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282)
282화 의뢰 수행 (3)
이강이 어렸을 때 맺었던 하오문과의 인연.
그때 정보를 얻고 끝났다면 아마 그 인연은 사라졌을 것이다.
이강이 백씨세가를 떠나 청림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하오문이란 족속들은 기본적으로 지역과 양민들에게 아주 밀착되어 있다.
세간의 시선으로 천한 일을 하는 자.
마방의 마차꾼들, 도박꾼들, 주루의 점소이들과 기녀, 거리의 소매치기들. 그들이 바로 하오문의 손발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한때의 옛 인연으로만 그들을 부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인연은 유지되고 발전되어 갔다.
백씨세가에는 이강의 동생인 하준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안의 패주 백씨세가.
언젠가 그 용의 머리가 될 소가주가 하오문 서안 지부를 부렸다.
백씨 형제의 도움을 받아 서안 지부장의 자리를 되찾았던 금화는 섬서성도부의 주인이 되었고, 정구는 향주가 되었다.
그 입김은 이곳 정주 지부의 청류에게도 통했다.
“예, 사람 알아보는 일이라면 자신 있습니다.”
그가 이강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긴장감이 잔뜩 담겨 있었다.
이강의 차가운 눈빛은 제법 험하게 굴러온 청류마저 위축시켰다.
“눈을 내려라.”
“예.”
청류는 그 삼엄한 목소리에 얼른 눈을 깔았다.
그는 하오문도다. 이강과 일행이 분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눈치챘다.
하지만 분장을 알아보았다고 해서 그 원래 모습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상대방의 지금 모습이 진짜 모습이 아니라는 것만 알 뿐.
상대도 그것을 인지하고 있을 듯했다.
신분을 알아보려면 무공의 연원이라도 좇아야 할 텐데, 청류로서는 그것도 알아볼 수 없었다.
실력을 드러낸 것은 이강의 옆에 서 있던 가발 쓴 청년 하나뿐이었는데, 제대로 된 무공이 아닌 손짓과 발짓만으로도 범 같은 위용을 보였다.
“이 등봉현 전체의 파락호와 작은 소방파들의 정보를 가져와라. 그중 용루회나 죽도방에 관한 것은 특히 자세히.”
“간단한 주문이십니다. 알아보라셨던 청년의 이름은…….”
청류는 긴장했다.
이 수수께끼의 청년이 원하는 인물이라면 어떤 자일까.
대단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하오문 정주 지부로서는 감히 건드리기 어려운 거물.
“이규진이라는 놈이다. 나이는 스물셋이고…….”
청류는 이강의 주문을 받아 적었다.
그리고 그가 용루회에 소속되어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 붓이 일순 멈추었다.
용루회라고 해 봤자 동네 무관에서 시작한 파락호 단체다. 죽도방 또한 마찬가지였고.
“용루회 소속의 이규진……입니까?”
“그래.”
“혹시 왜 궁금하신지는…….”
이강의 눈빛이 서슬 퍼렇게 빛났다.
청류는 찔끔 놀라 입을 다물었다.
“……정보를 듣고 나면 말해 주겠다.”
하지만 의외로 이강은 그리 말했다.
청류는 알겠다고 읍하며 방을 나갔다.
빈방에서 이강은 다시 한번 방을 훔쳐보는 사람이 없음을 확인했다.
정명이 재차 확인하고 나서야 이강이 앓는 소리를 냈다.
“어, 힘들어.”
만전의 상태였다면 상관없었겠지만 지금은 내공을 쓰지 못한다.
그 상태에서 위압감을 발휘하고 하오문의 문도를 속여먹기 위해서는 심력을 많이 소모해야 했다.
“명정.”
“……아, 예.”
정명이 또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호위 무사가 반응이 늦어서는 안 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이강은 법재를 돌아봤다.
법재도 고개를 들어 이강의 입 모양을 바라봤다.
