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12)
12화 청림의 증표 (3)
사람이 죽는 것을 처음 본 것은 놀랍게도 전생이었다.
그날 밤 9시 뉴스에도 나왔지만, 웬 미친놈이 버스정류장에서 칼을 들고 날뛰었다. 제 가방에서 식칼을 꺼내 옆 사람을 찔렀다. 그리고 비명이 울리기도 전에 서 있는 사람의 등을 또 찔렀다.
이강, 그러니까 전생의 그라면 원래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옆에는 그의 어머니가 있었고, 그렇기에 제때 도망치지 못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칼을 휘두르려던 괴한에게 덤벼들었다. 그 탓에 어깨에 칼을 한 번 찔린 뒤, 그 미친놈을 도로로 밀쳤다.
육중한 버스 바퀴가 놈의 목을 밟았다. 사람의 목이 그렇게 비틀릴 수 있음을 처음 알았다.
몇 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당연히 그가 진 책임은 없었다. 다만, 며칠 정도 밥을 제대로 못 먹었다.
사람을 죽였다는 생각에.
그리고 환생 후, 불사신검이 빙의했을 때가 두 번째였다.
그때 이강은 분명 제 손으로 사람을 썰었다. 피가 잔뜩 튀고 팔다리가 날아다녔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일이었지만, 이전처럼 트라우마가 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밥도 잘만 먹었다.
전생의 경험 덕에 내성이 생긴 것일까.
아니, 그것만이 아니었다.
전생에서는 평범한 청년이었지만, 지금은 백씨세가의 적손 백이강이기 때문이다.
이곳이 안락한 현대사회가 아니라 무림이기 때문이다.
태음절맥을 타고난 이강의 피는 전생과 달리 강인했다.
“끄아아아아악!”
「먼저 죽이려 들었으면 죽을 각오를 해야지.」
이강은 불사신검의 말에 공감했다.
그가 손에 쥔 운철검에 힘을 더했다. 백하준과 달리 이강의 검은 깔끔하지 못했다.
우득!
하오문도는 결국 무릎을 털썩 꿇더니 그대로 절명했다.
아이들을 죽이라 명령했을 때 떠올랐던 잔혹한 미소는 자취를 감췄다.
“이런 미친! 으아아아!”
동료가 어이없게 이강에게 당하자 분노한 것일까. 옆에 있던 마른 사내가 덤벼들었다.
이강이 미처 검을 회수하기도 전이었다.
「삼단세를 펼치거라.」
이강은 과감하게 검을 놓고 맨손으로 대응했다.
불사신검의 조언에 따라 태음경의 삼단세를 펼친다. 실전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연습한 태음경은 물 흐르듯 펼쳐졌다.
왼발을 앞쪽으로 디디고, 어깨를 아래로 비튼다.
하오문도가 쥐고 있던 단도가 이강의 목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치익-!
「여전히 느리다, 경신의 묘리를 잊었구나.」
목에 붉은 혈선이 생겼다. 하지만 이강의 몸은 둔해지지 않았다.
오른손 손가락을 한 마리 매처럼 모아서, 그 손으로 사내의 눈을 찔렀다.
“아악!”
짧은 비명과 함께, 사내는 눈두덩이를 감싸 쥐며 단도를 휘둘렀다. 막무가내로 휘젓는 칼에 맞으면 그만큼 우스운 일도 없으리라.
그 사이 이강은 몸을 뒤로 빼서 검 손잡이를 잡았다. 시체의 쇄골은 여전히 운철검을 꽉 깨물고 있었다.
「힘이 부족하면 회전력을 담아서─」
조언대로, 이강은 몸을 회전시키며 검을 뽑았다.
「─그 기세로 베어라.」
사내는 단도로 제 머리를 감싸 쥐었지만, 이강의 운철검은 무참하게 휘둘러졌다.
팍!
팔뚝에 운철검이 박히며 단도가 땅을 굴렀다.
