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89)
◈ 89화. 광녀가 면담을 신청해요
솟구친 먼지가 차분히 가라앉는 가운데 단려화의 입이 작게 열렸다.
“내 검초가 보였을 리 없어요.”
내력을 갈무리한 진무립은 은광검을 착검하며 말했다.
“안 보였다.”
“그럼 대체 어떻게 막은 거죠?”
진무립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걸 굳이 봐야 막을 수 있나?”
듣고 있던 유대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 보이는 걸 어떻게 막습니까?”
곁에서 지켜보는 자신들에게조차 단려화의 검신은 실체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은밀했다.
그렇다면 정면에서 상대하는 진무립은 제대로 파악하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다.
단려화도 그와 마찬가지로 궁금한 기색이 역력했다.
진무립은 담담하게 말했다.
“간단한 이치다. 팔과 다리, 어깨의 움직임을 비롯해 상대의 전신에서 검로를 유추해라.”
유대하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전혀 간단하지 않은데요.”
천하에서 그게 가능한 사람은 열 손가락 안에 꼽힐 것이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상대보다 더 많은 공격을 퍼부어라.”
“상대의 검이 나보다 빠르면 어떡합니까?”
“그땐 보법을 최대한으로 전개해 검신과 검신이 닿을 만큼만 간격을 유지한다. 그리곤 상대의 요혈이 아닌 검신부터 집요하게 노려서 빈틈을 만드는 거다.”
“맞추지 못하거나 제 검이 먼저 부러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 정도의 상대라면 도망쳐야지. 전에도 말했지만 도망치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라. 죽으면 전부 끝이야.”
그대로 몸을 돌린 진무립이 지하연무장을 빠져나갔다.
곰곰이 생각하던 유대하는 고개를 돌리며 실실 웃었다.
“단소저. 혹시 저와……,”
그녀는 어느새 진무립의 뒤를 쫓고 있었다.
“나중에요. 선약이 있거든요.”
용추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내가 때려줄…… 아니, 도와주지.”
“말을 슬쩍 돌리지 마시죠.”
육군명이 유대하의 어깨에 팔을 척 걸쳤다.
“솔직히 네 수준에서 무립의 조언을 듣는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어.”
육군명은 혈위사신을 생포할 정도의 강자.
유대하는 혹시나 하는 얼굴로 물었다.
“그렇다면?”
“지금 단계에서 어설픈 깨달음은 도리어 독이야. 지금은 네 무공을 펼치며 많이 맞아보는 게 가장 빠른 길이지. 그래야 실전에서 몸이 바로 반응하거든.”
용추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이 그 말이라니까.”
생각해보니 용추에게 그토록 얻어맞지 않았더라면 이곽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결심을 굳힌 유대하는 뒤로 물러나며 검파를 쥐었다.
“맞겠습니다. 때려주십시오.”
눈이 맞은 용추와 육군명의 입가에 왠지 음흉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두 사람은 벽에 세워진 목봉과 목도를 들었다.
“그렇게까지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시작해보자.”
* * *
처소로 돌아온 진무립이 대주천을 마치고 일어날 무렵, 귓속으로 서진환의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천주님. 성도의 객잔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소문?] [사천맹의 서장행에 관한 소문입니다. 동초개의 입에서 시작된 모양입니다.]어떤 상황일지 보지 않아도 대강 짐작이 간다.
‘사대거파가 이대로 상황을 두고 보진 않을 거다.’
뭔가 벌어진다면 비각은 그 중심이 될 터.
진무립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분간 내 호위 대신 비각을 감시하고 당문경과 독대하는 자들을 파악해라.] [알겠습니다.] [영악한 놈이니 집무실 주변에 무슨 짓을 해놨을지 모른다. 크게 욕심을 부리지는 마라.] [속하가 직접 챙기겠습니다.] [부탁한다.]서진환을 보낸 진무립은 곧장 단려화의 처소를 찾았다.
함께 성도에 다녀오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뭐해?”
문을 벌컥 열자 때마침 면사를 쓰던 단려화가 곱게 눈을 흘겼다.
“그렇게 벌컥벌컥 문을 열면 어떡해요?”
초인적인 감각을 가진 그녀가 진무립의 존재를 몰랐을 리 없다.
“알고 있었잖아?”
눈치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진무립이 이럴 땐 왜 이렇게 눈치가 없는지 모르겠다.
“얼른 나와.”
“가요. 가.”
벌써 이곳까지 소문이 퍼졌는지 운룡각을 나서는 둘에게 무인들의 시선이 쏟아진다.
단려화가 영문모를 얼굴로 물었다.
“왜 저런 눈으로 보는 걸까요?”