“그렇게 계속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험악한 것보다 무표정이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법입니다.”
“…….”
법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은 다시 시선을 돌려 천장을 봤다.
“음…….”
추불의 번뇌와 망념이라고 할 수 있는 여동생.
그녀에게 나타난 혼약자가 견실한 청년이어서, 법재가 마침내 미련을 끊을 수 있다면 최선일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하오문도의 반응을 보니까 그가 건실한 청년 같지는 않았다.
‘뭐, 상관없나.’
그렇게 되면 영영에게 질 나쁜 남자가 꼬이지 않도록 법재 대신 해결해 주면 되는 일이다.
이강은 청류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청류는 두툼한 서류뭉치를 들고 나타났다.
“바로 설명드리겠습니다.”
우선 등봉현에 있는 무인과 세력 구도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소림의 앞마당인 만큼 소림 속가제자들이 세운 문파 몇 개가 있었다.
흑도 방파는 없었고, 작은 무관 둘이 있다.
무관이라고 해도 동네 양민들이 다니면서 나한권과 비슷한 권법이니, 금강부동신법과 비슷한 발놀림이니 하는 장난질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 무관에서 함께 수학하며 자란 청년들이 뭉쳐서 만든 게 바로 용루회였다.
“용루회는…… 이름은 그럴 듯하지만 실상 파락호입니다.”
“파락호라.”
“예. 그것도 질이 제법 나쁜 놈들이지요.”
“어떻게 나쁘지?”
“파락호들이 하는 일이 뭐 뻔하겠습니다마는…….”
이강의 뒤에 시립한 법재는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청류의 입 모양을 잠깐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다.
청류가 용루회의 정체에 대해서 말하는 내내 법재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뭉쳐 다니면서 저자의 상인들에게 자릿세를 요구하고, 듣지 않으면 장사를 망치고 사람을 때리죠.”
“그렇군.”
“작년에는 본보기를 보여 준다고 오랫동안 만두를 쪄서 팔던 노인을 두들겨 팼답니다. 조금 더 맞았으면 노인네가 골로 갈 뻔했다는군요.”
“악질이네.”
“악질이지요. 별 대단한 놈들은 아니지만 수가 꽤 됩니다. 사람만 패는 게 아니라 여자도 희롱하고, 음식이나 술을 먹고 값을 치르지 않는 것은 뭐 일상이며…….”
청류는 슬쩍 법재를 쳐다봤다.
법재가 주먹을 부르르 떨고 분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똑같이 무관에서 시작된 파락호 조직인 죽도방과 대립 중이죠.”
“대립이라고?”
“치고받고 싸우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도 몇 명 죽어 나갔고.”
“그래. 그래서 이규진이라는 놈은 용루회의 파락호 나부랭이였다는 건가?”
“그저 나부랭이는 아니고요.”
이강의 눈썹이 살짝 비틀렸다.
청류의 입에서 나온 말은 마치 판관의 선고 같았다.
“용루회주의 막내아들입니다.”
우두둑!
그 살벌한 소리는 움켜쥔 법재의 주먹에서 난 소리였다.
이강은 슬쩍 그를 보고, 이번에는 꽤 온건한 목소리로 청류에게 말했다.
“ ……잠시 나가 주겠나? 일 다경 정도만.”
“예에, 그러겠습니다.”
청류가 방을 나가자 방 안에는 차가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결국, 이강이 입을 열었다.
“제대로 된 청년이 아닌 것 같긴 하군요. 파락호들의 우두머리, 그 막내아들이니.”
‘…….’
“어쩌시렵니까.”
법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결심한 듯 수화를 했다.
‘반려를 잘못 만난 죄로, 한 여인의 일생은 지옥으로 굴러떨어질 수도 있네. 내 어머니처럼…….’
“마음을 정하셨군요.”
‘구혼을 포기시키지.’
영영을 설득하는 방법은 쓰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더 직접적이고 확실한 방법을 쓰리라.
