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66)
◈ 66화. 동료라는 건
광무대와 흑영대, 그리고 철검대가 서로를 돕기 시작하자 느려지던 이들에게 속도가 붙었다.
후방의 적모개와 동초개도 각기 궤짝 하나씩을 짊어지고 부지런히 달리는 중이었다.
눈치를 살피던 동초개가 적모개에게 은근히 말했다.
“분타주도 도와야 할 거 같은데요?”
적모개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우리가 아니고?”
“네.”
“젠장.”
잔뜩 찌푸린 적모개가 눈앞의 무인들을 살피고 있을 때, 동초개가 슬며시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멀리서 찾지 말아요. 도움이 절실한 사람은 바로 옆에 있어요.”
“…….”
적모개가 주먹을 말아쥐고 있을 때, 지금까지 잘 달리던 금호대쪽에서 불안한 기운이 감지됐다.
금호대 이조장 기유성이 담담하게 달리는 당천의 곁으로 붙었다.
“부대주의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뒤를 슬쩍 돌아보니 창백한 얼굴로 비 오듯 식은땀을 흘리는 진설란이 있었다.
‘설마.’
신경 쓰지 않으려 했으나 며칠 전 자신의 암기에 당한 사실이 자꾸 걸린다.
당천은 속도를 낮춰 진설란의 곁으로 접근했다.
“궤짝을 이리 다오.”
“신경 쓰지 마세요.”
“고집부리지 마라. 여기서 뒤처지면 모두의 손해다.”
“뒤처지지 않겠습니다.”
“…….”
그녀의 고집에 당천은 할 수 없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금호대의 조장이자 아미파의 속가제자인 정이선과 본산 제자 보인이 곁으로 다가왔다.
“부대주. 괜찮아요?”
“목적지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무리하지 마세요.”
진설란은 애써 웃어 보였다.
“나는 괜찮아.”
부대주인 자신이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부하들의 짐이 될 수는 없었다.
그녀의 단호한 거절에 동료들은 한숨만 내쉬며 곁을 따라야 했다.
천무대주 구양무는 의외라는 듯 뒤를 돌아봤다.
자신들이 속도를 올렸음에도 상대는 제법 잘 따라오고 있었다.
‘후후. 그래. 쉽게 나가떨어지면 재미가 없지.’
한층 더 속도를 올리는 구양무의 곁으로 민머리의 젊은 여승, 부대주 성연이 다가왔다.
“너무 빠릅니다. 이리하면 아이들이 따라오지 못할 거예요.”
“이 정도도 따라오지 못해서야 어디 사천맹의 무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떨어져 나갈 것 같으면 속도를 늦출 테니 걱정 말게.”
광룡 진무립.
무성한 소문 속에 점점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한 마도림의 소공자.
구양무는 시종일관 자신감 넘치는 눈빛과 말투, 당당함을 잃지 않는 그 사내가 우는소릴 하는 꼴을 꼭 보고 싶어졌다.
‘진무립. 네놈을 쉽게 떨궈낼 수 없다는 건 인정하겠다. 하지만 네가 아무리 최선을 다한들 부하들까지 지치지 않고 따라올 수 있을까?’
한층 더 속도를 올리자 등 뒤의 가쁜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뒤를 힐끔 쳐다본 구양무의 미소가 짙어졌다.
‘네놈이 총대주라면 냉큼 달려와서 싹싹 빌어봐라.’
진무립의 반짝이는 눈동자는 어둠 속으로 스쳐 가는 그 미소를 놓치지 않았다.
‘해보자는 거지?’
상대의 의도가 빤히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굴복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은광검을 꺼내든 진무립은 다리 굵기만 한 나뭇가지를 단숨에 잘라냈다.
단려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뭘 하는 거예요?”
“머리를 써야지.”
비슷한 굵기의 나뭇가지 세 개를 잘라낸 진무립은 산내촌에서 획득한 천잠사를 꺼내 그것을 묶기 시작했다.
