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287)
287화 숭산의 기재들 (2)
팽가쌍호 두 형제가 여동생에 대해 팔불출이라는 것은 하준도 진작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그 아비마저 딸바보일 줄이야.
팽무아가 종종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언급하긴 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달랐다.
“음! 안 돼!”
저렇게 우렁우렁 말하는 목소리만 봐도 마치 호랑이가 울부짖는 듯했다.
지렁이 같은 핏줄이 돋아나 있는 손등은 제 도 위에 올려 두었다.
팽무혁의 오호단문도는 강호일절이다.
초절정고수의 끝자락에 다다랐다는 것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 기세가 대단했다.
무도(武道)란 끝이 없어 함께 초절정고수로 묶인 고수들 간에서도 수준차가 천차만별이라더니 과연 그러했다.
“무아가 잘하겠지만! 소림에 가는 동안도 잘 부탁한다!”
팽무아는 하준과 함께 소림으로 떠날 것이다.
하준이 이곳 팽가에 방문한 것은 서찰의 전달 말고도 그런 이유가 있었다.
“그리하겠습니다.”
“음!”
팽무혁이 콧김을 훅 뿜은 뒤 살짝 고개를 숙였다.
팽가의 가주가 고개를 숙이는 일은 딸과 관련된 것 말고는 별로 없을 것이다.
하준은 그렇게 팽가주의 거처를 빠져나왔다.
그러기가 무섭게 팽가쌍호가 하준에게 들러붙었다.
솥뚜껑 같은 두 손이 하준의 양어깨에 올라왔다.
하준 역시 장신이었지만 팽구인, 팽구휘 형제는 그런 하준보다 덩치가 더 컸다.
“으하하하! 좋아!”
“아까는 고마웠다!”
팽무아와의 혼담 이야기가 나왔을 때 거절을 말하려던 것을 눈치챈 듯했다.
아무래도 두 형제가 눈치를 줬기 때문에 그리 답하려던 것이라 착각한 것 같다.
하준은 내심 자신 또한 팽무아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말하면 어찌 될지 궁금해졌다.
“그래도 사실 하준이 너라면 처남으로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긴 해. 이강이보다는 네가 더 듬직하지 않냐. 물론 그렇다고 내가 혼인을 허락하리라는 뜻은 아니지만.”
“그래, 근데 이건 내 착각인 것 같은데. 혼사 얘기가 나왔을 때 별로 기뻐하지는 않는 것 같더라. 으응?”
두 눈을 부라리는 팽구인에게 하준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준을 한 건물로 안내했다.
하북팽가라고 해서 장원 내에 연무장밖에 없는 것은 아니었다.
투박하긴 해도 집무실이라고 부를 만한 공간 역시 있었다.
팽가쌍호는 탁상 앞에 하준을 앉히고 자신들도 그 맞은편에 앉았다.
두 명이 나란히 앉아 있는 게, 꼭 포쾌들이 죄인을 심문하는 듯한 자세였다.
하준은 문득 이 두 형제가 잘 때도 저리 나란히 잘까 궁금해졌다.
“어떻게 지냈냐.”
“수련하면서 지냈습니다.”
“성취는 있었나?”
팽구인이 그리 물었다.
하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아끼는 후배를 보는 듯한 따스함이 있었다.
하준은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실전 경험을 못 쌓았지?”
“예. 허나 게을리 지내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겠지. 네가 그런 성격일 것이고, 부맹주께서도 생각이 있으셨겠지.”
하준은 백씨세가의 소가주 과정을 겪느라 사도련과의 싸움에 제대로 참가하지 못했다.
허나 뼈를 깎듯 검을 수련했다. 당장 일 년 전과 비교해서도 훨씬 강해졌으리라.
“허나 나는 이번에는 부맹주께서 틀렸다고 생각한다.”
“…….”
