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83)
83화 삼원성화 (2)
여우는 열심히 이강을 따돌렸다. 안개 속에서 길을 잃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강은 길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삼원성화가 있는 방향을 정확히 찾아서 향했다.
한낱 인간이 어떻게 영초를 찾아냈는지 알 수 없었다.
목표로 하던 삼원성화를 한낱 인간에게 빼앗길 위기였다. 그것도 허공과 대화하는 괴짜에게.
여우는 이강을 죽여 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기습을 감행했다.
허나, 뼛조각도 남기지 않고 불태워 버렸어야 할 전격은 그저 이강의 옷자락만 조금 태웠을 뿐이었다.
놀라 도망치려는 여우에게 검이 날아왔다. 당연한 생각이지만 여우는 그것이 한 많은 삶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썩둑, 하고 몸이 잘리겠지.
그녀가 눈을 질끈 감은 순간이었다.
스윽-
놀랍게도, 이강의 유성아는 푸른 여우를 허망하게 통과하고 말았다.
한참을 눈을 감고 있던 여우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제 몸을 내려다보니, 잘리기는커녕 푸른 털이 윤기 있게 흐르고 있었다.
이강이 또 한 번 번개같이 검을 휘둘렀다. 다시, 검이 푸른 여우의 몸을 스윽 통과하고 지나갔다.
“음……. 칼몸으로 쳤는데, 그럴 필요도 없었나.”
눈을 찌푸리는 이강.
그 모습에 여우는 비로소 떠올렸다.
지금 자신의 상태는 진짜 몸이 아니라 반쯤 영체(靈體)였다는 것을.
“키힝!”
여우는 작은 이빨을 드러내며 이강을 비웃었다. 이강이 자신을 해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과연 그는 검을 든 채 가만히 고민하고 있었다. 여우 역시 이강과 그 뒤의 삼원성화를 번갈아 보았다.
조금 전 기습이 실패한 이유는 저 이상한 검 때문이었다. 하지만 검을 피해서 몸에 전격을 먹여 주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일단 지금은 물러나는 방법도 있다.
“일개 짐승이 아닌 것은 알았는데. 평범한 요괴조차 아니구나.”
이강이 그렇게 말했다.
여우는 결정을 내렸다.
이 인간을 처치하기로.
타앗-!
그녀는 곧바로 이강을 향해 훌쩍 뛰었다. 이번에는 검을 피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강 역시 검이 무용한지 알았는지 가만히 침묵했다. 자포자기한 모습이었다.
적어도 여우는 그렇게 판단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몸이 잡혀 땅바닥에 내리꽂힐 때까지는.
“캐앵-!”
여우는 땅바닥에서 발버둥 쳤다.
억센 손아귀가 여우의 몸을 잡아 누르고 있다.
“그냥 도망치지 그랬냐.”
이강의 한마디에도 여우는 반응할 수 없었다. 그제야 그녀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강은 허공에 대고 홀로 대화하는 괴짜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곁에 있으며, 바로 그가 여우를 단단히 제압하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 전 도망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이강의 경우는…….
「어설프다 어설퍼! 배웠으면 무엇하나. 써먹는 것을 까맣게 잊었으니.」
여우를 잡아 누른 불사신검에게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제가 이 여우가 영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겠어요.’
「그렇다 해도 처음 검격이 실패했을 때 알아챘어야지. 똑같은 짓을 한 번 더 해?」
이강은 할 말이 없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여우의 정체는 귀신에 가까운 것이었다. 귀신을 검으로 벨 수는 없는 법. 평범한 무인이라면 감히 여우를 어쩌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이강은 평범한 무인이 아니었다. 태음경을 제대로 활용했다면 검격이 통했으리라.
이강의 대응이 늦어서 불사신검이 나선 것이었다. 귀신인 그는 영체인 여우를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놈은…… 조상님이 보이지 않나 봅니다? 조상님은 저처럼 저놈이 보이실 텐데.”
「녀석, 말 돌리기는. 그야 뭐…….」
불사신검은 조금 으스대며 말했다.
「나를 보는 녀석이 여태 한 명도 없지 않았느냐. 너 빼고는.」
자기도 모른다는 뜻이다.
“뭐, 그렇다 치고요…….”
푸른 여우는 작고 눈이 큼지막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처럼 보였다.
