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350)
350화 광풍대가 올 때까지 (2)
일곱 살배기 소녀는 이강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씩씩하게 뛰어놀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 꼭 그 나이대 아이답다.
다만 특이할 것은 촌장마저 배 속의 내장을 토해 낼 것처럼 꺽꺽 울어 댔다는 것이다.
이강은 차마 그 자리에서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그는 랑아첸 촌장과 체링을 데리고 포달랍궁에 들어갔다.
위험한 시국이었지만 라마승들은 이들을 거부하지 않았다.
따듯한 차를 마시고 담요를 걸치고 나서야 촌장은 입을 열었다.
“잠시 체링 저 아이를…….”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하여 찾아왔던 쌍제라마가 각기 체링의 한쪽 손을 잡고 방을 나갔다.
“그…… 마적들이 말입니다.”
촌장은 말솜씨가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고, 고된 여정과 정신적인 충격 탓에 횡설수설했다.
이강은 참을성을 발휘해 그 이야기를 정리할 수 있었다.
촌장이 근처의 다른 마을에 방문한 것은 우연이었다.
그가 방문한 마을은 창과 농기구를 들고 마적들에게 저항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마을은 이미 북쪽에서부터 밀려오고 있는 마적 떼에 대한 소문을 들은 듯했다.
마적이 마을을 침략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었는데, 유독 그 반응이 서슬 퍼렜다.
촌장은 돌아가는 길, 높은 산 위로 올라가서 마을을 바라봤다.
마적들이 북쪽에서부터 차례차례 마을들을 침략하며 내려왔다면 그다음 차례는 랑아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적의 규모가 그저 수십 정도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지축을 흔들며 나타난 것은 일천의 대군이었다.
쇠스랑을 들고 대비하던 마을 사람들도 설마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듯했다.
마을은 말 그대로 박살이 났다.
마적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죽이고 약탈하며 자신들이 불태운 마을의 잔해에 앉아 쉬었다.
그것만이었으면 촌장이 이리 덜덜 떨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적 놈들이 시체를 그러모으더니…….”
괴물이 그것을 먹어 치웠단다.
어떤 괴물인지 이강이 자세히 캐물었지만, 촌장은 횡설수설했다.
그 설명이 앞뒤가 달라서 대체 어떤 동물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정신적 충격이 보통이 아닌 듯했다.
“왜 체링만 데리고 나왔습니까.”
“따라잡을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이강의 일행에는 병자인 신승이 섞여 있으니 그리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갈동탁이 신승을 업거나 말에 태우면서 일행의 속력을 재촉했었다.
“음.”
이강은 이 불쌍한 촌부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그가 어린 체링에게 정을 보여 주었으니, 그런 체링을 데려가 이강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이었으리라.
백룡을 잡았던 괴물 같은 고수들에게 마을을 구해 달라고, 혹은 자신과 가족들만이라도 지켜 달라고.
“그런데…… 연기가 치솟더군요.”
허나, 길을 떠나고 며칠 뒤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마을이 있는 방향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촌장은 그 자리에서 한참을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고 한다.
이강을 좇아도 이젠 어쩔 수 없고, 마을로 돌아가기에는 죽음이 두렵다.
한참 고민하던 그는 결국 이강의 목적지였던 이곳 포달랍궁까지 왔다.
“……유감입니다.”
이강은 그리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랑아첸 마을은 쑥대밭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촌장과 체링에게는 안타까운 일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 마적들이 향하는 곳이 바로 이곳 포달랍궁입니다.”
“뭐, 뭐라고요!”
어쩐지, 마을들을 털어먹기 위해서는 너무 많고 강력한 마적들이었다.
광풍대가 남하한 것은 이곳 포달랍궁 때문이다.
아마 열흘쯤 지나면 그들이 이곳에 당도할 것이다.
범을 피해 범의 아가리로 들어왔다는 것을 깨달은 촌장은 눈물을 흘렸다.
이강은 잠시 그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동쪽으로, 중원으로 가겠습니까? 살기 위해서는 그게 나을 겁니다.”
위험한 이곳에 머무는 것보다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촌장은 고민하더니 정중히 거절했다.
“저 같은 노인네와 어린 여자아이가 어찌 그 험한 여정을 떠나겠습니다. 허락하신다면 이곳에 머물겠습니다.”
말 그대로다.
익숙한 고원에서 포달랍궁으로 떠나는 여정을 치른 것만으로도 기진맥진했다.
중원으로 향하는 길은 그것보다 멀고 험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돌아가야지요. 마을로 가서…….”
시신을 수습하고, 혹시 살아 있을지 모르는 마을 사람들을 찾는다.
촌장은 더 이상의 말을 잇지 못했다.
이강은 촌장의 결정을 존중해 주었다.
