면 좋은 제안 아닌가?”
중경부관이라 함은 중경 전체를 먹겠다는 의미.
잠시 침묵하던 관초걸은 표정을 굳힌 채로 말했다.
“장난이 지나치시오.”
마도림의 전력으로는 동북로를 유지하는 것조차 벅찬 상태.
누구보다 사정을 잘 아는 관초걸에겐 진무립의 말이 농담처럼 들린 것이다.
하지만 진무립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열흘 전에 내가 청하객잔을 되찾아오겠다고 공표했다면 과연 몇 놈이나 믿었을까?”
“그 과정에 조금의 운도 작용하지 않았단 말이오?”
“불운이 따랐다면 나는 또 다른 방법을 생각했을 거다.”
의자를 바짝 끌어당긴 진무립은 확신에 찬 눈으로 관초걸을 직시했다.
“그날 나는 청하객잔을 먹겠다고 다짐했고 결국 먹었다. 이제 나는 중경을 먹겠다고 다짐했고 그건 곧 현실이 될 거다. 내가 하겠다고 나선 일에 불가능은 없다.”
말을 끝낸 진무립은 곧장 일어나며 관초걸의 어깨를 두드렸다.
“정보는 금일 저녁까지 정리해서 청하객잔으로 보내라. 솜씨 있는 숙수와 배짱 좋은 점소이도 필요하다.”
진무립은 대답조차 듣지 않고 집무실을 나갔다.
뭔가에 홀린 듯 빈자리를 응시하던 관초걸은 천천히 그가 나간 문을 쳐다봤다.
“대체 저 사내는 누구인가?”
흑도 무리에게 얻어맞아 길바닥에 드러누운 게 엊그제 일인데 말하는 것은 천하제일인이라도 된 듯 당당하다.
관초걸은 곤혹스러웠다.
당연히 허풍이라는 것을 아는데, 그가 남기고 간 허풍이 정말 현실로 다가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
송화루를 나선 진무립은 최상층의 창문을 응시했다.
‘행동하지 않고 과거의 영광만 추억한다면 미래는 없다. 얻고 싶고 가지고 싶다면 그놈들처럼 혈겁이라도 일으켜야 할 것 아니냐?’
팔황문은 이백 년 전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기어코 천하대전까지 일으켰다.
무고한 학살을 거듭한 그들의 방식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뭔가를 이루고 싶다면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안다.
송화루를 벗어난 진무립은 외진 골목의 작은 집 앞에 멈춰 섰다.
조용히 주변을 살핀 진무립이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꺼먼 복장의 사내가 허깨비처럼 나타났다.
“천주님을 뵙습니다.”
“오지 말라니까 기어코 왔구나.”
사내는 진무립의 수신 호위, 은무대(隱武隊)의 대주 서진환이었다.
“그들의 눈과 귀가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는 걸 잊었느냐?”
“송구합니다. 하지만 천주님을 홀로 보낼 수 없다는 것이 모두의 뜻이었습니다. 부디 저만이라도 따르게 해주십시오.”
상천의 구성원에게 진무립은 각별하다.
평생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할 운명을 가진 자신들을 양지로 꺼내준 은인.
자신들에게 진무립은 신(神)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거절한다 해도 서진환은 돌아가지 않을 터, 혀를 찬 진무립이 물었다.
“네 부하들은?”
“성 밖에서 언제든 움직일 수 있게 대기 중입니다.”
“비 맞고 바람맞고 사는 삶이 삶이겠느냐? 안가를 큰 곳으로 옮기고 전부 데려와라.”
“그들에게 노출될 수도 있습니다.”
“설마 여기까지 오겠냐? 상관없어.”
“알겠습니다.”
고개를 든 서진환은 습관적으로 진무립의 전신을 훑었다.
“천주님의 키가······.”
성장이 끝나는 순간은 힘을 제한한 선사의 대법이 풀리는 날.
오대산을 떠날 때와 지금의 진무립은 거의 변함이 없었다.
기대 섞인 서진환의 눈빛에 진무립은 슬쩍 웃었다.
“아직은 아니다. 하지만 머지않았다.”
“감축드립니다.”
진무립의 진정한 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서진환은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올랐다.
진무립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직은 아니라니까. 그보다 기왕 찾아왔으니 일 하나 해줘야겠다.”
서진환은 즉시 부복하며 눈을 빛냈다.
“하명하십시오.”
***
그날 저녁, 서북로의 청하객잔에 관초걸이 보낸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객실의 침상과 이불, 일 층의 탁자와 의자에 부엌의 집기까지 가득 채우고 돌아갔다.
