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98)
◈ 98화. 꼬리는 내가 잘라드렸소
당황한 사대거파 중역들의 시선이 일제히 당문경에게 쏟아진다.
“비각주?”
쓰디쓴 미소가 당문경의 입가에 번진다.
검을 내린 진무립이 내력을 회수하며 말했다.
“천을 벗겨라.”
그 말에 후기지수들은 일제히 머리에 씌운 천을 벗겼다.
은밀한 임무를 수행하는 암영대.
그들의 얼굴을 제대로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중 단 한 명, 대주 궁야궐의 얼굴만큼은 제법 알려져 있었다.
“아, 암영대주라니…….”
그를 알아본 사대거파 무인들의 얼굴에 절망이 떠오른다.
궁야궐은 비각주 당문경의 심복.
그런 자가 상관의 명령 없이 독단적으로 임무를 나설 리 없다는 건 이 자리의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소천당주 장환이 참담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것이 광무대주가 사천 무림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운 대가요? 참으로 통탄할 일이외다!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대체 어느 누가 맹을 믿고 따르려 하겠소?”
통렬한 비난이 비수처럼 날아와 꽂힌다.
진무립이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당신이 할 말을 대신 해드리지.”
이어서 그의 차가운 시선이 당문경에게 닿는다.
“모든 것은 부하의 맹목적인 충성에서 비롯된 독단적인 행동이었다. 나는 관계가 없는 일이다. 이대로만 말하면 위기는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물론 믿는 사람은 없겠지만.”
변명의 여지를 차단하고 자존심을 자극하는 일침이 비수처럼 파고든다.
강유월이 차분히 입을 열었다.
“비각주. 그간 맹의 발전을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애쓴 자네의 노력은 인정하네. 하지만 더 이상 추해지지는 말게.”
자존심이 구겨지더라도 꼬리를 자른다면 위기는 모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천하가 비웃을 일이다.
중소방파의 불만은 극에 달할 것이고 사천맹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결코 궁야궐의 선에서 꼬리를 잘라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과잉 충성으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
당문경은 달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광무대주. 자네가 이겼네.”
나직한 목소리에 사대거파 무인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진무립의 행보에 의혹을 제기하고 그의 명성을 추락시키려던 계획은 도리어 피할 수 없는 비수로 되돌아왔다.
증언까지 했던 당중호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아!’
당문경이 모든 것을 인정한 이상 자신의 증언도 무용지물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절망한 당중호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천천히 돌아선 당문경은 맹주 한천월을 바라보며 말했다.
“맹주님. 그릇된 마음으로 광무대주를 음해하고자 하였습니다. 벌을 내려주십시오.”
한천월의 미간에 짙은 주름이 패였다.
“자네…….”
팔 하나가 뚝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두 사람의 복잡한 눈빛이 허공에서 교차한다.
‘모든 짐은 제가 지고 가겠습니다.’
그의 눈빛을 읽은 한천월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현 시간부로 비각주의 직위를 박탈하고 뇌옥에 구금하겠소. 집법원은 어떤 의혹도 남기지 말고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도록 하시오.”
집법원주 묵차광이 굳은 얼굴로 일어났다.
“그러지요.”
묵차광을 수행하던 두 명의 집행단원이 앞으로 나서자 진무립이 입을 열었다.
“잠깐. 멈추시오.”
한천월은 살심을 억누르며 물었다.
“또 무엇인가?”
“이 사건의 피해자는 누구도 아닌 나요. 뭐 어차피 모든 것은 죄인 당문경이 뒤집어쓰게 되겠지만 하고 싶은 말은 해야겠소.”
진무립은 좌에서 우로, 장내의 무인들을 차례로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 아침, 비각에서 나온 무인이 집법원의 후문으로 쥐새끼처럼 들어가더군. 며칠 전엔 저 흉악한 죄인 놈이 집법원주와 만났고 말이야. 과연 이 사건에서 집법원이 무관하다 할 수 있겠소? 누구에게 죄인을 맡긴단 말이오?”
집법원주 묵차광이 분통을 터트렸다.
“헛소리!”
그에 단려화가 앞으로 나섰다.
“오늘 아침 진시 경, 비각주가 집법원에 들어가는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모함이다!”
진무립은 당문경에게 물었다.
“오늘 집법원에 다녀온 적이 없소?”