“이곳에 머물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강은 또다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촌장을 내버려 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련의 시간을 너무 낭비하였다. 돌아가라.」
달마가 냉정하게도 말했다.
이강은 수련 도중에 체링과 촌장을 보고 뛰쳐나왔던 것이었다.
달마의 태도가 냉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들의 슬픔에 함께 울며 눈물을 닦아 줄 시간은 없었다.
그럴 시간에, 한 층이라도 더 강해지는 수밖에.
이강에게 남은 시간은 겨우 열흘 남짓이었다.
“표정이 좋지 않구나.”
돌아온 이강을 보고 신승이 한 말이었다.
이강은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독특하게도 수련장의 벽면에는 수정으로 만든 거울이 세워져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
“아니요, 괜찮습니다.”
“클클, 그래.”
신승은 더 묻지 않았다.
이강 역시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세수와 역근을 합쳐서 세수역근경(洗髓易筋經)이라 하는 것이다. 말하기에 송구스러운 일이지만, 사실 소림에는 세수역근경을 깊게 탐구하는 무승이 적다. 나 또한 깊게 익히지 않았다.”
신승은 의자에 앉아서 그리 설명했다.
이곳 수련장은 달뢰라마가 특별히 이강에게 빌려준 것이었다.
세수역근경을 탐구하겠다 하니 그는 직접 참관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무엇이 바쁜지 그러지 못했지만.
“왜 그렇습니까.”
이전에는 세수경과 역근경을 배울 몸의 준비를 해 왔다.
신승은 잠시 가래 낀 기침을 하고 답했다.
“고리타분, 하다는 인식이 있지.”
그러면서 이강의 팔에서 풀려나와 똬리를 틀고 있는 달마를 슬쩍 바라본다.
“또한, 세수경의 진본은 유실되어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은 역근경뿐이다.”
이강이 황궁무고에서 봤던 세수역근경을 이야기하자 신승이 헛기침을 했다.
“그것은…… 사실 진짜 세수역근경이 아니다.”
“당 시절의 황제가 세수역근경을 요청했기에, 몸이 건강해지는 양생법을 세수역근경이라고 진상했다고 하지.”
“그때의 방장께서는 머리가 참 잘 돌아가신 듯하다.”
황제를 속이다니 용감한 짓이었다.
이 자리에 달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승이 일차적으로 설명했다.
“역근(易筋)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
“근골을 바꾼다는 뜻 아닙니까.”
“그러하다. 수련공 중에서 움직이면서 축기하는 동공(動功)의 성질을 가지고 있지. 오래 익힐수록 근골이 튼튼해지며 관절이 강인해진다.”
역근경은 그러므로 내공과 외공을 동시에 수련하는, 태음경과 비슷한 것이다.
오래된 무공일수록 그런 종류가 많았다.
“허나 근골을 유연하고 강인하게 하는 데에는 미륵유가공이 더 좋고, 정순한 내공을 쌓는 데에는 반야진기를 익히는 것이 더 좋지.”
하지만 원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역근경 역시 그러했다. 전설의 달마대사가 창안했다는 무공 치고는 생각보다 평범하다.
“초조시여, 혹시 역근경을 창시한 이유를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신승은 달마에게 그리 물었다.
달마가 답했다.
“승려들의 몸 상태가 보기 좋지 않았다. 등과 목은 굽고 팔다리는 가늘어서 수행에 적합하지 않았더라. 그렇기에 몸을 단련하는 무공을 만들었다.”
그것이 역근경이다.
시작부터 허약한 승려들의 건강을 위해 창안한 것이다.
“물론 초조 달마께서 창시한 만큼 역근경만 꾸준히 익혀도 초절정, 심지어 절대고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하다.”
달마가 그의 말을 긍정했다.
다만, 역근경만을 익혀 초절정고수가 된 고승들은 70세가 지나서야 초절정에 올랐다.
유일하게 절대고수가 된 자는 일백 살이 되어서 절대 지경에 들었고 삼 년 뒤 자연사로 입적했다.
지금으로서는 이강이 역근경을 배울 이유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세수경은. 세수(洗髓)가 무슨 뜻인지 아느냐?”
“골수를…… 씻어낸다는 것 아닙니까.”
역근경보다는 더 기묘한 울림을 지닌 말이다.
근골을 바꾸는 것은 무공을 수련하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사람의 몸속에 있는 골수를 어떻게 씻어낸다는 말인가.
피륙을 가르고 뼈를 쪼개 그 안에 있는 뼛골을 물로 닦을 수도 없는 일이다.
신승은 다시금 달마에게 물었다.
“세수경을 창시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무승(武僧) 중에 특출난 아이들이 요청했다.”
달마는 조금 전과 전혀 다른 말을 했다.
