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91)
91화 성불 의식 (1)
참회동(慙悔洞)은 규율당의 내부에 있다.
‘참회한다’라는 말 그대로, 참회동은 본래 청림이 사로잡은 마두나 악적을 가둬 놓고 죄를 뉘우치게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예전의 일이다. 예전의 마교 대축출 이후로는 무림에 평화가 지속되었다.
좀처럼 강호 활동을 하지 않는 청림이기에 참회동은 수십 년 동안 비어 있었다.
다만, 몇 년 전부터 참회동의 한 칸을 계속 차지하게 된 제자가 한 명 있었다.
그 이름은 담현.
청림의 이대 제자이며, 그 재능을 증명받아 영화제자가 된 이였다.
사부인 유정신을 찔렀다는 대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담현의 모습은 멀쩡했다.
그가 쓰는 독방 역시 마찬가지였다. 허름한 짚단이 깔린 더러운 방이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있을 만큼 준수한 상태였다.
낡은 마룻바닥에 담현이 발을 내디뎠다.
철창살이 달려 있는 철창이었지만, 독방에는 바깥을 볼 수 있는 창이 있었다.
그는 창가로 다가갔다.
햇볕이 담현의 손, 몸, 그리고 얼굴을 비추었다.
놀랍도록 창백한 피부였다.
이강의 창백함이 병약함 탓이라면, 담현의 흰 피부는 태양을 보지 못한 흰빛이었다.
“으…….”
그는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창틀에 쌀알을 한 줌 올려 두었다.
곧, 산새가 날아와 창틀에 앉았다. 산새는 쪼로롱거리며 작은 부리로 쌀알을 쪼아먹었다.
담현의 신경질적이고 피로한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귀여운 놈.”
그는 귀중한 것을 만지듯 산새의 등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놀랍게도 새는 담현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아지가 애교를 부리듯 담현의 손에 제 얼굴을 부볐다.
“네 덕택에 이곳에서도 쓸쓸하지가 않구나.”
담현의 눈에는 애정이 깃들어 있었다.
사람에게는 결코 보이지 않는 따듯한 눈빛에, 순간 보라색 광채가 돌았다.
산새가 노래하듯 쪼로롱거렸다.
“산의 공기가 이상해 천신촉대(天神燭臺)에 촛불을 피웠나…….”
촛불의 냄새가 날 리도 없었는데 담현은 그것을 알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저릿저릿하게 느껴지는 영력이 대서고의 방향에서 느껴졌다.
그곳에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음이 확실했다. 타고난 재능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는 예민한 감각으로 알았다.
“사부님, 무슨 일을 꾸미고 계십니까.”
담현의 눈에 불길 같은 감정이 타올랐다. 그는 어딘가 일그러진 사람이었다.
그의 뒤편에 비치는 벽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무엇으로 그렸는지, 새빨간 액체를 손가락으로 눌러 그린 벽화.
사람들이 불타 죽고, 짐승과 산새들이 그들을 뜯어먹는 그림이었다.
부들부들 떠는 담현의 어깨를 무언가가 휙 타고 올랐다.
그것은 놀랍게도 나무로 만든 여우 인형이었다.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그 목각인형이 담현을 위로하듯 꼬리를 흔들었다.
담현은 그것만으로도 분노가 가라앉은 듯 여우를 쓰다듬었다.
“그래…… 사부님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실패할 테니까. 냄새만 맡아도 알지.”
유정신과 금침의괴가 준비하는 의식.
놀랍게도 담현은 이곳 참회동에서 의식의 실패를 전망하고 있었다.
“이제 내 빈자리를 떠올리게 되겠지.”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담현은 다시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 * *
그리고, 손희일.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가 저녁마다 방문하는 이곳은 백송 연무장이었다.
늘 삼대 제자들로 붐비는 청송 연무장과 달리, 이곳은 훨씬 조용했다.
여기는 이대 제자들을 위한 연무장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곳 백송(白松)이 우거진 공간은 이강 말고는 사용하는 사람이 없었다.
부러움을 삼키며, 손희일은 목검을 들었다.
처음에 규율당주에게 이강의 수발을 들으며 예법을 배우라는 선고를 받았을 때. 그때는 혀 깨물고 죽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저 무지했다는 죄로는 너무 가혹한 벌이었다.
하지만 이강은 다행히 손희일을 크게 부려먹지 않았다.
그 대신 매일 저녁마다 목검 대련을 요구했다.
백씨세가의 검을 완성하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것이 얼마나 건방진 포부였느냐는 제쳐 두고, 손희일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한 번이라도 손희일이 승리하면 그를 놓아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왔구나.”
“이강 사숙.”
손희일은 어두운 얼굴로 포권을 했다. 나이 어린 이강을 사숙으로 부르는 일은 이미 익숙해졌다. 표정이 어두운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시작할까?”
“예…….”
이강 역시 목검을 들고 있었다.
