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481)
481화 최후
만일 이강과 과거에 만났다면.
저 벌판에 푸른 보리가 익어 가고, 황제가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자들과 벌판을 달릴 때였다면.
그가 일궈 낸 상이라는 제국이 찬란했던 그때 백이강을 만났다면.
황제는 아마 이강을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평생의 숙적이라고 했던 치우도 결국 살려 두지 않았던가.
치우는 황제의 아들 셋과 딸 하나를 죽인 적이었으나, 황제는 그런 치우를 거두었다.
그리고 그의 제후(諸侯)로 삼았다.
황제가 제후를 만든 방식은 그런 식이었다.
상이라는 제국은 그렇게 우뚝 서 올랐다.
황제는 이강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피할 수 없이 다가오는 죽음에도 결코 굴하지 않는 것이다.
백이강은 자신을 죽이려던 황제에게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사람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발악하고 또 발악하여야 한다.
끝까지 저항하여야, 그래야 사람이라는 말이다.
이강은 별것 아닌 것처럼 말했고, 실제로 그리 대단한 말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황제는 알았다. 그처럼 행동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정말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다가온다면 사람은 저항을 멈춘다.
구중궁궐의 지하 뇌옥에 갇혀 수십 일 동안 고문당한 죄수.
그들의 처형식이 다가올 때, 어디 저항하던 자가 있던가.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 얌전히 목을 빼고 죽는다.
죽음으로서 해방되는 일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이도 적지 않다.
지금 이강의 상태는 그와 다를 바가 없었다.
전신의 혈맥은 터져 있고 온몸에 칼 조각이 박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빛이 죽지 않았다.
저것은 생존 본능 따위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생존 본능은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짐승이 가지고 있는 일차원적인 것이다.
이강이 죽지 않으려는 것은 지켜야 할 게 있기 때문이다.
저 지상에 있는 사람들.
그의 가족, 동료, 친우. 그런 이들을 황제로부터 지키려고 저러는 것이다.
마치 황제가 그 옛날, 자신의 제국을 지키기 위해 신성을 얻고자 했던 것처럼…….
‘이놈.’
황제는 이강에게서 자기 자신을 보았다.
지금 이 세상을 뒤덮고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으나, 눈앞에 있는 이강은 분명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흔들렸다.
이강이 칼 조각 하나를 움켜쥐고 기습했을 때.
푸욱.
어쩔 도리 없이 그의 심장을 꿰뚫어 죽이면서도 기분은 유쾌하지 않았다.
쓰러진 이강이 몸을 퍼득대며.
입에서 피를 폭포수처럼 흘리며.
그리 말했을 때는 속이 검게 물드는 듯했다.
지키지 못하게 된 이들에게 하는 사죄임이 분명하기에.
강철 같은 정신은 신성(神性)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런 면에서, 그 순간의 황제는 완전하지 못했다.
금이 간 거울.
그곳에서 팔괘(八卦)가 떠오르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챘다.
이강이 꺼내 들었던 거울에 이상한 점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거울은 갑작스럽게도 막대한 신성을 내뿜으며 팔괘를 형상화하고 있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황제는 진정 경악했다.
팔괘의 주인, 그리고 황제의 안목조차도 피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든 이라면…….
“태호 복희!”
삼황 중 일좌.
황제가 죽인 여와의 오라비이자 남편.
그 태고의 괴물이 분명했다.
“언제부터…….”
그는 언제부터 개입했던 것인가.
태호 복희의 물건을 왜 이강이 가지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대체 어떻게 개입하려는 것인가.
태호 복희의 개입은 진작 배제해 두었다. 가능성이 없는 일이라 무시했다.
그러나 거울 위로 떠오른 팔괘에서 혼령 하나가 튀어나왔다.
태호 복희의 권능을 두른 그 강대한 영혼은, 황제가 막을 틈도 없이 이강의 몸으로 깃들었다.
이강은 그만 정신적인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불사신검이 나타났다. 백성천이 나타났다.
그의 조상이, 할아버지가 나타난 것이다.