외견은 귀여웠지만 요괴의 나이를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물론 불사신검이 여우의 귀여운 모습에 현혹되지는 않을 터. 그런데 놀랍게도, 불사신검은 여우의 배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마지 여우를 간지럽히려는 듯 복슬복슬한 솜털을 어루만지는 것이다.
“뭐 하세요?”
「쉿.」
여우가 간지러운지 몸을 비틀었지만, 그는 계속 여우의 배를 만졌다.
그러더니 씁쓸하게 중얼댔다.
「내단이 없는 것 같은데?」
“아…….”
이강은 존경을 담아 불사신검을 바라봤다. 그는 여우가 귀여워 어루만진 것이 아니라 내단을 찾던 것이다.
여우가 불사신검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면 기겁을 했을 것이다.
이강은 입맛을 다시며 삼원성화를 돌아봤다.
그리고 검을 휘둘렀다.
서걱-
가시덤불이 비스듬하게 잘려 떨어졌다. 이제 삼원성화를 채집하는 데 가로막는 것은 없었다.
이강은 단도를 꺼내서 삼원성화의 줄기에 댔다.
“이건 먹을지 가져갈지 고민되네요. 효과를 잘 모르니까…….”
불사신검을 돌아본 이강은 우뚝 굳었다.
여우가 이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거야 뭐 상관없었지만, 신경 쓰이는 것은 바로 그 여우의 표정이었다.
이강은 잠시 고민했다. 짐승에게도 표정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것을 알아보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잘못 봤겠지…….’
이강은 단도를 휘둘러 삼원성화의 줄기를 잘랐다. 그리고 꽃의 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정말이지 아름답기 그지없는 영초였다. 세 개의 색이 다른 꽃잎이 비현실적이었으며, 은은한 빛을 뿜고 있었다.
고아하고 진한 향기가 풍긴다. 무인이 먹으면 어마어마한 내공의 성취가 있을 듯했다.
이강은 조심스럽게 삼원성화를 들고 불사신검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거참 빛깔이 곱구나.」
“그러면 챙겼으니까…… 일단 돌아갈까요?”
그렇게 말한 이강의 시선이, 찰나의 순간 동안 여우의 얼굴에 머물렀다.
「그러면 이놈은 어쩌고.」
“……내단도 없다면서요. 그냥 살려서 보내죠.”
불사신검이 의외라는 듯 이강을 보았다.
「그래? 그래도 갈라서 한번 확인해 봐야지 않겠느냐?」
이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불사신검은 입맛을 다시면서 여우를 놓아주었다.
여우는 몸이 자유로워지자,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덫에서 풀려난 산짐승 같은 꼴이었다.
불사신검은 여우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삼원성화를 살폈다.
「척 보아도 아주 뛰어난 영약이야. 먹을 것이냐?」
“글쎄요.”
「음, 하지만 이렇게 강력한 영초를 잘못 먹으면 오히려 몸이 상할 수도 있는데…….」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느냐.」
이강은 멍하니 푸른 여우가 사라진 방향을 보고 있었다.
“분명. 비웃는 표정이었어요.”
그렇게 말하더니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불사신검은 고개를 갸웃하고 이강을 따라갔다.
* * *
불사신검이 여우를 놓아주고 일 각 정도 지난 뒤. 어느덧 시간이 흘러 해가 기울었다. 조금 있으면 하늘이 노랗게 물들고 노을이 지기 시작할 것이다. 시험의 끝이 다가왔다.
그 말은 여우에게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그녀는 가지고 있던 힘의 대부분을 사용해 탈출을 감행했다. 모두 삼원성화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런 삼원성화를 이강에게 빼앗긴 지금, 그렇다면 여우는 실망했을까.
“키잉.”
그렇지 않았다.
여우는 킹킹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바보 같은 인간, 이강을 떠올리면 그렇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인간의 곁을 지키는 무언가에게 제압당했을 때는 정말 끝인 줄 알았지만. 그녀는 여우다운 기지를 발휘해서 살아남았다.
인간은 삼원성화의 줄기를 베어 갔다.
삼원성화의 삼원(三元)은 세상을 이루는 하늘, 물, 땅을 일컫는다.
꽃은 하늘(天)이다. 무인이 먹으면 막대한 양의 내공을 얻을 것이다.
줄기는 물(水)이다. 즙을 내어 복용하면 피가 맑아지고 수명이 길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땅(地)은.
“키히힝.”
앞발로 입을 가리며, 여우는 웃었다.
