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281)
281화 의뢰 수행 (2)
이강은 다루에 와 있었다.
그의 복색은 소림에서 입고 다니던 투박한 회색 장삼이 아니었다.
화려한 옥색 장삼 위에, 자줏빛 장포를 걸치고 있었다.
의복을 갈아입을 때 정명은 이런 걸 입어도 괜찮겠냐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하지만 옷을 완벽하게 차려입고 나자 옷은 완벽하게 어울렸다.
고급 다루의 창가에 걸터앉아 있는 이강의 모습은 그야말로 풍류공자(風流公子)라는 단어가 어울렸다.
이강은 완벽하게 도시에 녹아들었다.
“저는 어색합니다.”
“적응하십시오.”
“불자로서, 이래도 되나 싶습니다.”
“사람을 돕는 일 아닙니까.”
“돕는 일이……긴 하겠지만요.”
“돕는 일이지요. 못된 인간과 혼인했다가는 그 여인의 삶이 지옥이 될 겁니다.”
이강은 창밖을 계속 내다본 채로 설렁설렁 답했다.
정명은 조심스레 말했다.
“누가 저희 정체를 알아보면 어떡합니까.”
“어떡하긴요. 뭐 어쩌겠습니까.”
“그런…….”
“그리고 걱정 마십시오. 감쪽같으니까.”
이강은 고개를 돌려 정명을 보았다.
그리고는 슬쩍 눈을 아래로 깔았다.
정명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는 웃음을 참지 못할 것 같았다.
“가발을 쓰는 것은 처음이라 조금 답답하군요.”
정명 역시 변장했다.
하지만 이런 외지에서 단기간에 구할 수 있는 가발이 제대로 된 것일 리 만무했다.
그조차도 이강이 하오문도와 인연을 맺으면서 얻은 지식 덕택에 구한 것이었다.
“저, 가발이 올라갔습니다. 내리세요.”
“앗.”
마치 변발을 한 것처럼 올라간 이마.
정명이 허겁지겁 가발을 제자리에 맞춰 썼다.
그가 쓴 것은 새카맣게 찰랑거리는 단발 가발이었다.
이강은 힐끗, 눈짓하며 말했다.
“영웅건도 두르십시오. 안 그러면 눈에 너무 띌 것 같으니까.”
“그래야죠.”
정명이 푸른 영웅건을 이마에 두르고 나서야 그나마 자연스러웠다.
정명은 승려였지만 이러한 복식이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이상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꽤나 어울렸다.
그럴 법도 했다.
머리만 깎았을 뿐이지, 계인을 찍은 것도 아니다.
한창때의 젊은이였고 외모도 제법 영준한 덕에 차를 즐기러 온 부잣집 자제 같았다.
톡톡-
그때, 추불이 탁상을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그렇게 시선을 모은 뒤 수화를 한다.
‘왜 나만 이런 옷이지?’
정명은 답하지 못하고 슬쩍 시선을 피했다.
추불은 결국 해명을 요구했다.
그의 옷은 이강이나 정명의 옷과는 전혀 결이 달랐던 것이다.
고급 옷을 두른 둘과 달리 평범한 옷이다. 깨끗하긴 했어도 둘 사이에 있으니 추레하게까지 보였다.
무엇보다 얼굴에 한 분장이 달랐다.
가발과 수염에 잿가루를 묻혀 희끄무레하게 했다. 노인으로 분장시킨 것이다.
그렇게 되니 등이 굽은 것이 그저 노인의 특징 같아서 평범해졌다.
“그러면 풍류공자처럼 꾸며 드릴 걸 그랬나요?”
‘…….’
이번에는 추불이 입을 다물었다.
이강처럼 입어 봤자 우스꽝스러워 보일 것이 뻔했다.
사실 추불의 노인 분장은 무척이나 적절했다. 적절한 정도가 아니라 법재의 마음에도 들었다.
평소에는 늘 쏟아지는 불편한 관심 대신 편안한 무관심을 느낀 것이다.
‘……이런 건 어디서 배웠나?’
“제대로 배운 건 아니고, 이곳저곳에서요.”
하오문도에게, 담현 사형에게, 황궁에서 동창 첩형에게 직접.
그것은 소림사 안에서 평생을 살아왔던 법재로서는 놀랍기만 한 일일 것이다.
이강은 다시 창가를 보았다.
이곳 다루를 고른 이유가 있었다.
근방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기에 등봉현의 많은 건물들이 내려다보인다.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은 담장이 둘러싸인 장원들도 위에서 보면 꼼짝없이 내부가 드러난다.