“끄어억!”
큰 부상이지만 목숨을 끊지는 못했다. 그가 발버둥을 치며 도망치려는 순간, 하준이 개입했다.
백하준은 달려들어서 놈의 관자놀이를 무릎으로 찍었다.
쩍 소리와 함께 사내가 쓰러졌다.
코에서 피를 주르륵 흘리는 것을 보니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었다.
“형.”
백하준은 평온한 자세로 서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처음 팔이 날아간 한 명은 죽어 있었다. 남은 두 명은 바닥에서 빌빌거리고 있었다. 그 사이 무려 셋을 처리한 것이다.
“끄으억, 죄송, 제, 제발 살려…….”
“흐으으윽.”
백하준은 자비를 구하는 그들의 뒤통수를 검집으로 두들겼다.
뻐벅!
혼혈을 맞았는지 그들은 곧장 의식을 잃었다.
“괜찮아?”
“괜찮다. 별것 없구나.”
그렇게 말하면서 이강도 긴장이 쫙 풀렸다. 자객들을 떠올리고 싸웠는데, 생각보다 할 만했다.
「자손은 내공이 없다 해도 백씨다. 이깟 모리배놈들을 잡았다고 자만하지 말거라.」
불사신검은 가차 없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였다. 얼굴에 피가 잔뜩 묻은 데다가, 체력이 바닥나서 숨이 가빠왔다. 그에 반면 백하준은 아주 깔끔해 보였으니 그와의 실력 차가 느껴졌다.
이강이 피 묻은 얼굴을 훔쳤다.
“후우.”
“안 괜찮아 보이는데, 부축해 줄까.”
이강은 하준에게 손사래를 쳤다. 그러더니, 문득 생각나는 듯 물었다.
“실전이 처음이 아니구나.”
“아…… 으응, 세 번째.”
쓰러진 하오문도의 옷자락에 칼에 묻은 피를 닦는 백하준. 역시 실전에 충격을 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 이강 또한 그랬기에 묘한 마음이다.
“갑자기 덤벼들다니. 깜짝 놀랐어.”
이강도 백하준의 의견에 동의했다. 저들이 먼저 칼을 뽑았으니 칼을 쓴 것에 후회는 없다.
다만 저들이 곧바로 죽이려 든 이유와, 항복하고 의식을 잃은 자들을 어떻게 할지가 신경 쓰였다.
「다 죽이는 것이 깔끔하다.」
불사신검의 제안은 간단했다. 이강의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방식이다.
하지만 이강은 검을 뽑지 않았다.
“이놈들이 누구를 잡아 왔는지, 한번 가 보자.”
“아!”
하오문도들은 이 지하로 누군가를 끌고 왔었다. 이강은 우선 그것을 확인하고자 했다.
밖으로 나오니, 누군가가 의자에 칭칭 묶여 있었다. 잔뜩 두들겨 맞았는지 온몸이 멍투성이에다가 눈이 가려져 있다.
“오, 오오 대협……! 감사합니다!”
그는 갑작스럽게 이강에게 감사를 올렸다.
“문의 배신자를 모두 처단해 주시다니! 이 은혜, 각골난망입니다!”
눈이 가려진 남자는 애절하게도 말했다.
「넉살도 좋은 놈이로다.」
이강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앞이 보이지도 않으면서 상황을 파악하고 자비를 구하는 것이다.
“하오문 서안지부의 반역자들을 처단해 주셨으니, 저희 지부가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대협께 꼭 사례하겠습니다.”
이강의 눈이 반짝였다. 옆에서 무언가를 물어보려는 백하준에게 조용히 있으라고 신호했다.
“이름.”
“아, 아아!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자님! 소인은 정구라고 하는 놈입니다.”
“살려 준다고 하지는 않았다.”
이강의 목소리가 앳되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호칭을 대협에서 공자님으로 바꾼다. 대처가 빠른 놈이다.
