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215)
215화 무영검각, 선우휘 (5)
이강을 보는 노도인의 입이 씨익 벌어졌다.
치아는 제자리에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다.
노인이기에 당연하다고 하나, 그런 입으로 웃으니 선풍도골(仙風道骨)의 고수라기보다는 시골 마을의 촌로 같았다.
그러나 그가 장로원을 떠난 장자 배의 전대 고수임은 분명했다.
“재미있구만.”
이번에는 한때 면장(綿掌) 하나로 일백 자루의 진검을 흘려넘겼다는 일수탈백검 수윤진인이었다.
그 수룡자의 사제이며, 이제는 세 명밖에 살아 있지 않은 전전대 고수였다.
“도골(道骨)은 아니지만 분명 도기(道器)야.”
그는 이강의 팔다리를 주물러 댔다.
이강은 곤란한 얼굴이었지만 차마 반항하지 못했다.
사실 이강이 유독 약해지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노인들이었다.
호의를 가지고 다가오는 노인들은 무척이나 귀찮았지만, 어쩐지 매몰차게 굴기 힘들다.
차라리 이들 무당의 은거고수들이 윽박을 지르거나 했으면 몰라도 분명 호의를 보이고 있지 않은가.
“기운을 느껴 보니 너는 온갖 간난신고를 겪었겠구나. 그러지 않느냐.”
“예…… 뭐…….”
“허허허. 거기에 천뢰백미호를 새끼 고양이마냥 품고 다녀?”
장자 배 도인 한 명이 청호의 정체를 알아봤다.
청호의 털 색은 천뢰백미호의 성체와 다르다. 꼬리는 백미(白尾)가 아니어서 푸른 털로 덮여 있다.
그럼에도 정체를 알아본 것은, 노도인의 지식이 보통 깊지 않기 때문이리라.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그래, 그래 보이는구만.”
누군가가 이강의 정수리를 손가락으로 두들기기 시작했다.
미친 건가 하고 이강이 쳐다보니, 노도인은 감탄한 표정이었다.
“어린 나이에 천문이 열렸던 흔적이 있군. 평범한 도장은 아닌 듯한데. 청림의 아이들은 모두 이러는가?”
“그렇진 않을 겁니다, 사숙.”
명원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 모인 노괴들은 장문인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것이다.
“이상해, 요상하단 말이지. 킁.”
이강의 냄새를 맡는 자도 있었다.
“도저히 어린 아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향냄새가 난다는 말이지.”
사람에게 향냄새가 난다는 것은 욕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한 도인의 얼굴에서는 짖궂은 표정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주변을 슥슥 둘러보는가 싶더니.
그의 시선이 잠시 장삼봉이 있는 곳에서 멈췄다.
「허허.」
장삼봉은 쑥스러운 듯한 미소를 지었지만, 도인은 장삼봉까지 꿰뚫어 보지는 못한 듯했다.
이강이 도인들의 주의를 다시 돌리려던 순간.
드디어 기다리던 사람이 나타났다.
“대체 뭐이야!”
가장 요란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달려온 자였다.
제일 멀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늦지 않았으니, 경공이 하늘에 다다른 게 틀림없었다.
“부르지 못하게 북채까지 압수하였는데, 어떻게 불렀느냐 이 말이야!”
노인인 것은 분명했지만 얼굴이 시뻘겋게 혈색이 돌았다. 새하얀 백발에 대비되어서 그 불같은 성격이 명확하게 보였다.
고집스러움이 세월을 통해 반영된 듯한 깊은 주름살.
압권인 것은 두 눈이었다.
안광이 강렬하거나 한 것이 아니었다.
두 눈은 흐린 녹색으로 탁해져 있었다. 이강이 생각건대, 녹내장이나 그와 비슷한 안구 질환을 앓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강이 그런 생각을 한 것을 어떻게 꿰뚫어 본 것일까. 그는 이강에게 갑자기 소리쳤다.