진무립의 생각을 눈치챈 유대하가 즉시 자신의 천잠사를 내밀었다.
“눈치가 빨라.”
씩 웃은 진무립이 그것을 받아 나뭇가지에 묶었다.
잠시 후 완성된 그것은 의자 형태의 지게였다.
“용추!”
“예.”
진무립은 곁으로 다가온 용추의 궤짝을 유대하에게 넘기고 지게를 매게 했다.
강유월과 하종보가 최후방에서 흥미로운 눈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진무립은 힘들어하는 철검대 조장 셋을 번쩍 들어 지게에 앉혔다.
“이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그들은 짐이 되는 것 같아 죄스러운 얼굴로 말했으나 진무립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동료라는 건 이런 거다. 말할 힘까지 아껴서 쉬어라.”
밤이 내린 고요한 산속에서 그 말을 듣지 못한 이는 없었다.
감격한 무인들이 떨리는 눈동자로 진무립을 바라보았다.
진무립은 곧장 유대하를 불렀다.
“유대하. 지금부터 네가 무리를 이끌고 저들을 따른다.”
세 명이 앉은 지게는 좌우 폭이 넓다.
무리하게 길을 만든다고 장애물을 전부 베어내면 흔적이 과하게 남는다.
그렇다면 폭이 넓은 곳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유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진무립은 이어서 단려화에게 말했다.
“후방으로 자리를 옮겨. 뒤처질 것 같은 이가 있으면 바로 내게 전음을 보내줘.”
“알았어요.”
전방으로 두 개의 큰 나무가 길을 가로막자 진무립은 용추를 이끌고 우측으로 이동했다.
네 개의 궤짝을 든 진무립과 세 명을 등에 태운 용추.
누구보다 힘들어야 할 그들이 돌아가는 것을 마다치 않으며 동료들을 위해 희생하자 지쳐가던 부하들은 이를 악물고 힘을 냈다.
자신들이 뒤처지면 진무립이 든 궤짝이 늘어날 것이고 용추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정말 대단한 놈이야.’
철검대주 육군명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위에 선 자가 말로 떠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저렇게 행동으로 보여주는데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무인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이각을 달렸을 무렵, 진무립의 귀로 단려화의 전음이 파고들었다.
[금호대의 부대주가 조금 이상해요.]그녀의 말처럼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은 진설란은 동료들의 도움도 거절하고 안간힘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
곁을 힐끔 쳐다본 진무립은 즉시 조영성에게 전음을 보냈다.
[여유가 있나?]조영성도 이미 궤짝 하나를 더 들고 있는 상황.
하지만 자신보다 더 힘들 진무립에게 우는소릴 할 수는 없었다.
조영성이 선두로 옮겨가자 진무립은 유대하를 불러 자신의 궤짝 한 개를 넘기고 사라졌다.
앞뒤로 사박이는 발소리만이 작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진설란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흔들었다.
양쪽 어깨에 통증이 점점 사라지며 눈앞이 흐려진다.
암기에 당한 상처가 궤짝 끈에 짓눌려 내기의 순환이 막힌 탓이었다.
‘나는 부대주야. 버텨야 돼.’
대주가 부대에 무관심한 이상 자신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녀가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너 그러다 죽는다.”
별안간 곁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녀의 두 발이 허공에 떠올랐다.
“아!”
놀란 그녀는 자신의 엉덩이가 궤짝에 닿고 나서야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광무…… 아니, 총대주?”
진무립의 어깨에 다리를 걸치고 궤짝에 걸터앉은 그녀가 놀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앞뒤로 달리던 금호대도 그녀 못지않게 의외라는 듯 진무립을 쳐다봤다.
이미 세 개의 궤짝을 든 상태에서, 다른 이도 아니고 사이가 나쁜 금호대를 도울 줄은 몰랐던 것이다.
“거기 빡빡이.”