“납득하지 못하나 보군.”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경험은 무인에게 귀한 것이야. 생사를 가르는 건곤일척의 순간에 무인은 자신을 감싸고 있던 고치를 깨고 나오는 것이지.”
땀내 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팽구인은 턱을 괴었다.
순간, 하준은 흠칫 놀랐다. 팽구인의 오른손, 그중 약지와 소지가 없었다.
“나와 구휘 형은 쌍둥이지. 성격도 비슷하고, 무공 경지도 똑같아. 아홉 번 싸우면 내가 네 번 이기고 다섯 번 지는 정도였어.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자식…….”
“나는 초절정에 올랐지만, 형은 아직 도강을 형성하지 못했어. 그 탓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
“잘난 척하기는.”
팽구인은 팽구휘의 투덜거림에 아랑곳하지 않고 흐뭇하게 가슴을 폈다.
“더 많이 죽을 뻔했기 때문이다.”
“예.”
팽구인은 녹림맹과 싸웠다. 그 덕에 손가락이 잘리기도 했고, 수차례 죽음의 위기를 겪어 오기도 했다.
팽구휘는 부상을 요양하느라 실전을 더 적게 경험했다.
“너는 듣지 않아 모르겠지만. 백도무림의 수준이 올라가고 있다. 예전에는 보기 드물었던 젊은 초절정고수들이 우후죽순 늘고 있어.”
“예.”
거짓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팽구인이 그 증거였고, 화산신검 화무천이 그 증거였으며, 하준의 형 백이강이 그 증거였다.
그리고 언젠가는 하준도 넘어야 할 산이다.
하지만 팽구인은 지금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철혈무정 백류산의 선택이 틀렸다고 비웃으려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곧, 팽구인의 이야기가 무슨 목적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 무아 역시! 나와 함께 싸웠다.”
팽무아는 실전 경험을 쌓았다.
원래도 도희(刀姬)라는 거창한 별호를 가지고 있었던 팽무아다. 그녀는 팽가의 맹호대에 속하여서 사도련과의 싸움에 앞장섰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경험을 쌓았지. 하준이 너를 포함해서 같은 기수의 녀석들 중에서는 가장 먼저 초절정에 오를 것이다.”
“암! 그렇고말고.”
팽가쌍호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하준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 모든 이야기의 종착점은 결국 여동생 자랑으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그 장황한 서두를 마련한 이유가 이런 것이라니.
하지만 그런 감정이 쉽사리 드러나는 성격은 아니다. 하준은 침착한 표정으로 침묵했다.
“동의하냐?”
팽구인이 그리 물었다.
그래서 답했다.
“아니요.”
“그러면, 누가 더 빨리 초절정고수가 될 거라고 생각하냐. 너?”
“예.”
형의 뒤를 따라. 그렇게 될 것이다.
하준이 그리 답했다. 팽구인은 유쾌하게 웃었다.
“으하하하! 역시! 마음에 들어!”
“그래, 한번 실력 좀 볼까.”
실력 좀 보자는 말이 이제야 나왔다.
명문 무가의 후기지수들이 재회했는데 서로의 발전을 확인하지 않을 리 없었다.
게다가 이곳은 팽가.
하준은 진작 대련이 있을 것을 각오했다. 오히려 여태까지 얌전히 끝난 것이 다행이었다.
“검은 가지고 있고?”
“예.”
팽구인은 당장이라도 연무장으로 향할 기세였다.
“날씨도 좋고.”
격자로 이루어진 나무 창살로 여름날의 햇볕이 들어왔다.
팽구인의 살짝 숙인 얼굴에 역광의 그림자가 졌다.
“무아도 없으니 딱 좋은 지금…….”
팽구인이 연무장으로 안내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하준의 물렁한 착각이었다.
“지금이 딱 좋아.”
팽구휘가 옆으로 슬쩍 물러섰다.
팽구인은 가만히 앉아 있는 자세였다.
하지만 그 순간 하준의 전신이 위험을 알렸다.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감각과 함께, 그는 손을 양손으로 교차했다.