진무립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그러게.”
사천맹을 나선 두 사람은 성도의 북문을 넘어섰다.
인파로 가득한 거리, 모처럼 느껴보는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반갑다.
싸늘한 새벽과 달리 한낮의 공기는 제법 따스했다.
길가의 건물은 대부분 문과 창이 활짝 열려 있어 추운 서장과 달리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게 했다.
단려화는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새벽에는 서리가 내리더니, 잠깐 사이에 봄이 찾아온 것만 같네요.”
그녀와 나란히 걷던 진무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겨울이 짧은 느낌이야.”
“맞아. 당신도 사천의 겨울은 처음이죠? 그동안 어디에서 지냈어요?”
“여러 산채를 돌아다녔지만 대부분 산서성 오대산에서 보냈다.”
오대산은 천하 오악(五岳)의 하나로 불릴 만큼 풍광이 수려하기로 유명했다.
“오대산?”
그녀가 놀란 듯 말끝을 올리자 진무립이 물었다.
“왜?”
진무립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가 살짝 미소지었다.
“사실 사천에 오기 전에 들른 곳이 바로 오대산이었거든요.”
“유람이라도 간 건가?”
주변을 살핀 그녀는 진무립의 귓가에 손을 붙이고 속삭였다.
“무면산왕을 찾으러요.”
옛 기억이 떠오른 진무립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하마터면 그곳에서 잡힐 뻔했군. 무슨 소문을 들은 거지?”
“그냥 유추한 거예요. 무면산왕이 꺾은 황하용왕의 수로채는 산서성에 있죠. 상천은 산적이 모여 만든 곳이니 깊은 산속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제법인데?”
“당신 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어디 가서 모자라다는 소리는 안 듣는다구요.”
흔들리는 면사 아래로 삐쭉거리는 입술이 살짝 드러난다.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진무립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단려화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겼어요.”
“뭔데?”
“아무리 수소문해도 두 사람이 싸운 걸 목격한 이는 없었거든요. 그 뒤로 황하용왕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구요. 그는 정말 죽었나요?”
진무립은 마치 그녀를 약 올리듯 씩 웃었다.
“비밀이야.”
“정말 수상한 소공자네요.”
“당신도 만만치 않거든.”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가 배시시 웃었다.
“그것도 그렇네요.”
한낮의 태양이 높게 치솟은 거리.
대로변의 객잔과 노점에서 풍기는 냄새가 두 사람의 허기를 자극했다.
단려화는 진무립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나 전낭 안 들고 왔어요.”
진무립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뭐야?”
“왜 그렇게 놀라요? 오늘은 당신이 전부 내겠다고 했잖아요.”
서장에서 말값으로만 무려 은자 천 개를 썼다.
그 외에도 지금까지 들어간 거의 모든 돈이 단려화의 전낭에서 나왔다.
하여 오늘은 진무립이 전부 돈을 내기로 했던 참이었다.
“내가 그랬나?”
진무립이 모른 척 시치미를 떼자 단려화는 가자미눈을 뜨고 말했다.
“기억력 좋은 거 다 알거든요.”
“하하하.”
멋쩍은 웃음소리가 화창한 하늘로 퍼져 나간다.
두 사람은 허기를 달래고자 가까운 객잔을 찾았다.
활짝 열린 입구로 들어서자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 한 사내가 일어나서 뭔가를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빈자리를 찾아 앉은 두 사람의 귀로 왠지 익숙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모두가 지쳐가는 상황이었지. 세 사람이 틀어막은 입구로는 적들이 물밀 듯 쏟아져 나오고 그들 뒤에선 고수들의 경천동지할 접전이 펼쳐지고 있었단 말일세.”
서진환에게 들었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사천맹의 서장행이 화젯거리였다.
귀를 쫑긋거리던 단려화가 전음을 보내왔다.
[적사곡 얘기 아닌가요?] [맞아.] [대체 누가 이야기를 한 거죠?] [동초개다.] [역시.]단려화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누군가 사내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곳엔 대체 왜 간 거야?”
“나도 그것까지는 모르겠네. 다른 건 다 들었는데 그 이유만큼은 절대 말해주지 않더군. 사천맹의 극비 임무가 아닐까 싶네.”
그때 구석에 앉아있던 사내가 미심쩍게 물었다.
“당신 제대로 들은 거 맞소? 설마 지어내는 거 아니야?”
그 말에 중앙에 선 사내의 표정에 불쾌한 기색이 번졌다.
“아침에 성양객잔에서 직접 들은 얘기요. 내 목을 걸 수 있소이다.”
“대체 누구에게 들었단 말이오?”