이강이 청류를 다시 들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 상황을 설명했다.
청류는 의외라는 듯 입을 살짝 벌렸다.
“이규진이라는 자가 누군가에게 구혼하려 하니, 그것을 단념시키라는 말씀이시지요?”
영영에 대해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다.
“그래, 할 수 있나?”
용루회에 소속된 파락호는 대략 쉰 명.
그들이 제대로 된 무인이 아니라지만 하오문 정주 지부에게는 조금 부담스럽지 않을까.
하지만 청류는 생각보다도 흔쾌히 답했다.
“예! 문제없습니다!”
“죽이거나 크게 다치게 하라는 뜻이 아니야.”
“그러면…….”
“좋게 타일러서 마음을 접게 만들게.”
“흐흐……. 확실히 마음을 접도록 만들겠습니다. 그런 것은 저희가 전문이지요.”
청류가 음흉하게 웃으며 손을 비볐다.
하지만 이강은 여전히 정색을 하고 있었다.
“오늘 내에 처리 가능한가?”
“예? 오늘이요? 아마 될 겁니다만…….”
“저녁까지 처리하도록.”
이강이 눈짓하자 정명이 돈주머니를 하나 꺼냈다.
그것을 탁상에 던지자 쩔렁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청류는 여상스러운 태도로 주머니를 슬쩍 열어 봤다.
그리고 찬란하게 눈을 찌르는 황금빛에 기겁을 하고 다시 주머니를 닫았다.
“깨끗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는 벌떡 일어서서 이강에게 허리를 숙였다.
이강은 인사를 받지 않고 일어섰다.
“나갈 테니 안내를 부탁하지.”
“물론입니다!”
다루를 아예 나갈 때까지 청류는 공손하게 이강을 안내했다.
나가는 와중에도 청류가 주변의 수하들에게 이런저런 것을 지시하는 게 들렸다.
듣자 하니 문도 중에서 무공을 익히고 사람을 겁박하는 데에 능한 자들을 모집하는 듯했다.
정명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역시 돈은 대단하군…….”
한 명의 젊은 승려에게 잘못된 인식을 주입하는 것 아닌가 싶었지만 이강은 내색하지 않았다.
하오문의 다루에서 조금 멀어진 다음에, 그가 슬쩍 턱짓했다.
“가 보죠.”
“예?”
“일을 어떻게 하는지는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오문의 일 처리를 완전히 믿고 놔둘 생각은 없었다.
어두웠던 법재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이강과 일행은 다시 한번 변복했다.
이번에는 눈에 덜 띄는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뒤 이규진을 찾아다녔다.
하오문도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이규진을 먼저 찾아냈다.
그를 얼마쯤 미행하고 있었을까.
이강과 일행은 기대치 못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 * *
용루회의 회주는 이도철이라는 사내다.
쉰이 넘은 나이지만 체구는 여전히 크고 몸은 근육으로 가득 차 있다.
팔과 가슴팍에 그려진 용 문신은 그와 그의 자식들, 그리고 용루회의 간부라면 전부 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도철은 세상에 부러울 것이 별로 없는 자였다.
그릇이 그리 크지는 않아서 등봉현의 뒷골목을 주름잡는 파락호 노릇도 만족했다.
누군가는 나이 처먹고 그렇게 악하게 살면 후환이 두렵지 않겠냐고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그의 자식들이 용루회주의 자리를 잇고 죽도방을 깨부숴 줄 것이다.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막내아들이었다.
막내 규진은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유쾌해서 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예쁨을 받았다.
다만 유독 마음이 유약해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안 하려 드는 것이 문제였다.
자릿세를 뜯는다거나, 회에게 반항한 상인들에게 벌을 주는 일 등을 말이다.
막내는 반항도 많이 했다.
두들겨 패고 패도 도무지 말을 안 듣던 자식이 그나마 요즘엔 얌전했다.