이강은 탁상 위에 놓여 있는 서류를 들었다. 어쩐지 익숙한 이름이다 했다.
-신통 정구. 주루방주의 심복.
필살(必殺)
죽은 서안지부장의 딸. 그녀를 따르는 심복으로 반드시 죽여야 할 자라고 쓰여 있었다.
“내가 벤 자들이 하오문의 반역도들이라고.”
“전대 지부장께서 돌아가시자마자 반기를 든 놈들입니다. 저는 정당한 차기 지부장님의 심복이니. 공자께서는 저희의 은인이나 다름없습니다.”
사내는 묻지도 않은 정보를 연신 쏟아 냈다.
이강은 금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규율이 약한 하오문에서는 종종 이런 내부분열이 일어나곤 하는데, 이강과 하준이 어쩌다 보니 그중 한 쪽을 쓸어버린 것이다.
“네가 복종하는 그놈은 아직 지부장도 되지 못한 것 아니냐. 그런 주제에 사례를 운운하나.”
“소협께서 무찌른 그 악적들이 바로 반란을 꾸미던 놈들입니다.”
“흠, 그래서 그 차기 지부장이란 놈은 누구냐.”
뻔히 서류를 보고 있으면서도 이강은 짐짓 물어보았다. 하오문 간부들의 신상은 본디 기밀이다.
“그건…….”
“내가 알아야 그 사례를 받겠지.”
“……제가 그분께 보고드리기 전에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허나 분명 공자님의 은혜를 잊지는 않을 겁니다.”
사내는 목소리를 떨면서도 대답을 거절했다.
이강은 흠, 하더니.
“그래, 그러면 죽어라.”
운철검을 뽑았다.
검이 스르릉 뽑히자 그는 움찔댔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후후, 절개가 있는 놈이니 고통 없이 보내거라.」
불사신검의 말을 추임새 삼아, 이강이 검을 휘둘렀다.
사내는 자신이 죽게 될 것을 깨달았으리라.
“큭!”
검날이 정구의 목을 살짝 베고 멈췄다. 피가 주르륵 흐른다.
그때까지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지조는 있는 놈이구나.”
“가, 감사합니다!”
사실 목 앞에서 멈추려 했지만, 손아귀 힘이 부족해서 자칫 죽일 뻔했다.
그러나 그것을 말하면 쪽팔릴 일. 이강은 내색지 않았다.
“해 줄 수 있는 일을 말하라.”
“우선, 지저분해진 이곳을 깨끗하게 처리하겠습니다. 혹여 소협께 누가 될 일은 없을 겁니다.”
“몇 명이 아직 살아 있다.”
“당연히 저희가 깔끔히 치워야겠지요.”
제법 혹하는 이야기다. 하오문도 몇을 죽인 일로 찝찝했는데, 오히려 하오문에게 은혜를 입히게 되었다.
“그리고.”
“제 제안을 들어주신 것을 보면. 저희가 도움이 될 일이 있으실 듯한데……. 저희 서안지부의 정보 수집 능력은 전 중원에서도 손에 꼽힙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이었다. 이강에게는 정보와 부릴 사람이 필요했다. 가문 내에서는 내버린 자식 취급 아니던가.
“기회를 주신다면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절맥증을 고칠 방법, 현 강호의 정세,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강에게 자객을 보낸 흉수까지. 필요한 정보는 차고 넘친다.
그는 손가락만 빨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눈치가 좋은 놈이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호에는 하오문처럼 정보를 다루는 조직들이 몇몇 있다.
「자손에게 필요한 놈들인 것은 맞지. 개방은 너무 크고, 다른 곳들은 과하게 음험하다. 하오문 정도라면 연을 잇기에 나쁘지 않을 테지.」
‘그렇지요.’
「뜻대로 하거라.」
불사신검은 이강에게 결정을 맡겼다. 이강 역시 마음을 정했다.