때문에 명문세가나 대문파, 혹은 부호의 저택 같은 경우에는 고지대로 짓거나 주변의 건물들을 모조리 사 버린다.
그런 대단한 짓을 아무나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소림의 세력권에 붙어 있는 등봉현.
이런 곳에 존재할 수 있는 흑도 방파라고 하기도 민망한 파락호들쯤이야, 제대로 된 거점을 가지고 있는 것도 호사였다.
“정말 저기 있네.”
이강은 날카로운 안력으로 이규진을 잡아 냈다.
영영의 약혼자인 이규진이 저 아래에 있었다.
그는 동년배인 사내들과 왁자지껄 웃고 떠들고 있었다.
장난스럽게 서로를 때리고 노는 모습이다.
“들은 정보가 맞았군요.”
‘용루회(龍淚會)라는 파락호 조직이라 했다.’
이강의 시선이 조금 떨어졌다.
이규진이 있는 장원 안, 마당 한구석에 무릎을 꿇은 채 묶인 사람이 있었다.
발가벗긴 채 두들겨 맞은 듯했다.
파락호라더니 정말 그런 듯했다.
“조금 의심스럽기는 하네요.”
이강은 이들 셋과 함께 다니며 이규진이라는 청년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다.
이규진은 용루회라는 곳에 속해 있다는 것 같았다.
젊은이가 쉰 정도 속해 있다는 듯했다. 그 정도면 작은 방파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용루회가 도대체 어떤 곳인지를 알아내는 게 중요했다.
“여기!”
이강이 점원을 호출했다.
정명에게 눈짓하자 정명이 거리낌 없이 은자 한 냥을 점원에게 건네주었다.
그 행동이 워낙 자연스러워서 이강이 팔을 못 쓴다는 것을 점소이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용루회와 대립하고 있는 곳이 죽도방이라고 했나? 그 죽도방은 어떤 곳인지 설명해 주게.”
“아, 죽도방 말입니까?”
이강의 탐정(探偵) 행위는 이런 식으로 돈을 팍팍 쓰면서 진행되었다.
그의 사비로 진행되는 일이었기에 정명과 추불은 얌전히 입 다물고 있었다.
이강이 몇 가지를 더 물어보던 중이었다.
다루의 주인으로 보이는 자가 손짓해서 점원을 불러냈다.
“잠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점원이 떠났다.
이강은 얌전히 기다렸다.
그는 단 한 번도 눈앞의 차를 마시지 않았다.
그러곤 곧 재미있는 재주를 보여 주었다.
툭-
손을 탁상 위에 얹은 것이다.
팔에 힘이 아주 약간 돌아와서 할 수 있게 된 행동이었다.
어깨를 움직여서 한 팔을 휘두르고, 아주 최소한의 힘만 주어서 마치 팔을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팔의 불편함을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정명이 조심스레 이강을 칭찬했다.
“시주……. 아니, 소협의 수완이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캐묻고 다니는 거요?”
“금전이 조금 소요된다 싶지만, 훌륭한 방법 아닙니까.”
그는 이강에게 감탄한 차였다.
이규진이라는 청년에 대해 조사한다고 들었을 때는 앞길이 캄캄했다.
그런데 이강은 그리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고 순식간에 많은 정보를 파헤쳤다.
하지만 이강은 정명의 칭찬에도 피식 웃을 뿐이었다.
“어디서 흉내 내려고 하진 마십시오. 동네방네 캐묻고 다니는 거 자랑하려는 거 아니면.”
“……아. 그런가요.”
“동네 청년 한 명 조사하는 데 후환을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 이러는 거지요. 그리고 이렇게 캐물어봤자 제대로 된 정보는 못 구할 거고.”
“그러면 왜…….”
“아, 그리고.”
이강은 진지한 눈빛으로 정명을 바라봤다.
“이제부턴 말한 대로 조용히 잘 따라오는 겁니다.”
정명의 표정도 굳었다.
돌아온 것은 점원이 아니었다.
지배인 복장을 입고 있는 웃는 얼굴의 중년 사내.
하지만 묘하게 기세가 날카롭다. 고수의 기세는 아니지만 무인의 기세임은 확실하다.
품이 넓은 옷 안에는 암기가 들어 있는 듯했다.
“손님, 찾으시는 것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음.”
이강은 고개를 끄덕이고 중얼거렸다.
“태호동정(太湖洞庭)에서 난 용정차가 있나.”
“하하……. 죄송합니다.”
뜬금없는 차의 주문.
이강은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러면 서호의 벽라춘은?”
“그것 또한 없습니다.”
법재는 몰랐지만, 정명은 이것이 이강과 지배인 사이에 오가는 밀마(密嗎)임을 눈치챘다.
