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180)
180화 불어오는 서풍 (3)
‘능지평 이하 이인(二人)은 곤륜으로 향하라.
무림맹의 사절 역할로 가는 것이니 품위를 지킬 것이며, 사명을 다하여 전갈을 전하여라.’
그것이 적요일검(寂寥一劍) 능지평이 받은 명령이었다.
그 옛날 백씨세가에 빈객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그는 세가보다 가주 백류산에게 더 충성했다.
백류산이 무림맹의 부맹주가 되었을 때 능지평이 개봉으로 동행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백류산은 사적으로도 능지평에게 부탁했다.
곤륜에 가서 이강을 데리고 와 달라고.
‘이강 공자님, 잘 지내고 계실지…….’
이강을 떠올린 능지평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를 데리고 청림까지 가던 여정. 그리고 백진태로 인해 일어난 끔찍한 일들. 모두 기억이 생생했다.
결론적으로 일은 다 잘 풀렸다.
한때 가문에서 내다 버린 자식처럼 취급받던 이강이었지만, 이젠 불사신룡이라는 거창한 별호까지 생겼다.
능지평은 내심 이강과 하준을 주군의 자식 이상으로 여겼다.
감히 그리 말할 수는 없지만, 조카쯤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백류산의 명령에 능지평은 기쁘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그들은 개봉에서 출발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무림맹에 곤륜까지 다녀올 만한 인재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맹에서 머물던 후기지수 중 두 명이 능지평에게 자원했다.
그중 한 명은……,
“능 대협. 당 소저 좀 말려 주십쇼!”
덩치는 커 가지고 쩔쩔매는 자는 팽구인.
“이 개구리는 독이 없다니까요? 왜 그렇게 겁을 내지?”
개구리를 굽고 있는 화려한 복색의 여인은 당은설이었다. 그녀는 이 험한 여정에서도 화려한 복색을 바꾸지 않았다.
팽구인이 능지평을 애처롭게 바라봤다.
여동생 팽무아에게 쩔쩔매던 버릇 때문인지, 그는 당은설에게 강호 선배로서의 위엄을 보이지 못했다.
“능 대협…….”
“나한테 말해 봤자…….”
물론 능지평의 눈에 팽구인이 애처로워 보이는 일은 없었다.
당은설이 무표정으로 개구리 꼬치를 뒤집었다.
“호들갑이 좀 있으시네요. 개구리가 뭐 어때서.”
개구리를 먹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팽구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사나이가 되어서 개구리쯤이야 못 먹을 게 있을까.
하지만 팽구인을 기겁하게 한 것은 그 개구리의 생김새였다.
“호들갑이라니! 파란 점박이 무늬가 있는 빨간 개구리가 어떻게 독이 없어!”
당은설이 들이미는 것이 척 봐도 독개구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은설은 꿋꿋이 독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팽구인이 거부하자, 그녀는 능지평에게 개구리를 권했다.
“나도 괘, 괜찮네.”
“흐음.”
당은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개구리 다리를 씹었다.
오도독거리는 소리가 유독 살벌했다.
저 개구리에 정말 독이 없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독공의 고수인 당은설을 중독시킬 독물은 흔한 게 아니다.
“우리는 건량이나 먹지.”
능지평은 한숨을 내쉬며 건량을 씹었다.
팽구인과 당은설은 그리 나쁘지 않은 인선이었다.
팽구인은 진작 절정에 오른 촉망받는 도객이었고, 당은설은 독공의 귀재이다.
“다 먹었으면 슬슬 출발하세.”
그들이 있는 곳은 이미 곤륜산맥이었다.
능지평은 거의 꺼져가는 모닥불을 발로 비벼 껐다.
팽구인과 당은설은 군말 없이 얼른 채비를 마쳤다.
그들은 대문파의 직계였지만, 두 사람 다 건방지게 구는 일이 없었다.
휘휙-
능지평이 경공을 발휘해서 뛰어내리자 둘이 뒤따랐다.
그는 후기지수들이 잘 따라오는 것을 보고 속도를 더 높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가 벌어지지 않았다.
무영검각의 탁월한 경공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뒤처지지 않는 이들을 보고 능지평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강 공자님을 만나면 무영검각의 경공도 알려드려야겠군.’
이전, 휘무영(輝無影)이라는 문파의 비전을 전수한 적이 있다.
이강의 몸이 나아졌다면 이번에는 경공도 전수할 수 있으리라.
“이강이 말입니다.”
공교롭게도 팽구인이 이강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음.”
