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91)
◈ 91화. 무엇이 옳은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도림의 성도 지부.
작은 방안에 조촐한 술상이 차려진 가운데 용추가 동초개에게 물었다.
“많이 아팠냐?”
고기를 질겅질겅 씹어 삼킨 동초개가 씩 웃었다.
“아팠는데요. 안 아픕니다. 그래도 평소 저를 귀엽게 본 모양인지 손속에 사정을 둔 거 같아요. 근데 소공자의 왼팔인 형님은 왜 여기 있습니까?”
용추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내가 왼팔이었냐?”
“제가 오른팔이니까 형님이 왼팔이지요.”
“너 되게 양심 없다.”
“왼팔 오른팔에 무슨 양심을 따져요? 먼저 하기로 한 사람이 하는 거지.”
“그럴 수도 있겠구나.”
쉽게 수긍한 용추가 술잔을 들었다.
“그런데 안 돌아가도 괜찮아요? 어제도 여기에서 잤잖아요.”
용추가 이곳에 도착한 것은 하루 전 오후, 단려화가 지부를 뒤집어놓고 돌아간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지금은 못 가.”
“왜죠?”
눈알을 빙그르르 굴린 용추가 나직이 말했다.
“아우한테 광녀 얘길 해준 사람이 나라는 걸 알았나 봐. 소공자께서 장수하고 싶으면 당분간 눈에 띄지 말래.”
동초개는 어제의 그녀를 떠올리곤 침을 꿀꺽 삼켰다.
“소공자가 아니었으면 문상을 가게 될 뻔했군요.”
* * *
점심을 먹고 처소로 돌아온 진무립은 서탁 앞에 앉았다.
중목원에 보고서를 올려야 할 기한이 내일 저녁까지다.
일반적인 임무였다면 하루 안에 보고서를 올려야 했으나 두 달이 넘는 서장행이었기에 시간을 넉넉히 준 것이다.
진무립은 붓을 움직여 서장행의 과정을 적어 내려갔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 새하얀 백지가 절반가량 채워질 무렵, 허공에서 작은 기척이 느껴지더니 서진환의 전음이 귀에 박혔다.
[천주님.] [그래.] [이틀간 천선각주 장유기, 북천각주 진하성, 서월각주 정연, 재상각주 당이경이 비각을 다녀갔습니다.]각기 청성과 점창, 아미와 당가의 무인들이었다.
이대로 소문이 퍼져 나간다면 굳건한 사대거파의 입지가 흔들리게 될 터, 그것을 막고자 움직이는 것이 분명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겠지.’
서진환의 전음이 재차 이어졌다.
[송구하오나 대화를 엿들을 만큼 접근할 수는 없었습니다.] [무리할 필요는 없다. 그들 외에 다른 이는 없었나?] [어제 오후 당중호가 뒷문으로 조용히 다녀갔습니다.]당중호가 자신을 감시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서장에서도 굳이 데리고 다니지 않고 떼어두었던 것이었다.
‘서장에서의 일로 꼬투리를 잡으려 하겠군.’
은무대는 들키지 않았고 딱히 트집잡힐 만한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라면 없는 문제도 만들어낼 게 분명하다.
[각주들의 무위는 어느 정도더냐?] [속하와 부대주라면 일 장, 대원들이라면 일 장 반까지는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트인 공간에서라면 충분히 따라다닐 수 있겠지만 운신이 불편한 건물 안에서라면 쉽게 감시하기 어려운 간격이다.
게다가 지림에서 함께 싸운 천무대에게 이야기를 들었다면 단려화의 은잠술또한 경계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각주들은 제외하고 그들과 의논할 만한 수족들에게 대원을 붙여라. 당중호에게도 마찬가지다.] [명을 받듭니다.]서진환의 기척이 사라지자 진무립은 다시 붓을 잡았다.
‘보고서는 내일까지. 모두가 참석하는 중목회(中木會)는 나흘 뒤다. 뭔가 벌어진다면 그날이다.’
백지를 채워가는 검은 글자만큼,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이 진무립의 머릿속을 채워갔다.
* * *
하루가 다르게 퍼져 나가는 소문과 더불어 진무립과 운룡각을 대하는 시선도 사뭇 달라졌다.
천무대조차 해내지 못한 임무를 해낸 그들은 더 이상 일개 후기지수로 보기엔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란 것도 잠시뿐.
