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99)
◈ 99화. 작별 선물
초평천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내가…… 돌아와야 한다? 설마 은거를 깨고 일선에 나서라는 게야?”
“그렇습니다.”
초평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으며 이마의 주름도 짙어졌다.
림주 자리를 물려준 뒤로 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도움을 구하지 않았다.
대검문과의 싸움에서도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자신이다.
뭔가 큰일이 생기지 않고서야 이런 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초평천은 낚싯대를 내려두고 일어났다.
“자세히 말해보아라.”
초무강은 사천맹에서 벌어지는 일과 진무립이 전서로 보내온 내용을 이야기해주었다.
“비각주의 부정이 드러나며 사천맹의 평판이 날로 떨어지는 중이랍니다. 무립은 중소방파의 마음을 얻은 지금 본 림을 중심으로 새로운 연맹을 창설할 생각입니다.”
초평천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게 정말이냐?”
“예. 비각주는 옥사에 갇혔고 집법원은 부정을 조사 중이라고 합니다. 맹주가 직접 나섰기에 성과는 없을 테지만 그것마저도 욕을 먹는 실정입니다.”
게다가 비각주 당문경이 맹주 한천월의 수족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당문경이 진무립의 공을 깎아내리려 한 배후에 맹주가 있다는 소문이 암암리에 퍼지고 있었다.
초무강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아버지. 본 림이 사천의 중심으로 복귀할 때가 왔습니다. 새로이 창설하게 될 연맹의 맹주가 되어주십시오. 이것은 무립의 뜻일 뿐만 아니라 소자의 뜻이기도 합니다.”
초평천이 비록 무림에선 전대 고수에 속하는 연배라곤 하나 복귀를 문제 삼는 자는 없을 것이다.
집법원주 묵차광처럼 그보다 나이 많은 고수도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데 초평천이 돌아오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한때 사천제일인으로 평가받던 초평천이라면 맹주가 되기에 전혀 손색없는 인물이었다.
‘다시 일어설 기회가 왔단 말인가.’
팔황문의 공격으로 과거의 위상을 잃고 추락한 마도림.
언제 올지 모르는 반등의 기회만을 기다리며 버티고 버틴 세월이 곧 삼십 년이다.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절대 과거의 위세를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손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가슴 속 강한 열망이 용암처럼 들끓기 시작한다.
감았던 눈을 다시 뜨는 순간, 은퇴한 고수의 노회한 눈빛은 큰 꿈을 품은 장부의 눈빛으로 탈바꿈했다.
“계획은 어디까지 진행됐다고 하느냐.”
초무강은 반갑게 웃었다.
“다시 연락을 취해오기로 했습니다. 은밀하게, 전서가 도착하면 언제든 움직일 수 있게 준비를 해달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초평천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네 뜻대로 하마. 준비하거라.”
“예.”
* * *
중목회로부터 열흘이 지났다.
금방이라도 뭔가 벌어질 것만 같은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성도 남쪽으로 이틀 거리에 위치한 미산(眉山)에서 사대거파의 회합이 열렸다.
겨울과 봄의 경계.
서늘함과 따스함이 공존하는 산의 중턱에 수십 명의 무인이 모여들었다.
초목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터에 사방을 가린 장막이 드리워지고 네 개의 의자와 둥근 탁자가 놓였다.
가장 먼저 장내에 입장한 이는 냉막한 인상의 중년인이었다.
당가의 가주이자, 사천이 배출한 단 한 명의 천하십대고수.
그는 바로 독왕 당조였다.
이어서 주름이 자글자글한 민머리의 노파, 아미파의 장문인 자소와 청성파의 장문인 고중선이 차례로 입장했다.
간단한 인사가 끝나자 마치 속세를 떠난 신선 같은 풍모의 고중선이 흰 수염을 쓸어내리며 웃었다.
“점창의 꼬맹이는 아직인가?”
자소가 곱게 눈을 흘기며 타박했다.
“말투는 여전하군. 교진인이 장문인에 오른 지도 벌써 이십 년이 지났수. 말 좀 가려 합시다.”
“십 년 만에 만나는 건데 이럴 거야?”
“당신의 사제만 아니었으면 그 지겨운 낯짝을 보는 일도 없었을 건데.”
“그놈 잘못을 왜 나한테 뒤집어씌우려고 그러나?”
“아우가 잘못했으니 응당 형이 혼나야지 않겠수?”
“허허. 부처의 마음으로 너그러이 용서는 못 할망정 혼낼 생각부터 하다니. 불심이 부족하구나.”
