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90)
◈ 90화. 들불처럼 번지는 소문
지부를 발칵 뒤집은 단려화의 습격 사건은 진무립의 필사적인 설득 끝에 마무리되었다.
두 사람이 돌아간 뒤, 적모개와 관초걸은 조용히 동초개의 방을 찾았다.
“야. 우냐?”
방구석에 잔뜩 웅크린 동초개는 콧물을 훌쩍이며 말했다.
“아, 안 울어요.”
고개 든 동초개의 눈두덩이가 시퍼렇다.
그 처량한 모습에 관초걸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게 왜 그런 소문을 내서 매를 버는가.”
“크흑…….”
동초개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자 적모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업자득이다. 이놈아.”
지부를 나서는 길.
진무립과 나란히 걷던 단려화는 못내 아쉬운 듯 연신 뒤를 힐끔거렸다.
“그러다 턱 돌아가겠네. 그만 좀 봐.”
“시작하자마자 말리니까 아쉬움이 남잖아요.”
“…….”
단려화의 과격한 면을 처음 본 진무립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신룡도 자기 딸의 이런 성격을 알고 있을까?’
누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장차 남편 될 사람이 가엾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직 식사도 못 했네요? 흉수를 처리하기 전에 뭐 좀 먹어요.”
“흉수? 흉수는 동초개잖아.”
그녀의 입가에 번진 미소가 오싹하다.
“동소협에게 비밀을 유출한 사람이 남았잖아요.”
지림의 숲에서 그 이야기를 들은 것은 용추와 진무립, 그리고 육군명뿐.
그동안 진무립은 거의 자신과 함께 있었으니 동초개에게 그런 말을 할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육군명은 동초개와 친분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용추다.
“어서 가요. 배고프면 복수도 못 한단 말이에요.”
싱긋 웃은 그녀는 진무립의 팔을 잡아당기며 성큼 발을 내디뎠다.
* * *
진무립과 단려화가 객잔으로 향할 무렵.
들불처럼 퍼져 나가는 소문은 사천맹 수뇌부를 강타했다.
천선각주 장유기는 성난 걸음으로 비각에 도착했다.
“당각주! 안에 계시오?”
“들어오십시오.”
장유기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을 벌컥 열었다.
당문경의 동공에 일그러진 장유기의 얼굴이 비친다.
“무슨 일로 이리 성이 나셨습니까?”
“각주께서는 어찌 그리 태연하시오? 설마 소문을 듣지 못했단 말이오?”
“진무립에 대한 것이라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일단 앉으십시오.”
“이대로 두고만 보실 작정이오?”
당문경은 침착하게 말했다.
“흥분한다고 달라질 일이 아닙니다. 진정하십시오.”
답답한 얼굴로 당문경을 쳐다본 장유기는 마지못해 의자에 앉았다.
“이대로 소문을 방치한다면 사대거파의 아성까지 흔들릴 것이란 말이오. 각주께서는 어찌 손 놓고 보고만 있단 말인가?”
“서장에서 복귀한 무인의 숫자가 예순에 달합니다. 게 중에는 사대거파의 자제들까지 있지요. 그들 전부를 가둬두지 않는 이상 소문이 퍼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그것을 조금이나마 상쇄하고자 맹주를 설득해 직접 구원에 나섰다.
그러나 진무립의 영향력이 생각 이상으로 거대해진 탓에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장유기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좋소. 그럼 대책을 들어보십시다. 이제 어떡할 셈이오?”
당문경은 그를 달래듯 말했다.
“지금 방도를 고민하는 중이니 돌아가서 조금만 기다려보십시오.”
“허,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변변한 방책조차 마련하지 못했단 말이오?”
장유기의 타박에 당문경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가 풀렸다.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혀를 끌끌 찬 장유기는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비각의 대책이 늦는다면 우리 천선각에서 직접 해결책을 강구할 것이니 그리 아시오.”
찬바람 나게 돌아선 장유기는 문을 쾅 닫고 사라졌다.
멀어지던 기척이 사라지자 당문경의 눈에 옅은 분노가 스쳐 지나갔다.
“멍청하긴. 애당초 천무대가 임무를 제대로 해냈다면 이 사달이 벌어졌겠는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당문경이 서탁 앞으로 돌아설 때, 밖에서 또 다른 인기척이 느껴졌다.
“각주님. 중호입니다.”
당문경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어서 들어오게.”
문을 열고 들어온 당중호가 정중히 예를 갖췄다.