“괜찮을까요?”
그 목소리에는 복잡한 염려가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능지평은 팽구인이 하고 싶은 말을 곧바로 알아챘다.
“곤륜파가 평범한 곳은 아니겠지만……. 괜찮을 걸세.”
얼마 전, 그들은 호정촌이라는 마을을 지나쳤다.
그곳의 사람들은 이강 일행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강과 담현, 금침의괴는 호정촌에서 일 년 가까이 머물렀다고 한다.
“일단 청림과 같은 도가 문파기도 하니.”
그러던 어느 날, 시체 같은 안색의 곤륜 무인들이 닥쳐들어서 이강 일행을 끌고 갔다는 것이다.
호정촌의 촌민들은 곤륜파 무인들을 무척이나 두려워했다. 끌려간 이강 일행이 험한 꼴을 당했을 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허나 설마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일행의 속도가 조금씩 빨라졌다.
“잠깐.”
능지평이 얼른 일행을 멈춰 세웠다.
그들이 타고 오르려던 능선에 독특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팽구인이 놀라 중얼거렸다.
“조금 전까지는 분명 없던 건데…….”
“당 소저는 저것의 정체를 아는가.”
능지평이 가리키는 것은 붉은 안개였다.
당은설은 안력을 집중해서 살폈다.
자세히 보니, 나방 같은 것들이 날개를 파닥이고 있었다.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네요. 가까이서 보면 알 듯도 한데.”
곤륜에서만 활동하는 혈접은 운남에서 수련해 온 당은설에겐 생소한 것이었다.
능지평은 고개를 저었다.
“피해서 돌아가지.”
“옳은 선택이시네요.”
굳이 확인한답시고 가까이 갈 필요는 없었다.
능지평과 일행은 혈접을 피해갔다.
비로소 신비로 가득 찬 곤륜산맥에 온 실감이 났다.
* * *
그리고 그 시점, 이강은 곤륜파의 심처에 있었다.
곤륜파에는 무당과 같이 사원(寺院)이 있다.
신선과 천존을 모시는 건물이 여럿 있는 것이다.
다만, 무당과 곤륜을 비교하자면 가장 큰 차이는 그 참배객의 수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참배객들이 무당의 영험한 사원에서 향을 올리고, 드높은 무당 도인들을 만나고자 한다.
그러나 곤륜파는 그렇지 않다.
아주 적은 참배객들만이 찾아오며, 곤륜의 도인들은 근처 촌민들에게 꺼림칙한 시선만 받는다.
그렇기에 곤륜파는 가난하고, 낡았다.
붉게 칠했던 벽은 색이 바랬고, 바닥을 포장한 돌들은 곳곳이 깨져 나가 있었다.
그 스산한 수련장 위에 이강은 포위되어 있었다.
곤륜파 무인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이강은 그들을 슬쩍 보고는 시선을 다시 앞으로 돌렸다.
앞에는 상무가 이강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조금 지친 듯 호흡이 거칠었다.
“증명하라……!”
상무가 그리 외쳤다.
이전, 고요자의 시해지술을 앞두고 일어난 상무와의 대결이 또 반복된 것일까.
이강은 잠시 침묵하더니, 미소를 지었다.
탓-!
그 순간, 이강의 몸이 솟구쳤다.
원래도 경신의 묘리를 활용해서 경공 비슷한 것을 펼쳤던 이강이다.
하지만 이제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있었다.
그 현묘한 동작은 분명 진기를 이용한 움직임이었다.
앞으로 뛰쳐나올 듯하던 이강의 몸이 허공에서 방위를 휙 바꾸었다.
그리고 또 한 번, 한 번, 연속으로 다섯 번을.
이강의 옷자락이 찢어질 듯 펄럭였다.
곤륜 무인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이강의 경신법을 눈에 담았다.
파박-
여섯 번째로 몸을 비튼다.
단 한 번의 체공 시간 동안 일어난 방위의 변화가 현란하기 그지없었다.
이런 움직임은 곤륜의 운룡대팔식으로나 가능하다.
절정고수인 상무는 조금 전 총 일곱 번의 방위 변화를 보여 주었다. 대단한 성과임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운룡대팔식을 익히지 않은 이강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팍!
이강은 기어코 일곱 번째의 방위 변화를 보여 주었다.
몇몇 곤륜 제자들은 그 시점에서 탄식을 내뱉었다.
상무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이강에게 경공술을 따라잡혀서가 아니었다.