“눈은 이래도 잘 보인다, 이놈아!”
“예, 저도 진인이 잘 보입니다.”
“뭐? 으허헛!”
당돌한 대답에 갑자기 확 웃어 재낀다.
수룡자가 오자 이강에 관심을 가지던 다른 도인들이 슬그머니 한 발자국씩 물러났다.
그는 배분도 가장 높으며 성격도 불같아서 모두에게 경원시되었기 때문이다.
명원마저 쩔쩔맸던 장현진인이 서둘러 나섰다.
“송구합니다, 사부님. 다만 중요한 일이 있어서. 긴히 사부님의 은거를 방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채는 어떻게 구했는데!”
“이곳 남암궁의 바닥 안에 숨겨져 있던 것을 발견했습니다.”
“뭐야?”
장삼봉이 이곳 남암궁 바닥에 북채를 숨겨 두었음은 수룡자 또한 몰랐던 듯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이것이 우연이라 하여도 하늘의 뜻 아니겠습니까, 사형. 흐흐, 천도(天道)는 따라야지요.”
수룡자의 사제인 수윤진인은 수룡자가 휙 노려보자 목을 찔끔 움츠렸다.
명원은 능지평을 대신해 그를 부른 사정을 설명했다.
수룡자는 골똘히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선우……휘, 선우휘라…… 으음.”
다행히 수룡자는 그 이름을 알고 있는 듯했다.
“이 일이 사형의 일이었으니, 우리는 이만 떠나도록 하겠네.”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자, 다른 고수들은 지체 없이 떠날 준비들을 했다.
척 보아도 무언가 재미있는 사정이 있을 듯한 상황이었는데 전혀 미련이 없어 보였다.
조금까지 이강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 거짓이었던 것처럼, 그들은 다시 산속으로 돌아갔다.
진정 은거기인이라고 불릴 만한 자들이었다.
“능지평이라고 합니다. 멸문한 무영검각의 후인이며……. 파문 반도인 선우휘의…… 사질입니다.”
능지평은 공손하게 포권한 뒤 말했다.
수룡자는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런 능지평을 바라보았다.
“선우휘가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그것이 저희 무영검각이 멸문할 죄인지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능지평은 긴장을 숨길 수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부디, 그날의 일을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선우휘는…….”
무언가 오해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사숙 선우휘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수룡자의 대답은 명확했다.
“도둑놈이었다. 그래서 내가 잡았지.”
“아…….”
희망이 산산이 흩어지는 기분.
사숙 선우휘는 분명 무영투도라고 불렸으니 도둑이 맞았다.
능지평은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마저 물었다.
“무엇을 훔쳤……습니까.”
“내 마음을 훔쳤지.”
“……예?”
모두가 수룡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이었다.
“정확히는 관심을 훔쳤다고 할 수 있겠군. 보기 드문 놈이었어. 영악하기 그지없었지.”
수룡자가 설마 한창때 소녀도 아니고, 선우휘에게 방심(芳心)을 도둑맞았을 리는 없었다.
“내 신발을 훔쳐 갔더군. 이곳 무당의 한복판까지 와서 말이야.”
“신발……이요?”
“나와 긴히 독대하고 싶다는 서찰을 남겨 두고 말이지. 도저히 궁금하지 않을 수 없더군.”
그제야 이들은 수룡자의 말을 이해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무당의 한복판에 숨어들어서 수룡자의 신발을 훔쳐 가다니.
“나와 만나고 싶어 하는 자들은 많았으나 이런 방식은 처음이었지. 그래서 나가서 포획하였다.”
“사숙은…… 그 정도로 고수가 아닐 텐데요. 무당의 한복판에 침입해서 수룡자 님의 신발을 훔치다니.”
능지평이 지적했다.
무영신투(無影神偸)라는 거창한 별호로 불렸지만 분명 절정고수 수준이었다.