황제는 얼어붙어 있었다.
아무리 불사신검이 나타났다고 해도, 황제가 겨우 사람의 혼백 하나를 두려워하지는 않을 터.
태호 복희의 개입에 당황한 것이 분명했다.
불사신검에게 질문할 수 있는 잠깐의 틈이 났다.
수많은 궁금증이 이강의 머릿속에 휘몰아쳤지만, 이강은 가장 궁금했던 걸 외쳤다.
「위급할 때 거울을 비춰 보라면서요! 왜 안 왔습니까!」
말을 남기려면 좀 자세히 말할 것이지, 왜 그런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겼단 말인가.
게다가 위급한 상황에 아무리 거울을 흔들어도 아무런 일이 없지 않았던가.
결국 불사신검은 이강이 죽고 나서야 등장했다.
‘커, 커험! 누가 잘못 전했나 보구나. 위급할 때도 거울을 가지고 있으라고 했는데…….’
이강은 그 이야기를 전해 준 백도염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성격 급한 노인네가 거울이라는 물건이니 그것을 비춰 보라는 살을 덧붙였던 건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저 황제라는 놈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도 한다 들었다. 태호 복희의 개입은 마지막까지 숨겨야 하는 일이었어. 어쩔 수 없었느니라.’
불사신검의 변명에는 충분한 설득력이 있었다.
이강은 따지는 것을 멈추기로 했다.
사실, 불사신검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배어 나왔다.
그것보다도 그가 어떻게 태호 복희의 힘을 빌렸는지가 궁금했다.
‘가족을 잃은 원한이란 무서운 것이지. 게다가 우리가 보기엔 불경한 일이지만 복희는 여와의 지아비이기도 하니.’
태호 복희의 원한을 불사신검이 이해 못 할 리 없었다.
그렇기에 불사신검이 태호 복희에게 선택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수천 년 전, 그는 직접 지상을 멸했다고 한다. 그 대가로 인과율의 폭풍을 감수한 이후, 결코 현세에 크게 개입하거나 강림할 수 없었다는군.’
황제가 가장 두려워할 만한 적이 바로 태호 복희였다.
그가 태호 복희의 개입에 경악한 모습만 보아도,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상정 외였는지 알 수 있었다.
다만 이강은 태호 복희가 이미 현세에 개입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장 청림에서 제물을 바쳐서 그의 팔괘도를 내려받지 않았던가.
황제는 불사신검을 한 번 노려보고, 그다음에는 떠오른 팔괘의 형상을 노려봤다.
“불가능하다. 어찌 당신이 감히 지상에 개입하지?”
팔괘 너머로 강대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그 너머에는 분명 태호 복희가 있었다.
“저 혼령과 인간의 몸을 대리자로 나를 죽이러 왔구나. 어떻게, 그 인과율은 환생자라고 해도 감당할 수 없을 텐데!”
망각의 인이 없이 태어난 환생자는 인과율의 부담이 덜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황제가 판단하기를, 태호 복희가 다시 현세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여와의 머리쯤 되는 공양물이 필요했다.
인과율의 제약이 덜한 환생자를 매개로 해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권능을 부여한 혼령을 이강에게 빙의시킨다는 복잡한 우회수단을 쓴다 해도…….
우둔 한 놈.
그러나, 태호 복희는 친히 목소리를 내기까지 했다.
애초에 저 자가 이 차원의 혼백 도 아니었 음을. 모르는 구나.
그는 황제를 비웃었다.
황제는 이강을 홱 돌아봤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 듯 중얼거렸다.
“애초에, 애초에 망각의 인이 없는 정도의 놈이 아니었구나……!”
이강은 단순한 환생자가 아니었다.
백이강이라는 몸으로 태어났을 때, 이강은 단순히 과거로 회귀한 것이 아니었다.
무공이 없는 곳, 요괴가 없는 곳, 천신이 없는 곳.
다른 차원에서 온 것이다
“명부에 적(籍)도 없는 놈이 흘러들어 왔어!”
그 태생이.
