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9)
9화 동생, 백하준 (4)
이강은 약하다.
그것은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하늘이 내린 무재를 가지고 있는 동생을 정공법으로 이길 수는 없다.
팥 주머니를 던져서 맞출 수 없다면, 직접 손으로 건드려야 한다.
눈을 감고 하준의 움직임을 잡아낼 수 없으면, 백하준이 멈추도록 해야 한다. 스스로의 자취를 감춰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고, 이강은 자신을 감추는 데 성공했다.
「허어, 반신반의했거늘. 정말로 해내었구나.」
‘…….’
그런 불사신검의 감탄에도 이강은 감히 대꾸할 수 없었다.
몸에 의념을 담는 것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이것은 또 달랐다. 없는 것을 건드리는 것과, 존재하는 것을 없는 것처럼 만드는 것의 격차가 컸다.
하지만 이강은 무아지경에 빠져서 몸에 의념을 담아냈다. 육신이 가벼워지고, 발걸음에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 대신 살랑살랑 부는 미풍에도 밀려날 것처럼 위태해졌지만, 고요함 속에서 감각이 날카로워졌다.
동생의 거친 숨소리를 길잡이 삼아 태음경을 펼치며 나아갔다.
전생에서 TV로 본 우주인들이 된 기분이었다. 달 위를 총총 걷듯 나아가, 팥 주머니를 들어 하준을 쳤다.
「그놈, 참 보면 볼수록 물건이로다.」
흐뭇함을 참지 못하는 불사신검의 웃음과 함께, 이강은 그렇게 이겼다.
* * *
“왜, 못 들어주겠냐?”
그날 밤, 이강은 하준을 이기자마자 승자의 권리를 행사하고자 했다.
다만 백하준이 하얗게 질리고 그 옆에는 능지평이 있었으니, 이강은 다음 날 백하준을 자신의 거처로 불렀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이강의 거처에 조용히 찾아온 하준은 몹시 어색해했다. 사실 3년 만의 제대로 된 만남이니 당연하겠지만.
“그러면 상관없는 일.”
“그래도, 아버지께 정식으로 소가주가 되겠다고 말씀드리라니.”
이강이 백하준에게 요구한 건 그것이었다.
하준은 아직 소가주로 내정되어 있을 뿐, 정식으로 인정받은 소가주가 아니었다.
“아직도 절차를 안 밟은 게 더 이상한 거지.”
소가주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가주의 내정, 장로원의 허가다. 백하준은 아직 첫 번째 조건만 갖춘 상태였다.
“……그렇게 되면 돌이킬 수 없어.”
“아직도 그런 한심한 소리를. 내가 태음절맥을 달고 태어난 순간부터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이강은 차갑고 엄하게 말했다.
백하준 역시 무표정이었지만, 그 눈동자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전에 했던 말은 농담이 아니야. 나는 그런 자리에는 관심도 없으니, 네가 소가주가 되어라.”
“형…….”
“이대로면 스물을 넘기지 못할 몸. 귀찮은 일은 네게 맡기고 나는 자유롭게 살련다.”
“큽.”
진심을 말했을 뿐인데, 백하준은 울컥한 얼굴이었다. 익숙한 반응이다.
「거참, 벽창호 같은 놈이로다.」
‘얘, 또 제가 맘에도 없는 말로 양보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죠.’
소가주 이야기만 하면 저런 표정을 지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다 진심이다.”
“응, 응……!”
“에휴.”
이강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불사신검도 헛웃음을 지었다.
「동생 탓만 할 것은 아니니, 가주가 되기를 싫어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니라.」
‘가치관이 다른 거죠. 그리고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소가주 되겠다고 낭비할 시간도 없습니다.’
현대인의 기억을 가진 이강으로서는 허울뿐인 소가주 직에 욕심이 없었다.
게다가 불사신검이 수명을 연장시킬 방법을 말해 준 이상, 그것에 대해 알아봐야 했다.
“네가 어제 했던 이야기 말이다.”
“어떤 이야기?”