바로 앞을 달리던 아미제자 보인이 얼굴을 찡그렸다.
“빡빡이가 아니라 보인입니다.”
“와서 얘 궤짝 좀 받아 들어라.”
진설란은 다급하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나는 달릴 수 있어요.”
“각주에게 지휘권을 부여받은 내 명령이다. 궤짝을 보인에게 넘겨라.”
보인은 마치 그 말을 기다린 사람처럼 진설란의 궤짝을 벗겼다.
진설란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녀가 서둘러 내려오려 하자 진무립은 두 다리를 단단히 붙잡고 말했다.
“내 허락 없이 내려오면 항명으로 간주하고 여기서 돌려보낼 거다.”
“…….”
그녀는 괴로운 얼굴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나라도 정신 차리고 잘 해야 하는데.’
며칠 전 당천에게 쓴소리를 내뱉었지만 자신에게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더더욱 동료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상황이 괴롭다.
숨죽여 흐느끼는 그녀의 귀로 진무립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모든 것을 너 혼자 감당할 필요는 없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도움을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게 동료다.”
목소리의 나직한 울림은 근방을 달리던 금호대의 귀에도 똑똑히 들어갔다.
금호대의 육조장, 아미의 속가제자 정이선이 진무립의 궤짝에 손을 올렸다.
“하나 주세요.”
“됐다.”
“솔직하게 도움을 받을 줄도 아는 게 동료라면서요?”
“그건 부족할 때의 얘기지.”
진무립의 입가에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깃들었다.
“나는 완벽하거든.”
고개 돌린 정이선이 찌푸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왠지 재수 없어.”
“하하하!”
진무립이 대소를 터트릴 때.
‘젠장.’
국철영은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진무립의 행동과 태도, 그 모든 것이 연무장에서 옹졸하게 굴었던 자신과 비교됐기 때문이다.
변화의 바람은 진무립의 말 한마디에서 불어왔다.
앞만 보고 달리던 금호대 조장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힘들어하는 다른 무인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한 것이다.
뒤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강유월은 대견하다는 듯 진무립을 쳐다봤다.
‘진정 큰 사내로다.’
하종보의 표정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누구도 좁힐 수 없었던 사대거파와 중소방파의 간극이 저 아이의 행동 하나로 달라지다니. 허허.’
지금 이곳에 출신을 따지는 무인은 아무도 없다.
저들의 눈앞엔 그저 힘들어하는 동료만이 있을 뿐이다.
그는 어째서 강유월이 진무립을 그토록 높게 보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저 아이라면……. 틀에 박힌 사천맹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막연하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만큼 진무립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묘한 기대감을 품게 만드는 사내였다.
금호대 동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국철영도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간을 좁힌 당중호가 나직이 그를 불렀다.
“철영.”
“나만 쓰레기가 될 순 없잖아.”
국철영은 세 개의 궤짝을 들고 달리던 육군명에게 다가갔다.
“하나 줘.”
국철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육군명이 피식 웃으며 궤짝을 넘겼다.
“고맙다.”
용추의 등에 타고 있던 무인들이 훌쩍 뛰어내리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푹 쉬었습니다.”
“죽어가는 애들 이리로 보내.”
무려 세 사람을 태우고 달렸는데 지친 기색 하나 보이지 않는다.
‘총대주의 빛에 가려진 감이 있지만 이 사람도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그들은 사양하지 않고 웃었다.
“알겠습니다.”
진무립의 말처럼 힘들 땐 서로 도와야 하는 것이 동료다.
그때 누군가 순식간에 용추의 지게에 올라탔다.
“형님. 아우 죽어요.”
잔뜩 울상을 한 사내는 바로 동초개였다.
씩 웃은 용추가 말했다.
“거기서 좀 쉬어.”
이어서 맨 뒤로 처졌던 두 사람이 용추의 지게에 올라앉는다.
운룡각 무인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도우며 천무대의 뒤를 놓치지 않고 쫓아갔다.