근본부터 다른 그 지점이 황제에게는 재앙이 되었다.
태호 복희는 진작에 이강을 주시했다.
현세에 개입할 수 없게 된 그에게, 유일하게 인과율의 역풍을 피할 수 있는 매개가 바로 백이강이라는 전생자(轉生者)였으니.
그는 이강의 조상인 불사신검과 접촉하였다.
황제의 계획은 세상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것이었지만 태호 복희는 알고 있었다.
그 일을 들은 불사신검은 흔쾌히 제안에 승낙했다.
‘죽어서도 자손들을 도울 수 있으니, 이런 기회가 어디 있겠소!’
그리고 태호 복희와 불사신검은 오래 기다렸다.
이강은 반드시 한 번 죽을 운명이었으니, 그 운명의 특이점이 해소되기를 기다리며.
이강은 결국 한 번 죽었고.
불사신검과 태호 복희는 이강의 혼백이 육신을 떠나기 전에 그 목숨을 다시 살렸다.
비로소 완전해진 이강의 몸.
그리고 그 몸을 통제하는 불사신검의 혼.
유예 된 죗값 을 치르 라.
태호 복희가 선고하고, 불사신검이 형벌을 집행하였다.
이동(移動)이란 한 좌표에서 다른 좌표로 위치를 옮기는 일을 의미한다.
그 궤적은 당연하게도 선을 이루기 마련이다.
하지만 불사신검의 이동은 좌표와 좌표를 잇는 선을 남기지 않았다.
불연속적인 이동.
서 있던 불사신검은 황제의 위치에 일순간 도달했다.
그는 발을 내뻗고 있었고 황제는 물수제비를 만들며 해수면 위로 날아갔다.
불사신검은 크게 외쳤다.
“이강! 검은 어디다 팔아먹었는고!”
「저놈이 부쉈습니다!」
유성아의 원수야!
그리 외치며 불사신검은 해수면 위를 달렸다.
당연하다는 듯 물 위를 달리는데, 그 뒤로 물보라가 거세게 솟았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타격을 입은 황제는 바닷물에 흠뻑 젖은 채 몸을 일으켰다.
그 얼굴이 귀신같이 일그러졌다.
상의 군주인 황제는, 동시에 상나라 최고의 검수이기도 하였으니.
그는 헌원검을 들었다.
반면 불사신검은 마치 검을 잡고 있는 것처럼 두 손으로 허공을 움켜잡았다.
「검도 없는데 뭐 하십니까!」
“검이 없으면 만들어 쓰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승천하여 태호 복희와 함께했던 불사신검.
그 역시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백씨세가 최고의 기재였던 그는, 무공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강기가 불사신검의 손에서 뿜어져 나왔다.
거기까지는 권법가의 수강(手罡)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그 강기가 크기를 엄청나게 불렸다.
무려 일장이 넘게 치솟은 강기는 빠른 속도로 압축되었다.
천마가 보였던 강기압환(罡氣壓丸)의 경지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강기가 정련되기 시작했다.
곧고 날카로운 검의 형태로.
유성아의 형태로.
“이름하여, 강검이다!”
「검강을 거꾸로 한 것 아닙니까.」
불사신검은 이름이 무엇 중요하냐 반박하며 그 강기의 검을 휘둘렀다.
황제는 이를 악물고 검을 맞부딪쳤다.
호교사령 셋의 힘을 한 몸에 담은 황제다.
한낱 인간의 무공에 밀릴 리 없을 터.
허나, 불사신검의 검은 헌원검을 반으로 갈랐다.
운철검이 두 쪽 나고, 강기의 검이 황제의 쇄골을 파고들었다.
얼마 전 이강이 베었던 그 부분이었다.
“크아아아아-!”
황제가 쩌렁쩌렁 고함을 질렀다.
조금 전과 다른 것은 강기의 검이 황제의 몸을 자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검이 쇄골뼈를 끊어 내지 못하고 있다.
지금 황제의 육신은 운철보다 강인해졌다.
황제는 제 몸을 믿고 무식한 짓을 벌였다.