“…….”
당문경은 입을 열 수 없었다.
“머리가 복잡한 모양이군. 좋소. 모함이라 생각한다면 지금 즉시 집법원의 무인을 비롯한 시종 전원을 내게 조사하게 해주시오. 물론 당신은 이 자리에 그대로 있어야겠지.”
묵차광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진무립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왜? 뭔가 걸리시나?”
“네놈을 어떻게 믿고 일을 맡긴단 말이냐?”
“그럼 나는 당신을 어떻게 믿고 저놈을 맡기겠소?”
하종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사숙. 광무대주를 믿지 못하신다면 소질이 책임지고 조사할 수도 있습니다.”
묵차광의 눈이 튀어나올 듯 부릅떠졌다.
‘네, 네놈이 감히!’
하종보는 자신의 사질이다.
지독한 배신감에 손발이 떨려온다.
진무립은 맹주 한천월을 쳐다봤다.
“하노사께서 나서주신답니다. 기왕 터진 거 의혹이 남지 않게 제대로 털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
비각에 이어 집법원까지 잃는다면 자신의 두 팔이 잘려나가는 것과 같다.
한천월은 치미는 분노를 가까스로 억눌렀다.
“자네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
“무인이 공을 세웠으면 합당한 공을 인정해주어야 하고 억울한 일이 있으면 의혹이 남지 않게 해결해주어야 합니다. 과연 지금까지의 사천맹이 모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해왔다 할 수 있겠습니까?”
그간 쌓여온 중소방파의 불만을 대변하는 한마디다.
자신들은 감히 할 수 없었던 말.
장환을 비롯한 중소방파 무인들은 진무립의 통렬한 일침에 가슴이 뻥 뚫리는 것만 같았다.
일부는 격한 감정을 참지 못하고 눈물까지 흘렸다.
진무립은 이어서 말했다.
“이 자리에서 비각주와 그에 공조한 암영대주, 당중호의 목을 치십시오. 그리고 집법원과 비각의 관계를 하노사께 조사토록 해주십시오. 제 요구를 수용해주신다면 오늘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요구를 들어주면 당신은 끌어들이지 않겠다는 말이다.
비각주가 얽힌 사건에 맹주 한천월이 무관하다는 것은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
그럼에도 한천월을 얽지 않는 것은 궁지에 몰린 상대는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진무립의 말이 끝나자 사대거파의 중역들은 거칠게 반발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제대로 된 조사도 끝나기 전에 목을 치다니?”
“비각주가 집법원에 출입했다는 증거는 네놈의 호위가 한 말뿐이다! 그 말을 어찌 믿으란 말이냐?”
“비각주는 당중호의 말만 듣고 나를 쳐내려 하지 않았소? 저놈은 되는데 왜 나는 안 되오? 이게 바로 사천맹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증거요!”
버럭 소리친 진무립은 눈을 부릅뜨고 한천월을 쳐다봤다.
“요구를 수용해주십시오!”
진무립의 강력한 요구에 한천월은 어금니를 질끈 깨물었다.
‘네놈이 감히…….’
분노가 치밀었지만 이 자리에서 당문경을 죽이고 집법원까지 잃을 수는 없었다.
당문경의 전음이 그의 귓속을 파고든다.
[맹주님. 그의 요구를 수용하십시오. 그래야 맹이 삽니다.] [그건 안 될 말일세.] [여기서 요구를 거부하면 중소방파의 불만은 극에 달할 것입니다.] [스스로 내 손과 발을 잘라내란 말인가? 집법원 마저 잃는다면 복수의 기회조차 잃고 말아!]필사적으로 지켜온 권력을 이토록 허무하게 잃을 수는 없다.
권력에 대한 한천월의 탐욕은 생각 이상으로 강했다.
사천맹의 암울한 미래가 뇌리에 그려진다.
‘끝인가.’
체념한 당문경은 더 이상 전음을 보내지 않았다.
진무립을 쳐다본 한천월은 애써 차분하게 말했다.
“그건 불가하네. 다만 내 이름을 걸고 의혹이 없도록 모든 것을 명명백백 밝히도록 하겠네. 더불어 서장에서 이룬 자네의 공도 보고서의 내용을 토대로 공표하고 그에 합당한 보상을 약속하겠네.”