손희일은 조심스럽게 기수식을 취했다.
그는 이강과 비무를 해서 진 경험이 있었다. 그렇다고 희일의 자존심이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실력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비무를 여러 번 하면 한 번은 이길 기회가 오겠지. 이강에게 익숙해지면 허점이 보이겠지. 그런 식으로 대련을 매일같이 해 왔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저벅-
이강이 한 발자국 다가왔다.
망설임 없는 표정인 이강에 비해, 손희일의 얼굴은 더 어두워졌다.
첫날 대련은 약 삼백 초(招)를 교환했다. 손희일은 정말 아깝게 졌다. 종잇장 차이였다.
다섯 번째 대련은 이백 초식 만에 승부가 났다. 아쉽게 졌다고는 말할 수 없는 승부였다. 이강의 새로운 초식을 명치에 얻어맞고 기절했기 때문이다.
열다섯 번째 대련은 백 초도 안 되어 끝났다.
손희일의 얼굴에 공포가 깃들기 시작한 게 그때 무렵이었다.
그는 분명 이강의 검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강은, 손희일이 익숙해지는 속도 이상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오늘은 천영검식의 9식이다.”
“네, 네…….”
그리고 이강이 검이 하늘로 올라갔다.
천영검 후삼식 중 제8식, 천라백광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9식은 천라백광과 연환되는 검이었기 때문이다.
손희일은 이전의 대련에서 천라백광에 의해 처참하게 튕겨 나간 적이 있었다.
즈즈즈즈-
이강의 목검이 진동했다. 분명히 잔상이 엿보였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련의 조건은 검에 내기를 불어넣지 않는 것.
이강이 절맥증이 아니었다면 분명 규칙을 어겼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9식의 이름은 분명…….
“정신 차려, 사질.”
“크윽…….”
손희일은 이를 악물고 검을 들어 대항했다.
이강이 든 목검의 잔상이, 순간 확 흩어졌다.
시야를 가득 채운 검의 잔상.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다.
천영검 제9식
파천만검(破天滿劍)
저것이 불사신검이 이강에게 전수했던 천영검의 진수였다.
손희일은 막고, 막고, 또 막았다.
하지만 마치 용이 몸부림치듯 사방으로 날아오는 이강의 목검이 결국 손희일의 방어를 뚫었다.
빠바바바박-
손희일의 전신 요혈을 두들기고 지나가는 이강의 목검.
희일은 눈을 까뒤집고 바닥을 굴렀다.
단 두 초식 만에 난 승부. 최고 기록이었다.
“후우, 후.”
이강은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그에게도 천영검식의 후삼식은 익히기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내공을 쓸 수 없는 지금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강은 9식까지의 검형(劍形)을 완전하게 익혀 냈다. 저번에 황옥이 가진 기를 움직이면서 얻은 깨달음 덕택이었다.
“괜찮냐?”
“끄으…….”
손희일은 아예 정신을 잃은 듯했다.
그와 매일 대련하던 것이 아니었으면 천영검식을 이렇게 빨리 습득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수고했다.”
혼절했으니 들릴 리가 없지만 이강은 그렇게 말해 주었다.
「훌륭하다.」
불사신검이 옆에서 빙긋 웃었다.
‘이 정도면, 천영검식을 다 배운 걸까요?’
「그럴 리가, 가장 중요한 내기의 수발 방식에 대해서도 직접 지도해 주고 싶었는데.」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어젯밤 청림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시간이 되었다며.
‘저 혼자서도 열심히 연습하면 되겠지요.’
「그렇겠지.」
불사신검이 성불해야 이강의 몸을 고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야 천영검식의 진짜 힘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조상님이 성불하시면 조용하겠군요.’
「으흐흐, 나 다음에도 비슷한 녀석을 만날지 모르는 일 아니냐.」
불사신검은 ‘다음’을 이야기했다.
이강이 불사신검의 영력으로 대맥을 잇는다고 해도 그것은 완치가 아니었다.
수명이 몇 년 늘어나기는 하겠지만, 몸을 고치기 위해서는 또 어마어마한 영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청림주는 이강에게 말했다. 언젠가, 또 다른 방법으로 영력을 구해야 한다고. 어쩌면 불사신검처럼 지상에 남아 있는 또 다른 영혼을 성불시켜 줘야 할지도 몰랐다.
“그러기가 쉽겠습니까.”
「그렇기는 하겠지.」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요원한 일이다.
이강은 손희일을 따듯한 곳에 앉혀 둔 뒤,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불사신검도 역시 이강의 옆에 앉았다.
유독 봄 햇살이 따듯한 날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이강은 대서고의 지하로 향했다.
의식이 준비되었다.
* * *
이강은 고개를 들었다.
대서고 아래에 이런 공간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동굴의 지하이니 아주 캄캄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 비싸다는 야명주(夜明珠)가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왼쪽을 보니, 금침의괴가 자신의 침을 소독하고 있었다. 침을 뜨거운 촛불에 달구고 흰 천 위에 곱게 올려놓는 일의 반복이었다.