유대하의 눈이 커졌다.
“이걸 다 동북관주가 보냈단 말입니까?”
진무립이 말했다.
“그런 모양이다.”
정리가 끝나자 깡마른 얼굴에 잔 근육이 돋보이는 청년과 앳된 얼굴의 소년이 인사를 했다.
“송화루에서 보조 숙수로 일하던 부교라고 합니다. 동북관주께서 당분간 이곳의 일을 도우라 하시며 보냈습니다.”
“봉래객잔에서 점소이로 있던 아단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들을 위아래로 훑어본 진무립이 싱긋 웃었다.
“몸을 보니 나랑 다르게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는 않겠구나. 잘 지내보자.”
진무립의 말처럼 두 사람은 자신을 보호할 호신술 정도는 익힌 이들이었다.
서북로의 상황을 고려한 관초걸이 제법 신경을 써준 것이다.
아단이 품에서 얇은 책을 꺼냈다.
“동북관주께서 이걸 전달하라고 하셨습니다.”
책장을 스르륵 넘기며 훑어본 진무립이 탁자에 앉으며 말했다.
“종일 바쁘게 돌아다녔더니 배가 고프구나. 자신 있는 것으로 만들어봐라.”
“알겠습니다.”
부교와 아단이 부엌으로 들어가자 탁자에 앉은 진무립이 책을 펼쳤다.
유대하가 마주 앉으며 물었다.
“그게 뭡니까?”
“서북로의 정세다. 철사방, 중경무관, 석가장, 소천문, 칠도문, 무화방. 이 코딱지만 한 구역에 많이도 몰려들었군.”
“사업장만으로 유지하는 곳은 흑도방파인 철사방과 무화방뿐입니다. 중경무관의 주된 수익은 무관의 관도들에게서 나오고 석가장은 상행을 소천문, 칠도문은 표행과 보표 일을 함께하고 있을 겁니다.”
중경은 사천성과 호광성의 길목, 많은 물자가 오가는 요지에 자리했기에 그들이 얻는 수익은 적은 편이 아니었다.
관초걸이 보낸 책에는 여섯 방파의 정보와 주요 무인들에 대한 정보가 꼼꼼히 적혀 있었다.
동북로에 안주하는 듯하면서도 언제든 움직일 수 있게 준비하고 있던 것이다.
책을 읽어가던 진무립이 물었다.
“철사방주와 무화방주의 사이가 안 좋은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유대하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둘 다 대검문의 일을 처리해주는 흑도방파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능력을 증명해야 계속해서 대검문과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으니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진무립이 생각을 정리하고 말했다.
“대하. 심부름 좀 해야겠다.”
***
얼굴이 시퍼렇게 부은 열한 명의 사내가 일자로 꿇어앉아 두 팔을 들었다.
얼마나 맞았는지 두 눈을 온전히 뜨고 있는 이가 없을 정도다.
술을 동이째로 갖다 놓고 쓰린 속을 달래던 육무봉이 눈을 부라렸다.
“팔이 내려오지?”
“아닙니다!”
흐느적거리던 사내들의 팔이 번쩍 올라갔다.
“니들은 나 같이 마음 착한 주군 만난 걸 다행으로 알아라. 이 새끼들아. 내가 무화방주 같이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였으면 니들 목은 벌써 날아갔어. 알어?”
사내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무화방주의 악독한 성정은 중경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육무봉이 다시 술 한 바가지를 들이킬 때,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주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이 시국에 뭔 손님······.”
순간 육무봉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대, 대검문의 손님이냐?”
마도림의 소공자를 팬 대가로 청하객잔을 빼앗겼단 소문은 모르는 이가 없었다.
만일 대검문이 이것을 빌미로 무화방에 힘을 실어준다면 철사방의 입지가 곤란해진다.
“아닙니다. 마도림의 식충이가 찾아왔습니다.”
육무봉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에이 시벌, 술맛 떨어지게. 꺼지라 그래.”
“방주님께 드린다고 뭘 가져왔는데······. 돌려보내겠습니다.”
벌떡 일어난 육무봉이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걸 왜 이제 말해. 도움 안 되는 새끼야.”
마당으로 나간 육무봉은 두 손 가득 뭔가를 들고 온 유대하를 볼 수 있었다.
“뭐냐?”
탐탁지 않은 것은 유대하도 마찬가지였다.
“소공자께서 방주에게 전하라고 하셨소.”
들고 온 것을 내려둔 유대하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주변을 슥 돌아본 육무봉은 유대하가 가져온 봇짐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부하들을 내보내고 보자기를 푼 육무봉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이게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