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65)
◈ 65화. 서장으로
광기 어린 미소와 눈빛, 살기 넘치는 그 목소리에 금호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진심인가?’
진무립은 마치 먹잇감을 노려보는 맹수처럼 입술을 핥았다.
“다른 각주들 앞에서도 그렇게 까불 수 있나? 그렇다면 살려주지.”
극한의 한기와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국철영은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이빨을 덜덜 부딪쳤다.
그때까지 잠자코 지켜보던 당천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만둬라.”
당천을 슬쩍 쳐다본 진무립이 천천히 손을 털고 일어났다.
“당천.”
“…….”
“조원각에 가서 우리가 쓸 물자를 받아와라. 나 같은 떨거지가 가는 것보다 당가의 소가주가 가면 신경 써서 챙겨주겠지.”
진무립은 우가산의 명으로 이번 임무의 책임자가 된 상태.
무심하게 진무립을 쳐다보던 당천이 몸을 돌렸다.
서둘러 국철영을 살핀 당중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혼절했다.’
몸에 손을 댔을 뿐인데 오싹한 한기가 여실히 느껴진다.
‘역시 보통 놈은 아니란 말인가.’
진무립을 힐끔 쳐다본 당중호는 국철영을 들쳐메고 당천의 뒤를 따랐다.
잠시 머뭇거리던 진설란까지 그들의 뒤를 따라나서자 마침내 연무장에 평화가 찾아왔다.
멀리서 지켜보던 육군명이 다가와 진무립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이야. 너 대단하다.”
본의 아니게 진설란과 대치하게 되었던 당소소는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철영이 잘못한 것은 맞지만 꼭 그렇게 해야만 했나요?”
“더 좋은 방법이 있었나?”
“…….”
진무립이 오연하게 웃었다.
“때로는 처맞아야 정신이 번쩍 드는 놈들도 있지.”
곁에 선 조영성이 동의하듯 끄덕였다.
“옳은 말입니다.”
무엇보다 평소 자신과 앙숙처럼 지내던 국철영이었기에 통쾌함은 더욱 컸다.
진무립은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서 준비를 마치고 오늘 밤엔 술 한잔하지.”
조원각에서 물자를 신청한 당천은 운룡각으로 복귀하는 즉시 지하 연무장에 들어갔다.
혼절한 국철영을 살핀 진설란이 당천을 찾아갔다.
“이봐요.”
암기를 손질하던 당천이 고개를 돌렸다.
“마침 상대가 필요했는데 잘 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머릿속엔 수련밖에 없다.
진설란은 결국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그게 아니잖아요! 철영이 저렇게 된 건 모두 당신 탓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당천은 미간을 좁혔다.
“그게 왜 내 탓이지?”
표정을 보아하니 진심으로 모르는 모양이다.
“그래요. 물론 부대주인 내 잘못도 있다는 걸 부정하진 않겠어요. 하지만 나 혼자 저들을 통제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당신이 정말 우리들의 대주라면 부하가 저 지경이 되기 전에 나섰어야 했어요.”
“말렸지 않나? 그의 살기는 진짜였다. 내가 말리지 않았으면 철영은 정말 죽었을지도 모른다.”
“…….”
어이가 없어 말도 나오지 않는다.
한숨을 푹 내쉰 진설란이 간절하게 말했다.
“대원들한테 신경 쓸 시간은 없는 건가요? 애당초 대원들의 기강을 제대로 잡았더라면 오늘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당천은 비로소 암기를 집어넣었다.
“그 말은 이해하기 어렵군. 지금까지 대원들이 내 말에 거역한 적은 없고 우리는 임무를 실패한 적도 없다. 무인에게 그 이상 무엇이 필요하지? 내가 그들을 일일이 쫓아다니며 이래라저래라 간섭하길 바라는 건가? 아니면 매일같이 어울리고 술이라도 퍼마시며 친목을 도모해야 했나?”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요? 우리에겐 임무가 전부인가요?”
“우리는 무인. 조직에 속하고 무공을 익힌 순간부터 해야 할 일은 정해진 것과 같다.”
“예전의 당신은 이렇지 않았어요.”
당천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그만해라.”
“풍천지회(豊天地會)에서 단자룡에게 패하기 전까지의 당신은 웃을 줄도 아는 사람이었고…….”
“그만!”
악을 쓰듯 소리친 당천의 손에서 두 줄기 섬광이 쏘아졌다.
일직선으로 쏘아진 암기는 정확하게 그녀의 양쪽 어깨에 틀어박혔다.
“큭!”
나직한 신음이 울려 퍼지자 당천의 눈빛이 흔들렸다.