용정차는 서호(西湖)의 것이 유명하고 벽라춘은 동정(洞庭)의 것이 유명하다.
헌데 그 특화된 산지를 반대로 요구한 것이다.
“아쉽군. 그러면 추천해 줄 것이 있나?”
“상중하, 세 가지 제안이 있는데 어떤 것을 고르시겠습니까?”
“네 번째 제안을 고르지.”
“특상이군요.”
지배인으로 보이는 자의 눈빛이 번쩍였다.
밀마에도 종류가 있는 법이다.
꽤 길게 이어지는 것을 보니 단순히 신원 확인에 그친 것이 아닌 듯했다.
“따라오시지요.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지배인이 그리 말하자 이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명과 법재도 이강을 따라서 지배인을 향했다.
지배인은 다루의 계단을 계속 내려갔다.
일 층으로 내려간 뒤에는 주방으로 들어가서 손님이 찾을 수 없는 곳까지 갔다.
그러자 또 내려가는 곳이 있었다.
이강과 일행은 주저하지 않고 들어갔다.
한 명이 지키고 있는 문이 나왔고, 그는 지배인을 알아보고 문을 열어 주었다.
“이곳에서는 중요한 고객분들만을 상대합니다.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괜찮다.”
이강은 단답으로만 일관했다.
“이 정도 수준의 밀마를 인지하고 계신 분은 자주 찾아오지 않으셔서요.”
“그렇군.”
“처음 뵙는 분이신데…….”
“…….”
몇몇 부분에서는 아예 대답을 안 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배인이 안내한 곳은 작지만 화려한 방이었다.
“하오문 하남성 정주 지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청류라 합니다.”
이강이 나눴던 것은 하오문의 밀마였다.
그중 다루에서 접선하는 상황에, 정보를 사겠다는 의미를 전달할 때 쓰는 밀마.
게다가 그 내용. 거기에 더해 이강의 시선 처리나 말 중간에 호흡을 넣는 것까지 감안하면 평범한 신분이 아님을 의미했다.
하오문과 제법 연관이 깊은 자였다.
문제는 정주 지부의 청류로서는 이강의 정체를 짐작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강 역시 얼굴에 간단한 분장을 했고, 검수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검을 패용하지도 않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혹시 신원을 알 수 있겠습니까.”
“충분히 설명했다고 보는데.”
청류는 차가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원칙은 묻지 않는 것이지만, 저희 정주 지부는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아서…….”
“명정.”
이강의 부름에, 정명은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들었다.
이강은 나지막이 말했다.
“감시하고 있는 쥐새끼 둘을 정리해라.”
“……존명.”
공자와 그를 따르는 호위 무사 역할을 가장하자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강의 귀공자 노릇은 연기라고 할 것도 없이 자연스러웠지만, 정명의 호위 무사 노릇도 생각보다 훌륭했다.
그가 번개같이 옆에 있는 벽을 걷어찼다.
퍽!
가벽이었는지 벽면이 뻥 뚫렸다.
속에서 끽! 하는 소리가 울렸다.
정명은 동시에 솟구쳐서 천장에 팔을 내질렀다.
손이 천장을 뚫고 무언가를 콱 잡아챘다.
정명은 그것을 그대로 잡아당겼다.
콰드드득!
천장에 숨어 있던 사내가 순식간에 제압당해 땅을 굴렀다.
정명은 그러면서도 소림의 무공을 전혀 쓰지 않았다.
청류는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이강은 천천히 다가가 발로 청류의 정강이를 툭 걷어찼다.
“억!”
반항하지 않은 탓에 그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정주 지부는 귀빈과의 거래에도 쥐새끼들을 숨겨 두나?”
“보, 보안을 위해…….”
“금화가 말했었지. 하남성의 지부들은 영 기강이 안 잡혀 있다고.”
“……!”
금화라는 이름에 청류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전 서안 지부장, 현재는 섬서성 전체의 성도부를 관리하고 있는 하오문의 중역이었다.
그런 자의 이름을 마음대로 부르는 것을 보면 청류가 함부로 대할 자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귀인을 몰라뵙고.”
“간단한 것만 조사하려고 한다. 값은 후하게 쳐 주지.”
청류의 눈에는 꼼짝없이 이강이 눈짓만으로 사람을 부리는 오만한 권력자처럼 보였다.
“앉아.”
그렇게 말하고 이강은 의자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았다.
청류는 얼른 일어나 그 맞은편에 앉았다.
“무엇이든 하문하십시오. 성심성의껏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조금 전보다는 훨씬 이강의 마음에 드는 태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