멀쩡했던 탁상이 순간 부풀어 오르는 듯했다.
콰아앙!
탁상을 아래에서부터 깨부수면서 올라온 것은 팽구인의 다리였다.
하준이 막지 않았다면 그 발은 족히 하준의 턱을 깨부쉈을 뻔했다.
뻐억!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충격은 대단했다.
팔이 부러질 듯한 통증과 함께 하준은 허공으로 부웅 떠올랐다.
“좋군!”
그사이에 팽구인은 부러진 탁상의 다리를 콱 움켜쥐었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도 대용으로 썼다.
잡고 휘둘러 하준을 노렸다는 뜻이다.
허나 하준도 허공에서 대응했다.
검집째로 검을 휘둘러 천영검식을 시전한다.
나뭇조각 따위는 단숨에 부숴 버릴 기세.
꽈앙!
하지만 오히려 밀린 것은 하준의 검이었다.
초절정에 올랐다는 팽구인은 능히 나뭇조각에도 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달인이 되었다.
“검을 뽑아라!”
집무실 안에서 시작된 대련이다.
이런 좁디좁은 공간에서 진검으로 겨루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지만 하준은 감히 그 요구를 무시하지 못했다.
팽구인이 나뭇조각을 던졌다.
우람한 팔의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탁상 조각이 포탄처럼 쏘아졌다.
이러한 근거리에서 내공이 담긴 그 투척은 실제로 포탄만큼 위력적이었다.
그리고 검광이 번쩍였다.
콰각!
반으로 갈라진 나뭇조각이 각기 뒤편의 가구를 부수며 때려 박혔다.
집무실 내부에 폭풍이 몰아치는 듯했다.
“훌륭하다!”
팽구인은 어느새 도를 뽑아 들었다.
하준과는 달리 날을 거꾸로 세운 역날도였다.
카강- 캉!
검광과 도광이 번쩍인다.
팽구인은 한 수씩 교환하면서 더욱 짙게 웃었다.
팽가 무인의 투쟁심이란 흑도 무인과 비교해서도 떨어지지 않는다.
반면, 하준은 어떠한가.
검이 부딪칠수록 표정은 더욱 침착해진다. 마치 철로 만든 피가 혈관에 흐르는 사람처럼.
힘 대 힘으로는 팽구인에게 맞설 수 없었다.
강한 상대와 겨룰 때는 그 상대에 맞춰서 대응하는 것이 중요했다.
하준은 이 대련을 정교한 초식 대결로 끌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팽구인은 그리 넘어가지 않았다.
“흑도 놈들이 네가 원하는 대로 끌려갈 줄 아느냐!”
“…….”
“물러!”
그는 긴 도신의 끝을 마룻바닥에 콱 박았다.
하준은 그것이 무엇인지 곧바로 깨달았다.
팽무아와 함께하면서 몇 번 견식했던 것이다.
팽가를 칠대세가로 올려놓은 도법.
“오호단문도……!”
비정상적으로 긴 태도(太刀)를 지면과 마찰하며 회전력을 가미한다.
그것을 통해서 막강한 참격을 상대에게 선사한다.
수년 전의 팽무아만 해도 바위를 가르는 위력을 보였다.
팽구인이 그것을 발휘한다면 역날이고 뭐고 사람 몸통 정도는 상하로 양단될 것이다.
다만 지금으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오호단문도의 단점이라면 빈틈이 크다는 것이다.
숙련된 검수인 하준은 본능 수준의 판단을 내렸다.
훤히 빈 팽구인의 상체로 검을 찔러 간 것이다.
“흑도 놈들이 기습과 협공을 참겠냐!”
그때, 물러나 있었던 팽구휘가 의자를 던졌다.
하준은 무심코 욕설을 내뱉고 말았다.
날아온 의자 정도야 검으로 단번에 갈라냈다.
그러나 그사이에 팽구인의 오호단문도가 준비되었다.