애초에 그 의문은 사숙이 어떻게 장삼봉의 비급을 훔쳤을까의 문제에서도 떠올린 것이었다.
“확실히 그렇더군, 다만 역시 독특한 놈이었어. 신비로운 신공을 익히고 있더군.”
신공(神功)이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장삼봉 조사의 비급을 훔쳤다는 이야기는 어찌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사실이 아니다. 무영검각의 맹적을 무림맹이 박탈한 이유는 다른 것이야.”
여기서부터는 전대 장문인인 장현진인마저 모르던 이야기였다.
수룡자는 과거의 일을 설명했다.
* * *
선우휘가 황망히 외쳤다. 수룡자에게 목숨의 위협을 느낀 것이다.
“잠시, 말씀을 들어주십시오!”
“흥.”
늙어서도 불같은 성격이 남아 있는데, 한층 젊었을 때는 얼마나 더했을까.
수룡자는 선우휘가 던져 준 신발을 검처럼 휘둘렀다.
선우휘는 그 문답무용의 공격에 갈피를 잡지 못했다.
신발에 안면을 얻어맞지 않기 위해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겨우 무영검각의 무공으로 무당파의 장로를 어떻게 상대하겠는가.
신발은 기어코 선우휘의 뺨을 후려쳤다.
빠악-
어금니가 흔들리는 충격이었다.
“커헉! 제가 진인을 찾은 이유는…….”
대답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무당의 전설적인 고수인 수룡자. 선우휘가 검제의 스승을 찾아온 이유는 한 가닥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하는 심정 때문이었다.
자신이 파헤친 거악(巨惡)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청림, 소림, 무당 셋밖에 없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수룡자가 서찰의 내용에 따라 혼자 찾아왔을 때는 기뻤지만, 상황은 그렇게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퍼버버벅.
신발로 전신을 두들겨 맞자, 선우휘는 직감했다.
수룡자는 감히 자신을 농락한 도둑놈을 직접 때려죽이려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여야 한다.
선우휘는 품에 있던 소도를 꺼내 내질렀다. 수룡자의 어깨를 향해서였다.
하지만 수룡자는 비웃지도 않고 마주 손을 내지를 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검기가 솟은 칼날을 손으로 받으려는 것인가.
선우휘의 손에 망설임이 깃들었다. 하지만 그렇든 아니든 수룡자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의 손이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댓잎이라도 된 것처럼 부드럽게 휘었다.
칼날을 타고 넘어와 선우휘의 손등을 툭 친다.
무당 장법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면장(棉掌)이 분명했다.
면장을 수련할 때, 무당 무인들은 바위에 젖은 화선지를 붙여 두고 타격하는 방식을 쓴다고 했다.
면장을 십이 성까지 익히면 화선지는 찢어지지 않은 채 바위만 산산이 부서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수룡자의 손은 그저 선우휘의 손등을 부드럽게 툭 두드렸을 뿐이다.
빠각-
하지만 선우휘는 손목뼈가 부서지면서 소도를 놓칠 수밖에 없었다.
격통을 제대로 감수하기도 전에 몸이 휙 끌려갔다. 부러진 손목을 수룡자가 잡아챈 것이다.
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가진 것을 모두 보여라.”
그리고, 또 한 번의 면장이 이번에는 선우휘의 목울대로 날아왔다.
저것을 맞는다면 분명 즉사(卽死)다.
선우휘는 결국 이를 악물고 최후의 수단을 사용했다.
정신을 집중하고. 그 무공을 사용한다.
이곳 무당파의 심처로 잠입하여 수룡자의 신발을 훔칠 수 있게 한 그 신공을.
수룡자는 분명 선우휘의 맥문(脈門)을 움켜잡은 상황. 그 고절한 수법에서 손목을 뺄 수는 없을 터였다.
휘익!