“각주님을 뵙습니다.”
“예는 되었네. 일단 앉으시게.”
“예.”
자리를 권한 당문경이 그와 마주 앉았다.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로구나.”
“어제 찾아뵈려 했는데 자고 일어나니 하루가 훌쩍 지나가는 바람에……. 죄송합니다.”
“아니다.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격려의 말에 당중호는 멋쩍게 웃었다.
“저는 별로 한 일이 없습니다.”
당문경은 인자한 미소로 말했다.
“이번 임무는 참으로 고된 것이었다. 천무대가 실패할 줄 누가 알았겠느냐?”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번 서장행은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이상한 점?”
당문경의 눈이 반짝이자 당중호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각주께서 바라시는 답을 드려야 한다.’
빠르게 머리를 굴린 당중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당초 저희가 서장으로 가게 된 것은 혈교와 포달랍궁의 전쟁으로 동쪽 경계가 약해졌으리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게다가 서장과 사천의 경계는 무려 수천 리가 넘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서장에 도착하기 무섭게 회혈대란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마치 우릴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말입니다.”
“으음.”
“그뿐이 아닙니다. 개방 분타주의 행동도 이상합니다. 그는 분명 천무대 부대주와 같은 날 창도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혈서를 들고 돌아온 날은 하루 뒤였습니다. 만일 천무대가 떠나기 전에 혈서를 들고 왔다면 그분들이 함정에 빠질 일도 없었을 겁니다.”
조목조목 따지자면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는 말이었으나 당문경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마치 설명을 부추기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건 좀 이상하긴 하군.”
당중호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진무립이 개방의 혈서를 입수했을 때 곧장 천무대에 사람을 보냈더라면 그들의 패퇴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허나 그는 동료를 구하는 대신 적사곡으로 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이점이 이해가 안 됩니다.”
당중호는 진무립이 비각의 정보에 의혹을 제기했던 사실은 쏙 빼놓고 말했다.
당문경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너는 그가 어째서 천무대를 쫓는 대신 적사곡에 갔다고 보느냐?”
“저는 아무래도 의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의심이라?”
“진무립이 가는 곳마다 마치 행운이 따르듯 모든 일이 그의 의도대로 진행되었습니다.”
당중호의 목소리가 마치 속삭임처럼 작게 들려왔다.
“마도림과 혈교는 오래전 같은 뿌리에서 나온 집단입니다. 확인해볼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당문경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빠르게 스치고 사라졌다.
‘이거면 됐다.’
당중호가 제기한 의혹엔 많은 허점이 있다는 걸 모를 당문경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게 진실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맹주와 자신의 힘이라면 얼마든지 거짓에 진실을 감출 수 있을 테니까.
‘의혹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진무립은 이번 임무에서 지나치게 큰 공을 세웠다.
갑자기 튀어나온 마도림의 소공자가 사대거파의 아성을 뒤흔들고자 한다면 천선각주와 같이 반감을 갖는 자가 적지 않을 터.
그저 작은 의혹을 제기한 뒤에 조사하는 척만 한다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자 하는 이들이 알아서 소문을 퍼트려줄 것이다.
‘훗날 진실이 밝혀진다 해도 추락한 평판은 회복하기 어려울 거다.’
머릿속으로 계획의 정리를 마친 당문경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네 의견은 서장행을 면밀히 검토하는 과정에서 재차 살펴보도록 하마.”
“예. 각주님.”
당문경은 품에서 손바닥만 한 전낭을 꺼냈다.
“수고했다. 여독을 풀 겸 오늘은 나가서 회포나 풀고 오려무나.”
예를 갖춘 당중호는 감격한 얼굴로 전낭을 챙겼다.
“감사합니다.”
비각의 뒷문을 나선 그는 좌우를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은밀히 사라졌다.
‘당중호.’
처마의 그늘 밑에서 그를 지켜보던 서진환은 조용히 몸을 돌렸다.
진무립의 명을 받고 비각에 왔으나 당문경의 집무실에 잠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통로마다 몸을 숨긴 호위가 지키고 있었고 사람이 없는 곳에는 기관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암살이라면 모를까 흔적을 남기지 않고 집무실을 감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욕심은 내지 않는다.’
진무립의 당부를 되새긴 서진환은 다시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 * *
광룡(狂龍) 진무립.
몰락한 마도림에 나타난 신성.