설마 그녀가 피하지 않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진설란은 슬픈 미소로 당천을 응시했다.
“당신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도 이젠 지쳤어요.”
“…….”
천천히 돌아선 그녀는 뽑아낸 암기를 내려두고 나갔다.
지그시 눈 감은 당천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의 슬픈 미소가 뇌리에 맴돈다.
가슴 찌릿한 이 감정이 참으로 오랜만이다.
‘내 어깨에 무엇이 걸려 있는지 모른단 말이냐?’
무공을 익히기 시작하고 칠 년이 지난 순간부터 줄곧 사천 최고의 후기지수로 불려왔다.
그러나 오 년 전,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참가한 풍천지회에서 신룡의 아들인 소천무군(小天武君) 단자룡에게 무참히 패했다.
차이는 컸다.
승패를 떠나 불과 십초지적도 되지 못했으니까.
사천으로 돌아오니 자신을 향한 모두의 시선이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사천의 자랑에서 사천의 망신으로.
그날의 쓰디쓴 굴욕을 갚아주기 위해 와신상담의 각오로 수련에 목숨을 걸었다.
그로부터 다시 삼 년, 각고의 노력을 쏟아부은 끝에 가까스로 신기팔신무의 말석에 올라설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할 수는 없다.
자신의 위에는 언제나 그놈이 있었으니까.
‘내겐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단 말이다.’
당천은 비통한 마음을 감추려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 * *
이틀이란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어둠이 드리운 사천맹의 대연무장.
사방의 횃불이 일렁이는 가운데 일백의 천무대와 서른여덟 운룡각 무인이 단상 아래 도열했다.
맹주 한천월을 기다리는 사이 날카로운 눈빛에 다부진 체구의 중년인이 진무립에게 다가왔다.
“자네가 지원 임무의 책임자인가?”
그는 점창 출신의 천무대주 구양무로 사천 무림에선 일패독검(一敗獨劍)이라는 무명으로 유명한 고수였다.
“그렇습니다.”
구양무는 진무립의 뒤에 늘어선 무인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뒤처지지 말고 잘 따라오게.”
진무립은 빙그레 웃었다.
“사천 최강의 천무대를 잘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최선을 다해보지요.”
묘하게 거슬리는 말투였으나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웃는 낯에 잔소리를 할 수도 없다.
차갑게 돌아선 구양무가 천무대의 앞에 서는 순간 연무장의 입구로 여섯 무인이 들어왔다.
맹주 한천월과 비각주 당문경에 천선각주 장유기와 운룡각주 우가산.
그리고 이번 임무에 함께하게 될 정무원의 강유월과 하종보였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구양무의 나직한 선창을 시작으로 무인들이 일제히 예를 갖췄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무인들의 목소리가 불빛처럼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단상에 오른 한천월이 흡족한 얼굴로 긴 수염을 쓸어내렸다.
“다들 눈빛이 마음에 드는군. 적진에서 행하는 임무일세. 그대들의 힘을 믿으나 매사에 주의를 기울이고 신중히 임무에 임해주게.”
한 발 나선 구양무가 절도 있게 포권을 취했다.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좋은 술과 요리를 준비해놓고 기다리겠네. 출발하게.”
무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진무립의 귀로 우가산의 전음이 도착했다.
실소를 흘린 진무립이 궤짝을 걸머지고 천무대의 꽁무니를 쫓았다.
사천맹에서도 세작을 운용하는 만큼 사천에 혈교의 세작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었다.
그에 대비해 이동은 철저히 밤에, 한낮의 휴식은 정해진 동선의 은신처에서 취할 예정이었다.
사천맹의 지하 암도로 빠져나온 무인들은 빠르게 서쪽으로 길을 잡았다.
천무대의 뒤를 쫓는 진무립의 귀로 강유월의 전음이 도착했다.
[이번에도 잘 부탁하네. 대주.]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고개 돌린 진무립의 눈에 강유월과 하종보가 들어왔고 그 앞으로 국철영이 보인다.
진무립과 눈이 닿는 순간 움찔한 국철영은 재빨리 시선을 피했다.
‘귀여운 놈이군.’
피식 웃은 진무립은 부지런히 신법을 전개했다.
이들의 첫 휴식지는 성도에서 이틀 거리인 대읍현 인근의 야산이었다.
운룡각 무인들이 서둘러 천막을 세우고 식사를 준비하는 사이 산 밑에서 두 사내가 올라왔다.
‘제기랄. 하필 이런 곳에서 사람과 마주칠 줄이야.’
외곽 경계를 서던 국철영이 인상을 쓰며 앞을 가로막았다.