나날이 높아지는 진무립의 명성에 불편함을 느끼는 자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천선각의 심처.
정갈하게 꾸며진 작은 방 안에 노년을 바라보는 네 명의 중년인이 둘러앉았다.
상석에는 청성파 출신의 천선각주 장유기가, 좌우에는 점창파 출신의 북천각주 진하성과 아미의 여승이자 서월각의 수장 정연이 앉았다.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와 입구 쪽에 앉은 인물은 당가 출신의 재상각주 당이경이었다.
전원이 사대거파 출신인 이들은 실권이 없는 정무원을 제외하면 맹주와 비각주 다음으로 많은 권한을 가진 이들이었다.
그들의 면면을 살핀 장유기가 나직이 말했다.
“모두 모이셨구려.”
무거운 표정을 보아하니 다들 이 자리의 의미를 알고 온 듯하다.
장유기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애당초 마도림을 영입하는 것이 아니었소이다.”
민머리에 다소 독해 보이는 인상의 여인, 정연이 그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도림의 영입은 비각주의 실책이에요.”
둘의 말에 재상각주 당이경이 당문경을 변호하듯 말했다.
“비각주의 판단을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당시 우려했던 혈교의 침공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습니다. 화살받이로 마도림을 끌어들여 사대거파의 피해를 줄이고자 하는 선택은 잘못된 게 아닙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북천각주 진하성이 입을 열었다.
“재상각주의 말이 틀리지 않소. 혈교의 침공에 대비하는 것도 그렇지만 실제로 마도림의 영입 이후 중소방파의 불만이 잦아든 것도 사실이오. 마도림을 비빌 언덕으로 생각하고 잠시 지켜보는 것이겠지.”
당이경이 그의 말을 받았다.
“문제가 생긴 것은 당시의 판단과 별개로 그 아이가 보여준 능력이 짐작을 웃돈다는 겁니다. 어느 누가 후기지수들을 데리고 그와 같은 성과를 낼 것이라 생각했겠습니까?”
말이 끝나자 무거운 침묵이 실내에 깃들었다.
진무립이 성도에 오기까지 보여준 실적을 통해 어느 정도 재주가 있을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더불어 대검문을 무너뜨리고 무인들을 흡수했다곤 하나 마도림의 힘은 아직 사대거파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끌어들였다.
적당한 능력이 있고 언제든 힘으로 찍어누를 수 있는 마도림은 화살받이로 쓰기에 딱 좋은 상대였으니까.
그러나 이번 서장행에서 보여준 능력은 예상을 웃돌아도 한참을 웃돌았다.
자칫하다간 화살받이에게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이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것이다.
장유기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좋소. 잘잘못을 따지는 건 잠시 미뤄두기로 하지. 맹주님과 비각주도 따로 계획을 세우겠지만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 지켜만 볼 수는 없는 일이오.”
정연이 말했다.
“빈니도 같은 생각이에요. 한동안 사천 무림이 평화로웠던 탓인지 소문이 퍼지는 속도가 빠르더군요. 이대로 둔다면 필요한 순간에 마도림을 제어하기 어려워질 거예요.”
진하성이 물었다.
“염두에 둔 방법은 있으시오?”
“지금부터 논의를 해봐야겠지요.”
정연에 이어서 장유기가 입을 열었다.
“좋은 방책이 있으신 분은 말씀해주시오.”
약간의 침묵 끝에 당이경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손 놓고 있어선 안 된다는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우리 계획이 맹주님과 비각의 계획에 상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기선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할 듯합니다.”
“조심스러운 접근이라 함은?”
“천무대를 비롯해 서장에 다녀온 무인 대다수는 우리 사대거파의 제자들이지요. 우선 제자들이 언제든 우리의 의견에 따를 수 있게 포섭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북천각주 진하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이쪽과 저쪽의 계획이 달라서는 일이 안 되겠지. 섣불리 계획을 진행하기보다는 언제든 중목원의 결정에 힘을 보탤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게 좋겠소.”
지금의 상태에선 그 이상의 좋은 의견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 자리를 주최한 장유기는 결정을 내렸다.
“좋소이다. 재상각주의 의견대로 일을 진행합시다.”
“천무대와 운룡각의 제자들은 설득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함께 갔던 정무원의 두 노사님은 쉽게 넘어올 분들이 아니에요.”
서월각주 정연의 말에 장유기가 답했다.