“개방의 소형제가 말해주더이다. 그가 바로 마도림에서 온 소공자의 오른팔이라고 했소.”
“풉!”
진무립의 입으로 들어간 물이 도로 튀어나왔다.
질겁한 단려화가 상체를 뒤로 빼는 가운데 모두의 시선이 진무립에게 쏟아졌다.
의심하던 사내는 진무립의 옷차림을 보고 반색했다.
“오. 사천맹의 무사님이로군. 이보시오. 거기 잘 생긴 무사님. 지금 저이의 말이 모두 사실이오?”
“아마도…… 그럴 거요.”
중앙에 서 있던 사내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콧방귀를 뀌었다.
“흥!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말이야. 못 믿겠으면 당장 개방 지부를 찾아가 물어보시오. 기분 나빠서 더는 못 있겠네. 난 가오!”
주변 사람들이 돌아서는 사내를 다급하게 붙잡았다.
“그냥 가면 어쩐단 말이오? 우리는 처음부터 믿었소이다. 그러지 말고 끝까지 얘길 해주시오.”
“저 친구는 원래 저런 인물이니 개의치 말고 계속하시오.”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에 구석 자리의 사내가 쫓기듯 밖으로 나갔다.
“이보게. 점소이! 술이 비지 않게 계속 가져오라 하지 않았는가?”
“갑니다요!”
쪼르르 달려온 점소이가 술을 내놓고 사람들이 소매를 붙잡자 사내는 못이긴 척 말을 이어갔다.
“접전 중에 청성파의 노고수께서 크게 다치셨다고 하더군. 거기에 마도림의 젊은 고수 또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지.”
“크으. 절체절명의 상황이로군.”
모두의 눈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위기는 오래가지 않았소. 임무를 수행하러 갔던 마도림의 소공자가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칼잡이를 밀어내고 창잡이를 때려눕혔다지 뭐요?”
“청성파의 노고수조차 당해내지 못한 고수를?”
“마도림의 소공자가 그 정도로 고수였단 말이오?”
“그렇다니까? 그 위세가 어찌나 사납고 무서운지 전부터 사천맹 무인들은 광룡(狂龍)으로 불렀다고 하더이다. 순식간에 전세를 뒤집은 소공자는 창잡이의 창을 빼앗아 협곡을 향해 던졌다고 하오.”
“그래서 어떻게 됐소?”
“놀라지 마시오. 무려 일 수에 적의 절반이 마른 짚단처럼 쓰러졌다고 하더군. 순식간에 전세가 뒤집히니 놈들도 별수 있나? 대가리들은 꽁지 빠지게 도망치기 시작했다오.”
“허어!”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협곡에 갇힌 무인들은 옥검화(玉劍花) 진설란…….”
과장 섞인 설명에 단려화가 웃음을 참으며 전음을 보냈다.
[당신, 이 추세라면 내일쯤 고금제일인이 되겠는데요?]진무립이 헛웃음을 흘리는 순간 사내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광룡의 호위인 광녀(狂女) 유화 소저를 뚫지 못하고 빠르게 쓰러져갔지.”
“…….”
단려화의 표정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잠시 후, 말이 없던 그녀가 천천히 일어나자 진무립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딜…… 가려고?”
싱긋 웃는 그녀의 눈에 짙은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
“동소협을 좀 만나야겠어요.”
말이 끝난 순간, 그녀의 신형이 허깨비처럼 사라졌다.
* * *
적모개에게 끌려온 동초개는 그와 함께 서고 정리에 여념이 없었다.
두꺼운 종이를 내려둔 동초개는 갑작스러운 오한에 두 팔로 몸을 감쌌다.
“왜 이렇게 으스스하지.”
“꾀병 부릴 생각 마라.”
“꾀병이 아니고요. 안 추워요?”
“그럼 서고가 춥지 덥겠…….”
그 순간 말을 하던 적모개의 고개가 휙 돌아갔고.
쾅!
이어서 엄청난 폭음과 함께 서고가 무너질 듯 진동했다.
동초개의 동공이 거칠게 흔들렸다.
“지, 지진인가?”
“아니다!”
문을 박찬 적모개의 신형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터져 나간 정문 안쪽엔 마도림의 무인들이 쏟아져 나온 상태.
“소저! 진정하시오!”
그들의 시선을 쫓은 적모개는 상대를 확인하곤 흠칫 놀랐다.
“유, 유소저가 대체 왜?”
단려화가 물었다.
“동소협은 어디 있나요?”
뒤늦게 달려 나온 동초개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저 여깄는데요!”
“동소협.”
면사를 걷어 올린 단려화의 입가에 싱그러운 미소가 번졌다.
“광녀가 면담을 신청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