“산을 지나려거든 다른 곳으로 가시오.”
국철영을 위아래로 훑어본 동초개가 허리춤에 손을 척 올렸다.
“산은 안 지납니다.”
“그럼 여긴 왜 왔단 말이오?”
“우리 소공자가 불러서 왔는데요?”
“우리 소공자?”
콩!
적모개의 주먹이 동초개의 정수리에 작렬했다.
“아얏!”
“우리 소공자란다. 언제부터 그 인간이 우리 소공자가 됐냐?”
동초개가 울상을 하고 머리를 매만졌다.
“남의 소공자라고 하면 어감이 이상하잖아요.”
“나와. 인마.”
앞으로 나선 적모개가 다시 말했다.
“우린 광무대주의 초대로 온 개방의 사람들이오.”
광무대주란 말에 흠칫 놀란 국철영이 두 사람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이렇게 깔끔한 거지가 어딨단 말이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소. 가서 광무대주에게 적모개가 왔다고 전해주시오.”
미심쩍은 눈으로 둘을 흘겨본 국철영이 위로 올라갔다.
숙영 준비로 분주한 공터를 두리번거린 그는 인상을 구긴 채 조영성에게 다가갔다.
“네놈 대주에게 손님이 찾아왔다고 전해라.”
조영성이 짓궂게 웃었다.
“내가 왜? 니가 해라.”
“정말 이럴 거냐?”
“네놈이 언제부터 나랑 친했다고? 물 떠와야 하니까 비켜.”
조영성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자 국철영은 죽을상을 하고 진무립에게 다가갔다.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쪼그려 앉아 물을 데우던 진무립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데려와.”
“예?”
“데려오라고.”
“아, 알겠습니다.”
등을 돌린 국철영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언덕을 내려갔다.
잠시 후 적모개와 동초개가 국철영을 따라 숙영지에 도착했다.
“소공자. 오랜만이에요.”
반갑게 다가오던 동초개가 진무립의 곁에 서 있던 용추를 발견하곤 활짝 웃었다.
“형님!”
“껄껄껄. 네 녀석도 함께 왔구나.”
“우리 분타주는 혼자서 옷도 안 갈아입는 더러운 인간인데 깔끔한 소공자에게 그냥 보낼 순 없잖아요.”
뒤에 선 적모개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들린다. 거지새끼야.”
진무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왔다.”
강유월에게 미리 언질을 해둔 만큼 이들의 합류는 천무대도 문제 삼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본 적모개가 혀를 차며 작게 말했다.
“정말 임무 하러 가는 것 맞소?”
튼튼한 천막이 무려 열 동이나 세워져 있었고 일부 무인들은 얼어붙은 계곡물에 몸을 씻고 오기도 했다.
진무립의 입가에 실소가 번졌다.
“높으신 분들이 그러고 싶다는데 어쩌겠어?”
운룡각을 돕고자 따라온 정무원 노사들은 조력자로 따라온 만큼 그들의 방침에 간섭하지 않았다.
진무립과 무인들은 그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며 지원 임무에 충실하고 있었다.
적모개는 한숨을 삼켰다.
‘차라리 소공자에게 맡길 것이지.’
사천맹 최강을 자랑하는 천무대보다 진무립이 더 믿음직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밤이 찾아오자 숙영지를 정리한 이들은 다시 서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선두에서 뒤를 힐끔 쳐다본 천무대주 구양무는 운룡각 무인들이 제법 잘 따라오자 장난기가 발동했다.
‘어디까지 따라오나 볼까.’
구양무를 시작으로 천무대가 속도를 올리자 무거운 궤짝을 등에 진 운룡각 무인들이 조금씩 뒤처지기 시작했다.
진무립의 미소가 짙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긴장감이 전혀 없군. 해보자는 거지?’
가장 먼저 느려지기 시작한 이들은 철검대의 중소방파 후기지수들.
속도를 늦춰 최후방에 합류한 진무립은 즉시 세 명의 궤짝을 뺏었다.
“제, 제가 들겠습니다.”
“됐다. 내놔.”
천무대의 짓궂은 의도를 짐작한 육군명도 느려지기 시작한 부하들의 궤짝을 뺏어 들었다.
이어서 곽도진과 조영성, 당소소를 비롯한 이들이 힘들어하는 동료들의 궤짝을 들기 시작했다.
맨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하종보가 강유월에게 전음을 보냈다.
잠시 고민하던 강유월의 눈에 앞서 달리는 진무립이 보였다.
그 순간 강유월은 망설임을 접고 빙그레 웃었다.
[걱정은 잠시 넣어두고 조금만 더 지켜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