맨손으로 불사신검의 검을 움켜잡은 것이다.
손바닥의 살가죽이 벗겨졌지만 황제는 멈추지 않았다.
체구 자체부터 황제가 훨씬 거대했다.
이대로라면 검이 밀릴 터.
불사신검은 이를 악물었다.
지옥 명왕같이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팔 근육이 불룩 부풀었다.
“으아아아아아!”
불사신검도 마주 고함을 질렀다.
황제의 기세에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이다.
불사신검의 주변으로 태호의 팔괘가 떠올랐다.
삼황의 힘은 물리법칙을 가볍게 비틀었다.
검을 밀어 내려던 황제가 조금씩 밀렸다.
그의 몸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말 그대로 가라앉는 중이었다.
용케 수면 위에 서 있었지만, 황제의 두 발을 중심으로 바닷물이 좌우로 밀려났다.
마치 바닷물이 황제와 불사신검을 피해 도망치는 듯했다.
강기로 이루어진 검이 크기를 키웠다.
황제가 발을 디뎠던 해수면이 좌우로 확 갈라졌다.
불사신검이 악을 질렀다.
“죽어라아!”
품위라고는 조금도 없는 일갈이었지만 그 기세는 진정 무시무시했다.
좌우로 갈라진 바다의 밑바닥이 드러났다.
그 컴컴하고 어두운 해수의 협곡으로 둘은 추락했다.
강기의 검이 환한 빛을 뿜어, 둘의 모습은 하늘에서 유성(流星)이 떨어지는 듯했다.
충돌은 거셌다.
황제는 몇 바퀴를 구르며 뒤로 튕겨 나갔다.
그에 반해 불사신검은 멀쩡히 두 발로 서 있었다.
허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황제가 튕겨 나갔다는 것은 불사신검이 그를 베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검은 결국 쇄골뼈를 끊어 놓지 못했다.
「이제 어쩌지요?」
‘시간이 없는데.’
불사신검이 한숨을 내쉬었다.
태호 복희에게 힘을 내려받았지만 빙의를 무한정 지속할 수는 없다.
이강이 위험하다. 불사신검은 황제를 이기지 못하더라도 이강을 죽게 두지는 않기로 결심했다.
결정은 신속했다.
불사신검은 싱긋 웃었다.
‘자손이 직접 베거라.’
「예?」
이강은 몸의 제어권이 자신에게 어느 정도 돌아왔음을 느꼈다.
빙의가 풀린 것이 아니라, 몸을 불사신검과 함께 제어하는 기분이었다.
‘너는 이미 한 번 저자를 베지 않았느냐? 자손의 그 일검 말이다.’
자존심 드높은 검수로서는 믿기지 않게, 불사신검은 이강을 인정했다.
‘그 일검은 나보다도 나은 것이었다.’
그는 멋쩍은 듯 턱을 긁었다.
‘아니, 그것도 부족한 표현이지. 나는 그런 검을 가져 본 적이 없다.’
제천대성을, 황제를 베었던 일검.
그것이 불사신검도 이루지 못한 경지라 말한다.
‘그것은 분명 초월. 자손의 혼백이 무척이나 특별하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장삼봉은 인간에게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말하였다.
허나, 애초에 혼백의 기원부터 달랐던 이강에게는 그 한계가 적용되지 않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불사신검은 이강에게 검을 넘겼다.
이강은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강기로 빚어 낸 검은, 운철검과는 또 다른 따스함을 지니고 있었다.
허나, 분명 익숙한 유성아의 무게중심과 길이 그대로였다.
그렇다면 펼쳐 내지 못할 것 없었다.
때마침, 황제가 몸을 일으켰다.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갈라진 바닷물의 협곡 너머에 적이 서 있다.
지상의 모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저 적을 쓰러트려야 한다.
그렇다면 쓰러트리지 못할 것 없었다.
‘베어라!’
불사신검이 함께 검을 쥐고 있는 듯했다.
베지 못할 것 없었다.
이강은 황제를 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