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67)
◈ 67화. 감시자
눈 덮인 황량한 고원의 바람이 매섭게 옷깃을 파고든다.
어지간해선 추위를 타지 않는 무인들조차도 뼛속까지 시려 오는 서장의 추위에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강유월이 하종보를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이거 쉽지 않겠구려.”
“추위가 이 정도일 줄이야. 아이들이 버틸 수 있을는지…….”
한 번도 사천을 벗어나 임무를 수행한 적이 없는 이들이었다.
두꺼운 장포를 몸에 둘렀으나 스며드는 추위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선두에 선 천무대주 구양무도 딱딱히 굳은 얼굴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산에서 멀어지면 추위가 좀 덜할 것이다. 그런데…….’
이곳은 사천이 아닌 서장.
지형을 미리 숙지한 상태지만 지도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다르다.
눈 덮인 고원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쉬울 것 같지 않아 걱정스러웠다.
그의 걱정을 눈치챈 적모개가 곁으로 다가왔다.
“서장은 지금 전쟁 중이오. 평소 왕래가 없는 길인 만큼 이곳까지 놈들의 시선이 닿지는 않을 거요.”
적모개의 말처럼 비각에서 이쪽 길을 알려준 것은 여길 지나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흠.”
부대주 성연이 말했다.
“설령 발자국이 남을지라도 거친 바람에 금세 지워질 거예요. 빠르게 돌파하는 게 낫겠어요.”
결정을 내린 구양무의 눈빛이 지금까지와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냉정하게 빛났다.
“진대주.”
“예.”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만 챙기고 나머지는 이곳에 숨긴다. 몸을 가볍게 하라.”
사천과 달리 적지인 이곳에서 누리고 싶은 것을 모두 누릴 만큼 구양무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래도 천무대라 그건가.’
적어도 상황 판단은 제대로 하고 있다.
진무립은 싱긋 웃었다.
“알겠습니다.”
진무립과 운룡각 무인들은 서둘러 궤짝을 정리하고 커다란 바위 밑에 묻었다.
그들이 다시 집결하자 구양무는 선두로 나섰다.
“출발하지.”
속도를 올려도 운룡각 무인들이 제법 잘 따라올 수 있다는 것은 이미 확인했다.
구양무는 망설임 없이 신법을 전개해 고원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일자로 늘어서서 전력으로 달린 그들은 이틀 뒤 아침, 고원의 끝자락에 도착할 수 있었다.
눈 덮인 고원의 풍경과 달리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앙상한 나무로 가득한 숲.
이곳을 지나야 첫 번째 목적지인 창도가 나온다.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훑어본 구양무가 수뇌부를 소집했다.
천무대 조장들과 운룡각의 세 대주, 그리고 정무원의 노사들이 참관을 위해 모였다.
구양무는 우선 조장들에게 말했다.
“숲을 벗어날 때까지 외곽 경계는 우리가 선다. 바람 소리조차도 흘려넘기지 말고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의심해라.”
“알겠습니다.”
“정무원의 노사님들께도 부탁을 드려야겠습니다. 숙영지의 외곽에 침식하시고 이상한 점이 있다면 바로 움직여주십시오.”
“알겠네.”
천무대의 대주답게 능숙하게 지시를 내린 구양무는 마지막으로 진무립을 쳐다봤다.
“여기부턴 머문 흔적도 최소한으로 남겨야 한다. 천무대는 알아서 쉴 것이니 운룡각은 우릴 신경 쓸 것 없이 흔적을 지우는 것에 중점을 둬라.”
“그러지요.”
“그리고 너희 세 사람은 우리와 함께 외곽 경계를 선다.”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은 낭비 없이 이용해야 한다.
당천의 무공은 자신조차 무시하지 못할 만큼 대단했고 육군명의 능력 역시 천무대와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다는 걸 안다.
그리고 오는 내내 지켜본 결과, 진무립 또한 충분히 믿을 만했다.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구양무가 말했다.
“휴식한다.”
불어온 바람이 나무에 부딪히고 갈라지며 음산한 풍경을 연출한다.
한낮의 햇살이 감도는 숲속엔 백 명이 넘는 무인이 있었음에도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바람 소리만 떠돌았다.
적모개와 함께 땅속에 몸을 숨긴 동초개가 살짝 입을 열었다.