그래 봤자 아비의 일을 돕지는 않았지만.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염왕채 노릇을 하면서 억지로 빌려준 돈을 수금하러 나올 때도 막내아들 놈은 동행하지 않았다.
“뭐 해, 이 새끼들아! 부숴!”
짜증을 담아서 이도철이 외쳤다.
그러자 용루회의 파락호들이 저잣거리의 귀퉁이에 있는 쌀가게를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그만, 그만해 주세요!”
“이 할망구가!”
쌀가게의 노파가 매달렸지만 이도철은 발로 걷어차듯 밀었다.
노파는 뒤로 나뒹굴며 엉엉 울었다.
그녀가 반 억지로 돈을 빌린 것도 용루회가 뜯어내는 자릿세를 납부하기 위함이었다.
그 돈과 이자를 갚지 못한다고 나선 것 또한 용루회니, 이도철의 행동은 잔혹하기 그지없었다.
노파는 울다가 저주를 퍼붓기 시작했다.
“이 천벌을 받아 죽을 놈! 다 너와 네 자식들에게 돌아갈 거다!”
“미친년이 감히.”
욱하는 성질의 이도철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거침없이 도끼를 빼서 휘두르려는 듯하자─
“그만하십시오, 아버지!”
이도철이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 뒤에는 막내아들이 나타나 있었다.
“해도 해도 도가 지나칩니다!”
“막내 이놈…….”
“이 쌀가게를 운영하신 저분은 등봉현의 고아들을 길러 주신 분입니다. 저희 용루회에도 저분 덕에 어린 시절을 난 이들이 있다고요!”
“지금 네가 누구 앞이라고 소리를…….”
막내아들의 반항은 화를 낼 시기조차 놓칠 정도로 갑작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규진의 행동이 평소와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허리춤에서 소도를 뽑아 들었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결국 결정했습니다.”
“네, 네놈이……!”
설마, 그것으로 아비를 찌르려는 것인가.
“저는 아버지의 방식대로 살 수 없습니다. 아니, 용루회의 방식으로 살 수 없습니다.”
자식이 반역을 하는 것인가. 이도철은 순간 그리 착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막내아들은 칼을 들어서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썩둑 잘랐다.
“키워 주신 은혜, 감사드립니다. 불초 자식은 떠나겠습니다.”
“이…… 이…….”
“평생의 반려가 될 여인을 찾았습니다. 몸은 불편하지만 그 세상 누구보다 성품이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이도칠은 충혈된 눈으로 몸을 파들파들 털었다.
그의 막내아들은 무릎을 꿇었지만, 그럼에도 기세가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녀와 함께 등봉현을 떠나서, 평생 행복하게 해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구경꾼들이 있었다.
이강 일행이었다.
이강과 정명은 가만히 있다가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동시에 법재를 바라보았다.
법재는 용루회주보다도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얼굴에 담긴 감정은 정반대였다.
축축한 눈물이 주르륵 떨어졌다.
입을 꾸욱 다물고 있는 것은 감격의 떨림일 것이다.
“……파락호는 아니었군요.”
이강이 그리 고개를 끄덕인 순간이었다.
여태 조용했던 이도철이 거친 고함을 질렀다.
“이노오오옴!”
그는 도끼를 빼 들고 자식에게 던졌다.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진짜 사투를 많이 본 이강은 그것이 결코 살수(殺手)가 아님을 직감했다.
도끼는 경고의 의미로 막내아들의 무릎 앞에 박힐 것이었다.
하지만 법재는 그것을 몰랐던 듯했다.
쐐액!
무언가 이강의 볼 옆을 스치고 날아갔다.
카가앙!
도끼가 불똥을 튀기며 튕겨 나갔다.
그리고 법재가 마치 한 마리의 매처럼 날아들었다.
‘매제를 놔둬라!’
법재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아마 그렇게 외치지 않았을까.
이강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