“그 입 꿰매버리기 전에 다무는 게 좋을 거유.”
시종일관 입을 닫고 있던 당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장막이 걷히며 반듯한 외모를 가진 중년 도사가 입장했다.
“늦어서 송구합니다.”
점창파의 장문인 교현의 사과에 자소가 자리를 권하며 말했다.
“점창은 멀리 떨어져 있으니 어쩔 수 없지요. 인사는 됐고 어서 앉으십시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당조가 먼저 사천맹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했다.
이야기가 끝나자 고중선이 혀를 찼다.
“그간 우리가 너무 맹의 일에 무심했군.”
자소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겉보기엔 잘 굴러가는 듯 보였으니 신경을 덜 쓸 수밖에요. 그간 쌓인 고름이 제법 많았던 모양이우.”
“우리들이 수시로 관여하면 맹주의 면이 서지 않기에 방관했던 탓도 있겠지.”
“당신 사제가 오지 말랬잖수.”
“지금이 우리끼리 싸울 때야?”
당조는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이번 사건으로 맹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대책을 논의하고자 뵙기를 청한 것입니다.”
이어서 점창의 장문인 교현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혈교의 침공을 앞둔 지금, 우선은 마도림과 중소방파의 다친 마음을 보듬어야 할 것 같습니다.”
교현의 말을 시작으로 그들은 문제 해결을 위한 의견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 * *
중목원의 최상층.
소식을 접한 한천월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대거파의 수장들이 회합을 가졌단 말인가?”
자신이 맹주가 된 후로 단 한 번도 맹의 일에 관여하지 않던 수장들이다.
그들이 모였다는 소식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업무를 파악하느라 소식이 조금 늦었습니다. 조금 전 그분들의 이름으로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눈앞에서 예를 갖추는 사내는 당문경의 추천으로 비각주가 된 정운창이었다.
“이리 주게.”
“예.”
서신을 받아든 한천월은 가늘게 뜬 눈에 검은 글자를 담았다.
수장들이 요구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서장행의 모든 공로를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발표할 것이며 합당한 보상을 해줄 것.
둘째. 진무립을 음해하려 한 당문경과 당중호를 엄벌에 처할 것. 설령 죄과에 따라 처형할지라도 당가에선 문제 삼지 않겠음.
셋째. 집법원이 개입한 증거를 찾는다면 원주를 해임할 것.
파지직.
움켜쥔 손안의 종이가 형편없이 구겨졌다.
‘사천맹은 내 것이다. 네놈들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란 말이다.’
주먹을 부르르 떤 한천월은 심호흡으로 분노를 삭였다.
고개 숙인 정운창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맹주님.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해보게.”
“수장들이 제시한 조건은 어차피 맹주님께서 생각하던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첫 번째 조건은 이미 생각했던 것이며 두 번째와 세 번째 조건 역시 맹주님의 뜻대로 해도 상관없는 것들입니다.”
한천월의 머리가 비상하게 회전했다.
‘그래. 문경의 처벌도, 집법원의 조사도 어차피 결정을 내리는 것은 내 일이다.’
지금은 마도림과 중소방파의 분노를 달래는 것이 우선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한천월은 쓴웃음을 지었다.
“네 말이 옳다. 처벌에 대해 생각해본 것은 있느냐?”
정운창은 미리 생각해둔 것을 말했다.
“당대협과 당중호는 뇌옥 오십 년 형의 엄벌을 내리십시오.”
놀란 한천월의 눈이 살짝 커졌다.
“오십 년이나? 너무 과하지 않으냐?”
“어차피 몇 달 안에 혈교의 침공이 있을 것입니다. 당대협의 능력은 모두가 인정하는바, 상황이 급하게 돌아갈 때 옥에서 꺼낸다면 불만은 크지 않을 겁니다.”
“이번 사태처럼 생각보다 불만이 커진다면 어쩌겠느냐?”
“전시 상황에서 불만을 꺼내는 자가 있다면 적의 손을 빌려 죽이거나 하극상의 죄로 즉결처형하여 기강을 잡으십시오.”
생각 이상으로 독한 발언에 한천월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문경이 자네를 후임으로 추천한 이유를 알겠구나. 참으로 좋은 생각이다.”
당문경을 잃고 수족이 떨어져 나간 기분이었는데 이 정도면 기대 이상이다.
“집법원의 부정을 솔직히 인정하신 뒤 원주 자리는 잠시 공석으로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것 역시 전쟁이 벌어지면 내 뜻대로 다시 채워 넣으면 된다는 말이겠지?”