후방의 분주한 움직임을 천무대주 구양무가 모를 리 없었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그는 행동으로 변화를 이끌어낸 진무립을 보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조금 달리다 보면 알아서 우는소릴 할 줄 알았더니 도리어 부하들을 하나로 응집시켜 역경을 이겨내고 있다.
‘사대거파의 도도한 놈들까지 하나로 만들었어?’
어이가 없어 말도 나오지 않는다.
이쯤 되니 오기가 생긴다.
차갑게 눈을 빛낸 구양무가 전력을 다하기로 마음먹을 무렵, 후방의 진무립이 빠르게 다가왔다.
“이제 그만하시죠.”
구양무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걸렸다.
‘이겼다.’
누구보다 당당하고 고고한 사내가 드디어 자신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그는 진무립을 돌아보며 말했다.
“부탁하는 태도가 공손하지 못하군.”
“부탁이 아닙니다.”
“뭐라고?”
“다 왔습니다.”
그제야 구양무의 눈에 주변 산새의 어스름한 풍경이 들어온다.
천설곡(千雪谷).
눈앞의 눈 덮인 협곡은 자신들의 다음 휴식지로 예정된 곳이었다.
시작은 반쯤 장난이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진심이 되어 달리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한 줄도 몰랐다.
“하, 하하하.”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이쯤 되니 상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대단한 놈이다.
천천히 속도를 줄인 구양무는 절벽 끝에 멈춰섰다.
이윽고 입가에 걸린 허탈한 미소는 쓴웃음이 되어 사그라들었다.
우뚝 선 구양무와 진무립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내가 졌군.”
“같은 목적을 가진 동료 사이에 승패가 어디 있겠습니까?”
진무립은 그렇게 말했으나 구양무는 자신의 완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몸을 돌리며 말했다.
“여기서 숙영한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가장 먼저 동초개가 바닥에 드러누웠다.
“으아! 나 죽네.”
궤짝을 내려둔 적모개가 동초개를 툭 걷어찼다.
“지 궤짝까지 나한테 떠넘기고 지게에 편하게 앉아온 주제에 염치없이 어딜 드러눕냐?”
“힘들 땐 서로 돕는 게 동료라고 우리 소공자가 말했잖아요.”
그 뻔뻔함에 적모개는 기가 찼다.
“또, 또 우리 소공자라네.”
적모개와 동초개가 투닥거릴 때, 부하들을 살펴본 진무립이 말했다.
“일어설 수 있는 자는 숙영을 준비하고 힘든 자는 그대로 쉬어라.”
진무립의 지시에도 누구 하나 앉아서 쉬려고 하는 이는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여기까지 달려왔다.
이곳에 힘들지 않은 이는 없다는 걸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친 동료들과 힘을 합쳐 빠르게 막사를 세워갔다.
녹초가 된 몸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운룡각 무인들이 구양무의 눈에 담긴다.
‘마치 내가 어린아이들을 괴롭힌 어른이 된 것만 같군.’
그들을 조용히 바라보던 구양무는 쓴웃음을 감추려 몸을 돌렸다.
이곳에 더 이상 사대거파와 중소방파의 구분은 없었다.
진무립이 솔선해서 나서자 이들은 가까운 동료를 도우며 작업을 빠르게 진행했다.
잠시 앉아 쉬던 하종보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우리도 좀 도웁시다.”
“그러시겠소?”
“우리도 따지고 보면 이번 임무의 동료가 아니오이까?”
강유월이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그것도 그렇구려.”
두 노사가 번을 서기로 한 가운데 숙영지 건설을 마친 이들은 눕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
비록 녹초가 된 육신의 고단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나 마음만큼은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낮이 지나가고 다시 밤이 찾아오자 이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더 이상 천무대의 시험은 없었다.
조용한 행보를 이어가던 이들은 마침내 대설산맥의 협곡을 지나 서장의 경계에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