“네가 전부 빼앗았다며. 소가주 자리도, 그리고 어머니도.”
“…….”
하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이강은 혀를 차며 접시 하나를 내밀었다.
“일단, 먹어라.”
“이건…….”
“그래, 구운 떡과 꿀이다.”
이강의 처소에는 시비가 없다. 평소에는 다른 하인들이 식사 거리를 가져오지만 이 떡은 이강이 직접 구운 것이다. 만두전골과 함께 백하준이 가장 좋아하던 간식 중 하나였다.
“엄청 오랜만이야.”
눌러서 뽑아낸 뜨끈한 쌀떡을 소금을 뿌려서 숯불에 굽는다. 겉면이 노르스름하게 구워진 쌀떡을 달콤한 꿀에 푹 찍어 먹는 요리다.
단정하고 차가웠던 백하준의 얼굴이 꿀과 함께 풀어졌다. 그 순간을 이강은 놓치지 않았다.
“그 말이 얼마나 헛소리인지는 차치하고. 왜냐.”
“……뭐?”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냐는 이야기다.”
“그냥, 어느 날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어.”
“전자는 그렇다 쳐도, 어머니의 이야기는 다르지. 네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분명 계기가 있었을 거다.”
불사신검이 ‘호오’ 하며 감탄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유는 분명 병이었고. 너를 낳으실 때 고생하셔서 병이 도진 것도 맞다. 가주께서는 그 사실을 함구하셨지. 어떻게 그 사실을 알게 됐냐.”
이강은 백하준의 말을 듣고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조금 신경에 거슬렸다.
하준은 잠시 고민했다. 짚이는 바가 있는 것 같았다.
“숙부가…… 말씀해 주셨어.”
“뭐? 숙부가?”
“응,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말실수를 했으니까 잊어 달라고 하셨는데. 도저히 잊을 수가 없어서.”
“말실수라.”
“엄청 난처해하셨어. 실수로 말씀하신 걸 내가 계속 물어봤거든.”
이강이 입을 다물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실수다. 쉬쉬해온 일이라고 하나 극비도 아니었다.
그런데 불사신검이 호들갑을 떨었다.
「숙부라니, 그 원수 놈 백진태 말이냐?」
‘백씨세가에 몇 없는 인격자이십니다. 왜 원수 놈입니까.’
「그놈 탓에 태음경이 제 이름을 잃지 않았느냐.」
작은아버지인 백진태는 성정이 온화한 무인이다. 몇 안 되게 이강을 싫어하지 않는 백씨세가의 무인이며, 현재는 무림맹과의 일로 세가를 떠나 있었다.
「인격자라, 듣기만 해도 구린내가 나는군.」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 담긴 그 말에 이강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소가주가 되면, 형은?”
백하준이 그렇게 물었다. 당연히 물어볼 일이었다.
후계가 확실해진다면 이강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원래라면 가신으로서 소가주를 보좌하겠지만 그조차 불가능하다.
“글쎄다. 가문 내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테니까.”
설사 하준이 가주가 될 때까지 살아 있다 하더라도 형이 남아 있으면 세가의 신임을 받기 어려워진다.
“……가문을 떠나는 것도 좋겠지.”
“안 돼!”
“귀청 떨어지겠구나. 품위를 지켜라.”
세가를 떠난다는 말에 백하준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여태까지 데면데면 굴었던 주제에 우스운 일이다.
“집을 두고 어디로 떠나…….”
“울상짓지 마라, 못생긴 얼굴 더 못생겨지니.”
“아, 응……. 나는 형이랑 다르게 못생겼으니까.”
울상 짓던 백하준은 민망한 듯 얼굴을 쓸었다. 그 모습에 이강이 허허 웃었다.
이강 역시 곱상하게 생겼지만, 백하준 역시 크면 여자깨나 울릴 외모였다.
「번지르르하게 생겨서 웃기는 놈이군.」
불사신검의 말 그대로였다.
“이대로 죽을 날만 기다리기는 싫어졌으니, 몸을 조금이라도 고쳐 봐야지.”