이강이 아직도 자세를 바로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상무조차도 운룡대팔식을 완성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곤륜 제자들이 여덟 번의 방위 변화를 이루지 못하고 포기한다.
그런데 설마, 운룡대팔식을 전수받지도 못한 이강이 여덟 번의 변화를 보여 줄 것인가.
몸을 비틀려던 이강이 멈칫, 힘을 잃었다.
하지만 그 순간 이강의 눈이 푸르게 빛났다.
치직-
뒤를 보고 있던 이강의 신형이 순식간에 앞뒤를 바꾸었다.
잔상이 남을 정도로 쾌속한 움직임이었다.
툭.
이강이 양발을 땅에 디뎠다.
이 모든 움직임이 공중에서 머물던 잠깐의 시간 동안 일어난 것이다.
“우어어어!”
“대단해!”
“상무 사형이 졌다!”
곧, 심각하던 곤륜파 제자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이 저리도 눈에 힘을 주고 있던 것은 오직 이강의 움직임을 관찰하려던 것이었다.
“크윽. 어떻게……!”
상무는 분한 듯 땅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이강은 껄껄 웃으며 기뻐할 따름이었다.
제운신에는 이러한 움직임이 없었다. 운룡대팔식을 따라 한 것은 오직 이강의 노력 덕이었다.
물론, 대맥을 두 개나 더 이은 덕택이 컸다.
구미의 힘은 대단했다. 유정신과 금침의괴의 노력이 더해져서 이강은 훌륭하게 독맥을 이었다.
임맥과 독맥의 진기가 끊임없이 흐르면서, 팔다리의 대맥에도 진기가 공급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몸이 완치된 것은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뼈대만 복구한 것과 다름없었다.
사지를 편하게 놀릴 수 있게 되었지만 내장과 실속은 여전히 병들어 있었다.
이강을 상징하듯 창백한 안색 역시 그대로 아니던가. 수명 역시 조금 늘어났을 뿐이다.
그런 이강을 향해서 작고 흰 동물이 오도도 달려왔다.
그는 익숙하게 허리를 숙여서 뛰어드는 청호를 받아 냈다.
꼬리가 푸른 흰 여우, 청호는 익숙하게 이강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남궁서련이 청호라는 천뢰백미호로 환생한 이후 1년이 지났다.
청호는 아직 말을 하기는커녕 새끼 여우의 상태 그대로였다.
이강은 청호에게 하나 잣을 까서 먹이곤 자신도 하나 깨물었다.
이강이 이곳 곤륜파에서 머물게 된 지도 꽤 되었다. 그 나날들은 나름 평화로웠다.
그 모든 과정에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짝-짝-짝-
힘찬 박수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엔 이강보다도 뿌듯한 얼굴의 고요자가 서 있었다.
“백 도장의 솜씨가 창공의 비응에 못지않군!”
그는 여전히 이강에게 존중을 담은 말투를 사용하고 있었다.
꼭 곤륜파에 초대하고 싶다던 고요자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이강이 곤륜파에 오자마자 고요자는 자신이 직접 만든 단약을 주었다.
효과는 확실했다.
임독양맥을 타통한 이강은 이전과 달리 영약의 흡수 효율이 훨씬 좋아졌다.
그뿐만 아니었다. 고요자는 이곳에서 머물러 수련을 하는 것까지 지원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모두 진인 덕분입니다.”
“으허허, 진인이라고 부르지 말래두.”
고요자는 초절정 고수였으며, 곤륜 장문인의 적전제자였다.
이강의 수련 역시 도와주었다.
그 스스로는 ‘가르친다’라는 표현을 피했지만 분명 그것은 일방적인 도움이었다.
유정신이 청림으로 돌아간 지금, 고요자는 이강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생사현관을 타통하면서 초절정의 목전에 들었다고 평가받았다. 금방 초절정 고수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1년이 지난 지금, 이강은 어떻게 초절정 고수가 될지의 실마리도 잡지 못했다.
“허허, 너무 괘념치 말게, 백 도장. 본디 도라는 것은 집착할수록 멀어지는 법이야.”
그때마다 고요자는 진지하게 조언을 해 주었다.
저렇게 말하고는, ‘나와 함께 천지신명께 제사를 올려보세.’ 하는 이야기로 빠지곤 하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내가 도장을 새로운 경지로 들일 방법을 찾아냈어.”
“……예?”
“따라오시게. 장문인께 가지.”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강은 일단 신나서 앞장서는 고요자를 뒤따라보기로 했다.
청호가 그런 이강의 턱을 낼름 핥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