인간은 삼원성화의 가장 중요한 본질을 놔두고 떠났다. 지극히 인간다운 관점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늘 밟고 살기에 땅의 위대함을 모르는 것이다.
여우가 노리는 것은 삼원성화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 뿌리였다.
그녀는 이강이 삼원성화를 베어 간 곳에 가서 열심히 땅을 파기 시작했다.
영초란 오랜 시간 동안 해당 지역의 지력을 흡수하며 자라는 것이다. 당연히 뿌리는 깊고 넓게 뻗어 있었다.
여우는 작은 앞발로 열심히 흙을 퍼냈다.
얼굴이 꼬질꼬질하게 변할 때쯤. 남은 시간이 아슬아슬해질 때쯤 ‘그것’이 나타났다.
반짝반짝 빛나는 여우의 눈동자에 비친 것.
그것은 밤톨만 한 알뿌리, 구근(球根)이었다.
구근이라는 것은 특정한 식물의 뿌리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식물의 영양을 밤톨만 한 크기로 저장해 둔 것이다.
이런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가 버린 인간을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푸른 여우는 입을 최대한 크게 벌렸다. 이 귀한 구근을 한입에 먹어 치울 생각이었다.
따악-
하지만 깨문 것은 구근이 아니라 허공이었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목덜미를 잡혀 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바닥에 놓인 구근을 누군가가 대신 집어 들었다.
“이게 진짜배기였구나.”
조금 전 분명 떠나갔던 이강이 옆에 돌아와 있었다.
푸른 여우는 비명을 질렀다.
“끼에에엥!”
“너, 내 말 알아듣지.”
이강이 코앞에서 그렇게 물었다. 푸른 여우는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역시, 알아들었나 보군.”
“……!”
“표정이 수상하더라고.”
불사신검에게 동동 매달린 여우는 심장이 쿵 내려앉은 듯했다.
이강은 구근을 조심스레 살폈다.
“꽃에 비해 평범해 보이는데, 꽃보다 더 중요한 건가 봐.”
“끼야앙!”
푸른 여우는 화를 내듯 울부짖었다.
가치도 알아보지 못하는 이강에게 빼앗긴 것이 분하다는 말투였다.
하지만, 그녀에게 허락된 시간은 이미 끝이 났다.
파지직!
그녀는 푸른 번갯불만 남기고 순식간에 허공에 흩어졌다.
이강도 불사신검도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랐다.
“별…….”
「신비한 일이 다 있구나.」
어쨌든, 밤톨만 한 구근은 이강의 손에 남았다. 이강은 구근을 품에 넣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일단 돌아갈까요.”
망태는 여전히 홀쭉했지만, 삼원성화를 챙긴 이강에게 걱정은 없었다.
* * *
노을이 지기 시작하면서 영천골의 안개도 걷혔다. 이강이 삼원성화를 채집한 직후부터 일어난 일이지만, 아무도 그 인과관계를 알지 못했다.
절벽 위에서 영천골을 내려다보는 엽수남과 초화당주도 그랬다.
“그런데 말입니다. 당주님.”
“으응?”
노을을 보고 있던 초화당주가 고개를 돌렸다.
“그 삼원성화라는 게 말입니다…….”
엽수남과 초화당주는 이번 시험에서 삼원성화가 발견되지 않을까 살짝 기대하고 있었다.
“으음, 이번에 발견할 수 있을까요?”
“기대하지 말거라. 그런 것은 하늘이 점지해 주는 것이다.”
“그렇죠? 그런데…….”
“이놈, 할 말이 있으면 빨리빨리 말하거라.”
엽수남이 머쓱하게 웃었다.
“그으…… 효능이 뭡니까? 그게 귀한 것은 알아도 자세히 들은 것이 없어서요.”
초화당주의 제자인 엽수남도 삼원성화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그것의 외형에 대해서만 들었을 뿐.
초화당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 너도 모를 법하지. 아주 예전에야 종종 발견되었다지만. 나도 실제로 본 적은 없는 물건이니.”
그는 잠시 수염을 쓰다듬었다.
“어떻게 설명할지. 음, 그래. 몇백 년은 된 이야기지만 말이다. 삼원성화가 한 인물의 손에 들어간 적이 있지.”
“호오, 그게 누굽니까.”
관심을 표하는 엽수남.
그리고 그는 스승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크게 놀랐다.
“천마다.”
“……예?”
“천마(天魔)가 삼원성화를 손에 넣은 적이 있다는 말이야.”
엽수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