백하준의 반응은 조금보다 더 거셌다. 의자를 부술 듯이 거칠게 일어선 것이다.
“방법을 찾았어?”
“뭐, 당연히 확실한 건 아니고. 완치가 되는 것도 아니겠지만.”
백하준과 도깨비 잡기를 하기 전, 불사신검은 승리에 조건을 걸었다.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단서’를 알려 주겠다는 것이었다. 이강은 그 단서에 희망을 걸어 보기로 결심했다.
“천주신의하고 연통이 닿았어?”
“아니, 그리고 그 천주신의라도 절맥을 고칠 수 있을지는 모르지. 여태까지 다른 의원들을 안 만나 본 것도 아니고.”
정도 무림에서 최고의 명의라 불리는 천주신의는 현재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강은 의원의 힘을 빌리려는 것이 아니었다.
“청림에 한번 가 보고자 한다.”
“청림……?”
“그래, 그 도문에 가서 내 몸을 한번 봐달라고 하고 싶다.”
백하준이 의아해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청림(靑林)은 엄연한 무림 문파다. 그것도 대문파.
요즘은 구파(九派), 일방(一幇), 일림(一林)이라 하여 청림을 구파일방과 동등하게 두기도 한다.
“내가 서책을 읽었다.”
“서책? 으응.”
“무당, 화산, 청성, 곤륜. 도가 문파들의 특징은 알고 있지?”
“아, 연단술로 영약을 만드는…….”
“물론 영약도 중요하지. 아무튼, 그쪽 문파들도 도가의 한 축을 담당하지만 사실상 칼잡이에 가까워졌는데, 청림은 다르다고 하는구나.”
“……청림 무인들의 내가기공이 엄청 대단하다고는 들었어.”
“그래, 어쩌면 혈맥이 끊어져 태어난 것도 조금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
불사신검이 이야기한 것이 바로 청림이었다.
「청림의 노인네가 보통이 아니었으니, 어쩌면 그들은 자손의 병세를 완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생전에 그들을 돕고 증표를 얻었으니, 그것을 보여 준다면 요구를 들어줄 게다.」
청림과 백씨세가는 교류가 거의 없었다. 이쪽은 칠대세가고, 그들은 구파일방과 더 가까우니.
「그놈들이 염치가 있다면 증표를 기억하겠지. 그것을 챙겨서 청림에 방문해 보거라.」
증표는 세가 내부가 아니라 다른 곳에 두었다고 한다.
첫 번째로 할 일은 그 증표를 찾는 것.
“그런데 청림은 멀리 있잖아.”
“그렇지…… 그리고 가주님도 설득해야 하고.”
그 증표를 찾아내서, 그 멀리 있는 청림까지 가야 한다. 백하준에게는 서책을 보았다고 말했지만, 가주에게도 그렇게 눙치고 넘어갈 수는 없으리라.
꽤 오래 걸릴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조금 막막해졌다.
그때, 백하준이 기대치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 청림 말인데……. 어쩌면 그 기회가 조금 빨리 올지도 몰라.”
“뭐?”
“청림 사람이 우리 세가에 방문하기로 했거든.”
이강은 깜짝 놀랐다.
“뭐? 왜. 아니, 언제?”
“아마 나흘 뒤. 형 말대로 원래 교류가 없었는데, 갑자기 다른 세가 자제들과 함께 방문한다고 했어.”
“좋아!”
이강은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청림의 사람이 직접 온다면 그들에게 증표를 보여 주고 부탁하면 될 일이다.
「우선 그놈들의 증표를 먼저 찾아 둬야겠구나.」
다만 문제는, 그들이 오기 전에 증표를 찾아 두어야 한다는 것. 나흘이면 시간이 급하다.
「증표를 숨긴 곳은 도굴을 막기 위해 기관을 설치해 두었으니. 아직 형편없는 자손 홀로 간다면 죽기 딱 좋을 거다.」
‘그러면 어떡합니까. 제게 수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부려 먹기 딱 좋은 놈이 앞에 있지 않은고.」
이강은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구운 떡을 다 먹어 치운 백하준이, 차마 더 달라고 말은 못 하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야.”