하지만 선우휘의 몸은 마치 유령이라도 된 것처럼 수룡자의 손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수룡자의 뒤로 돌아가 있었다.
“고정하십시오! 사람이 말하면 일단 말을……!”
그러나 수룡자 역시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형환위(移形換位)에 가까운 신법으로, 순식간에 다시 선우휘의 뒤를 점했다.
스르릉-
이번에는 장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뽑아 든 송문검 한 자루가 선우휘의 목덜미에 닿았다.
“하찮은 무위에 비해서 믿기지 않는 신공이구나.”
“…….”
“무영검각이라고?”
수룡자는 무영검각이라는 이름을 입에 굴렸다.
들어 본 적은 있지만 잘 알지는 못하는 중소 문파였다.
“사문이었지만, 더 이상 제 사문이 아닙니다. 제 발로 나왔습니다.”
“관심 없다. 내가 궁금한 것은…….”
선우휘가 보여 준 기묘한 신법.
아니, 그것을 신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수룡자의 깊은 지식에 분명 있는 것이다.
“그 무공 같지 않은 무공을 어디서 배웠느냐.”
“…….”
“대답해라. 그것은 무영검각의 무공이 아니다.”
“고개를…… 돌려도 되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려던 수룡자는 선우휘가 보지 못할 것을 깨닫고 몸을 돌리라 말했다.
평정심을 유지하던 수룡자였지만, 선우휘의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선우휘는 눈물을 한줄기 또르르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얼굴은 웃고 있다. 그것은 마치 어둠 속에 갇힌 사람이 희망을 찾은 듯한 표정이었다.
“아, 알아보십니까.”
“……네 무공 말이냐? 짐작 가는 것이 있다만.”
선우휘는 털썩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그가 이곳 무당산까지 찾아와 수룡자를 끌어낸 것은 모두 그 때문이었다.
이 무공을 알아볼 사람이 강호에 달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 어두운 비밀을 파헤쳐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도문(道門)의 전설이라고 하는 수룡자밖에…….
“이 무공은 사문에서 배웠습니다. 저는 제가 스스로 나온 사문의 참혹한 죄업을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
“무영검각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것을 파헤치기 위해 사문을 나와 십수 년간 증거를 찾았습니다.”
파헤쳐지는 과거.
선우휘의 눈물 섞인 고백에 수룡자의 표정은 점차 굳어 갔다.
* * *
“잠깐, 사숙이, 선우휘 그자가 감히 그런 말을 하였습니까!”
능지평이 수룡자의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수룡자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을 찌푸렸지만 능지평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 아니, 애초에 그 무공이 어떤 것을 말하는 겁니까.”
“광휘무영공(光輝無影功).”
“광휘무영공이요? 검각에는 그런 무공이…….”
말하던 능지평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광휘무영공, 그리고 휘무영(輝無影). 무영검각에서도 극소수만 아는 비전의 무공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무영검각의 ‘죄’는 무슨 상관인가.
“다 말해 줄 테니 기다려 보게. 그리고 자네의 사문은 분명 문제가 있었어. 전대 무림맹주가 괜히 맹적을 박탈한 것이 아니지. 함부로 사안을 공개할 이유도 아니었지만…….”
“…….”
“광휘무영공은 말이야. 도맥(道脈)의 무공이야. 나 정도가 아니면 아무도 못 알아볼 그런 무공이라고.”
자랑하는 것이 아닌, 그저 사실을 말하는 태도였다.
휘무영이 원래 무영검각의 무공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수룡자의 입에서 진실이 토해졌다.
“그것은 전설의 도문, 전진파의 무공일세.”
전진파(全眞派). 도가 무인이라면 적어도 그 이름만은 알고 있는 문파였다.
이강 역시 전진파에 대해 알고 있었다.
문제는…….
「전진이라면, 참사교에 의해 멸망한 곳이군.」
……그들을 멸문시킨 원흉이 바로 참사교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