콰가가각!
마룻바닥을 쪼개 놓으며 아래에서 위로 그어지려는 오호단문도.
하준이 위기를 느끼며 몸을 피하려던 순간.
“…….”
팽구인의 도가 멈추었다.
자비를 보이려는 것이 아니었다.
시선이 하준이 아닌 창문을 향하고 있었다.
콰작!
동시에 창문이 박살 나면서 누군가 침입했다.
햇살과 함께 들어온 것은, 팽가의 무인치고는 체구가 가녀린 여인이었다.
곱게 틀어 올린 머리 아래로 새하얀 뒷목이 드러났다.
들고 있는 것은 체구에 비해서 과하게 긴 태도.
그리고 으르렁대듯 하는 입가에 눈에 띄는 송곳니.
“뭐 하는 거야!”
팽무아가 벼락같이 외쳤다.
팽구인은 깜짝 놀라 도를 회수했다.
그리고 팽구휘는 누가 봐도 어색하게 몸을 돌리고 휘파람을 불었다.
“다 때려 부쉈잖아! 미쳤어!”
“내가……. 하준이가 반가워서.”
“반가워서 삼촌의 집무실을 때려 부쉈다고!”
“때려 부순 게 아니라 대련을…….”
“연무장이 바로 바깥에 있잖아!”
하준은 검을 집어넣고, 팽무아가 자신의 오라비들을 말로 두들겨 패는 것을 보았다.
팽구인은 조금 전의 맹호 같은 기세를 잃고 쩔쩔맸다.
“흑도 놈들의 비겁한 손속은 너도 알잖냐. 하준이 쟤는 겪어 본 적이 없을 테니까 내가…….”
“적당히 좀 해, 적당히!”
팽무아는 팽구인의 등을 두드렸다.
팽구인이 어허허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팽무아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한참을 나무라다가 홱 돌아봤다.
“늦었지?”
“아니, 괜찮아.”
그녀는 하준이 왔다는 사실을 들었을 텐데도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바로 나가려고. 짐 싸느라 늦었어.”
왜 그런가 싶었는데 곧바로 소림으로 떠나려는 생각인 듯했다.
“너!”
“……어.”
팽무아는 백하준에게도 화를 냈다.
“너는 네 형하고 어떻게 그렇게 똑같냐? 한 명도 답장을 제대로 해 준 적이 없어.”
팽무아는 종종 이강과 하준에게 서찰을 보냈다.
별 내용은 아니었다. 안부를 묻길래 하준도 몇 번 답장을 보내긴 했다.
“할 말이 없어서…….”
“하! 모용진 걔밖에 없어. 제대로 답장을 보내는 애는.”
팽무아는 어떻게 변명까지 형제가 똑같냐며 분해했다.
“그래,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긴 하다.”
아닌 게 아니라 하준도 반가웠다.
팽무아는 완벽하게 치장했다. 달랑거리면서 길게 늘어진 태도까지, 그렇게 어울릴 수가 없었다.
“가자! 소림으로!”
무척이나 기분도 좋아 보였으나, 하준은 말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는 못 가는데.”
“뭐?”
아버지가 맡긴 서찰은 더 있었고.
앞으로 들러야 할 문파들도 몇 있었다.
하준은 문득 아버지가 소림으로 바로 보내는 대신 다른 문파들을 방문시킨 이유를 깨달았다.
백씨세가의 소가주로서 인사를 하고 눈도장을 찍으라는 의미가 분명했다.
“다른 곳들을…… 들러야 한다고?”
“응.”
물론 그것이 팽무아를 기쁘게 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소림에 도착할 때까지 꽤 많이 남았다는 사실에 무척 슬퍼했다.
“그냥 나 혼자 갈까…….”
이러는 사이에도 다른 문파의 기재들은 하나둘 소림으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이강이 이미 머물고 있는 소림에, 칠대세가와 구파일방의 후기지수들이 방문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