[우리 식구들은 무사하겠죠?] [당연한 말 하지 마라.]그 말에 안심한 동초개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얼른 만나고 싶어요.] [곧 만나게 될 거다.]전음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들 위로 진무립의 신형이 은밀하게 움직였다.
자신이 번을 설 차례가 온 것이다.
조용히 이동하는 진무립의 곁으로 단려화가 다가왔다.
[나도 도울게요.]다른 것은 몰라도 그녀의 감각은 초인적이다.
적을 탐지하는 것에 있어 이곳에서 그녀보다 나은 사람은 없었다.
진무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지.] [네.]소완공을 펼친 단려화와 음혼귀영공을 펼친 진무립이 은밀히 자취를 감췄다.
숲의 서북쪽.
백 장가량 떨어진 높은 언덕 위에 복면을 쓴 세 명의 회의인이 나타났다.
눈을 가늘게 뜨고 동쪽 고원을 살피던 그들이 자세를 낮췄다.
“이틀 전 설곡의 기관이 은종(銀鐘)을 울렸다. 분명 누군가 이곳으로 온 게 확실해.”
서장의 광활한 변경을 모두 감시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여 왕래가 잦은 곳에는 무인을 파견하고 왕래가 없는 길목엔 기관을 설치해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이들은 설곡의 기관이 작동했다는 전서를 받고 서둘러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하필 이곳이라니. 제법 머리를 썼어.”
설곡의 고원은 적설량이 많고 바람이 심해 흔적을 지우기가 수월하다.
“짐승이 아니고 무인이 확실한 건가?”
“시곡대(視谷隊) 놈들이 아무리 멍청해도 그 정도는 분간할 수 있다.”
고원을 살피던 세 사람의 눈이 자연스럽게 숲으로 향했다.
“확인해야 한다.”
“누가 가지?”
시선을 교환하던 중 눈이 작은 사내가 말했다.
“내가 가지. 일각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움직여라.”
“그래.”
슬며시 일어난 사내는 마치 구렁이처럼 부드럽게 신법을 전개해 언덕을 내려왔다.
위에서 고개만 빼꼼히 내민 동료들이 은밀히 주시하는 가운데 사내는 천천히 숲으로 다가갔다.
때마침 숲의 서쪽 경계에 도착했던 진무립과 단려화는 접근하는 사내를 발견하고 동시에 몸을 숨겼다.
그런데 하필 두 사람이 숨은 곳은 같은 나무 아래였다.
숨결마저 고스란히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
문득 눈이 마주친 진무립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
[설마 노린 거야?]단려화는 왠지 기분이 나빠졌다.
[우연이에요. 그런 눈으로 볼 것까지는 없잖아요?]단려화가 살짝 물러날 때 갑자기 불어온 강풍이 그녀의 몸을 두드렸다.
사박이는 발소리는 이미 지척까지 다가온 상황.
바람에 밀려나는 단려화의 눈이 부릅떠졌고.
진무립은 생각할 틈도 없이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간발의 차이로 숲에 들어온 회의인이 곁을 지나쳐 갔다.
‘큰일 날 뻔했어.’
그녀는 거칠게 뛰는 가슴의 요동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어떻게 할…….]단려화는 그제야 자신이 그의 품에 안겨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고개 든 그녀의 눈에 진무립의 조각 같은 턱선이 보인다.
[사로잡는다.]선택지가 없었다.
사내에게서 감지되는 기운을 봤을 때 운룡각의 몇 명은 반드시 들킨다.
허리에서 손을 뗀 진무립이 은밀히 사내의 뒤를 쫓아 사라졌다.
사라지는 그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그녀는 가슴에 살포시 손을 올렸다.
‘왜 이러지?’
일촉즉발의 상황에 놀란 것이라면 평온을 되찾았어야 할 가슴이 여전히 거칠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달아오른 얼굴을 좌우로 흔들었다.
조용히 진무립을 따르려던 그녀의 발이 우뚝 멈췄다.
‘뭔가가…….’
슬며시 돌아간 단려화의 시선이 숲을 넘어 서쪽으로 향했다.
‘있다!’
숲에 접어든 순간 은잠술을 전개한 회의인이 은밀히 나무 위에 올라섰다.
‘분명 뭔가 있다.’
나무와 하나가 된 것처럼 동화된 사내는 숨소리마저 감추고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그는 자신의 뒤로 이 장 밖의 나뭇가지에 진무립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혈교 놈인가.’