“두 분과는 빈도가 대화를 나눠보겠소.”
“좋은 방책이 있겠습니까?”
“물론이오. 그 일은 내게 맡기고 여러분은 제자들의 설득에 힘써주길 바라오.”
그의 자신 있는 태도에 각주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입을 연 장유기는 당부하듯 말했다.
“설령 설득에 실패했다 하더라도 중목회 전까지는 대화 내용이 새어나가지 않게 입단속을 단단히 해야 할 것이오. 더불어 진무립의 곁에 은잠술이 뛰어난 아이가 있다고 하니 다들 주의하시구려.”
“알겠습니다.”
시선을 교환한 네 명의 각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쉬이익!
낭창하게 뻗어 나간 검신이 단려화의 면사를 흔들었다.
물러나는 단려화를 향해 세 줄기 검광이 전광석화처럼 쏘아졌다.
단려화는 검파를 쥔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부챗살처럼 흔들린 검신이 진설란의 맹공을 가볍게 차단했다.
카카캉!
눈앞에서 불꽃이 튀자 진설란은 미간을 좁혔다.
‘너무 빨라. 대체 무슨 검술일까?’
마도림의 여류 고수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마화대주 가약빙이다.
그러나 그녀가 이토록 은밀한 쾌검을 구사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모두가 진공자만 주목하고 있지만 유소저의 검술도 녹록한 것이 아니야.’
만일 서장행에 그녀가 없었더라면 적사곡의 임무는 그리 수월하게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탓!
지면을 가볍게 박찬 진설란은 갈 지자로 움직이며 단려화의 사각을 노렸다.
좌측 하단에서 솟구친 맹렬한 검극이 간발의 차이로 앞섶을 스쳐 지나갔다.
단려화는 스치는 검신을 쳐내며 좌수로 그녀의 가슴을 가볍게 밀쳤다.
툭!
중심을 잃고 밀려난 진설란의 표정이 왠지 허무했다.
만일 살초였다면 목숨이 위험했을 것이다.
“이렇게 질 줄은 몰랐네요.”
단려화는 빙그레 웃으며 검을 집어넣었다.
“운이 좋았어요.”
운이 아니라는 것을 진설란은 잘 안다.
그녀는 단려화에게 공손히 포권을 취했다.
“한 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단려화도 그에 화답해 예를 갖췄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때 연무장 입구로 민머리의 여승, 금호대의 조장 보인이 들어왔다.
“사저.”
본산과 속가의 구분이 있다곤 하나 진설란이 먼저 입문한 탓에 보인은 그녀를 깍듯이 대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왠지 보인의 표정이 평소보다 어두웠다.
“잠시 시간 좀 내주시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인 진설란은 단려화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정말 고마웠어요. 좋은 차를 준비하고 기다릴 테니 언제든 찾아주세요.”
단려화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술도 괜찮아요. 어서 가보세요.”
미소를 남긴 진설란은 서둘러 보인을 따라 나갔다.
그녀가 사라지기 무섭게 뒤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려온다.
“술도 괜찮아?”
고개 돌린 단려화의 눈에 멀리서 걸어오는 진무립이 담겼다.
“한잔할래요?”
“한잔은 됐고 한판 붙자.”
태연히 검을 뽑아 드는 그 모습에 단려화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기대한 내가 바보지. 안 해요!”
그녀가 빽 하고 소리치자 짓궂게 웃은 진무립은 검을 도로 넣었다.
“농담이야. 한잔하러 가지.”
* * *
보인을 따라간 진설란은 서월각 앞에 도착했다.
“각주께서 날 찾으시는 거니?”
보인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저.”
그녀의 심상치 않은 기색에 진설란은 반사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래.”
지그시 입술을 깨문 보인은 괴로운 얼굴로 말했다.
“저는…… 무엇이 옳은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구나.”
서월각주 정연은 보인의 스승이다.
잠시 머뭇거리던 보인은 애써 웃어 보였다.
“제 입으로는 절대 말할 수 없어요. 들어가시면 사저께서도 알게 되실 거예요.”
그녀의 슬픈 눈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진설란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올게.”
“사저.”
돌아서는 진설란의 소매가 슬쩍 당겨졌다.
보인은 짧은 망설임 끝에 어렵게 입을 열었다.
“다녀오시면…… 사저의 답을 제게 가르쳐주세요.”
“다녀와서 보자.”
진설란은 빙그레 웃으며 서월각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