서장에서의 활약상이 알려지자 세인들은 그의 과거까지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대검문을 몰락시킨 일은 물론이고, 그간 낭설로 치부했던 혈천수라를 제거한 일도 진무립이라면 가능한 일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수십 배가 넘는 적을 궤멸시키는 천재적인 지략.
위험을 무릅쓰고 천무대를 구출해낸 담력과 의리.
그 모든 사실이 더해지자 세인은 진무립을 사천 제일의 후기지수로 손꼽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와 더불어 사천 무림에서 영향력을 상실했던 마도림이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했다.
고요한 죽림 위로 한 마리 흑조가 쏜살같이 하강했다.
“당주님! 성도 지부에서 전서를 보내왔습니다!”
진무립이 서장에 다녀오는 동안, 관초걸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마도림과 성도지부의 연락망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전서를 확인한 비선당주 문강유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소공자께서 또 해내셨구나! 내 잠시 안림원에 다녀오마.”
집무실을 나선 문강유는 바람같이 몸을 날렸다.
림주 일가가 머무는 안림원의 심처.
때마침 초무강 내외는 태상림주 초평천과 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유림이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
초평천의 물음에 정인령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성격이 너무 괄괄한 탓에 서화를 좀 가르쳤더니 거기에 푹 빠져있습니다.”
초무강이 이어서 말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성도에 가보고 싶다고 난리를 피우던 아이가 서화를 배우더니 조용해지더군요. 마음을 다스리는 데 제법 도움이 되는 모양입니다.”
초평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을 나이지.”
그때 밖에서 위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림주님. 비선당주가 성도에서 보내온 전서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안으로 모셔라.”
“예.”
잠시 후, 문이 활짝 열리며 문강유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들어왔다.
“림주…….”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예를 갖추던 문강유는 뒤늦게 초평천을 발견했다.
“비선당주 문강유가 태상림주님을 뵙습니다.”
“오랜만이구먼. 본인은 개의치 말고 편히 말씀하시게.”
“감사합니다.”
문강유는 관초걸이 보내온 전서를 초무강에게 바쳤다.
“서장에 갔던 소공자가 복귀했다고 합니다.”
깨알 같은 글씨로 빼곡한 전서는 우가산이 진무립과 함께 복귀한 뒤 작성한 것이었다.
전서를 확인한 초무강은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아버지. 읽어보십시오.”
전서를 받아 든 초평천의 눈이 옅은 떨림을 보였다.
“그 녀석이…… 결국 해냈구나.”
전서를 보낸 시기가 시기인지라 성도가 들썩이고 있다는 내용은 없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조만간 사천 무림이 들썩일 것은 자명한 일.
부자가 희열로 가득한 시선을 교환하고 있을 때, 문강유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정말 믿기지 않는 전공입니다. 소공자께서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습니다.”
정인령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떤 내용입니까?”
혈천수라를 제거하고 부친과 동생을 구해준 진무립은 그녀에게 단순한 시조카가 아니었다.
초평천이 빙그레 웃으며 전서를 건넸다.
“자네도 읽어보시게.”
전서를 읽어내려가는 정인령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부인. 기쁘지 않으시오?”
그녀는 애써 웃었다.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초평천이 말했다.
“괜찮으니 편히 말해보아라.”
작게 끄덕인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촉석봉정(矗石逢釘)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사대거파가 과연 두고만 볼지 걱정스럽습니다.”
튀어나온 돌이 정에 맞는 일은 역사상 왕왕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초평천 부자의 얼굴에는 걱정스러운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인령이 의아한 듯 물었다.
“소첩의 걱정이 기우에 불과하단 말입니까?”
초무강은 그녀의 손등을 부드럽게 감쌌다.
“정에 맞아 깨질 돌이라면 서장에서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오. 아니, 그 전에 대검문과의 전쟁에서 무너졌을지도 모르지.”
초평천도 그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비는 해야겠으나 과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 아이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야.”
진무립에 대한 두 사람의 신뢰는 무엇으로도 흔들 수 없을 만큼 굳건했다.
정인령의 어둡던 표정이 그제야 밝아졌다.
“그렇겠지요. 우리가 믿지 못하면 안 되겠지요.”
“염려하지 마시오. 만에 하나, 그럴 일은 없겠지만 무립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나는 전력을 다해 그 아이를 지킬 것이오.”
자리에서 일어난 초무강이 문강유에게 말했다.
“비선당주는 즉시 수뇌를 소집하시오. 이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고 우리도 다음을 준비해야겠소.”
문강유는 즉시 고개를 숙였다.
“명을 받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