복식은 다르나 기질이 매우 닮았다.
몸을 숨기는 은잠술도 심상치 않다.
‘조용히 생포하는 건 쉽지 않겠어.’
밤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한낮이다.
은폐물이 나무밖에 없는 상황에선 제아무리 진무립이라도 이 이상 접근하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그것은 단려화도 마찬가지.
‘그냥 힘으로 제압한다.’
결심한 진무립이 움직이려 할 때, 귓속으로 단려화의 전음이 틀어박혔다.
진무립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서쪽 언덕이라면 조금 전 슬쩍 보았던 곳, 그곳은 숲에서 무려 백 장이나 떨어진 곳이었다.
‘그걸 찾아?’
진무립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한 놈만 왔다는 건 이곳에 누가 있다는 걸 의심하는 게 분명하다. 이놈이 제시간에 돌아가지 않으면 그 의심은 확신이 되겠지.’
그렇다고 살려 보낼 수도 없다.
반드시 들키는 이가 나올 테니까.
생각을 정리한 진무립이 고개를 돌렸다.
[지금부터 잘 들어.]어느새 다가온 단려화의 귀로 진무립의 전음이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이야기가 끝이 났을 때, 진무립의 신형은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우측 삼 장 앞 나무 밑!’
마침내 기척을 발견한 회의인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역시 있었다.’
숨을 고른 회의인이 조용히 돌아서는 순간, 그가 밟은 나뭇가지 밑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맹렬히 솟구쳤다.
단려화의 전음을 받고 이쪽을 주시하던 구양무였다.
쌔액!
‘젠장!’
지체 없이 뛰어오르는 회의인의 등 뒤로 한줄기 섬광이 날아들었다.
그는 몸을 돌림과 동시에 검을 출수했다.
칭!
선명한 쇳소리가 울려 퍼진다.
단려화의 미간이 좁아졌다.
‘너무 멀었어.’
밤이라면 모를까 낮에는 소완공의 위력을 온전히 발휘하기 어렵다.
기습에 실패한 단려화의 검신이 초승달 같은 궤적으로 선회할 때 밑에서 솟구친 구양무가 퇴로를 차단했다.
서걱!
피륙이 찢기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어깨에서 피가 튄다.
이어서 사방에서 나타난 여섯 명의 복면인이 벼락같이 달려든다.
‘어렵군.’
와닿는 기세로 보아 상대를 파악할 여유조차 갖지 못할 것 같다.
체념한 사내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놈!”
단말마의 외침이 끝나고 입이 닫히는 순간, 사내는 어금니의 독단을 망설임 없이 깨물었다.
“들었나?”
언덕에 몸을 감추고 있던 회의인들이 시선을 교환했다.
“분명 들었다.”
숲에서 들려온 외침은 적을 파악하지 못하고 죽게 됐을 때 보내는 신호.
“이번엔 내가 간다.”
한 사내가 일어나자 홀로 남게 된 사내는 작게 끄덕였다.
“잘 가라.”
죽으러 가는 길임에도 인사는 짧고 간결하다.
“그래.”
그 말을 끝으로 언덕을 뛰어 내려간 사내가 순식간에 숲의 경계까지 도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에서 복면을 쓴 천무대원 셋이 튀어나와 사내를 매섭게 압박하기 시작했다.
싸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고작 오 초식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으니까.
하지만 그것이면 충분하다.
언덕 위의 사내는 상대의 정체를 확신하고 은밀히 몸을 돌렸다.
‘사천맹 천무대.’
불어온 바람과 함께 사내의 신형이 언덕 위에서 사라졌다.
집결한 사천맹 무인들 앞에서 두 구의 시신이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소매로 코와 입을 가린 당천이 시신을 살피곤 멀찍이 물러났다.
“구사독(究死毒). 가주께 혈교에서 쓰는 독단이라고 들었습니다.”
상대가 혈교일 것이라는 건 이미 예상했기에 놀랍지는 않았다.
“생포하지 못한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아쉬움을 삼킨 구양무가 단려화를 쳐다봤다.
“수고했네. 덕분에 피해 없이 잡을 수 있었어.”
“아닙니다.”
구양무는 주변을 돌아보곤 말했다.
“그런데 운룡각의 총대주는 어디에 있지? 분명 그가 번을 설 차례였을 텐데.”
대답은 단려화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지금 도주한 적을 쫓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