우선 상대의 능력을 시험해 보기로.
“내가 누군지 알겠나?”
“……확신은 없습니다만.”
눈이 가려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혀 모르겠다고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하지. 추론해 보아라. 해답이 그럴듯하면 살려 주고 일을 맡기겠다.”
“명하신다면……. 우선 목소리를 들어 보면 10대 초반쯤 되실 듯하고, 말에 기품이 있으니 분명 명가의 자제.”
두려워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추론을 이어 간다.
“피 냄새를 보아 그 무뢰배 다섯을 참하실 만큼 무공을 배우셨으니 무가의……. 호위로 계신 분도 발소리가 일정한 것이 고수 같으십니다.”
약간 틀렸지만 대강은 맞다. 정구의 추론은 점차 정답에 접근해갔다.
“이 근방에서 명가는 한정되어 있고. 소협 나이대의 소년 고수가 있는 곳이라면 백씨세가의…… 설마!”
운이 따랐겠지만 놀라운 정확도였다.
불사신검이 옆에서 박수 칠 준비를 했다.
“그 게으른 형과 달리 천하의 기재라던, 백하준 소협 아니십니까!”
「으허허허허! 고놈 물건이다!」
이강은 무심코 주먹을 들 뻔했다.
그러나 간신히 참아 낸 이강과 달리, 잠자코 있던 백하준이 달려와서 정구를 구타했다.
“무례한 놈! 감히!”
“으억! 죄송, 죄송합니다!”
이강은 백하준에게 눈을 부라렸다. 하준은 찔끔해서 고개를 푹 숙였다.
“되었다. 더 말할 필요는 없다.”
“그, 그러면.”
“칠대세가의 자제들과 청림의 고수가 백씨세가를 방문한다더구나. 그자들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 두어라.”
하오문에는 허접한 모리배들만 모여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제법 능력이 뛰어나 보였다.
이강은 품속에서 은자를 전부 집어 정구의 무릎에 올렸다.
“서찰을 보내겠다. 이곳이면 되겠느냐.”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목숨을 건지자 정구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표했다.
백하준에게 손짓하자 그가 검을 휘둘러 정구의 구속을 풀어 주었다. 정구는 감히 안대도 풀지 않고 바짝 엎드렸다.
“철저히 모시겠습니다. 살펴 가십쇼!”
여러모로 좋은 자세다.
「올바른 자세였다.」
‘저놈 말입니까? 나쁘지 않아 보이는군요.’
「아니, 자손 말이다.」
불사신검은 이강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풍진강호에서 홀로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이다. 주변에 사람을 두어라. 첫째가 유용함이고 둘째가 신뢰다. 저놈은 적어도 유용해 보이니 곁에 두어서 나쁘지 않으리라.」
아까는 이강에게 선택하라더니, 속으로는 답을 정해 둔 듯했다.
“세가로 돌아가자.”
“응, 형.”
어쨌든 목표한 바를 이뤘다. 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청림의 증표를 얻었고, 하오문과 줄을 이었으니, 이강은 만족했다.
“근데 돌아가면 엄청 혼나겠지?”
백하준이 우물쭈물 물었다. 조금 전에 하오문도들을 베었던 매서운 기세는 보이지 않았다.
“무섭냐?”
“무서운 건 아니고.”
이강과 달리 그리 혼난 경험이 없는 백하준은 가주의 꾸짖음이 두려운 듯했다.
“걱정 마라. 어차피 내 책임이다.”
“그런…….”
“그리 많이 혼내시지도 않을 거야.”
이강이 말썽을 피우고 혼난 적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주는 어느샌가부터 직접 이강을 혼내는 대신, 차가운 눈길을 보낼 뿐이었다.
백하준이 걱정스럽게 형을 쳐다봤지만 세가로 돌아가는 이강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리고 이강이 세가로 돌아왔을 때.
가주는 무려 이강의 처소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