“작은 것을 지키려다 큰 것을 잃게 되겠군.”
진무립은 쓴웃음을 지으며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쉬이익- 서걱!
빗살처럼 뽑혀 나온 진무립의 검이 단숨에 궁야궐의 목을 갈라버렸다.
시뻘건 피가 치솟으며 진무립의 전신을 붉게 물들여갔다.
슬며시 고개 돌린 진무립이 말했다.
“꼬리는 내가 잘라드렸소.”
나직한 읊조림과 피에 젖은 미소가 그들의 가슴을 비수처럼 파고든다.
진무립의 걸음에 따라 우가산을 비롯한 중소방파의 무인들은 일제히 대전을 나섰다.
마지막으로 나서던 장환이 모두를 향해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사천맹의 공정함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강유월과 하종보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사형. 사천맹의 민낯이 오늘 제대로 드러났구려.”
하종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모든 것은 업보로 다가올 것이외다.”
두 사람 역시 진무립의 뒤를 따라 대전을 나섰다.
대전의 문이 닫히자 천선각주 장유기가 버럭 소리쳤다.
“저 오만불손한 광무대주를 당장 손봐야 할 것입니다. 제게 맡겨주시면 당장 끌고 오겠습니다.”
한천월은 피곤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쉬고 싶군. 비각주와 저 아이를 뇌옥에 가두어라. 나머지는 내일 다시 논의할 것이다.”
맥이 풀린 당중호는 절망한 얼굴로 주저앉고 말았다.
단상에서 내려온 한천월이 당문경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송구합니다. 맹주님.]한천월은 작게 고개를 흔들며 지나갔다.
한바탕 거센 폭풍이 몰아친 중목회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 * *
중목회의 결과는 순식간에 사천맹 전체로 퍼져 나갔다.
굳이 소문을 내고자 애쓸 필요도 없었다.
참석한 인원의 숫자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소식을 들은 사대거파의 무인들은 당문경의 행동에 참담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고 중소방파의 무인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운룡각으로 돌아온 진무립과 우가산이 그의 집무실에 마주 앉았다.
“사천맹을 떠날 때가 왔다. 총단에 서신을 보내야겠어.”
우가산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 그게 무슨 소리요? 이대로 떠나겠다니?”
“맹주가 내 제안을 거절한 순간 답은 정해진 것과 같다. 지금이 우리에겐 기회다.”
진무립이 눈을 반짝이자 우가산이 다그치듯 물었다.
“기회라니? 자세히 좀 말해보시오.”
“대전에서 중소방파 무인들을 보지 못했나?”
“보았소이다.”
진무립의 일침에 막힌 혈이 뚫린 듯한 그들의 표정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오늘 일이 알려지면 사천맹의 권위는 땅에 떨어진다. 침몰하는 배와 같단 말이야. 당초의 목적대로 중소방파의 마음을 얻은 지금, 우리는 마도림을 중심으로 새로운 배를 만들어야 한다.”
우가산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렸다.
“그 말씀은…….”
진무립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천맹을 대신해 사천 무림의 기둥이 될 새로운 연맹을 창설한다.”
* * *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사천맹은 며칠간 쥐죽은 듯 조용했다.
모두에게 존경받던 비각주 당문경의 부정.
그것은 사대거파의 무인들에게 작지 않은 충격을 선사했다.
조용한 맹 내부와 달리 소문은 성도를 비롯한 사천 전역으로 번지고 있었다.
진무립을 음해하려다 역으로 당한 당문경의 사연은 비각의 전횡에 억눌려온 중소방파에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쾌감을 선사했다.
그와 더불어 또 하나의 소문이 은밀하게 퍼져 나갔다.
맹주 한천월이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고자 비각주를 잘라냈다는 이야기였다.
사대거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그들이 급하게 회동 일자를 잡을 무렵, 중경 마도림에 진무립의 전서가 도착했다.
메마른 죽림에 모처럼 훈풍이 불어왔다.
전서를 손에 쥔 초무강은 바쁜 걸음으로 태경원에 도착했다.
“아버지.”
작은 연못에 낚싯대를 드리운 초평천이 슬며시 돌아봤다.
붉게 상기된 아들의 표정이 왠지 심상치 않다.
“무슨 일이냐?”
초무강은 차분히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께서 돌아와 주셔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