오른쪽을 보면 유정신이 촛대 앞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저것이 영력을 수집해 이강의 몸을 회복시켜 줄 보패라고 했다.
그리고 이강 자신은.
“어우 추워.”
속옷만 입고 차가운 돌 석판 위에 앉아 있었다. 전신에 침을 맞아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생각보다 낭만적인 이별은 아니네요.”
「클클, 그러게나 말이다.」
옆에 서 있는 불사신검도 웃으면서 이강을 내려다보았다.
찬란한 오색 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잘 있거라 이강!’, ‘고생 많으셨습니다 할아버지!’ 이런 식의 이별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치 수술실에 들어온 환자처럼 의식이 진행될 줄은 몰랐다.
“자, 준비는 되었느냐.”
유정신이 다가와서 물었다.
안색이 창백한 것이 의식의 준비가 고생스러웠던 듯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래, 내가 꼭 네 몸을 고쳐 주마.”
유정신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강으로서는 저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유정신이 곧바로 이해되지는 않았다.
제자가 될 것이라고 하지만 어쨌든 아직 그리 가까운 사이도 아닐진대.
금침의괴가 손을 수건으로 닦으며 끼어들었다.
“몸을 고쳐 주는 것은 나지, 네가 내 공을 가로채려고? 흐흐.”
그는 이강의 눈꺼풀을 잡고 동공을 살피거나, 킁킁대며 숨결의 냄새를 맡고 손목의 맥을 짚었다.
“몸 상태에 문제는 없는 것 같고. 그러면 시작하자꾸나. 말씀드리거라.”
“예.”
이강은 불사신검을 바라봤다.
이들은 불사신검과 소통할 수 없으니, 이강이 해야 할 일이었다.
불사신검은 빙긋 웃으며 공동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중앙에는 아홉 개의 촛대가 둥글게 놓여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이곳, 공동의 바닥에는 진법이 펼쳐져 있었다.
기문둔갑의 도리에 따라 펼쳐진 수준 높은 진법이었다. 붉은 경면주사(鏡面朱砂)로 알아보기 어려운 글자가 곳곳에 적혀 있었다.
서장어(西藏語), 혹은 범어(梵語)라는 것이었다.
“본디, 도가에서는 삶과 죽음이 무애하다고 가르친다. 성불이라는 개념은 본디 우리보다 불승들에게 익숙한 것이지.”
유정신의 친절한 설명에, 이강은 눈을 깜빡였다.
“그렇기에 진식을 설계함에도 그쪽의 방식을 빌렸다. 너도 곧 배우게 될 것이야.”
아무래도 청림은 도교 이외의 술수에도 너그러운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강이 똑바로 누워서 천장을 보았다.
유정신이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경문(經文)을 읊겠다.”
의식이 시작된 것이다.
“일생의 고난을 이루셨으니, 이제 미련을 놓으셨을 줄 압니다.”
이강은 누워 있느라 불사신검을 볼 수 없었다.
그저 유정신의 말이 아련하게 들릴 뿐이었다.
“따라 하거라, 심신단원(心神丹元).”
“심신단원.”
가슴팍이 뜨끔했다. 금침의괴가 손 두 뼘만 한 장침을 명치에 박았다. 무척이나 고통스러울 테지만 이강은 꿈쩍하지 않았다.
“넋에 깃든 한을 푸셨으니, 극락정토에 드실 줄 압니다. 영아통진(令我通眞).”
“영아통진.”
유정신은 그렇게 외다 잠시 이강에게 속삭였다.
“기쁜 일들을 떠올리시라 전해라. 지상에 미련을 놓으실 수 있는 후련한 일들을.”
이강은 전했다.
불사신검의 표정이 어떨지 궁금했다. 손녀인 백영령에게 용서받던 때를 떠올릴까? 아니면 아들이 살아 있던 그때의 과거를 떠올릴까.
“그대가 지상에 남긴 영력으로 그 자손을 치유코자 합니다. 영보부명(靈寶符命).”
“영보부명.”
그리고, 누워 있는 이강 역시 알아차릴 만한 변화가 일어났다.
치이이이잉-
야명주의 빛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불사신검이 있던 방향이었다.
누워 있는 이강에게도 이제는 불사신검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허공에 떠오르고 있었다. 성불하려고 할 때마다 그랬듯, 찬란한 금빛을 뿜고 있었다.
불사신검은 속세의 모든 것을 초탈한 듯, 허허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강에게 침을 놓던 금침의괴가 놀란 듯 중얼거렸다.
“정말…… 저기 혼령이 있었군.”
이제는 그에게도 불사신검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의식이 성공적으로 진행된 것일까.
그러나 그때, 유정신이 외쳤다.
“이런, 이럴 수는……!”
급박하고 당황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이강은 온몸에 차오르는 막대한 기운을 느꼈다.