“홀로 양무제의 대군을 상대하고, 요괴의 살을 찢으며, 화살을 튕겨 내고 불에 타지 않는 몸이 필요하다더군.”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나는 그 아이들의 골수를 씻어 주었다. 탁기를 지우고 역근경으로는 근골을 바꿔 주었지. 반골세수하고 박피벌모해 주었다.”
뼈를 바꾸고 골수를 씻어 ‘반골세수(返骨洗髓)’.
그리고 피부와 털을 갈아내어 ‘박피벌모(剝皮伐毛)’.
그 표현들에는 동의어가 있다.
“세수역근경의 목적은 결국 환골탈태에 있다.”
달마가 이강에게 약속한 환골탈태(換骨奪胎)의 비밀이 결국 세수역근경에 있는 것이다.
“준비해라.”
이강은 웃옷을 벗었다.
어느 정도 근육이 붙은 그의 등에는 흉터가 그득했다.
달마가 곧 자신의 형태를 바꾸었다.
사람의 몸으로 일어선 달마가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물이 가득 담긴 큼지막한 대야가 있었다.
호수의 얼음을 깨고 가져온 그 물은 차갑기가 얼음장 같았다.
실제로 얼음이 둥둥 떠 있는 물에 다리를 담그자 살갗이 찢어질 듯했다.
하지만 이강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 정도에 엄살을 떤다면 세수경의 수련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향유를 바르라.”
이강은 그리했다.
라마승들에게 부탁한 향유를 마른 수건에 묻혀서 왼팔에 발랐다.
“세수경을 운공하라.”
역근경으로 우선 몸의 근골을 활성화시켜 두었으니, 세수경을 외웠다.
놀랍게도 사실 세수경의 원본은 천축어(天竺語)로 되어 있었다.
달마가 향지국의 사람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강의 입에서 천축어가 흘러나왔다.
“팔을 내밀거라.”
이강은 말없이 왼팔을 들었다.
달마가 손을 들었다.
제 입술 앞에서 검지와 엄지를 살짝 붙인다.
마치 불상이 취하는 손 모양. 그 수인 중에 전법륜인(轉法輪印) 같았다.
그리고 꽃잎을 불어 날리듯 후우, 바람을 불었다.
달마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한 줄기 화염이었다.
화르르륵-
주홍빛 화염이 이강의 왼팔에 순식간에 불을 붙였다.
뜨겁지 않을 리 없었다. 후끈한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왼팔의 살갗이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작열하는 고통 탓에 이강의 입술이 굳어 버렸다.
“독경을 멈추지 마라-!”
달마가 벼락같이 꾸짖었다.
이강의 입에서 다시 세수경의 경문이 흘러나왔다.
불꽃은 번지지 않고 이강의 왼팔만을 태웠다.
혹한의 추위 속, 몸의 절반을 얼음물에 담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달마가 중얼거렸다.
“내, 이번에 불을 얻었음이 네게 행운이구나. 본디 연꽃을 말려 태운, 성스럽게 정화한 불꽃을 사용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강의 왼팔을 불태우는 불꽃이 범상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차 한잔 마시기에도 부족한 짧은 시간.
하지만 이강에게는 억겁과도 같았을 시간이 지났다.
마침내 불이 꺼졌다.
이강은 허억, 하는 거친 숨을 내쉬고 몸을 물에 담갔다.
치이이익-
숯처럼 달궈진 왼팔 탓에 얼음물이 증발하며 김을 뿜었다.
무척이나 격렬한 고통에 머리가 지끈지끈 뜨거웠다.
“이것이 세수경의 일 단계다. 너는 이로써 환골탈태를 견딜 수 있는 강인한 피륙을 얻을 것이다.”
이것이 겨우 일 단계란다.
그것도 환골탈태도 아니고 그 밑 준비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강은 조심스럽게 왼팔을 들어 보였다.
놀랍게도, 검게 탄 숯덩이가 아닌 멀쩡한 팔뚝이 나타났다.
다만 살갗이 징그러운 허물로 뒤덮여 있었다.
그 허물을 손으로 뜯어 보자 매끈하기 그지없는 피부가 드러났다.
“우선, 전신의 피부를 바꿔야겠구나.”
이런 짓을 전신에 반복해야 했다.
이강이 대답하지 않자, 달마가 물었다.
“자신이 없느냐? 내 제자 중에서도 십중팔구는 일 단계를 끝내지 못했다.”
“음, 그다음에는 오른팔입니까?”
“그렇다. 오른팔 다음에는 다리, 그리고 몸통, 마지막으로 머리이다.”
이강은 다시 일어섰다.
“전신을 한 번에 부탁드립니다.”
달마는 잠시 고민했다.
실패하거나, 정신력이 부족하면 미칠 수도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의 가장 뛰어났던 제자인 혜가마저도 일 단계에서 비명을 참지 못했다.
허나, 이강은 신음 한번 흘리지 않았다.
“좋다.”
달마는 이강의 청을 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