“응.”
“내일 일정이 어떻게 되냐.”
“음, 딱히 없어. 혼자 수련할 것 같아.”
“그러면 나랑 어디 좀 다녀오자.”
백하준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디……?”
“바깥.”
이강이 말하는 바깥은, 분명 세가의 담장 너머가 분명했다.
“저잣거리에?”
“그래, 싫으냐?”
백하준의 얼굴이 환해졌다.
“좋아!”
* * *
동이 틀 무렵. 조용히 외원으로 나온 백하준의 눈 밑은 퀭했다. 어젯밤은 기대감 때문에 한숨도 자지 못했기 때문이다.
‘칼을 챙기라니.’
처음 생각처럼 이강이 저잣거리에서 놀자고만 부른 것은 아닌 듯했다.
‘그래도, 은자는 챙기는 게 좋겠지.’
그러나 기대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 12살인 백하준이 세가 바깥으로 나올 일은 드물었다. 게다가 호위나 다른 가신 없이 나가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무려 3년 만에 돌아온 형이, 틀림없이 자신을 미워하리라 생각했던 그가 먼저 외출을 제안한 것이다. 어쩌면 시장 구경도 하고, 함께 당과라도 사 먹을지 모른다.
외원의 후미진 곳. 소나무로 담장이 가려진 곳에서 백하준은 주변을 살폈다.
내원에는 감각이 뛰어난 무인들이 철통같이 방어를 선다. 하지만 이곳 외원은 다르다. 외부인이 많이 드나들뿐더러 담장이 보통 넓은 게 아니라서 이렇게 빠져나갈 틈이 있었다.
순찰자가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백하준이 몸을 튕겼다.
탁!
담벼락에서 비쭉 튀어나와 있는 부분을 한번 딛고, 처마를 콱 움켜잡는다. 팔을 강하게 당겨서 몸을 끌어올리니, 옷자락이 파르륵 휘날렸다.
그는 순식간에 7척 높이의 담장을 뛰어넘었다.
툭-
능지평이 보았다면 박수를 쳤을 만큼 훌륭한 경신법.
고개를 든 백하준 앞에 괴인이 서 있었다.
“흡!”
저도 모르게 칼을 뽑을 뻔했던 그는 간신히 손을 멈췄다.
“혀, 형……?”
“뭐냐 너.”
처음에는 거지라도 되는 줄 알았는데 이강이었다. 풀어헤친 머리에 어디서 주워 왔는지 낡아 빠진 옷. 얼굴은 진흙이라도 묻혔는지 꼬질꼬질했다.
“왜 그런 모습이야…….”
“내가 할 말이다. 너 내가 눈에 띄지 않게 하고 와야 한다고 강조했잖아.”
“그래서 조용히 나왔어.”
“나오는 게 문제가 아니라 돌아다닐 때! 백하준이라고 이름표라도 붙이고 나오지 그랬냐 아주.”
하준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단정하게 묶은 머리, 비단으로 만든 옷. 보석이 박힌 허리띠와 역시 보석이 박힌 검.
“어…….”
“에효. 이래서 몰래 나가 본 적도 없는 부잣집 꼬마들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이강이 한숨을 쉬고 다가왔다. 그러더니 손바닥을 쫙 펴서 하준의 얼굴을 비볐다.
“으윽, 뭐야!”
“진흙.”
백하준의 곱던 얼굴은 순식간에 이강처럼 꼬질꼬질하게 변했다.
“우리가 놀러 가는 줄 알아?”
“……아니었어?”
순식간에 농민의 자식처럼 변해 버린 하준이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이강은 가차 없었다.
“어, 아니야, 일하러 가는 거야. 옷도 너무 눈에 띄니까 바닥에서 좀 구르자.”
하준은 얌전히 흙바닥을 굴렀다.
왠지, 조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