“그렇습니다.”
한천월은 한결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좋다. 그럼 마도림과 중소방파의 마음을 달랠 방책도 생각해둔 것이 있느냐?”
“수장들의 요구대로 진무립과 공을 세운 모든 무인에게 적합한 상을 내리십시오. 그리고 결과를 맹주님의 이름으로 맹과 성도에 공표하여 그들을 치하하십시오.”
“부족하다.”
한천월은 고개를 저었다.
“진무립에게는 운룡각의 부각주 자리와 자호영단(滋護靈團)을 하사한다. 크고 작은 공이 있는 이들에게도 성과에 따라 영단과 수당을 지급할 것이며 중소방파의 당주들은 전원 각주로 승격시키자꾸나.”
자호영단은 내력의 상승은 미미하나 심맥을 보호하는데 탁월한 효능을 보이는 영단으로 억만금을 줘도 구하기 힘든 천고의 영약이었다.
정운창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무 과하지 않겠습니까?”
“우선은 저들의 마음을 붙잡아둬야 한다. 그래야 혈교와의 전쟁에서 써먹을 수 있지 않겠느냐?”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안다.
정운창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즉시 시행하겠습니다.”
* * *
나른한 오후의 햇살이 내려앉은 운룡각.
싸늘함이 가득한 연무장은 언제나 들려오던 기합성마저 뚝 끊겨버렸다.
정해진 일과대로 수련에 임하는 무인들이었으나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열의가 생길 리 없다.
국철영과 약속 비무를 하던 조영성은 훌쩍 물러나며 검신을 내렸다.
“좀 쉬자.”
“그러지.”
두 사람은 담장 밑으로 걸어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러자 다른 무인들도 하나둘 자리를 찾아 휴식을 취했다.
비어버린 연무장을 응시하던 국철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주들은 며칠째 보이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조영성의 짜증 섞인 말투에 국철영은 인상을 찌푸렸다.
“모르면 그만이지 왜 짜증이야.”
“나도 답답해서 그런다.”
사대거파 출신이라는 게 이토록 죄스럽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설마 너희 대주가 맹을 떠나지는 않겠지?”
“그런 일을 당했는데 떠나도 원망할 순 없지.”
“하긴. 나 같아도 정이 떨어졌을 거다.”
그때 입구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밖의 동태를 살피러 갔던 당우가 나타났다.
“맹주님의 이름으로 벽보가 붙었습니다!”
중목원의 담장 앞은 모여든 무인으로 득시글했다.
얼마 전의 중목회 이후로 이토록 떠들썩한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누가 자꾸 미는 거야?”
“좀 지나갑시다!”
한달음에 달려간 후기지수들은 인파를 비집고 앞으로 걸어갔다.
담장 한쪽을 전부 가릴 만큼 커다란 벽보에는 한천월의 이름으로 상벌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광무대주를 음해해 내분을 조장한 전 비각주 당문경과 당중호를 뇌옥 오십 년 형에 처한다.
권력을 사사로이 남용한 집법원주 묵차광은 현 시간부로 해임한다.
차기 집법원주는 시일을 갖고 공정하게 선임할 것이며 그 과정에 사대거파만이 아닌 모든 방파 대표들이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에 이어 서장행의 논공행상까지 확인한 무인들은 생각 이상으로 파격적인 보상에 눈을 의심했다.
“이게 정말인가?”
* * *
우가산의 집무실.
동료들과 함께 차를 마시던 진무립은 소식을 접하고 실소를 머금었다.
“속내가 빤히 보이는군. 바보들은 속기 쉽겠어.”
육군명이 말했다.
“화살받이를 여기서 잃을 수는 없잖아? 전쟁만 무사히 넘긴다면 판을 다시 짤 수 있을 테니까.”
유대하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전쟁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대답은 단려화의 입에서 나왔다.
“상을 내리고 당주들을 각주로 올려준다 해도 권력 구도가 바뀌는 건 아니에요. 전쟁에서 말 안 듣는 이들을 모두 사지로 몰아넣고 이긴다면 맹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거죠.”
가만히 듣고 있던 진무립이 입을 열었다.
“어쨌든 상을 준다면 감사히 받아야지.”
우가산이 물었다.
“그대로 부각주 자릴 받아들이겠단 말이오?”
“영단도 같이 준다잖아.”
진무립은 씩 웃으며 말했다.
“떠날 준비는 마쳤고…… 작별 선물로 생각하면 좋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